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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이야기/괴산 소식

[신년 기획 - 왜 사회적 경제인가](2) 새로운 경제, 협동조합

by 마리산인1324 2013. 1. 3.

<경향신문> 2013-01-02 22:15:48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1022215485

 

 

[신년 기획 - 왜 사회적 경제인가](2) 새로운 경제, 협동조합

 

괴산 | 홍재원 기자 jwhong@kyunghyang.com

 

ㆍ생산자 조합원 김철규씨 “대량생산의 조급함 없애니, 자연도 살고 상품성도 높아져”

서울에서 2시간30분가량 차로 달리면 충북 괴산 솔뫼농장이 보인다. 1996년부터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해 지금은 24명의 지역 농민들이 함께 유기농 농사를 짓는 곳이다. 이렇게 생산한 작물과 1차 가공품은 전량 생활협동조합이자 유기농 마트 격인 ‘한살림’ 매장에 공급된다.

지난해 말 솔뫼농장을 찾았다. 미리 약속한 마을 주민이자 조합원인 김철규씨(55·사진)가 진입로까지 마중을 나왔다. 김씨는 한살림의 생산자조합원이다. 그는 “마침 점심식사 시간이니 함께하자”며 취재진을 한 건물로 안내했다. 솔뫼농장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곳으로, 주민들이 함께 일하다 식사와 휴식을 취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날 김씨 아내가 준비한 메뉴는 현미밥과 깻잎절임, 고추장아찌, 닭도리탕이었다. 김씨는 “대개 우리가 생산한 유기농작물로 반찬을 만든다”며 “조미료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풋풋한 맛이 인상적이어서 한 접시 더 갖다 먹었다.

마침 일터에서 공동 작업하던 농민 10여명이 점심을 먹으러 사랑채에 모였다. 네댓 살로 보이는 꼬마가 꾸벅 인사를 했다. 김씨는 “온몸에 아토피가 정말 심했는데 여기 와서 다 나았다”고 설명했다

 


▲ 농약 중독 뒤 유기농법으로
판로·가격 걱정 없이 농사
협동조합의 신뢰 있어 가능


김씨는 중학교 졸업 후 줄곧 농사를 지은 지역 토박이 농부다. 서른 넘어 뒤늦게 친환경 농사로 전환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김씨가 입을 열었다. “혹시 살면서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나요.” 그는 20여년 전 농약중독으로 쓰러졌다. 작물을 대량 생산하려면 해충을 없애기 위해 농약을 쳐야 한다. 이때 농약이 호흡기와 피부에 닿지 않도록 여러 장비를 착용해야 하지만 바쁘고 가난한 농민들은 대부분 이를 지키지 못한다. 맨몸으로 농약을 치다 보면 어지러울 때가 많다. 인근 농민들은 이를 ‘담배 멀미’라고 부른다. 그는 “담배 멀미가 오는 듯하더니 갑자기 팔다리가 말을 안 듣더라”며 “꼬박 사흘간 방에 누워 있다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유기농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주변 농민들, 또 귀농인들과 함께 농사법을 바꿨고 그들의 농장은 10여년 전부터 한살림 생산지가 됐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자 당장 모든 작물의 생산량이 절반으로 줄었다. 그러나 판로 및 가격 걱정이 없다. 연초에 한살림 본부 측과 미리 생산물 협의를 한다. 예컨대 올해 고추 100㎏을 대기로 합의하면, 한살림 측에서 정해진 가격대로 해당 물량을 전량 가져간다. 물량이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그 가격에 판다. 한살림은 작물 가격의 76.5%를 농민에게 지급한다는 원칙이 있다. 적정 작물 가격은 생산자조합원과 소비자조합원 대표들이 협의해 결정한다. 반대로 작물 가격이 올라도 반짝 특수는 없다. 계약대로 공급해야 한다.

김씨는 “안정적인 수매가 농가에 얼마나 중요한지 농사짓는 사람들은 다 안다”며 “누구에게, 얼마에 팔 수 있을지 늘 걱정하다가 가격이 폭락하면 밭을 갈아엎는 게 농민의 불안한 일상인데 이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밝혔다. 그는 “수확량이 상대적으로 적고 깻묵 등 천연퇴비 비용이 제법 들어 유기농이 큰돈이 되진 않는다”면서도 “목돈이 제때 들어오면 농사꾼은 날아갈 듯 기뻐진다”며 웃었다.


가격 협상 때 소비자 측이 낮은 가격을 원하고, 생산자는 높은 가격을 원하니 다툼이 생길 법한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는 협동조합 특유의 신뢰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양측은 끈끈한 유대를 갖고 있다. 김씨는 “솔뫼마을의 생산자조합원을 견학차 보러 오는 소비자조합원이 연간 1500명을 넘는다”며 “농촌체험 등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오히려 서로에게 가격을 양보하는 일이 더 많다고 했다. 조합이란 기본 틀 속에서 나온 ‘배려’ 중심의 가격 협상은 기존 시장경제의 거래 방식과는 확연히 달라보였다.

땅도 서서히 살아났다. 최근 작물 생산량도 일반 농약·화학비료 농사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농약을 사용할 때 김씨는 논 1700평가량에서 약 4t의 쌀을 수확하다 유기농 전환 직후 2t으로 줄었지만, 지난해 다시 4t 수준으로 회복했다. 김씨는 “지난여름 태풍 때 일반 농가의 벼는 몽땅 쓰러졌는데 솔뫼마을 벼는 굳건히 버텼다”며 “땅심이 좋고 작물 뿌리가 깊어져 그런 것”이라고 밝혔다. 대량 생산을 위한 조급함을 없애니 자연이 살아나고 생산력도 높아진 것이다. 김씨는 “우리 슬로건은 ‘최소 이윤에 최대 행복’ ”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