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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세계

브라질이 선택한 것은 룰라 & 안정 /레디앙

by 마리산인1324 2010. 11. 2.

<레디앙> 2010년 11월 02일 (화) 08:56:11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20444

 

 

 

브라질이 선택한 것은 룰라 & 안정
[호세프 당선의 의미] "계급투표 양상 확연하게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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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돈문 교수 

브라질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에서 노동자당 지우마 호세프(Dilma Rousseff) 후보가 당선되었다. 금년 초 호세프는 사회민주당 주제 세하(José Serra) 후보에 더블 스코어로 뒤지고 있었다.

 

불과 반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하가 준비된 대통령 후보로서 대통령 취임은 그저 시간 문제인 것처럼 보였던 사실을 생각하면 스릴 넘치는 한 편의 역전 드라마를 보고난 느낌이 들만도 하다.

 

룰라의 유령이 싸운 대통령선거

 

호세프의 역전 드라마는 경마 경기처럼 중계되었고, 마침내 언론은 호세프의 당선을 브라질 사상 첫 여성 후보의 대통령 당선, 그것도 게릴라 전사 출신이라는 점을 내세우며 브라질 정치사상 획기적인 격변으로 규정하게 되었다. 역전 드라마 연출 가능성으로 판돈이 엄청 커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선 자체는 치열한 쟁점 없이 치러진, 브라질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지리하고 재미 없는 선거로 기록될 것이다.

 

낙선 후보 세하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줄곧 룰라와 싸웠을 뿐 호세프는 안중에도 없었다. 룰라가 80%대의 높은 지지율을 구가하는 가운데 호세프가 룰라의 지원에 힘입어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세하가 룰라의 지지율과 싸우지 않으면 호세프와의 지지율 격차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룰라의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이 시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가운데 대미 관계 등 외교정책으로 룰라를 공격하는 것은 성공하기 어려웠다. 결선투표를 앞두고 세하는 호세프의 낙태 합법화 지지 입장을 공격하며 유권자들의 가톨릭 가치관에 기대어 열세를 만회하고자 했으나, 대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브라질 시민들은 변화가 아닌 안정을 위해 투표했다. 물론, 그들이 선택한 것은 호세프가 아닌 룰라였다.

 

시민들은 세하를 복지부장관과 주지사 경력에 더하여 2002년 룰라와 결선투표에서 겨룬 바 있는 준비된 대통령 후보로 인정하고 있었다. 브라질인들은 세하를 호세프에 비해 훨씬 더 경험이 많고, 지적 능력이 뛰어난, 준비된 대통령 후보로 평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세하가 아니라 호세프에게 표를 던졌다. 왜 그랬을까?

 

안정을 위한 좌파 정당 투표

 

호세프가 세하에 비해 경제안정을 유지하고 실업 및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평가한 것이다. 호세프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룰라 정부에 대한 평가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었다. 룰라 정부는 5%대의 안정적 경제성장률을 구가하며, 고용문제 해결에 상당한 진전을 보인 동시에 적극적 사회예산 지출을 통해 빈곤 및 빈부격차 문제를 해소하는 데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세하의 사회민주당 지지자들도 룰라 정부가 사회․경제 문제들의 개선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룰라 정부의 사회경제 정책들이 지속되기를 원했고, 룰라의 승계자로 지명된 호세프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룰라와 노동자당은 8년 전 변화를 위한 선택에 힘입어 집권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변화가 아닌 안정을 추구하는 유권자들의 선택으로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것이다. 좌파 정당이 안정을 위한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룰라와 노동자당의 집권 8년이 만들어낸 새로운 정치 지형 변화임에 틀림없다.

 

또한 이번 대선은 2006년 대선에 이어 다시 한 번 계급투표 양상을 확연하게 보여 주었다. 시민들은 세하가 주로 부자들을 대변하는 반면, 호세프는 빈민들을 대변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룰라 정부가 2003년 출범한 이래 적극적인 시장개입과 소득재분배 정책을 통해 계급적 성격을 표출함에 따라, 중간계급과 고소득층에 속한 룰라의 지지자들이 점차 이탈하는 반면 노동계급과 저소득층 가운데 룰라의 지지세력이 크게 확대되기 시작했다.

 

결국, 저소득층 룰라 정부 지지, 고소득층 룰라 정부 반대로 룰라 정부에 대한 평가는 계급적 위치에 따라 양극화되기 시작했다. 2006년 대선은 계급투표로 치러졌고, 룰라 정부 2기 하에서도 룰라 정부에 대한 평가의 계급간 양극화 추세는 더욱더 강화되고 있었다. 이번 대선에서도 룰라 지지자들은 호세프 후보에게 투표하고 룰라 반대파들은 세하 후보에 투표하면서, 계급투표 현상이 주도적 투표양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룰라 정부의 성공: 효율성과 공정성의 결합

 

내년 1월 1일에 출범하는 호세프 정부가 어떤 모습일까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시민들은 호세프의 비전을 평가한 것이 아니라 룰라 정부의 성과를 평가한 것이고, 호세프 정부는 호세프 개인의 지지기반에 기초하여 출범하는 것이 아니라 룰라의 지지기반에 기초하여 출범하는 것이다. 게다가, 호세프 자신이 룰라 정부 2기 경제정책, 즉 PAC(경제정책촉진프로그램)을 직접 집행한 책임자라는 점에서 룰라 정부의 사회․경제정책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룰라 정부의 정책모델이 지속된다고 해서 그 의의가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룰라 정부가 경제성장과 불평등 완화를 동시에 실현하는데 성공했다는 사실은 제3세계에서도 영미식 신자유주의 자유시장경제모델에 맞서는 대안적 모델의 우위를 경험적으로 입증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서구의 경우 스칸디나비아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이 2000년대 들어 안정적이고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을 지속하는 동시에 불평등 완화 및 삶의 질 향상을 실현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은,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공정성을 동시에 실현하는 것이 보편적 가능성으로 추구될 수 있음을 경험적으로 확인해 주는 것이다.

 

룰라 정부는 압도적인 국민적 지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좌파들로부터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제의 틀에 갇혀 사유화 기업들의 재국유화 등 변혁적 정책들을 펼치지 않았다는 비판도 꾸준히 받아 왔다. 그렇다면 호세프 정부는 효율성과 공정성을 실현하는 룰라모델을 넘어 진보적 사회변혁을 실천할 수 있을까?

 

변혁적 실험의 가능성과 치안 문제

 

룰라 정부는 2기 들어 PAC을 통해 수력 에너지 부문, 바이오 디젤 및 에탄올 등 에너지 산업을 중심으로 공장․설비들을 신설하거나 정부 지분을 증대하는 한편 일부 지방 은행들을 인수하는 등 소유권 구조의 급진적 변혁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1기에 비해 에너지 및 금융산업을 중심으로 시장에 대한 규제력과 정부의 장악력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

 

호세프가 PAC의 핵심 추진 주체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호세프 정부가 사유화 기업들의 재국유화를 추진한다면 꼴로르 정부와 까르도주 정부 시기 사유화된 기업들 가운데 에너지 및 금융 산업들에서 시작하여 항만, 철도 산업 등 망산업으로 국유화가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호세프가 그러한 변혁정책의 추진 의지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사유화기업 매입에 필요한 재정적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 룰라 정부의 재정적자 및 공공부채 감축 성과와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따른 조세 수입 증대에 힘입어 제한적이나마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극복해야 할 난제들은 쌓여 있다.

 

정당비례투표제에 기초한 다당제 의회 체계 속에서 룰라가 그러했듯이 호세프는 PMDB를 비롯하여 10여개의 군소정당들과 함께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한다. 룰라는 자신의 조직적 기반과 높은 대중적 인기에 기초하여 연정을 관리할 수 있었고, 연정 참여 정당들의 관리 과정에서 발발하는 정치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높은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호세프는 룰라의 후광 이외에는 뚜렷한 조직적 기반이나 정치적 자산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연정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무엇보다도 정치적 스캔들로 타격을 입을 경우 룰라의 후광에 기댄 지지율은 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다.

 

호세프가 정치적 리더십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브라질 노총(CUT)과 노동자당을 중심으로 조직적 기반을 구축하는 수준을 넘어서 일반 시민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룰라 정부가 남겨놓은 난제를 해결하는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예컨대, 치안 문제가 관건이 될 수 있다. 룰라 정부도 총기등록법을 통해서 총기 회수․폐기를 시도했지만, 범죄조직들이 여전히 경찰 보유 총기의 두세 배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치안 문제는 심각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민들은 치안 문제를 보건의료 문제와 함께 룰라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심각한 과제로 꼽고 있으며, 2014년 월드컵과 2016년의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치안 문제가 주요한 정치사회의제로 대두될 것은 자명하다. 그러한 상황은 호세프에게 기회가 될 수 있으며, 치안문제를 크게 개선할 수 있다면 호세프가 정치적 리더십을 구축하여 연정을 관리하며 변혁적 정책을 추진하는데 큰 힘이 될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2010년 11월 02일 (화) 08:56:11 조돈문 / 가톨릭대 사회학 webmaster@redia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