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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재보궐선거가 끝났습니다.

벌써부터 당선과 낙선의 구분에 따라 사람의 평가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직접 출마한 사람은 아니지만 선거의 중심에 놓여있던  유시민에 대한 준열한 비판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평가가 극에서 극을 달리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그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와 이해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호불호를 떠나서 우리나라의 귀한 인적 자원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에 김영춘이 의원시절인 2005년에 옛 홈피에 써놨던 글을 우연히 발견하였기에 이곳에 퍼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본인의 생각보다는 유시민이라는 인물과 함께 활동하던 사람의 글이어서 보다 설득력이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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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춘의원 옛 홈페이지> 2005.03.25

http://www.yckim.or.kr/

 

 

 

유시민동지께

- 세상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힘은 진실이며 사랑입니다 -



김영춘의원입니다. 글 제목은 동지께 라고 달았습니다만 제 글이 형에 대한 애정어린 비판이며 당을 위한 비판이라는 충정을 전달하고자 평소 하던 대로 형이라고 칭합니다. 연일 계속되는 선거운동에 노고가 많으실 줄로 압니다. 이제 전당대회까지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네요. 저는 이번 전당대회를 지켜보면서 역시 형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새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자칫 밋밋해지기 쉬웠던 이번 전당대회가 형을 둘러싼 화제와 논란으로 인해 그나마 언론과 국민의 관심을 모으게 된 점을 한편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전부터 저는 형이 탁월한 정치적 달란트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빠른 두뇌회전과 유창한 언변, 형세 판단에 대한 비범한 감각,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이거다하고 판단하면 무섭게 승부를 거는 결단력과 추진력 등 셀 수 없이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정치인으로서의 다재다능함으로만 따져본다면 족탈불급이지만 김민석군 정도가 비견될 수 있을까요? 거기에 더해 저는 과거 형이 정치인이 되기 전의 자취와 언행에 묻어 있던 ‘자유의지’까지도 좋아했던 이른바 유시민팬의 한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열린우리당의 창당과정에서 형과 저는 비교적 호흡이 잘 맞았다고 기억됩니다. 어려웠던 창당협상 회담의 과정에서도 저는 우리당의 조직 모델이 과거 개혁당식의 그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 때문에 여러 분들과 불편한 관계가 만들어졌던 기억도 나네요. 그 이후에도 형을 공격하는 이런저런 언사를 접할 때마다 가급적 형의 편에서 변호를 하고자 했던 경험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창당이후 1년 6개월, 이제 저는 더 이상 형을 지지할 수 없다는 판단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더나아가 이제 당의장후보로 나선 이상, 형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이 당을 위해 더 필요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이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형은 전당대회에서 정파간의 의견대립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 역시 전당대회가 있는 문제를 숨기고 분식하여 허울뿐인 축제로 치러지는 것에 반대합니다. 숨겨진 병이 커져서 말기암이 되도록 방치하는 것보다는 염증단계에서 조기 치료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전당대회의 경선과정은 참으로 적절한 논쟁의 장입니다. 작금에 젊은 386의원들이 형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서는 것은 단순히 송영길의원을 지지하는 선거운동의 차원은 아닙니다. 그간 오랫동안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분노를 전당대회라는 열린 검증의 공간에서 터뜨리고 있는 것이 유시민비판의 본질입니다.

그럼 그동안에는 왜 문제제기를 안했냐구요? 사람들마다 다 사정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가장 우선적인 이유는 형에 대한 한가닥 애정 때문이었겠지요. 젊은 의원들 대부분이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을 경험한 사람들이라 동지로서, 선배로서 형에 대한 마지막 애정과 미련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공개적인 비판에 주저했던 것이지요. 두 번째 이유는 설령 형의 언행에 문제가 있다 느끼더라도 형에 대한 공박이 대야전선을 흐트러뜨리고 언론에 의해 운동권 출신들끼리의 내분으로 비쳐지는 것도 거북했던 탓이지요. 특히 당직을 맡고 있는 젊은 의원들은 그런 고민이 더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저희들은 이런저런 고려없이 생각나는 대로 퍼붓는 형의 직설법이 부러운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말해야 할 때입니다. 형은 요즘 마치 유다인들에게 탄압받는 선지자처럼 말하고 있더군요.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제 기분은 전혀 다릅니다. 비록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없다 하나 이미 당원으로의 권력이동이 진행중인 우리당 내에서 형은 최대 계파의 수장입니다. 지지자들의 숫자나 지지강도의 면에서 지금 출마한 후보들 중에 형을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형보다 지지율이 더 나오는 후보들은 사실 후보 자체에 대한 지지와 함께 다른 요인들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형도 잘 아실 겁니다. 이번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형은 이미 우리당 최대 실력자 몇 사람 중의 1인입니다.

이 글을 올리고 나면 저에게 퍼부어질 융단폭격이 사실 겁나기도 합니다. 제 지역구에서조차 형의 지지자들은 저를 강하게 공박하고 나설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형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의원총회에서든 온라인에서든 말입니다. 형을 비판하려면 누구든 고난의 행군을 자초하는 충신의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의원총회에서 뭔가 형과 다른 견해를 말하고 싶어도 형의 야멸찬 면박이 두려워서 못하는 의원까지 생겨났다는 사실, 이건 그사람이 문제기도 하지만 다르게 보면 형의 불행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형이 비판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경청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합니다. 모처럼 마련된 기회에 속으로는 떨면서도 없는 용기까지 짜내어 건네는 목소리들이기 때문입니다.

일전에 형이 ‘한겨레21’ 인터뷰에서 했던 말은 제게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형 말대로 전당대회가 아무리 다른 견해가 충돌하는 장이라 하더라도 잠재적 대선 후보군들, 그것도 정부에 나가 일하고 있는 장관들까지 끌어들여 이번 전당대회를 대선의 전초전으로 만들어버리고자 하는 형의 분별없음에 저는 경악했습니다. 이미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많은 비판이 있었을 터라 길게는 말할 생각이 없습니다만, 저는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형의 발언을 접하고 오히려 그동안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형의 정치적 행보를 읽는 중요한 코드를 재발견한 느낌이었습니다.

유시민에 대한 사람들의 비판을 종합해보면 가장 앞서는 것이 ‘진실성의 결여’인 것 같습니다. 흔히 말하듯이 정치 이전에 인간이 되라는 거지요. 하지만 지난 1년 6개월간 나름대로 애정을 갖고 형을 관찰해 온 저의 생각은 좀 다릅니다. 형은 나름대로 진실한 사람이지요. 그토록 솔직하게 말하는 버릇을 가진 사람이 거짓말쟁이인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다만 정치적 행동의 준칙이 비판자들과는 좀 다른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한가지 저도 “저렇게 옳은 소리를 저토록 X가지없이(죄송) 말하는 재주는 어디서 배웠을까?”하고 속으로 생각했던 적이 있다는 것만은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공석에서는 별로 기억에 없습니다만 지나가는 사적인 자리에서 형은 자주 권력투쟁으로서의 정치, 세력의 정치를 주창했지요. 땅따먹기 게임과 같은 정치 말입니다. 물론 고대로부터 정치의 본질이 그러하긴 합니다만 그러나 그게 유시민의 정치가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형은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정치에 없는 것을 채워주려고 정치에 뛰어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 제가 형에게 하고싶은 이야기의 핵심이 이것이기도 합니다.

말뿐만이 아니라 의외로 객관성을 상실한 채 다른 정치인들을 권력의지의 화신으로 일방 매도하는 행태나, 역으로 평소 말하던 원칙과 배치되게 과거식의 지분을 요구하거나 가까운 사람들을 챙기려는 형의 집요한 노력을 지켜본 저로서는 불길한 예감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형이 그토록 저주해온 궁정정치, 음모적 권력정치의 총아가 바로 유시민 자신이 될 수 있겠다 라는 예감 말입니다. 이런 행태는 제가 많이 봐왔듯이, 흔히 운동권 정치를 겪어보고 현실 정치에 뛰어든 사람들 중에 정치를 속물적으로 파악하는 일부 얼치기 프로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제가 형에 대해 결정적으로 불신을 갖게 된 계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연말 정기국회 때의 일입니다. 형은 10월에 우리당이 보안법 폐지 당론을 결정하고나서 며칠 후 바로 자유투표에 의한 보안법 처리를 주장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제가 끝까지 노력해보고 나서 정 안되면 정기국회 막바지에 제안해 볼 수 있는 절충적 아이디어가 아니겠냐고 만류했지만 형은 바로 공개주장을 해버렸지요. 그 주장은 보안법을 경호권 발동해서 일방처리하면 탄핵후폭풍같은 사태가 와서 안된다는 상황인식을 깔고 있었던 걸로 압니다. 나는 그 주장과 12월 하순에 형이 제안하고 주도했던 240시간 의총의 보안법 폐지를 위한 일방처리 주장과의 큰 괴리를 지금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당시 상황은 어려웠습니다. 대통령도 국회의장도 유시민형과 비슷한 상황인식을 공유하고 있었고 당지도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형은 문제는 의사소통이라고 말했지요. 하지만 정작 문제는 형이 그 모든 정보를 갖고 있으면서도 보안법 폐지를 원하는 대중들을 기만한 게 아닐까요? 형이라도 지도부와 달리 자유로운 입장에서 알고 있는 진실과 상황 전망을 소상하게 알려줘야 했던 게 아닌가요? 왜 자신의 상황판단과는 다르게 농성까지 주도하면서 지도부와 의원들 사이를, 지도부와 당원들 사이를 갈라놓는 주역을 자청했던가요? 저는 지금도 그 점이 참으로 궁금합니다.

형은 계파가 아닌 정파를 말합니다만 위에서 말한 저의 관찰대로라면 큰 차이없는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이제 5년차 국회의원인 저의 정치적 경로는 이미 존재하던 계파정치로부터의 끊임없는 탈출의 과정이었습니다만 형은 왜 거꾸로 그 길로 들어서려 하십니까? 그건 형이 말해오던 자유의지에 대한 배반의 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정동영계가 있으면 정동영계를 깨고 김근태계가 있으면 김근태계를 깨는 것이 자유인 유시민의 정치적 역할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왜 유시민계를 만들어 권력의 합종연횡을 도모하려 합니까? 결국 그게 정치인 유시민의 본질인가요?

저는 형의 그 속류적 정치관과 원래의 좋은 철학이 결합하고 충돌하면서 끊임없이 형에 대한 오해와 혼란을 낳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형은 우리당에 있어 정말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진정 유시민형이 가진 그 탁월한 정치적 달란트들이 우리당을 위해 그리고 이 나라를 위해 소중하게 쓰이기를 바랍니다. 그러자면 철학으로 돌아가고 속류의 정치관은 버리십시오. 그럴 때 오히려 형이 생각하는 가치들은 훨씬 더 위력적으로 관철되고 우리당은 백년가는 반석 위에 올라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언젠가 이런 비판을 형과 소주 한잔하면서 하고 싶었습니다. 설명도 듣고 싶었구요. 하지만 형도 아시다시피 그간은 제가 경황이 없었고, 또 형이 이번 전당대회에 안나서는 줄로 알고 있다가 이렇게 무례한 방식으로 전하게 되었네요. 결례를 용서해주시고 혹시 제 비판에 잘못된 점이 있어 바로잡아 주실 부분이 있으시면 언제라도 연락주십시오. 글로 반박하셔도 좋겠구요. 전당대회가 끝난 뒤라도 좋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경선 일정, 고달프더라도 끝까지 완주해 형에 대한 당원들의 평가를 구해보십시오. 예언컨대 저의 이런 부나방같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형이 목표한 소기의 성과를 충분히 거두리라고 믿습니다. 형이 설령 당의장이 되더라도 오늘 제가 제기한 문제점들이 수정되지 않는다면 저는 형의 정치적 반대자로 계속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정파의 차원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자유인으로서 말입니다. 부디 언젠가는 제가 싫다는 형을 억지로 모시고 선거 운동을 뛰어 다니는 기쁨을 주시길 바랍니다. 건강하십시오.


2005년 3월 25일
김 영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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