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923호(2011 05/03)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3&artid=201104271923421
[신동호가 만난 사람]‘백만송이 국민의 명령’ 문성근 대표
ㆍ“선거연대보다 대통합이 훨씬 쉬워요”
지난해 8월 26일 ‘문성근의 난’은 시작됐다. 2012년 민주정부로 정권교체를 이루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야권이 단일정당으로 통합해야 하며, 국민 100만명을 규합해 그렇게 되도록 야당을 압박하겠다는 운동 말이다.
솔직히 이 운동을 낮잡아 보았다. 정당판이 어떤 곳인데 ‘국민’의 이름으로 감히 통합하겠다는 것일까. 유명인이 주도하는 만큼 잠깐 언론의 눈길을 끄는 정치적 이벤트가 될 수는 있겠지만 현실에서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이 운동의 조직체인 ‘백만 송이 국민의 명령’(이하 국민의명령)은 지난해 11월 13일 충남 공주시 우금치에서 전국 1차 봉기를 감행했다. 지난 4월 3일에는 2차 봉기인 ‘민주당 습격 사건’을 일으켰다. 금방 사그라질 줄 알았는데 8개월째 지속되고 있을 뿐 아니라 어, 어, 하는 사이에 가담자가 10만명을 넘어섰다.
정치권 기류도 심상찮다. 야권에서 연대·연합·통합과 관련한 논의가 점점 무성해지고 있다. 가장 수위가 높은 ‘야권단일정당’을 주장하는 국민의명령도 그 논의구조 속에서 힘을 얻어가는 형세다. 그렇다면 진짜 반란 아닌가. 지난 4월 11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국민의명령 사무실에서 문성근 대표를 ‘반란의 수괴’ 자격으로 만났다.
어, 하는 와중에 회원 10만 돌파가 됐군요.
“어, 하는 와중이 아니에요. 몇 번의 전환점이 있었어요. 전국 회원을 만나서 인사할 때 정말 존경한다고 큰절을 올립니다. 지난 겨울이 무지하게 추웠잖아요.(웃음) 볼펜이 얼어서 안 나와요. 그런 추위 속에 거리에서 (운동을) 한 거죠.”
유명 배우와 인터뷰하는 것은 근사한 일이다. 비록 연기이고 화면으로 교감했을 뿐이지만 그의 많은 면모를 알고 있어 오래된 사이처럼 느껴졌고, 잠시나마 영화 속에 함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니 말이다.
“첫 번째 전환점은 2만명이 넘었다고 우금치에서 전국 1차 봉기라고 이름을 붙여서 모였을 때입니다. 그 집회를 보면서 외부에서도 ‘아, 이 운동이 사그라질 운동이 아니다’라고 판단하셨다고 해요. 그 다음은 내적인 것인데 12월 초에 저 없이 회원끼리만 나간 심학산 들불행사 때였어요. 제가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도 마땅치 않고, 거리에서 한번 냉대를 받아보면 그 상처가 보통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날 591명이 회원 가입을 하는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세 번째는 지난 1월 단일정당이냐, 선거연대냐를 놓고 토론회를 할 때 정파등록제 제안을 한 것이에요. 우리가 제안한 연합정당 성격의 단일정당이 몽상이 아니고 아주 현실 가능한 대안일 수 있다는 분위기가 그 토론회를 기점으로 해서 형성이 된 거죠.”
성과가 기대했던 것 이상이라고 보는 겁니까.
“기대 이상입니다. 운동을 시작할 때 자신이 있었지만 걱정스러웠던 게 민주당이 안할 것 같다는 거였죠. 그런데 민주당에서 빠르게 동의를 해오시더라고요. 이미 3분의 2는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분의 2라는 건 현역 의원을 말하는 것입니까.
“아니, 세력이죠. 최고위원 8명과 원내대표, 이렇게 9명 가운데 7분이 동의를 하셨거든요. 100명이 넘는 지구당위원장이 참여한 진보개혁모임의 김근태·문희상·한명숙 공동대표와 원혜영 운영위원장께서 지지 선언을 하셨고요. 민주희망쇄신연대 쪽에도 김영춘·정동영·조배숙·천정배 최고위원 등을 비롯해서 빠르게 확산을 해나가는 중입니다. 일단 민주당이 확실한 안을 내놓아야 작은 정당이 움직입니다. 그래서 지난 4월 3일 회원 10만 돌파를 계기로 민주당을 찾아가 이 안을 빨리 당론으로 확정하도록 압박한 것입니다.”
국민의명령이 100만 회원 확보를 목표로 삼은 데는 정치공학적 계산도 깔려 있다. 민주당 당원 수를 30만으로 본다면 진보당 당원 수는 진보신당 3만, 국민참여당 5만, 민주노동당 7만 해서 15만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경선에서 진보당이 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때문에 민주진보진영의 통합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구조를 허물려면 민주당과 진보당 당원 수를 모두 합친 45만보다 많은 50만, 또는 그 두 배인 100만 회원이 필요하다는 게 문 대표의 말이다.
100만 돌파 시점을 언제로 잡고 있습니까.
“이렇게 꿈을 꾸죠. 몽상이 아니라 긍정적인 꿈을 말입니다. 이를테면 심상정·노회찬·이정희·유시민·손학규·정동영·이해찬·문재인·한명숙·김두관, 이렇게 한 10명이 나가서 고백하는 거예요. 당원구조에서 비롯된 한국 정치의 최대 모순구조를 정당 스스로 해소할 방법이 없다고 말이죠. 그런 다음 국민 여러분과 함께 해결하자고 그러면 저는 (100만이 모이는 데) 한 달이 안 걸린다고 봐요.”
이제까지 106회 전국 순회를 하면서 어떤 반응과 느낌을 받았습니까.
“우리 국가공동체 전체에 대한 느낌이 연기자적 표현입니다만 내장이 다 빠져나간 상태죠. 국민의 마음이 거의 공황상태랄까, 허탈하고….”
왜 그렇다고 생각합니까.
“민주정부 10년에 대해서 이유가 어디 있든 간에 대단히 실망을 해서 국민이 돌아선 거잖아요. 솔직히 집값 올려주고 잘 살게 해주겠다고 해서 (이명박 대통령을) 찍은 거죠. 그 ‘잘 살게 해주겠다는 풍선이 터지네?’ 할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을 한 거죠. 그래서 ‘이게 뭐지?’ 그러다가 ‘뭔가 새로 짜야 돼’ 이런 느낌을 많이 갖고 계시는 거예요. 그런데 민주진보진영을 보면 워낙에 분립한 데다 그것마저도 또 분열이 돼버린 거죠. 세력 자체가 신뢰를 잃어버린 것 아닙니까.”
문 대표는 현 정부·여당을 비판하면서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반성도 곁들였다. 비록 IMF가 강요한 것이긴 하지만 노동 유연성을 좀 더 적극적으로 막아내지 못한 점이라든가, 복지 예산을 혁명적으로 확충하지 못한 점 등에 대해 깊이 반성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먼저 보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치 행위는 연애와 같다는 걸 깨달았어요. 국민의 마음상태가 민주진보진영으로부터 돌아앉았다가 풍선이 터지고 노 대통령 돌아가시는 걸 보면서 ‘아이구야, 이게 뭐지?’ 하면서 반쯤 돌아보는 것 같아요. ‘가만 보자, 쟤네가 실망은 시켰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라는 정도까지 마음이 온 거죠. 그게 6·2 지방선거 결과였다고 봅니다. 닫혀버린 연인의 마음을 다시 얻으려면 뭘 해야 할까요. 결혼한 다음에 집을 몇 평을 사고 텔레비전을 뭘 사고를 얘기할 게 아니고 내가 어떻게 달라졌고 네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하며 내가 어떻게 마음을 나눌 수 있겠는지를 먼저 이야기해야 해요.”
현재 범야권 시민정치운동은 국민의명령뿐 아니라 여러 갈래에서 진행되고 있다. ‘진보의 합창’ ‘내가 꿈꾸는 나라’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 등이 2012년 총선 및 대선과 관련한 정치적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지금 시민사회단체에서 야권의 연대·연합·통합과 관련한 얘기가 여러 갈래에서 다양하게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 자체도 하나로 묶어내지 못하는데, 어떻게 정당을 통합시킬 수 있겠습니까.
“허허.(웃음) 그건요. 이번 4·27 재·보선이 끝나면 원탁회의 같은 걸 만들자는 얘기가 있으니까, 그런 게 만들어지면 다양한 층위와 여러 전문성에서 출발한 움직임들이 만나지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내적 논의도 많이 하고요. 저는 ‘내가 꿈꾸는 나라’ 준비모임 발족식에 가서 ‘결혼하자’고 그랬어요. 크게 봐서는 다들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거잖아요.”
문 대표를 수식하는 말은 여러 가지지만 그는 여전히 배우다. 그게 가장 어울리고 그 역할을 할 때가 개인적으로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현실 참여자로서의 역할은 그와 같은 연기자에게는 별로 득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는 왜 별로 득도 되지 않고, ‘똑같은 얘기’를 하는 판에 끼어들었을까.
“노 대통령 서거 직후 정신이 화들짝 난 거죠. 2012년 총선을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구도를 완화하고 20~30대가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환경을 만들고 민주진영과 진보진영의 분립을 끝내야 하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민주진보진영은 10년 동안 분열과 내부 경쟁으로 내상이 깊어져 누구도 통합을 제안하기 어렵겠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지난 10년 동안, 특히 참여정부 5년 동안 아무 것도 한 게 없고, 어느 정파에도 속한 적이 없었어요. 아, 내가 한번 해볼까, 이런 생각이 든 거죠.”
국민과 함께 바닥에서 뒤집는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습니까.
문 대표께서 영화가 아니라 시나리오 없는 현실이라는 무대에서 열연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5개 정당을 묶는 건 영화 같은 데서나 가능한 일 같거든요.
“사실 초반에는 민주주의 발전이라든가 역사 발전의 당위로서 제안을 한 건데, 사람들을 만나 얘기하고 토론하면서 현실성이 점점 커가는 게 느껴집니다. 특히 정파등록제를 제안 드리고 난 이후부터는 ‘아, 그런 게 있어?’ 그러면서 고민들을 깊게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정파등록제라는 게 우리에게 생소하게 들리는데, 어떤 장점이 있습니까.
“연합정당이라는 게 서구 민주국가에서는 필요하지 않거든요. 정당별로 다 해서 연정을 하면 되니까요. 미국 민주당이 일종의 연합정당인데 정파등록제는 없고, 브라질 룰라 전 대통령의 PT(노동자당)가 정파등록제로 만든 정당이에요.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야5당이 모인 오절판 연합정당이죠. 일단 합치면 가칭 민주진보당이라는 하나의 당적을 갖습니다. 각 당은 당을 통째로 갖고 들어와 조직과 당원 명부 등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그러니까 단일 당적이되 민노회·참여회라는 이중 멤버십이 되는 거예요. 작은 정당이 큰 정당에 흡수 소멸될 걱정을 안 해도 되고, 정파의 정체성을 포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민주당과 통합에 가장 부정적일 것으로 보이는 참여당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유시민 대표와 만났습니까.
“대표가 된 뒤에는 만난 적 없지만 그 전에 이 안에 대해 설명을 했죠. 정치인의 반응은 자기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기 전에는 말하는 게 예의가 아니라서… 참여당 안에서 정파등록제라든가 온·오프라인 결합 등에 대해 상당히 진화한 안이라는 입장이 있고, 이백만 대변인이나 정찬용 사무총장 같은 분들은 저희 회원이기도 합니다.”
정파등록제를 도입한 연합정당 성격의 단일정당이 전면적으로 이뤄지든 부분적으로 이뤄지든 문 대표께서는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현실정치로 나설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제가 국민의명령 대표로 돼 있는데, 대표라는 게 대표제안자의 줄임말이거든요. 제안자로서 이 운동이 성공할 때까지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야죠. 제가 뭘 해야 되느냐는 변화되는 상황에 따라 판단을 해봐야 되겠죠. 이 운동에 대해 책임을 다 해야죠.”
연합정당이 되더라도 새로운 상징 인물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머릿속에 대선후보가 왔다 갔다 하고, 그래서 관심 갖고 보고 그랬었어요. 지금은 신기하더라고요. 싸~악 지워져요. 아무 의미가 없어요. 지금 정당구조에서는 누굴 갖다 대도 소용없고, (단일정당이) 만들어져서 한 열 명 정도가 레이스를 시작하면 금방이라고 생각해요. 그 생각만 하면 유쾌해요.”
인터뷰 후 국민의명령과 문 대표는 선거관리위원회와 보수단체들로부터 잇단 경고와 ‘위협’을 받았다. 자유청년연합이 서울 세종로에서 ‘백만민란 진압’ 퍼포먼스를 벌였고,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이 서교동 국민의명령 사무실 앞에서 “문성근을 내란선동죄로 구속해야 한다”며 시위했다. 이미 그를 내란선동 및 국가보안법·선거법 위반으로 고소한 단체도 있다. 백만민란 운동의 성공을 ‘우려’하는 보수논객의 칼럼도 등장했다. 문성근 주연의 시나리오 없는 현실극이 어떤 극적 반전과 결말을 만들어낼지 점점 더 궁금해진다.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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