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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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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갈아치울 권리 가진 무슬림여성

조현 2012. 02. 01
 

현경 교수2-.jpg

 

지난달 27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수도회 교육관 내 성당은 계단 위에 이슬람식 조각보가 깔리고 그 위에 앙증 맞은 수십개의 촛불이 켜졌다. 화려하면서도 고요한 대비의 앙상블 속에서 장미보다 붉은 옷을 입고 무슬림식 모자를 쓴 꽃이 등장했다. 기독교 신학자 현경(56) 교수였다.


 17개 이슬람 국가들을 순례하고 <신의 정원에 핀 꽃들처럼>(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을 쓴 그가 출판기념회 대신 마련한 ‘즉문즉설’ 자리엔 그의 팬 200여명이 메웠다.

여자, 남자, 노인, 젊은이, 목사, 신부, 수녀, 스님, 무슬림…. 참여자의 지구적 스펙트럼이 그의 정원에 핀 꽃들의 다양성을 말해주고 있었다.

 

현경 청중-.jpg


 

그는 개신교 진보신학계의 명문인 미국 뉴욕 유니언신학대학에서 아시아계로선 최초로 종신교수가 된 인물이다. 달라이 라마가 주축이 된 종교간 세계평화위원회 자문위원이기도 하고, 틱낫한 스님과도 친분이 두텁다. 기독교 신학자일 뿐 아니라 환경·평화운동가이기도 한 그는 때론 불교 명상 수행자가 되고, 샤머니즘의 무희가 되기도 할 만큼 종교간 벽을 오히려 해방의 디딤돌 삼아 뛰어넘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본격적인 이슬람국가 순례에 나섰을 때는 주위에서 모두가 안전을 우려했다. 2001년 뉴욕에서 9·11공격 이후 주요 방송들은 이슬람에 대해 일부다처제이며, 명예살인을 하고, 겉만 종교지 속은 테러리스트라고 떠들어댔다. 종교간 벽을 줄넘기하듯 넘어온 그도 이슬람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렇게 지난 2006년 9월부터 2007년 8월 말까지 1년 동안 이슬람 17개국 순례를 떠났다. 그는 무슬림여성 200여명과 만나고 돌아와 5년의 집필 끝에 585쪽의 두꺼운 책을 펴냈다. 그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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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신 박사의 질문에 답변 중인 현경 교수


 그가 터키에서 이슬람 최고의 시성으로 꼽히는 루미(1207~73)의 22대 손녀 에신 첼라비로부터 받은 터키 이름은 ‘귈렌아이’(웃는 달)이다. 어린 시절 부친이 손수 뜨게질로 한땀 한땀 떠 12개의 인형을 만들어줄 만큼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는 그는 늘 입이 초승달처럼 찢어져 있다. 그는 세상의 어떤 남자도 자기를 보면 반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공주병 환자’다. 그런 공주의 유혹적 웃음에 세상 남자들이 모두 ‘기대’를 충족시켜주지는 못했으리라. 


 즉문즉설에서 대담 파트너로 나온 정신과의사 정혜신 박사가 “자기 분열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고 묻자 그는 “교수직을 그만두려 할 때마다 친구들이 제발 그 직함마저 없으면 ‘넌 진짜 미친 년이 된다’고 말린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그러면서도 “분열이나 상처마저도 나라는 꽃을 향기롭게 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요소”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서구 사회가 그토록 타자화하는 이슬람 순례를 통해 그는 내면에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그는 “정작 이슬람에서 애정 결핍증이 많이 치유됐다”고 고백했다. 두려움이 은혜로 바뀐 그는 오히려 무슬림 전사처럼 서구의 편견과 도그마에 맞섰다. 서구사회의 심장부인 뉴욕에서, 그것도 신학자로서 밥벌이를 하는 교수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세상에서 핵무기를 가장 많이 가진 나라는 미국이고, 살아 있는 사람의 머리 위로 핵무기를 던진 유일한 나라도 미국인데, 자기들만이 핵무기를 가질 수 있고, 이슬람권은 아무런 도덕적 판단 능력이 없기 때문에 가져서는 안된다고 매도하고, 악마화하는 것에 대해 이슬람권 전체가 한을 가지고 있다. 상대를 타자화하고 악마화해 전쟁을 부추겨야 유지되고 성장하는 무기업체들로부터 우리가 잘 아는 미국의 주요 정치인들이 정치자금을 받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짐승처럼 다루는 것에 대해서도 무슬림 모두가 자기들의 문제로 아픔을 느끼고 있다”며 무슬림의 아픔에 공감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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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또 “터키나 튀니지 같은 상당수 이슬람 국가가 법적으로 일부다처제를 금하고 있고, 일부다처제도 남편이 전쟁에서 죽어도 다른 남자의 첩이나 정부가 아닌 정식 부인이 돼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한 배려로부터 출발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란(이슬람 경전)엔 여성들의 재산권이 보장돼 있을 뿐 아니라 남편이 섹스로써 만족시켜주지 못할 때는 갈아치울 수 있는 권리까지 있어요.”


 무슬림들과 멋진 하모니를 이루게 된 그는 최근 남북여성평화모임인 조각보를 만들었다. 여러 조각의 천을 함께 엮으면 얼마나 멋져지는지 이날 행사에서도 조각보는 빛을 발했다.


 그의 저서를 읽은 한 청중이 그에게 “당신의 할리페(‘세상에 온 이유’라는 뜻의 이슬람 용어)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거침 없이 말했다.  


 “이제 여성만이 아니라 남녀노소, 동물들과 식물들까지 모두가 자기답게 살며 자기의 꽃을 피우도록 돕는 것이다.”

 종교 간 소통으로 편견을 넘고, 헝겊으로 아름다운 조각보를 만들고, 상처로 영롱한 진주를 만드는 ‘웃는 달’의 눈길이 비추는 곳엔 어디나 아름다운 꽃이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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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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