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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살 청년 전교조와 ‘한심한 동지’ 김용택 시인
교단에서 2011/06/02 16:01 낮달
▲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는 창립 22주년을 맞아 전교조 운동사 1권 <참교육 한길로>를 펴냈다.
어저께 택배를 하나 받았다. 전교조 경북지부에서 보낸 것이다. 열어보니 전교조 운동사 1권(법외노조 편) <참교육 한길로> 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결성 22주년을 맞아 펴낸 자료집이다. 자료수집과 집필과정에만 3년이 소요된 이 책은 전교조가 태동하던 1980년대 하반기부터 1989년 전교조 결성, 1999년 전교조 합법화에 이르는 과정을 신국판 1400여 쪽에 담고 있다.
전교조 22년, <참교육 한길로>의 발간
거기 10년도 넘는 간난(艱難)의 세월이 담겨 있다고, 그러고도 12년이 더 지나 이제 전교조가 스물둘, 성년이 되었다는 사실은 정작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무심히 책을 뒤적이는데 권말 자료로 1989년 해직교사를 비롯한 법외노조 시기 희생자와 지회장 명부가 실려 있다.
무슨 오래 묵은 편지처럼 경북의 해직교사 명단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해직 이후 수도자의 길로 간 사람도 있고, 복직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의 이름도 있다. 배주영, 정영상 선생의 이름 옆에 쓰인 ‘사망’이라는 두 글자가 무심하고 아프다.
복직하고도 17년이 흘렀다. 그 새 떠난 사람도 적지 않다. 황현자, 지송월, 정관, 장성녕 선생……. 희미해지는 기억 저편으로 떠난 사람들의 얼굴이 무심하게 떠오른다. 그렇듯 세월은 매정하기만 한 것이다. 다시 10년이 흐르면 더 많은 사람이 기억 속에 묻혀 갈 것이다.
지부장의 편지는 ‘전교조가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제 힘들고 지친 아이들과 선생님들에게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 가고 있’는 바, ‘아직은 좀 작은 그늘이지만 뿌리와 줄기를 더욱 든든하게 만들어 아 니라 고통 받는 학부모까지 쉴 수 있는 큰 그늘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 하고 있다.
말미에 실린 구절에 오래 시선이 머물렀다.
힘들었던 시기, 하지만 가슴 속에는 참교육의 씨를 싹 틔우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치열한 삶’이라고 하면 글쎄, 머리를 끄덕이다가 만다. 삶과 길이 아주 명료하게 보이던 시기였다. 내가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가 너무 분명해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진실로 나는 그 시절의 삶을 아무 부끄럼 없이 ‘치열’로 매길 수 있을는지…….
▲ <교육희망> 585호(2011. 5. 9)에 실린 김용택 시인의 칼럼 ⓒ <교육희망> PDF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음.
오늘 아침, 책상 위에 기관지 <교육희망> 22주년 특집호가 놓였다. 지면을 뒤적이는데 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전북 군산의 한 고교에서 근무하는 조합원이 쓴 기산데, 시인 김용택이 지난 호에 실은 칼럼에 대한 ‘반론’이었다.
김용택은 무어고 반론은 또 무언가. 그런데 제목이 심상찮았다. “‘회원’이었던 김용택 시인에게”라는 제목 아래 부제로 “5월 9일자 칼럼 '한심한 당신들의 동지'를 읽고”가 붙었다. 단숨에 기사를 읽어 치우고 나서 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한심'한 건 '우리'가 아니라 '당신'이다
사연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전교조 ‘회원’이었다(전교조는 노동조합이므로 구성원을 가리키는 말은 ‘조합원’이 맞다.)는 김용택 시인이 기관지 <교육희망>에 ‘한심한 당신들의 동지’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칼럼의 내용은 요약하면 대충 다음과 같다.
교직 경력이 ‘38년이고 학교를 그만둔 지 3년’인데 난생 처음으로 전교조 관계 신문으로부터 청탁을 받아 ‘감개무량하다’. 놀랍게도 ‘이런 신문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나는 전교조란 말에 ‘반감’이 있다. 강연 청탁 전화할 때 뻣뻣하고 불친절했다. 그런데 전교조가 ‘특별한 존경을 받고 사는 선택된 조직’인 줄 안다.
강연료를 일방적으로 정하고 내 의견을 말하면 시인이 돈을 따진다고 몰아 부친다. 전교조 사무실에 가보니 불결하고 거기 근무하는 사람들은 경직되어 있었다. 평생 전교조 ‘회비’를 내고 살았는데 그 돈이 아까웠다. 더러는 교장으로 옮겨 앉아 거들먹거리는 걸 보고 환멸을 느꼈다. 진보 교육감이 나자 그 주변을 서성이는 교사들을 보며 곤혹스러웠다.
진정 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을 전교조에서 만났는데 그들을 통해 희망을 보았다. 곁에 있던 교사들이 해직될 때 사는 것이 무서워 해직되지 않았다. 교사 생활에 부채가 있다면 평생 아이들에게 잘못한 일이다.
교사가 위대할 수 있는 것은 가르치면서 동시에 배우기 때문이다. 반성하라, 마음을 문을 열어라. 부드럽고 착하고 따사로운 사랑으로 빛나는 얼굴을 보여 달라. 이 너절한 세상 속에 인간을 지키려는 큰 사랑의 교육이 있어야 하고 인간의 희망을 찾으려는 치열한 싸움이 있어야 한다. ‘한심하게도 나는 평생 당신들의 동지였다.’
그가 쓴 글의 마지막 구절의 울림은 크고도 깊다(!). 그는 마지막 문장으로 자신의 속내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여기서 문제는 ‘한심하다’는 형용사다. 유감스럽지만 이는 외교적 겸사(謙辭)가 결코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한심함은 자신을 겨누긴 하지만, 그 속내는 앞서 말한 ‘반감’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중간에 <교육희망>이라고 제호가 바뀌긴 했지만 <전교조 신문>은 전교조 창립 때부터 간행되어온 기관지다. 20년 가까이 ‘평생 동지’였던 사람 이 기관지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고 한다. 세상에, 그건 이제야 원고를 청탁해 온 것에 대한 억하심정의 표현이 아니라면 그가 조합원이었다는 사실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 <교육희망> 586호(2011. 5. 30)에 실린 조합원 교사의 반론 ⓒ <교육희망> PDF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음.
기사가 나온 뒤, 조합원들은 노기를 가누지 못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글쎄 기관지의 존재도 처음 알았다는 어리보기 퇴직 ‘회원’이 조직에 날리는 똥침 치고는 심하지 않은가 말이다. <교육희망> 누리집 게시판에는 교사들의 항의가 이어지고 예의 반론 기사는 조목조목 그의 글을 반박하고 있다.
그가 어떤 ‘부자신문’에 한 동안 시를 연재했다든가, 조직의 일면만으로 전체를 매도한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새삼스럽다. 그러나 ‘인간의 희망을 찾으려는 치열한 싸움’ 운운하면서 ‘평생 동지’였던 자신을 한심하다고 한 것은 쉽게 용서하기 어렵다. 그것은 시방도 힘겹게 싸우고 있는 동지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시가 교과서에 오르고 메이저 신문에 시를 연재할 만한 잘 나가는 시인이라고 해서 그에게 7만 조직과 그 구성원에 대해서 함부로 말할 권리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반론 기사에도 드러나듯 ‘치열한 싸움의 현장에서 결단코 단 한 번도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없’지만 우리가 그의 부재를 비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은 또한 '사는 것이 무서워 해직되지 않'은 김용택을 우리가 나무라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우리의 평생 동지’였던 것을 한심하다고 부끄러워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나라의 잘 나가는 시인 김용택이 우리의 동지였다는 사실을 굳이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부끄러워하는 시인 김용택을 우리의 ‘평생 동지’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교조 22년, 그 성년의 길목에서 만난 한 퇴임 조합원의 망발 앞에 나는 우리가 갈 길이 아직 멀다는 생각을 한다. 숱한 교사들의 고민과 눈물과 상처로 만들어진 이 ‘작은 그늘’이 더 ‘큰 그늘’로 자라기까지 이런 ‘한심한 동지’까지도 품을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2011.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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