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12.09.18 09:36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79704&CMPT_CD=E0942
박정희가 천상에서 사죄했을 거라고?
김진 위원을 존경할 수밖에 없는 이유
[민주공화국 대통령 후보의 자격을 묻는다①] 5·16 쿠데타와 10월 유신
순항하는 듯했던 박근혜호(號). 출범하자마자 역주행을 하더니 결국 유신항(港)에 닻을 내렸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일부 선원이 '기항지가 잘못됐다'고 항의하나, 선장과 항법사 등 조타실 간부들은 요지부동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유신항에 정박한 배는 닻을 올리기를 거부하고 있다. 닻은 거기에 내려둔 채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이야기. 선원들이 '그게 불가능하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 소리가 조타실까지 들릴 리 만무하다. 선장은 '이게 다 어묵 사먹으며 포장마차 매상이나 올려주면 풀릴 문제'라고 믿는 모양이다.
나는야 유신의 딸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65회 전국농촌지도자대회에 참석한 뒤 승용차를 타고 막 떠나려는 가운데 한 참석자가 악수를 하자며 손을 불쑥 내밀자 박 후보가 깜짝 놀라고 있다. | |
ⓒ 권우성 |
솔직히 박근혜 후보가 스스로 유신에 발을 묶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과거를 돌이켜보면,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인터넷으로 기사검색을 해 보라. 박근혜 후보는 이미 2002년, 2007년에도 지금과 동일한 물음에, 지금과 동일하게 대답했다. 지금이 2012년이니, 정확히 5년마다, 즉 대선이 있는 해마다 과거사 문제에 봉착했던 것이다. 물론 그때마다 그녀의 입장은 확고했다. '유신체제는 정당했고, 아버지는 억울하다'는 것. 사실 그녀의 인식은 뿌리 깊은 것이다.
"4·19 때 목숨까지 버렸는데 그 혼란의 와중에서 공산당의 밥이 됐다면 그 희생이 무슨 가치가 있겠어요. 더 나아가 3·1운동 6·25사변(한국전쟁)도 그때 많은 우리 선조가, 앞서간 분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희생을,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내놓으셨는데 그것도 5·16 때 공산당한테 나라가 먹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희생이 값진 것이고 헛되지 않은 것이지, 만약에 나라가 (먹혔다면) 그 희생은 다 헛된 것 아니겠느냐. 그런 의미에서 5·16을 생각하고 싶고요.
마지막으로 제가 유신에 대한 얘기가 끊어져서 말씀을 못했는데, 특히 유신과 자주국방은 떼려야 뗄 수가 없어요. 왜나면 자주국방과 자립경제를 그 기한 안에 이루기 위해 아버지가 유신을 하신 것이기 때문에..." (1989년 박경재의 <시사토론> 인터뷰 당시)
한마디로, 5·16은 단순한 군사쿠데타가 아니라, 헌법전문에 명기된 3·1운동이나 4·19에 맞먹는 '혁명'이며, 유신체제는 단순한 군사독재가 아니라 자주국방과 자립경제를 위한 '구국의 조치'였다는 이야기다. 이번 사태는 박근혜 후보가 23년 전의 이 생각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상식적으로 30여 년 전의 과거사에 발이 묶여 표를 잃는 것은 후보에게 결코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이 부조리를 고집하는 것일까. 이 사안이 적어도 그녀에게는 계산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5·16 쿠데타와 유신헌법은 박근혜의 정치철학의 요체, 말하자면 그녀가 정치를 하는 이유, 그녀가 삶을 사는 동기 그 자체다. 따라서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곧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리라. 박근혜가 쏟아지는 비난 속에서도 유신에 대한 신념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통합진보당 구당권파가 쏟아지는 비난 속에서도 북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과 흡사하다.
박정희 따님의 사당, 새누리당
5·16 쿠데타와 유신체제에 관한 박근혜 대표의 인식은 정확히 3공·4공 시절 정권에서 강제로 유포하던 정치 프로퍼갠더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청와대에서 자라나 그 안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까지 하다 보니, 정권의 프로퍼갠더에 완전히 세뇌돼 버린 것이다. 이런 문제적(?)인 후보를 모신 당으로서는 당연히 근심이 깊을 수밖에. 그리하여 김종인·이준석·이상돈 교수는 물론이고, 남경필 의원을 비롯한 당내의 몇몇 인사들도 박근혜 대표에게 과거사에 관해 입장을 전환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후보는 요지부동이다.
정상적인 경우, 후보의 사적 소신(?)과 정당의 공적 입장이 충돌하면, 조정이 이뤄진다. 이 당연한 일이 왜 안되는 것일까. 그것은 새누리당이 정상적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박근혜 후보는 한나라당이 오합지졸이 될 때마다 나타나 당을 위기에서 구하곤 했다. 하지만 선거 때마다 발휘되던 그 리더십의 요체가 무엇인가. 결국 '박정희 향수'로 핵심 지도층을 추슬러 그것을 구심으로 선거전을 이끄는 것이었다. 이렇게 위기의 극복이 아버지의 후광을 업은 개인의 인기에 의존하다 보니, 당 자체가 특정인의 사당이 돼 버린 것이다.
어느 당이나 선거를 앞두면 후보 중심으로 편제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그 수준을 넘었다. 박근혜가 '정당의 후보'가 아니라, 새누리당이 '후보의 정당'인 상황. 홍일표 대변인의 사임은 이를 잘 보여준다. '두 개의 인혁당 판결'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자, 홍 대변인은 "박 후보의 표현에 일부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과한다"고 밝혔다. 그러자 박 후보 본인이 "전혀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고 이를 부인하고 나섰다. 설사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고 해도, 당의 혼란상을 드러내며 굳이 부인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파문이 더 커지자, 박 후보는 마지못해 "피해를 당한 분들의 아픔을 깊이 이해하고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는 입장을 내놓는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박근혜의 언급이 '쿠데타와 유신체제'에 대한 반성과 사과라고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녀는 여전히 쿠데타를 혁명이라 여기고, 유신독재의 정당성을 확신한다. 다만 그 도도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희생자는 발생할 수 있고, 그런 희생에 대해 유감스럽다는 것이다. 물론 가해의 주체는 역사며, 판단의 주체 역시 역사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역사'가 죽일 놈이다.
유신 공주님의 환관들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지난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대통령선거대책기구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
ⓒ 유성호 |
어차피 박근혜가 청와대에서 쌓은 국정경험을 통해 얻은 리더십 자체가 결코 민주적인 성격의 것은 아니다. 며칠 전 영남의 어느 도시에 강연을 갔다가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박근혜 후보가 시장을 방문했더니, 그곳에서 장사하던 어느 할머니가 "공주마마 오셨다"며, 넙죽 엎드려 큰 절을 올리더란다. 박근혜 후보가 5·16 쿠데타와 10월 유신에 대해 그토록 당당한 태도를 보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것이 자기만의 생각이 아니라, 자기 측근과 지지자들 사이에 널리 공유된 생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령 친박 좌장이자 박근혜 경선캠프 공동선대위장인 홍사덕 전 의원은 "유신은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한 게 아니라 수출 100억 달러를 넘기기 위한 조치였다"고 말했다. 박근혜 후보는 곧바로 "그건 그 분 개인의 견해"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홍사덕 전 의원의 발언은 유신이 '자립경제'를 위한 조치였다는 후보의 소신과 일치한다. "인혁당? 모두 배가 부른가 보지?"라는 친박 이한구 의원의 발언도 마찬가지. 오죽 황당하면, 이를 보다 못한 정몽준 의원이 "국민을 배부른 돼지로 아느냐?"며 반박하고 나섰겠는가.
새누리당 김병호 공보단장은 아예 염장을 지른다. "사과라는 것은 누구한테 하는 사과냐, 피해자가 누구냐"라며 "사과를 피해자 당사자들이 아닌 그들의 가족이나 후손까지로 확대하기 시작하면, 전 국민 중에 사과를 안 받을 사람이 있겠느냐"라고 말했다(<한겨레> 김병호 박 후보 공보단장 '인혁당 사과는 당사자들에게만' 2012년 9월 16일 치). 결국 인혁당 사건은 희생자의 가족과 후손들에게까지 할 사안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박근혜 공주께서 승하하셔야겠다. 저승에 계신 '당사자들'에게 사과하는 길은 그 길밖에 없잖은가.
이 모든 망언 퍼레이드에 화룡점정을 찍은 것은 친박계로 3성 장군 출신인 한기호 의원이다.
"역사를 쓰는 일에만 몰두해서 과거로 발목잡기를 하는 세작들이 있지만, 역사를 만들어온 사람들은 새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 오늘을 허비하지 않는다."
이렇게 그는 애먼 사람들을 싸잡아 졸지에 '세작'(간첩)으로 만들어 버린다. 여기서 우리는 유신시절 무고한 이들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던 바로 그 논리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 친박계의 의식 속에 유신은 '과거'가 아니다. 그들에게 유신은 생생한 현재요, 우리에게는 닥칠지 모르는 '미래'다.
유신의 잔당들
이 망언의 대열에 일군의 극우 인사들이 합류한다. 이들의 견해는 상당히 독창적이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시대의 판사들은 양심이 없는 판사들이기 때문에 당시의 판결은 일고의 가치가 없고, 민주화시대의 판사들의 양심만 옳다는 현 여론의 추세는 참으로 당혹스럽고 불길하다. 필자는 민주화 시대의 판사들을 매우 불신한다. 그들 중에는 김일성 교시에 따라 빨갱이로 제조된 판사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필자는 22개 사건을 재심으로 일거에 뒤집은 이용훈을 빨갱이라고 생각한다."(지만원·인혁당 사건 "法이 法을 파괴하는 法" <프론티어타임즈> 2012년 9월 15일 치)
<뉴데일리>나 <조갑제닷컴>에서는 아예 인혁당 사건이 조작임을 부정하는 기사를 끊임없이 내보낸다. 물론 '인혁당 사건에 관해서는 다른 증언이 있으며, 대법원에도 두 개의 판결이 있다'는 박근혜의 발언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SNS에도 움직임이 존재한다. <저격수다>라는 <나꼼수> '짝퉁' 팟캐스트에 출연하고 있는 축구해설가 장원재 교수의 발언이다. "인민혁명당이 조작된 사건이라면, 인민혁명당 이야기가 나오는 북한 교과서와 김일성회고록도 조작된 책이겠네! ㅋㅋ"(@yark991) 이들이 이토록 북한교과서와 김일성 회고록을 신봉하는지 몰랐다.
그나마 온건한 박근혜 옹호 입장은 안병직 교수의 것. 한마디로 '1차 인혁당 사건은 단순한 조작이 아니라, 혁명조직으로서 나름 실체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는 조직에 들어오라는 권유를 받았다는 안병직 교수 개인의 경험을 근거로 한다. 박근혜 후보가 인터뷰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증언;은 이를 가리킨다. 물론 1차 인혁당도 북한의 대남공작과 연계된 것은 아니며, 실체가 불분명해 당시의 담당검사들이 무리한 기소라고 항명한 적이 있다. 안병직 교수는 1, 2차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이나 처형이 정당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정작 검증해야 할 것은?
▲ 1975년 4월 8일 새벽 박정희 독재정권에 의해 '사법살인' 당한 인혁당재건위 사건의 도예종(삼화토건 회장), 서도원(전 대구매일신문 논설위원), 하재완(무직), 이수병(일어학원 강사), 김용원(경기여고 교사), 송상진(양봉업), 우홍선(무직), 여정남(전 경북대 총학생회장) 8명의 사형이 집행된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 |
ⓒ 권우성 |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보수진영의 입장을 거칠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견해의 스펙트럼이 나온다.
①인혁당 사건이 조작임을 부정하며, 처형의 정당성을 시사한다.(극우매체. 지만원·장원재)
②인혁당 사건이 조작임을 부정하나, 처형의 정당성은 부정한다.(뉴라이트. 안병직)
③인혁당 사건이 조작이고 처형은 부당하나, 사과할 사안은 아니다.(새누리당 친박계. 이한구·김병호)
④인혁당 사건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자들은 간첩이다.(새누리당 친박계. 한기호)
⑤인혁당 사건은 조작이고 처형은 부당하니, 박근혜가 사과하라.(새누리당 비박계와 보수언론)
이게 바로 한국 보수의 스산한 풍경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마도 ①에서 ④까지의 입장이리리라. 그것들은 명백한 역사 수정주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견해들은 망언에 가까워, 논쟁보다는 스캔들의 대상이 될 뿐, 정작 문제 삼아야 할 것은 ⑤이다. 왜? 이 입장은 '사과'라는 쿨한 말 속에 가장 핵심적인 검증의 항목을 슬쩍 은폐하기 때문이다. 바로 유신체제 자체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공식적 입장이다. 아래 문장을 보라.
인혁당 사건은 조작이고 처형은 부당하니, 박근혜가 사과하라
최근 보수언론들도 경쟁적으로 박근혜를 향해 이렇게 주문한다. 하지만 이 말로써 그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애매하다. 그 주문은
(1)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만 사과하라'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
(2) '유신독재 자체에 대해서 사과하라'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핵심은 역시 '유신체제' 자체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입장이다. 왜? 인혁당의 피해자들은 바로 유신독재에 항거하다가, 유신헌법으로 처형당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단순한 실수나 오류로 인한 사법의 피해자가 아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문제에 관한 박근혜 후보의 입장은 이런 것으로 보인다.
유신은 '자주국방'과 '자립경제'를 위한 구국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발생한 피해에 대해서만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자신의 언급을 "사과로 받아 들여 달라"거나 "유가족이 허락하면 만날 수 있다"는 박근혜 후보의 말은, 인혁당 사건을 '유신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그와는 관계없는 고립된 개별사건으로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설사 유가족을 만나 사과를 하더라도, 박근혜는 여전히 아무 모순 없이 '유신체제가 정당하다'고 말할 게다. 그런 의미에서 홍사덕 전 의원은 박근혜의 입장을 제대로 요약했다. "유신은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게 아니라 수출 100억 달러를 넘기 위한 조치였다." 여기에 '박사모'가 화답한다.
"독재 정권을 용인한 북한에서 (중략) 정치범 수용소에서 떼로 죽어 나가며 아예 야당이라는 존재 자체가 없지만 우리는 김영삼·김대중 등 야권 지도자는 건재했다. 그들이 유신 당시에도 항거할 수 있었기에 독재라도 상당히 느슨한 독재였다."
헌정을 수호할 대통령의 책무
박근혜 후보에게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은 5·16 쿠데타와 10월 유신에 대한 공식적 입장이다. 왜냐하면 이 두 사건은 대한민국의 헌정을 유린한 범죄였기 때문이다.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이 되려 한다. 그런데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책무 중의 하나는 헌법을 수호하는 데에 있다. 이 두 사건에 대한 입장을 묻는 것은, 자신의 집권 시에 행여나
(1) 나라가 혼란하여 쿠데타가 일어날 경우 그것을 '혁명'이라 환영할 것인지,
(2) 자신에게 국민이 저항할 경우 유신과 같은 초헌법적 조치를 취할 것인지,
여부를 묻는 것이다. 이 두 물음의 어느 것에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하는 후보는 절대로 대통령이 돼서는 안된다. 쿠데타를 용인하고, 파쇼헌법을 옹호하는 것은 헌정을 수호할 책무를 진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으로서는 심각한 결격사유다.
일각에서는 이것이 '연좌제'라고 비난한다.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 박근혜 후보가 내세우는 국정운영의 경험은 유신시절에 습득된 것이다. 게다가 우리 국민은 박근혜 후보를 유신의 어두운 기억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의향이 있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를 그 어두운 시절과 연결시키는 끈은 박 후보 자신이 맨 것이다. 끈을 풀어버리라는 제 당의 조언도 거부하고, 국민의 요청도 거절하고, 제 스스로 옭아맨 것이다. 결자해지. 그 끈을 푸는 것은 박근혜 후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다.
'아버지에 대한 딸의 개인적 생각까지 바꾸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것은 박정희-박근혜 부녀의 사적 관계의 문제가 아니다. 그 점은 박근혜 자신이 <나의 삶, 나의 아버지>라는 책에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승을 잘 만나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나의 부모님은 내 삶의 모델이다. 특히 정치인이 된 지금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가 아니라 선배이자 스승이며 나침반과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 공적 검증의 대상인 정치철학을 아버지 박정희가 아니라 독재자 박정희에게서 고스란히 물려받았다는 이야기다.
"유신체제와 같은 독재가 되돌아 올 가능성은 없다"고 말하지 말라. 우리가 어디 일본의 식민지배가 되돌아올 것이 두려워 일본에게 과거사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요구했던가. 게다가 우리는 이명박 정권을 경험해 봤다. 아무리 민주화가 됐어도, 대통령 중심제 하에서 질 낮은 대통령 한 명이 민주주의를 순식간에 망가뜨리는 것을 지난 5년간 똑똑히 목도한 바 있다. 그런 국민이 헌정을 파괴한 독재자에게 정치를 배운 인물이 대통령이 되는 데에 두려움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설사 '상당히 느슨한 독재'가 된다 하더라도.
언젠가 통합진보당과 관련해 '종북' 논란이 일어났을 때,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은 종북의원을 가려내는 기발한 방법을 제시한 바 있다.
"옛날 천주교가 들어와 (신도를 가려내려고) 십자가를 밟고 가게 한 적이 있지 않느냐."
이런 잣대를 새누리당 자신에 들이댄다면, 박정희 사진을 깔아놓고 박근혜 보고 밟고 지나가라고 요구해야 할 것이다. 물론 누구도 그런 봉건적 잔악함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이번 기회에 새누리당 의원들이 그 발언이 얼마나 잔악한 것이었는지 깨닫고, 자신들의 공직후보에 대해서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를 원할 뿐이다.
내가 김진 위원을 존경하는 이유
▲ 지난 17일 <중앙일보>에 실린 김진 위원의 칼럼. | |
ⓒ 중앙일보 |
이 문제에 관해 얼마 전 <중앙일보>의 김진 논설위원이 칼럼을 쓴 모양이다. 읽어 보니, 내가 바로 위에서 지적한 꼼수의 전형이다. 한 마디로, '유신독재는 정당했다. 대만의 장개석, 싱가폴의 리콴유를 보라.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독재자가 필요했다'는 논리다. 그는 이렇게 독재와 경제 사이에 필연적 인과관계를 설정한다. 해괴한 논법이다. 물론 인권에 대한 의식도 낮았으니, 그 시절 가정에서 남편에 의한 아내의 구타율도 높았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남편이 아내를 패서 경제가 발전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얼굴에 철판 깔고 유신독재를 정당화하고, 그것의 추악상을 상대화하는 이 칼럼 역시 마지막으로 박근혜 후보를 향해 사과를 주문한다. "이제 유족을 껴안는 일은 이승의 딸에게 남겨져 있다." 한마디로 유신독재는 경제발전을 위한 구국의 조치였으나, 인혁당 사건만은 잘못됐다고 인정하라는 이야기다. 이 인식은 차라리 <조선일보>보다 수구적이다. 조선일보의 입장은 5·16은 긍정하되 유신은 부정하자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김진 위원이 아직도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면,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자격이 없다.
우리 모두는 대한민국 헌법에 합의했다. 그리하여 극좌와 극우의 공격으로부터 헌법을 지킬 의무를 진다. 헌법을 바꾸려면 헌법에 규정된 절차를 따라야 한다. 좌익 혁명으로 헌정을 전복하는 것이 용납돼서는 안 되듯이, 5·16과 12·12와 같은 우익 쿠데타나 10월 유신과 같은 초법적 조치로 헌정을 전복시켜서는 안 된다. 그것이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우리가 명시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지키기로 합의한 약속이다. 일간신문의 논설위원에게 이런 상식이 결여돼 있다는 것은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다.
이 칼럼 덕분에 방송에서 괜히 "김진 위원을 존경한다"고 했던 나까지도 욕을 먹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겠다. 그게 다 몰라서 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그에 대한 존경을 포기하지 않겠다. 다음 구절 때문이다.
"박정희는 천상에서 인혁당 8인에게 사죄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막걸리를 마시며 조국을 얘기하고 있을 것이다." (김진·"박정희 독재 어떻게 볼 것인가?" <중앙일보> 2012년 9월 17일 치)
이 구절을 통해서 내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김진 위원은 자신이 간첩으로 체포돼 갖은 고문을 받고 교수대에 달려 죽은 뒤 강제로 화장을 당하더라도, 저승에서 '쿨'하게 박정희의 사과를 받고 함께 막걸리를 마시며 조국을 논할 분이라는 점이다. 이 대인배적 면모를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진 위원은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다. 찬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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