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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내음> 2008/03/2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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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화폐의 모델, 대전 한밭레츠를 찾다!

 

 

날짜 : 2008년 3월 20일(목)
만난사람 : 모래무지(상근자)
작성 : 김현(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모래무지를 만나다

 

봄기운이 따뜻한 어느 봄 날 오후, 지역화폐운동으로 잘 알려진 대전의 ‘한밭레츠’를 찾았다. 잘 알다시피, 레츠는 Local Exchange Trading System (LETS)의 줄임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역화폐, 지역통화, 품앗이 등으로 부리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편의상 ‘지역화폐’로 통일한다. 지역화폐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화나 노동을 다른 사람의 그것과 교환하는 것을 원리로 삼고 있다. 기존 화폐경제시스템에서 유일한 가치의 척도가 되어 있는 화폐는 참으로 많은 문제들을 낳았다. 단순한 척도가 이젠 삶을 평가하는 척도로 둔갑한 것이다. 더욱 공고해진 자본주의와 이미 장벽이 없어진 세계경제체제로부터 자유로운 지역사회는 깊은 산 속 오지를 제외하고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거대한 자본을 통제할만한 지역사회는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에서 작은 몸부림이지만 인간의 공동체성을 찾아보려는 시도들이 세계 도처에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대항’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지 모르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자본으로부터 자신의 삶을 통제하려는 아름다운 대항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대전 ‘한밭레츠’가 그러한 곳 중에 하나다. 물론, 모든 회원들이 거대 자본주의와 맞서고자 하는 견고한 투지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관념적으로 그런 투사가 있을지는 몰라도, 대체로 ‘이러 활동은 우리 모두에게 이롭다’는 것을 믿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생활인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의 활동은 대안경제다’라고 외치지 않는다. 다만 이 활동을 통해 ‘우리는 행복하다’고 말할 뿐이다. 소망이 있다면, “우리만 행복을 맛볼 것이 아니라, 너희도 행복해질” 것을 주문한다. 어떻게 하면 가상의 화폐 ‘두루’를 주고받으며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대충 보보기에 한 20여 평 정도 되는 사무실에 상근하고 있는 ‘모래무지’를 만났다. 모래무지는 박현숙 두루지기의 애칭이다. 한밭레츠 초창기 멤버 중에는 공동육아협동조합 조합원들이 많았다고 한다. 잘 알려진 대로 공동육아협동조합은 조합원뿐 아니라 아이들까지도 자연스럽게 애칭을 불러오고 있다. 그런 호칭이 익숙해지면서 한밭레츠 회원들도 애칭 부르는 것을 선호한단다. 그런데 왜 ‘모래무지’인가?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해바라기’를 쓰려 했으나 누군가 이미 쓰고 있었고, 본인을 한밭레츠에 소개시켜준 친구가 ‘버들치’라는 애칭으로 통하기 때문에 본인도 물고기 이름으로 골랐단다. 어렸을 때 손으로 잡고 놀던 때를 기억하며 모래무지로 정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모래무지를 처음 보았지만, 잘 어울리는 애칭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한밭레츠의 탄생 과정

 

한밭레츠의 탄생 배경에는 ‘대전의제21실천협의회’ 사무국 활동가들의 역할이 컸다. 환경단체 활동가들에게 필독서가 된 “꿈의 도시 꾸리찌바”의 저자 박용남 씨가 당시 대전의제21실천협의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을 때였고, 어느 날 박용남 씨가 지역화폐와 관련된 문서를 번역해서 회원들에게 제시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대전의제21실천협의회’ 측은 해볼 만한 사업이라고 판단했고, 회원들을 중심으로 공부 모임을 시작했다. 정식으로 지역화폐 회원을 모집했을 때가 1999년 10월경이었다. 그렇게 70여 명의 회원들이 모여 2000년 2월에 창립총회를 열고 한밭레츠가 탄생한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대전의제21실천협의회’ 내에 등록소 형태로 존재했었다. 1년 후인 2001년 5월에 정식으로 ‘대전의제21실천협의회’로부터 독립하게 되고 2002년 2월 첫 총회를 개최함으로써 본격적인 활동의 기반들을 만들어나갔다.

 

한밭레츠를 이야기할 때 대전 ‘민들레의료생협’과 ‘꽃피는 학교’(구 ‘푸른 숲 학교’)를 빼놓을 수 없는데, 왜냐하면 ‘민들레의료생협’과 ‘꽃피는 학교’를 준비하고 창립한 멤버들은 대부분 한밭레츠 회원들이기 때문이다. 2001년 5월 한밭레츠 8명의 회원들은 대전의료생협 연구모임을 시작했다. 다른 지역 의료생협을 둘러보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 해보자!”라는 자신감이 생겼고, 지체 없이 다음 해인 2002년 4월, 대전민들레의료생협을 창립시켰다. 창립 당시 의료생협 조합원 303명 중 150여 명이 한밭레츠 회원들이었다는 점만 보더라도 의료생협의 출생에는 한밭레츠의 기여도가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밭레츠 회원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의료생협 창립 다음 해인 2003년 3월, 한밭레츠 회원들이 주축이 돼서 대안학교 준비모임인 ‘두루학교’ 인터넷 카페 활동을 시작했고, 1년간의 활동을 거쳐 다음 해 2004년 4월, 지금은 ‘꽃피는 학교’로 바뀐 ‘대전 푸른숲 학교’를 개교하게 된다. 한밭레츠를 준비했던 1999년 10월부터 만 4년 조금 넘는 동안 굵직한 세 가시 이슈를 순조롭게 처리한 것이다. 지역통화와 의료생협, 그리고 대안학교가 그것인데, 민들레의료생협은 한밭레츠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한밭레츠 사무실도 의료생협 내에 둠으로써 유기적인 관계를 줄곧 유지해왔다. 그러나 ‘꽃피는 학교’는 회원과 비회원의 문제로 인해 초기의 긴밀한 관계에서 지금은 다소 소원한 상태가 됐다. 회원의 연결망이 끊어진 점과 거리상의 접근성이 활발한 활동을 어렵게 한 것이다.

 

한밭레츠의 또 다른 기여 그룹은 공동육아협동조합으로 보인다. 초기 형성단계에서부터 공동육아협동조합 조합원들의 참여가 꽤 많았다는 것이 모래무지의 이야기다. 현재도 한밭레츠 회원 중에는 공동육아협동조합 조합원들이 꽤 된다. 공동육아협동조합이 나름대로 터전을 잡고 성장했던 지역의 공통점은 다른 영역으로 확대․재생산해나갔다는 것인데, 성미산이나 과천, 고양 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지역의 특성이나 회원의 구성, 개별 시설에 따라 폐쇄성을 보이는 곳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공동육아협동조합이 지역사회 다양한 영역에 관여하고 풀뿌리의 기반을 넓히는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될만한 부분이다.

 

작년(2007년) 6월까지 한밭레츠는 의료생협과 공간을 함께 썼다. 한밭레츠 회원이면서 의료생협 조합원이 상당했기 때문에 소모임의 구성원들이 대부분 중첩되곤 했다. 그래서 공간을 함께 쓴다는 것에 큰 불편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2006년 말부터 병원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

 

“병원이 침체기가 온 것 같아요. 그러나 조합원들 간에는 위기를 기회로 삼자는 의견이 많았어요. 근성이 발동한 거죠.(웃음) 마침 치과 개설에 대한 욕구가 많았는데, 마침 함께 할 치과의사 선생님이 계셔서 추진할 수 있었어요. 치과가 개설되다보니까 회원들이 모일 수 있는 사랑방과 사무 공간이 절반 이상 줄어들게 됩니다. 그때부터 공간 사용이 다소 불편했고,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자고 결정했던 겁니다. 물론 공간 이전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이야기가 오고갔지만........아무튼 현재의 이 공간이 비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작년 7월에 옮기게 된 거죠.”

 

화폐 두루와 운영원리

 

이렇게 해서 현재의 공간으로 한밭레츠가 옮기게 된다. 의료생협과 건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기 때문에 접근성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 다만 독립적인 공간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부담이다. 현재 한밭레츠의 회원은 580명이다. 가족 규모로 치면 1,000명을 훨씬 넘는다. 거래 규모로 치면 작년 한 해 동안 300여 명이 거래했다. 거래건수는 7557건, 거래 금액은 1억4천만 원 가량이다. 이 중 현금 거래가 6천8백만 원, 두루 거래가 7천3백만 원으로 두루 거래 비율이 51.7%로 조금 더 많다. 아래 도표는 지난 8년간의 거래 내역이다.

 

년도

거래건수

두루 거래액

(A)

현금 거래액

(B)

거래총액

(A+B)

두루비율(%)

A/(A+B)*100

2007

7557

73,737,090

68,999,750

142,736,840

51.7

2006

5520

56,637,340

36,371,350

93,008,690

60.9

2005

4745

65,160,426

56,115,250

121,275,676

53.7

2004

4919

53,211,295

41,045,495

94,256,790

56.5

2003

2674

37,516,285

36,955,940

74,472,225

50.4

2002

1503

28,403,130

20,493,450

48,896,580

58.1

2001

553

8,813,300

8,677,500

17,490,800

50.4

2000

287

4,866,000

5,427,900

10,293,900

47.3

자료 : “제7차 한밭레츠 정기총회” 자료집, 한밭레츠, 2008.


원과 두루의 가치는 같다. 즉 1,000원이면 1,000두루다. 거래 품목이 가장 활발한 것은 농산물과 의료이다. 2007년 자료에 의하면, 농산물은 전체 거래현황 중 21%를 차지했고, 의료는 19.4%를 차지했다. 의료 품목의 거래양이 많은 이유는 의료생협과 연관이 있다. 가맹점이 대략 10여 군데 되는데, 민들레의료생협도 가맹점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대체로 거래 물품 중 30% 가량을 두루로 사용할 수 있다. 다만 농산물은 직거래로 통하기 때문에 생산자와 합의하여 거래가 이루어지고 의료는 15-50%(양방, 한방, 치과에 따라 조금씩 다름) 정도를 두루로 사용할 수 있다. 두루와 관련해서 모래무지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두루는 돈의 개념이 아닙니다. 언제든지 가진 것이 없어도 사용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두루를 빌려주는 은행이라는 것이 필요가 없죠. 자기 스스로 발생하면 됩니다.......두루를 쓰면 기록으로 남습니다. 두루가 많다는 것은 내가 서비스를 회원에게 주었다는 뜻이고, 반대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면 내가 도움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마이너스가 되더라도 돈의 개념처럼 이자가 붙지 않습니다. 이것이 차이겠지요.......어떤 지역에서는 통장으로 관리하고 마이너스 회원들에겐 일정한 제한을 둔다고 들었습니다. 상당히 큰 액수로 마이너스가 된 회원이 갑자기 연락두절 되는 사례를 피하기 위해서 제한하는 것 같습니다. 저희도 한 때 얼마 이상 마이너스가 되면 일정한 제한을 두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논의해본 결과, 돈이 없어도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지역화폐인데, 제한을 둔다면 취지에 어긋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물론 악의적으로 마이너스를 만드는 사람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 것을 보완하기 위해 현재는 회원 가입 시 교육을 필히 받도록 하고, 자필로 가입서를 쓰도록 합니다. 그러나 대체로 신뢰에 기반 하여 두루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두루는 누구든지 발생할 수 있다. 발행하는 것에 대한 제약은 아무 것도 없다고 보면 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발행해서 사용한 만큼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한다. 물론 이 또한 강제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거래의 중심에는 ‘신뢰’라는 큰 기둥이 있는 것이다. 회원들은 월 5천원의 회비를 납부해야 한다. 5천 두루로 내도된다. 이 자금은 상근자 1명과 반상근 1명의 활동비(이 중 30%가 두루임)와 사무실 운영비로 사용된다. 물론 이 회비만으로 운영비 충당이 부족하다. 별도의 후원을 받기도 한다. 사무실을 옮기고 나서 적자를 보았다고 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한밭레츠의 가장 큰 과제이다.

 

신입회원들은 대부분 회원들의 소개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품앗이를 경험한 회원들이 그것의 장점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고, 자신 있게 추천할 만큼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신입회원이 되면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 모래지기에 의하면, 자세히 설명해도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직접 참여만큼 좋은 교육은 없다고 한다. 1:1 교육을 하되, 다만 때가 맞으면, 즉 많은 수의 신입회원이 들어올 때에 맞춰 한꺼번에 교육을 실시하기도 한다. 회원은 대전시에 거주하는 사람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농산물과 같은 생산자의 경우는 거주지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유자와 김을 거래하는 완도 사람도 회원으로 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품앗이 만찬’이란 것이 있다. ‘품앗이 만찬’은 한밭레츠의 가장 큰 행사다. 회원들이 음식을 한 가지씩 준비를 해오되, 3-4가족이 먹을 만큼 준비하도록 하고, 이를 가족끼리 나눠먹는다. 음식만 나눠먹는 것은 아니다. 재활용품을 가져와 거래도 한다. 이를 ‘두루장터’라고 한다. 신입회원들을 소개하기도 하고, 회원들은 서로의 소식들을 알리기도 한다. 적게는 80여 명, 많게는 170여 명의 회원들이 참석한다. ‘품앗이 만찬’은 일종의 회원들 간 교류의 장이다. 2007년에는 총 다섯 번의 만찬이 개최되었다. ‘품앗이 학교’라는 프로그램도 있다. ‘천연세제 만들기’, ‘천연염색’, ‘강정만들기’, ‘요가’, ‘산조대금’, ‘어린이 마당극’ 등 회원들이 필요한 내용으로 학교를 개최한다. 적게는 4명에서 많게는 20여 명 이상 수업에 참여한다. ‘계절 활동’은 계절에 맞는 활동들, 즉 봄에는 나물 뜯기, 두부 만들기 등의 활동, 여름에는 매실 따기, 다슬기 잡기 등의 활동, 가을에는 공동 김장담그기 등의 활동을 통해 회원들 간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든다. 매월 4회씩 ‘이동영화’ 프로그램도 빼놓을 수 없다. 한밭레츠 내에 ‘이동영화 위원회’를 별도로 두고 복지관이나 각종 센터 등의 공간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프로그램이다. 주로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들을 상영한다. 2007년 한 해 동안 45번의 영화를 상영하였다.

 

주체들의 특성

 

한밭레츠에 참여하는 층은 주로 30-40대 여성들이다. 아무래도 초창기 멤버들은 생각이 비슷한 회원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양한 회원들로 포진되어 있다. 물론, 초창기 60년대에 태어난 주부들과 최근 70년대 태어난 주부들 간의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차이는 나쁜 쪽보다는 좋은 쪽으로 영향을 미치는데, 모래무지의 이야기에 따르면, 서로의 생각이나 생활에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회원들 간의 역량이 상승하는데 도움을 준다. 아무래도 회원 활동을 통해 모르던 정보를 주고받다보면 생활 패턴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3-4년 전에는 가족들이 적었기 때문에 훨씬 친밀감이 높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긴 합니다. 지금은 한 번 모임을 가지면 100명이 넘게 오거든요. 회원끼리 인사조차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친밀하게 근황을 물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거죠. 그렇다고 일부러 소규모로 모임을 운영할 생각은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봐요. 지금은 예전과는 다르게 회원들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게끔 일들을 만들거든요. 계절활동이든 품앗이 활동이든 대부분의 활동이 그래요. 그럼으로써 회원들이 참여가 많아지고 뭘 해도 규모가 커지는 경향이 있어요. 이런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인 것 같아요. 초창기에는 당연히 결속력이 강할 수밖에 없겠지만, 지금은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오니까요.”

 

결속력이 강함으로써 생기는 장점이 있겠지만, 굳이 그런 장점을 위해 소규모로 운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모래무지의 생각이다. 운영의 방식과 활동의 내용만 바꾸면 생각이 다양한 사람들과도 얼마든지 어울릴 수 있는 것이다. 회원들 간 친밀한 관계가 예전 같진 않지만, 지금의 회원 구조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는 것이 모래무지의 생각인 것이다. 그래서 우려스러운 부분을 물었다. 생각의 다기함에서 오는 갈등은 없나요?

 

“물론, 지역화폐도 사람의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에 갈등 요소들은 존재하죠. 지역화폐의 취지상 많이 나누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기적으로 처신하는 분들도 더러 있거든요. 그럴 경우 옆에 있는 사람들이 실망하게 되죠.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매우 드물죠. 전체적으로 봤을 때, 갈등이 드러난 적은 거의 없었어요.”

 

갈등이 거의 없다는 것은 의외였다. 왜냐하면 두루가 가상의 화폐이긴 하지만, 엄연히 거래가 이루어지는 화폐이기 때문에 거래 과정에서 나름의 잡음이 생길만 하기 때문이다. 모래무지는 이 부분에 대해서, 하나는 ‘지역화폐’만 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지역화폐’의 특성 때문에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즉 백화점식 활동이 아니라 ‘지역화폐’만이 활동의 중심이고 전부라는 점은 갈등의 요소를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점이고, 또한 두루 교환은 마음의 짐을 가볍게 한다는 것이다. 내가 주면서도 즐겁고, 받으면서도 즐겁다는 것이 두루의 큰 장점이다. 두루가 쌓인다고 부가 축적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두루가 쌓이면 내 스스로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쌓인 만큼 베풀었다는 뜻이고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모래무지가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그러나 이 부분을 아무리 강조해도 듣는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직접 경험해볼 것을 권한다. 이 부분에서 모래무지는 매우 중요한 점을 지적한다.

 

“기존에 잘 되고 있는 단체가 뜻이 있어서 지역화폐를 도입하고자 하는 경우는 거의 안 될 가능성이 큽니다........기존 단체들이 착각하는 부분은, 우리는 아나바다도 잘 되고 재활용도 잘 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활동의 성과에 지역화폐를 첨가하면 잘 될 거야, 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오산입니다. 전혀 새롭게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기존에 하고 있는 활동과 별개로, 그리고 독립적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실패할 겁니다. 기존 활동이 잘 된다고 지역화폐가 잘 될 거라는 믿음은 버려야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더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지 못했지만, 아마도 모래무지는 지역화폐가 가진 특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기존 활동의 방식과 관성대로 지역화폐를 준비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전달하지 않았나 싶다. 여러 지역에서 한밭레츠를 배우기 위해 찾아왔고, 지금도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모래무지는 느꼈을 것이다. 어느 단체든 잘 하고 있는 활동이 있을 텐데, 그 활동의 성과에 지역화폐만을 덧씌운다고 해서 성공한 사례는 찾을 수가 없었다. 지역화폐는 전혀 새로운 시스템이다. 사람들이 모여 무엇인가를 뚝딱 만들어내고 주요 활동가들에 의해 사업이 진행되는 방식으로는 지역화폐를 성공시킬 수 없다. 회원 모두가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것이 지역화폐의 특성이다. 내가 도움을 받았다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지만, 나만 주었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고, 가난한 사람도 얼마든지 스스로 화폐를 발생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신뢰가 밑바탕 될 때, 지역화폐는 성공할 수 있다. 그래서 모래무지는 기존 활동의 관성을 털고 처음 출발선에서 시작할 것을 주문한다.

 

비전과 과제

 

“우리는 뭔가 틀이나 그림을 그려놓고 활동하는 건 아닙니다. 뭔가를 그렸다고 해서 달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압니다. 현재 사무실 공간을 마련할 때도 그랬습니다. 갑자기 뜻을 모 아서 성사되었거든요. 현재 상황을 열심히 더 꾸려나가는 것은 기본인 것 같고, 현재보다 조금 더 활성화되는 것이 단기적 목표라고 보면 됩니다. 열심히 그렇게 해나가는 것은 기본이겠죠. 다만 타 지역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연대체 등을 꾸려서 지원하고 도움을 주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어요........나중에는 한밭레츠가 쪼개져서 더 작은 동네나 아파트 한 동으로 나가는 것이 가장 큰 비전이겠죠.”

 

모래무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밭레츠는 서두르지 않고 제 갈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모래무지 개인의 성향인지, 아니면 한밭레츠의 지향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단체의 활동이 회원을 변화시키고, 회원의 성향이 단체의 방향을 규정한다고 했을 때, 오랫동안 활동한 모래무지의 뜻은 한밭레츠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몇 몇 활동가가 비전의 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는 단 한 사람의 회원을 소중히 여기고 그런 회원들의 뜻에 따라 비전이 만들어진다고 믿고 있다. 회원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지역화폐는 의미가 없는 운동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동네마다 지역화폐가 생겨나고 작은 규모로 두루가 소통되는 것이 장기적인 비전이지만, 이 또한 회원들의 활동만이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래지기와 같은 두루지기들은 회원이 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신명나게 놀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일이 가장 중요한 업무이다.

 

단기적인 비전, 또는 과제라고 한다면 안정적인 재정을 확보하는 일일 것이다. 작년, 독립적인 사무공간을 마련한 이후 약간의 적자가 발생했다.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지만, 한밭레츠가 꿈꾸는 비전을 위해서라도 넉넉하진 않지만 운영에 부담되지 않을 만큼의 재정 확보가 시급한 편이다. 그래서 올해는 신입회원을 늘리는 것이 목표다. 회원이 는다는 것은 재정에 도움도 되지만 지역화폐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기실, 지역화폐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또한 하나의 정형화된 운동으로 규정할 수 없다. 우리는 예로부터 서로 나누고 함께 노동하는 전통이 있어왔다. 오늘날에도 서로 나누고 돕는 풍경은 어디에서든 관찰할 수 있다. 이렇듯, 지역화폐는 불쑥 튀어나온 어떤 것도 매우 다양한 형태를 띠기 때문에 이를 바라보는 시각도 여러 갈래다. 대안 경제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동체운동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소비자운동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재활용과 같은 환경운동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지역화폐는 어느 한 가지로 짚어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이 모두라고 얘기해도 무리가 없다. 사람의 마음을 연결해주는 무형의 어떤 것이란 해석도 가능하다. 이 모든 것이 지역화폐다. 무엇보다 이런 활동은 회원들끼리 생활을 공유토록 하고 영향을 주고받도록 한다. 그렇게 개인의 삶이 변화되고 나아가서 주변을 변화시킨다. 이것이 한밭레츠의 저력이고 지역화폐 힘이다. 한밭레츠가 꿈꾸듯, 여러 지역의 지역화폐와 탄탄한 연대의 고리가 만들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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