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2011-10-27 오후 2:18:14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111027105624§ion=05
"정치인들이여, 이제 천안함에 대해 당당해져라"
[기고] 상식과 합리성의 시대를 원한다면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그것도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승리했다. 박원순 후보와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비교해 보면 당연한 결과다. 서울 시민들이 상식에 맞는 결정을 한 것이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선거 때마다 꺼내는 전가의 보도, 허위에 입각한 인신공격과 색깔론 등을 다 꺼내 박 후보를 전방위적으로 공격했지만, 시민들을 현명한 판단을 했다.
특히 박 후보가 20대, 30대, 40대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것은 매우 뜻 깊다. 그 썩어문드러진 전가의 보도들이 현재와 같은 소셜미디어의 시대에는 쓸모조차 없고,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 일으킨다는 것을 한나라당과 보수언론들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아니면 그것 말고는 달리 보여줄 것이 없던지.
그러한 조짐은 작년 6월 2일 지방선거에서 이미 나타났었다. 천안함 사건을 빌미로 정부와 보수언론이 대대적으로 벌였던 색깔론의 광풍에도 야권이 약진하지 않았는가. 이 흐름이 이젠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서울 시민들은 명백히 보여주었다.
20대부터 40대까지 30년을 관통하는 젊은 세대의 박 후보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는 이제 보수니 진보니, 반북이니 친북이니 하는 낡은 이념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분단 상황 때문에 그 이념들이 아직 유효한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만 있을 뿐이다. 그것도 '어버이연합'으로 대변되는 소위 보수 진영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상식과 합리성이다. 이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 대전현충원 천안함 희생 장병 묘역 ⓒ연합뉴스 |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는 시점이지만 박원순 신임 서울시장에게 아쉬웠던 점 하나를 언급하고자 한다. 나경원 후보가 첫 토론회에서 박 후보의 사상을 검증한답시고 천안함 사건을 들이댔을 때 박 후보가 보여줬던 실망스러운 대응이 그것이다. 우선 필자는 그러한 대응이 박 후보가 천안함 사건에 대해 면밀하게 공부하지 않아서 나오는, 즉 무지에서 비롯된 실수였다고 보고 싶다. (☞관련 기사 : 박원순 '천안함 숨바꼭질' 비겁하다)
지금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이유는 내년 양대 선거에서 한나라당과 소위 보수언론들이 천안함 사건을 다시 들고 나와 친북/반북 프레임으로 선거를 치르려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건대 그들은 그것 밖에는 써먹을 게 없을 테니 말이다.
천안함 문제를 짚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왜 내년 총선과 대선이 중요한지와 관련되어 있다. 내년 선거에서 진보 진영 혹은 범야권이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왜 그래야 하는가? 필자는 진실이 거짓을 이기고, 상식이 통하고, 합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본다.
그러나 그처럼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걸 실현시키기 위해 철저한 대비를 하지 않고 그저 표를 달라고만 한다면 무슨 감동이 있겠는가? 그것은 전술적으로도 어리석다. 유권자들에게 감동도 주지 않고 표를 구걸하면 사람들이 움직일까? 박원순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천안함과 관련된 토론이 오간 뒤 잠시 흔들렸던 것은 나경원 후보가 천안함을 소재로 공격할 것을 예상치 못했다거나, '서울시장 선거에서 웬 천안함이냐'고 대응하면 될 것이라는 불철저함이 유권자들에게 실망을 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년 선거에서도 그런 식으로 대응한다면 비록 정부와 한나라당의 실정과 잘못으로 야권이 승리한다고 해도 그건 분명 반사이익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게 정권을 잡는다면 또 다시 '절반의 실패'라는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을까? 정면승부를 해야 한다. 그래야 경합하는 양측이 원하는 사회에 대한 국민들의 선택도 명확해질 수 있다. 2013년 이후 한반도의 평화와 발전에도 강한 추동력이 생길 것이다.
정치인과 지식인들이여, 이젠 천안함 문제에 대해 당당하시라. 서울시장 선거에서 나타났듯 국민들은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다. 천안함 사건의 진상규명은 '믿음'의 영역이 아니라 '과학적 진실'의 영역에 속한다. 천안함은 한국 사회의 마지막 터부인 안보 문제인데다가 북한의 연루 혐의가 씌워진 사건에 대해 한국 사회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느냐, 아니면 여전히 비합리적일 것이냐를 가르는 척도이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할 만큼 국민 의식은 성숙해있다.
천안함 정부 발표에 합리적 의문들을 제기했던 사람들의 의견에 무조건 동감해달라는 말이 결코 아니다. 성의를 가지고, 그간 나온 자료들을 외면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이다. 이미 많은 자료들이 널려있다. 글을 읽기가 귀찮으면, 동영상도 있다. 필자가 '김어준의 뉴욕타임스'에 출연해 대담한 것이나, 작년 11월 방영된 <KBS> '추적60분' 등을 보면 된다.
천안함 사건에 관심이 있거나, 발언하고 싶거나, 앞으로 발언을 해야만 하는 분들에게 꼭 한번은 이러한 자료를 보시라고 권한다. 그리고 나서 비이성적인 '심증'은 버리고, 이성적으로 양심에 부끄럼이 없게, 당당하게 발언하시라는 부탁이다.
내년에 있을 총선과 대선은 거짓과 진실, 비합리와 합리성의 대결이다. 후보자들이 당당해져야 그런 구도가 확실히 잡힌다. 지레 겁을 먹고 회피하려 한다면 다시 진흙탕에서의 이전투구만 재연될 뿐이다. 국민은 정정당당한 진검 승부를 원한다. 내년에 상식과 합리성의 시대가 활짝 열리길 기대해마지 않는다.
/이승헌 美 버지니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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