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내음> 2007/09/2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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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한국도시연구소, [도시와 빈곤] 81호에 실은 글입니다.
주민감사청구, 주민소송제 해설
최인욱(함께하는시민행동 예산감시국장)
1. 주민감사청구란 무엇인가
주민감사청구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행위가 위법하거나 공익을 현저히 해친다고 판단될 때, 그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정한 일정 수 이상(지방자치단체 규모별로 200~500명 상한선 내)의 주민 연명으로, 기초자치단체의 경우 광역자치단체에, 광역자치단체의 경우 중앙정부의 소관부처에 직접 감사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이다. 주민감사청구는 문제가 되는 사무처리가 있은 때 또는 종료된 날로부터 2년이 넘으면 제기할 수 없고, 감사는 청구된 날로부터 60일 내에 완료하고 그 결과를 청구인 대표자에게 통지해주도록 되어 있다. 또한 수사 또는 재판에 관여하게 되는 사항, 사생활 침해의 우려가 있는 사항, 다른 기관에서 감사하였거나 감사중인 사항(새로운 사항이 발견되거나 중요사항이 감사에서 누락된 경우, 그리고 주민소송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청구 가능), 이미 같은 사안에 대한 주민소송이 있었거나 진행 중인 경우에는 청구를 할 수 없다.
이 제도는 이미 2000년부터 시행되어 왔으나 그간 별반 활용되지 못한 채 유명무실한 상태에 있었다. 그런데 올해(2006년)부터 시행된 주민소송제에서 소송 전에 반드시 주민감사청구를 거치도록 한 탓에 다시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 행정기관 자체 감사는 엄정성이나 공정성 등을 심각하게 의심받고 있는 형편이라 주민감사청구를 통해 실효성 있는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앞으로 주민소송과 필수적으로 결부되면서 어느 정도 발전이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이 글에서는 주민감사청구에 관해서는 이 정도로 간략히 설명을 마치고, 보다 자세한 내용은 이후 주민소송에 대한 서술 과정에서 다루기로 한다.
2. 주민소송이란 무엇인가
주민소송제란 지방자치단체의 위법한 재무행위에 대해 주민이 직접 소송을 제기하여 그러한 행위의 중지나 취소 등 시정조치 및 손해배상이나 부당이득반환 등 낭비예산의 환수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의 가장 큰 의의는 지방자치단체의 주민이 개인적인 손해나 권리침해와 무관하게 잘못된 행정에 대한 법적 시정조치 청구권을 갖는다는 점에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자신에게 직접적인 손해나 권리침해가 없는 한 일반시민이 행정행위에 대한 소송을 제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 법적 원칙이었다. 그러나 주민소송제의 도입으로 인해 최소한 지방자치단체 행정에 대해서는 자신의 직접적 손해 여부와 관계없이 ‘주민’의 한 사람이라는 자격만으로 소송제기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주민은 이 제도를 통해 자신이 속한 지방자치단체 또는 그 직원이 직권을 남용하거나 직무를 태만히 하여 지방자치단체에 손해를 끼치는 예산낭비를 저질렀을 때 직접 그러한 행위의 취소나 무효확인, 행정행위 중지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또한 위법행위 책임자에 대해 손해배상이나 부당이득반환 등을 청구하도록 지방자치단체에 요구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방만한 행정에 의한 예산낭비가 매우 심각하다는 사회적 비판이 날로 높아져온 점을 감안할 때 이 제도의 시행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은 상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단체장 등 고위공직자의 잘못에 의한 경우는 물론이고 중하위직 공직자의 잘못에 의해 예산낭비가 저질러진 경우에도 도저히 덮어둘 수 없는 형사범죄와 같은 일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공무원 세계의 ‘제식구 감싸기’ 논리 따위에 의해 대충 감싸주고 시정조치도 적당히 취하는 행태가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된 상황에서는 더 이상 그런 식의 적당한 처리는 불가능할 것이고, 나아가 예산낭비 책임자에 대한 손해배상 등 금전적 책임추궁도 보다 철저히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에서는 주민소송을 통해 직원들끼리의 내부 회식비에 업무추진비를 사용한 경우, 야근도 하지 않은 직원 전원에게 일률적으로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한 경우, 해외출장 대부분을 관광성으로 보낸 경우 등에서 주민이 승소하여 예산반환 명령이 내려지는 등 수많은 판례가 축적되어 있다. 주민소송제는 이처럼 잘 활용될 경우 지방행정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는 막강한 제도이지만, 실제로는 국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절차나 요건 등이 복잡하고 어려워서 본래의 의의를 충분히 살릴 정도로 널리 활용될 수 있을지 장담하기 힘든 실정이다.
이러한 실정이 초래된 배경에는 어쩔 수 없이 이 제도를 도입하는 데 동의하긴 했지만 가급적 이 제도가 쓰이지 않고 국민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지기를 바라는 일부 정치인과 공무원 등 보수적 기득권층의 끊임없는 물타기와 방해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이 제도가 이전의 여러 국민참정권 확대제도와 같이 유명무실한 상태로 방치되어 있기를 바랄 것이다. 또한 이들의 집요한 로비에 의해 현재 도입된 주민소송제는 본래의 취지를 충분히 살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여러 독소조항을 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 독소조항은 모두 실제 소송제기를 어렵게 하거나 대상을 축소하거나 소송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데 주안점을 둔 것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의 불합리한 내용을 담고 있어, 앞으로 이 제도 정착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주민소송제는 내용도 충분치 않고 국민들의 인식수준도 낮은 상태에서 올해부터 시행되고 있다. 소송의 대상이 될 지방공무원들은 전국 지방자치단체 담당자 워크숍이다 뭐다 해서 대비훈련을 받고 있지만 정작 이 제도를 활용해야 할 일반주민들은 이런 게 있는지 어떤지도 모르고, 막상 안다 해도 실제 써먹기는 너무나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비록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이 있다 할지라도 주민소송제의 도입은 우리나라 지방행정의 효율성과 민주성을 향상시키고 주민의 실질적인 참정권을 보장하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역사적 진전임에 틀림없다. 보다 많은 국민들이 이 제도를 알고 활용한다면 국민 스스로의 힘으로 지방행정을 크게 변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생소한 제도인 주민소송에 대한 시민의 관심과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정부는 물론이고 시민단체와 언론계 등도 보다 적극적인 홍보와 교육에 나서야 할 것이다.
3. 주민소송의 육하원칙
주민소송제는 별도의 법률이 아닌 「지방자치법」에 규정되어 있다. 「지방자치법」은 2004년 말 개정되었으나 지자체 공무원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등의 이유로 유예기간을 두었기 때문에, 실제 시행은 올해 1월부터이다. 일반시민들로서는 어렵기 그지없는 소송에 관한 세부내용을 평소에 알아둔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불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개념 정도를 알아두고, 필요할 때 법률전문가나 시민단체 등을 찾아 보다 자세한 내용을 파악해서 활용하면 될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간략히 주민소송의 핵심요점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선 기억해두기 쉽도록 주민소송의 개념을 육하원칙에 따라 풀어보자.
① 누가 - 그 사건에 관해 주민감사청구를 했던 주민 중 누구나(주민감사청구에는 조례가 정한 다수 주민의 서명이 필요하나 주민소송은 그중 1명이라도 제기 가능)
② 언제 - 지방자치단체 또는 그 직원이 지방자치단체 재정에 손해를 입히는 위법한 행위를 했을 때
③ 어디서 - 그 지방자치단체를 관할하는 행정법원에서(서울 외의 지역에는 행정법원이 없으므로, 그 지역을 관할하는 지방법원 본원 행정부)
④ 무엇을 - 그 행위의 중지, 취소, 위법확인 및 책임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등을
⑤ 어떻게 - 다수주민(숫자는 조례로 규정) 서명을 받아 주민감사청구 후 감사결과에 불복하여
⑥ 왜 - 그 행위로 인한 지방자치단체 예산낭비를 방지하거나 시정시키기 위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설명이지만, 대략 이런 때에 이런 식으로 하는 소송이구나 정도만 알아두고, 다음으로는 실제 주민소송을 제기하고자 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요한 절차와 제한조건 등에 관해 살펴보자.
▶ 소송 전에 꼭 주민감사청구를 해야 한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기득권층의 물타기에 의해 주민소송제에는 그 필요성을 선뜻 납득하기 힘든 제한조건이 많이 붙어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주민소송 전에 반드시 주민감사청구절차를 거치도록 한 것이다. 주민감사청구는 조례로 정하는 일정수 이상 주민의 서명을 받아 상급 지방자치단체나 중앙정부에 감사를 청구하는 제도이다. 주민소송과 달리 주민감사청구의 경우에는 재무행위 외에도 모든 지자체 행정사무를 대상으로 할 수 있고, 위법성이 분명하지 않더라도 시정조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 등이 다르다.
이 제도는 이미 2000년부터 시행되어 왔지만 같은 행정기관에 의한 감사이다 보니 그다지 엄정하게 이루어지지도 않고, 시정조치의 강제력 등 실효성도 부족하여 국민들로부터 거의 외면을 받다시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더구나 이 감사를 청구하려면 기초자치단체는 200명, 50만 이상 대도시는 300명, 광역자치단체는 500명 정도의 서명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주민소송 전에 이 절차를 반드시 거치도록 한 것은 소송제기를 어렵게 하는 최대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주민소송 입법안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모델로 삼은 일본의 경우, 소송 전에 주민감사청구를 거치도록 하고는 있지만 주민 중 단 1명이라도 청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큰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 결국 일본 것을 따르면서 가급적 일반시민들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원작을 손본 셈이다.
아무튼 현실적으로 이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주민소송은 불가능하다. 다만 주민감사청구에 의한 감사결과가 나왔을 때 그 결과에 불복하여 주민소송을 제기할 때는 감사청구에 참여한 주민 중 1명이라도 소송제기가 가능하다. 감사결과에 불복하는 경우 외에 감사가 지연되거나 감사결과 시정조치를 지방자치단체가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때도 소송을 할 수 있다.
▶ 사건 발생 후 2년이 넘으면 소송을 못한다.
주민소송의 전 단계인 주민감사청구는 문제가 되는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처리가 있었던 날 또는 종료된 날로부터 2년이 지나면 청구 자체를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주민소송 역시 해당사건 발생 후 2년이 넘으면 제기할 수 없다. 이 부분 역시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독소조항으로 비판받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손해배상청구권이 5년간 유효하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유달리 주민에 의한 소송제기의 경우에는 훨씬 짧은 기간 동안에만 가능하도록 제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정말 황당한 일은 이 조항에 관해서는 정부도 시민단체의 비판을 받아들여 기한을 5년으로 수정해서 국회에 법안을 제출했는데, 도리어 국회에서 다시 2년으로 줄여버린 것이다. 아마도 지방정치인과 공무원들의 로비에 의한 결과가 아닌가 짐작되는데, 어찌됐든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 행태가 실로 어처구니 없다.
덧붙여 기간제한에 관해 하나 더 알아둘 점은, 주민감사청구 후 감사결과가 60일 내에 나오게 되어 있고, 감사결과가 나온 후 주민소송을 제기하고자 할 때는 그로부터 90일 내에 소송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 주민소송의 대상은 ‘재무행위’로 제한되어 있다.
주민감사청구는 지방자치단체 행정 전반에 대해 가능하지만, 주민소송 단계로 넘어가려면 문제가 되는 행정행위가 지방자치단체 재정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법률에서는 공금의 지출, 재산의 취득ㆍ관리ㆍ처분, 계약의 체결ㆍ이행에 관한 사항 또는 공금의 부과ㆍ징수 태만에 관한 사항이라고 못박아두고 있다. 이런 법률상 정의가 너무 어렵다면, 대략 ‘지방자치단체 재정에 관한 행위’ 또는 ‘예산을 쓰거나 거두는 각종 행위’라고 이해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이러한 사항들에 관해 지방자치단체나 그 직원이 위법한 행위를 했거나 직무를 태만히 했다고 판단한다면 주민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어떤 행위가 위법한지 아닌지 여부는 궁극적으로 법원에서 가리게 되는데, 명확한 실정법규 위반 외에 일반적으로 직권남용, 직무유기 등으로 간주할 수 있는 행위라면 대부분 위법행위로 판단될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정도로만 이해해두어도 좋을 것 같다.
▶ 행정행위의 중지, 취소, 책임자에 대한 손해배상요구 등을 할 수 있다.
법적으로 주민소송의 유형은 4가지로 구분된다.
① 그 행위가 계속될 경우 회복하기 힘든 손해가 우려될 때의 행정행위 중지청구
② 그 행위의 취소나 변경 또는 효력여부확인 청구
③ 직무를 태만히 한 사실에 대한 위법확인 청구
④ 지방자치단체에 손해를 입힌 책임자에 대한 손해배상이나 부당이득반환청구 또는 변상명령 등 조치를 취하라고 지방자치단체에 요구하는 청구
이중 네 번째 유형의 소송이 무슨 말인지 언뜻 이해하기 힘들 수 있는데, 쉽게 말해 주민은 책임자에게 직접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는 없고, 대신 지방자치단체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하라고 요구하는 소송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복잡한 형식이 생기게 된 이유도 지방공무원 등의 로비 때문인 듯하다. 공무원들이 지나치게 불안해하고 소극적으로 업무에 임할 우려가 있어 책임자 개인에 대한 주민의 직접청구를 금지했다고 하는데, 법원이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하면 결국 배상을 하게 되는 건 마찬가지일 텐데도 굳이 이런 식의 이중 간접소송을 해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3. 주민소송의 적극적 활용
이처럼 지금의 주민소송제에는 문제점도 많고 일반시민이 쉽게 접근하기에는 장벽도 상당히 높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시민들이 주민소송을 외면하거나 포기해 버린다면, 이는 결국 보수 기득권층의 뜻대로 따라주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그들은 시민들이 이 제도를 가급적 적게 활용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 모습은 답답한 수준이지만 적극적으로 제도를 활용하고 선례를 만들어가는 가운데 보다 나은 내용의 제도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해석의 여지가 있는 법조항은 최대한 시민권익 확대에 유리한 방향으로 판례를 이끌어냄으로써 그러한 해석을 제도화시켜야 하고, 시민참여를 어렵게 하는 독소조항에 대한 법 개정운동도 꾸준히 벌여야 할 것이다.
우선 주민소송을 적극 활용하여 이 제도를 사회적 이슈로 부각시키고 시민에게 새로운 권리를 부여한 것이 공동체 이익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이처럼 주민소송제도와 주민소송을 벌이는 평범한 시민들의 공익적 노력이 계속 화제가 되고 좋은 평가를 받을 때 머지않아 제도개선도 가능할 것이다.
앞서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주민소송제를 시행중인 일본에서는 이 제도를 활용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주민의 청구가 법적으로 인정되는 판결이 나오면 이는 곧바로 모든 지방자치단체에게 엄중한 경고가 되므로, 유사한 예산낭비의 재발방지에도 크게 기여하게 된다. 우리도 어렵게 도입된 이 제도를 한국의 참여민주주의를 한 단계 진전시키는 효과적 수단으로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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