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1-05-16 21:33:1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5162133135&code=990000
[유종일 칼럼]‘박정희’를 진정으로 극복하려면
5·16 군사 쿠데타 50주년을 맞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에 관한 평가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박정희 변호론의 핵심은 경제성장이다. 박정희의 18년 집권 기간 중에 고도성장을 이룩했고, 그 결과 우리나라는 세계 최빈국의 대열에서 탈피해서 신흥공업국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역대 대통령에 대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정희가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진보진영은 이 사실이 불편하다. 그러나 과거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만으로 박정희를 극복할 수는 없다. 박정희가 남긴 유산인 재벌-토건-경제관료 사이의 3각 성장동맹을 극복하는 것, 이 성장동맹을 대체할 복지동맹을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박정희를 진정으로 극복하는 길이다.
재벌·토건·관료 동맹 양극화 원인
박정희의 경제적 업적에 대한 평가는 과장된 면이 있다. 우선 박정희 시대의 고도성장이 예외적인 성공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동시대의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소위 아시아의 신흥공업국들이 유사한 성장을 이룩했으며, 조금 앞서서는 일본이, 조금 뒤처져서는 중국이 또한 고도성장을 이룩했다. 이것은 이 나라들에 공통적으로 작용한 역사적 및 환경적 요인이 있었다는 것을 시사하며, 한 개인의 빼어난 지도력에 의해 나타난 결과는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나아가 박정희 시대의 성장은 값비싼 희생의 대가였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소위 ‘선성장, 후분배’를 내세우며 대다수 국민의 소비력을 억제하고 자본축적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이룩한 성장이었다. 따라서 고도성장의 이면에는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의 막대한 희생이 있었다. 오늘날 최대의 문제로 대두한 양극화의 연원도 따지고 보면 박정희 시대의 ‘선성장, 후분배’ 정책이다. 분배뿐만 아니라 안정이나 효율과 같은 다른 중요한 가치들도 희생되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박정희가 남긴 경제적 유산이다. 박정희는 재벌체제와 비대한 토건부문을 특징으로 하는 산업구조와 정부의 통제 아래 이들 부문에 자금을 지원하는 관치금융이라는 왜곡된 경제구조를 만들어냈다. 박정희의 고도성장정책이 재벌-토건-경제관료 3각 성장동맹을 낳은 것이다. 이 3각 성장동맹은 성장지상주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한국사회에 대한 그들의 지배력을 유지하고 확대해왔다. 혹자는 박정희의 딸이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라는 사실에서 박정희의 살아있는 영향력을 가늠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 더욱 생생하고 적확한 증거이다. 이명박 정부는 7·4·7공약으로 표현된 성장지상주의 이데올로기를 채택하였고, 부자감세와 규제완화, 4대강 사업과 관치금융의 부활 등 재벌-토건-경제관료 3각 성장동맹에 입각한 경제성장을 추진하였다.
복지동맹 구축 민주진보 성공해야
수년 전 소위 ‘박정희 신드롬’이 등장했을 때 많은 이들이 그 원인을 민주정부의 정책실패, 특히 양극화 문제의 악화에서 찾았다. 민주정부의 실패와 무능이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높였다는 주장은 옳다. 하지만 민주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양극화를 초래했고 이와 대비해서 국가통제경제를 실시했던 박정희 시대에는 양극화가 없었다는 식의 논리는 곤란하다. 양극화의 진정한 연원은 바로 박정희의 3각 성장동맹에 입각한 성장지상주의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나름대로 이 성장동맹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나 궁극적으로 실패했다. 재벌개혁은 용두사미가 되었고, 토건세력은 더욱 활개를 치게 되었다. 경제관료의 전성시대도 계속되었다. 복지의 확대를 추진하기는 했으나 미흡했고, 한편 양극화는 더욱 확대되어 소득이 낮은 계층일수록 복지보다는 성장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박정희를 진정으로 극복하는 길은 차기 민주진보정권의 성공을 일궈내는 것이고, 이는 중소기업가-자영업자-노동자-농민을 포괄하는 복지동맹의 구축을 전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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