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래 블로그> 2010/09/27
<주간조선>을 위한 글/2009.9.11
지구는 이상기후와 전쟁 중
조명래(단국대 교수)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의 몸이 몸살을 앓으면 열이 나듯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도 열이 오르고 있다. 우리가 쓰고 버린 이산화탄소 등이 대기권 상층부에 띠를 형성 한 채 지구로 들어 온 태양의 복사열을 가두어 놓으면서 열이 오르고 있다. 지구의 평균온도는 14.73도다. 수많은 기후변동을 겪었지만 그 변동 폭은 고작 1-6도 내외다. 그래서 몇 도만 올라도 그 파장은 엄청나다.
현재의 지구 시간대는 빙하기가 약화되고 온난화된 간빙기인 신생대 4기 홀로세(충적세)(1만전부터 현재)다. 이 기간 동안 인류는 거친 유목생활을 접고 농업혁명을 통한 정주생활을 시작했고 나아가 도시혁명과 산업혁명을 통한 문명적 삶을 누렸다. 100만 년 전에 지구상에 출현한 현생 인류가 지난 만 년의 시간대에 이르러 문명의 꽃을 피우게 된 것은 생존에 적합한 기후란 지구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는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가기 위한 ‘생계의 방식’으로 구축한 조직․제도․문화의 집합체인 셈이다.
인간은 지고한 가치를 가진 정신적 존재인 것 같지만 기실 자연환경의 지배를 철저하게 받으며 살아가는 생물의 하나일 뿐이다. 인간이 유인원에서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발달한 것도 알고 보면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한 결과다. 즉, 기후가 추워지면서 먹을 것을 찾아 나무 위에서 땅으로 내려와 불과 도구를 사용하게 되고, 또한 집단을 만들어 살아가는 가운데 지금과 같은 종의 사람이 된 것이다.
지구가 더워진다는 것은 이런 점에서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지구의 기후는 대기의 온도와 구성, 대양의 온도, 빙하의 퍼진 정도, 해류, 식생, 화산의 분화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변한다. 지구온도의 변화는 지구환경을 구성하는 이러한 요소들 간 에너지 순환의 균형이 깨진 현상으로 급격한 기후변화를 불러오는 원인이 된다. 가령, 지구 온도가 2도만 올라도 빙하의 소실 등과 함께 지구의 자전주기의 변화, 급격한 해류의 변화 등 예측할 수 없는 대재앙이 초래된다. 지구 온도가 1, 2도만 변해도 인류 생존이 치명적인 위협을 받게 되는 까닭은 기후변화의 이러한 특성 때문이다.
지난 100여 년 간 지구의 평균 온도는 0.7도 올랐고 해수면은 20-30cm 상승했다. 지구 온도는 지난 10여 년 동안 특히 가파르게 올랐고, 그에 따른 폭우, 폭설, 가뭄, 사막화, 오존층파괴, 산성비, 생물종 감소, 해수면 상승, 물 부족, 질병 등의 기상이변을 불러왔다. 한반도는 그 속도가 더 빠르다. 지난 100여간 우리나라의 평균기온은 1.5도 올라 세계평균의 2배를 넘어섰다. 서울은 무려 2.5도나 올랐다. 그 결과로 태풍, 집중호우, 여름고온, 겨울온난, 아열대기후로의 전환, 식물서식지의 북상 등이 현재의 한반도 기후도를 구성하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기후변동에 관한 정부간 패널’의 4차 보고서(2007년)에 의하면, 현재의 추세라면 2050년대에 지구온도는 지금보다 2-3도 오른다. 이에 따라 동식물의 20-30%가 멸종위기에 처하고, 10-20억 인구가 물 부족을 겪으며, 농작물 수확 감소로 1-3천만 명이 기근에 시달리고, 해수면 상승 등으로 300만 명이 홍수의 위협에 노출된다. 2080년대에 이르면 온도는 3도 이상 오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인간을 제외한 전 지구 생물이 멸종 위험에 처하고, 11억-32억 명이 물 부족을 겪으며, 전 세계 인구의 5분의 1이 이상이 홍수의 위협을 받고, 해안가의 30% 이상이 유실된다. 중․고위도 지역의 수확량 감소로 천2백만 명이 기근 위험에 노출된 채, 영양부족․과다출혈․심장관련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이 급속히 늘고, 열파․홍수․가뭄 등으로 사망자가 빠르게 증가한다.
기후변화는 이렇듯 환경적 변동 뿐 아니라 농업 생산성의 감소, 경제적 위기의 확산, 도시의 퇴락, 환경가치를 둘러싼 권력구조의 변화 등 심대한 사회적 변동까지 불러 온다. 기후변화와 관련된 이러한 문제들은 모두 핵폭탄 투하에 상응하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기후대응은 이젠 테러 근절이나 석유 확보 못지않은 국가안보 상의 최우선 과제다. 2004년 초에 공개된 미 국방부의 비밀보고서 ‘펜타곤 보고서’는 기후재앙으로 식량난, 식수난, 에너지난 등이 겹친 혼란이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 인류 문명 전체가 공멸할 것임을 진단하면서 강력한 ‘국방태세’를 주문하고 있다.
펜타곤 보고서는 기존의 통념과 달리 오늘날의 기후변화가 어느 날 갑자기 기상이변으로 돌변할 수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지난 150여 년간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산업화로 인해, 즉 이산화탄소 등의 지속적인 방출로 지구의 기후 에너지 평형이 깨지면서 기온이 오르는 속도가 지구역사에서 나타났던 그 어떠한 기후변화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실제 2010-2020년 사이에 기상이변에 의한 기후재앙으로 가뭄, 기근, 폭등, 전쟁 등 무정부 상태가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지금처럼 계속되면 극지방의 빙하가 녹은 물이 북대서양으로 흘러들어 적도로부터의 난류 유입을 방해하거나 멈추게 한다. 북반부 중위지역의 온도는 급속히 떨어지게 된다. 여기에 해류 흐림이 멈춘 적도 지역에서 발생한 수증기가 북반부로 흘러와 막대한 눈을 뿌려 지표온도를 빙하기 수준으로 떨어뜨린다. 한편 북쪽의 한랭한 공기가 남쪽으로 이동하면 열대에서 올라오는 온난기단과 부딪히면서 지구의 대기를 극도로 불안정하게 만들고, 그 결과 슈퍼 폭풍이 빈발한다. 이는 북반부의 추운지역에선 폭설, 폭우, 해수면 상승 등을, 열대와 아열대 지역에서는 대규모 가뭄, 홍수, 사막화 등을 불러온다.
펜타곤 리포트에 따르면, 이 같은 기후변화로 영국이나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온도가 3.3도까지 떨어져 시베리아성 기후대로 바뀌고 해수면 상승으로 유럽의 해안도시 절반이 물에 잠김에 따라 남부유럽으로 대규모 인구이동이 발생할 것이라고 한다. 반면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지에선 가뭄과 홍수로 식량생산이 크게 줄어 자원이 풍부한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남부유렵 등으로 대규모 인구이동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환경난민의 대량 발생은 식량, 물, 자원과 에너지 등의 확보를 둘러싼 국가간 분쟁을 촉발해 전쟁의 발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기후대응은 국가안보의 중추이면서 동시에 국제정치의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러나 기후변화의 결과가 전지구적 현상으로 확대되기에 앞서 한 국가 차원에서는 전에 없는 ‘기후정치’의 문제가 불거진다. 우선 기후변화의 피해는 사회적․생물적 약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집중되어 이들의 생존권을 앗아간다. 기후변화로 희소재가 된 환경자원의 배분을 둘러싼 갈등은 정치의 새로운 지형이 된다. 기후대응은 정파 간 대립의 핵심의제가 되고, 나아가 산업국가의 재편을 요구하게 된다. 기후변화는 이렇듯 자연현상이지만 사회적 관계를 매개로하여 해석되고 반응하게 된다. 기후변화는 결국 사람과 사회의 문제이고, 그 해결도 사람과 사회를 통해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점에서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기후변화의 ‘임박한 위험’을 제대로 이해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일상에서 찾아보는 것이다. ‘기후변화의 정치학’이란 책을 낸 영국의 사회학자 기든스(Giddens)는 유럽 시민들 40%가 여전히 과학자들이 말하는 ‘기후변화’를 신뢰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기후변화의 올바른 정치화’를 주문하고 있다. 이는 제도 정치 수준에서도 마찬가지다. 유럽의 우파들은 지구온난화가 과장되어 있어 어떠한 급진적 해결에 대해서도 소극적인 반면, 좌파들은 지구온난화가 심각하고 급진적인 해결책이 필요함을 주장하고 있다. 기든스는 기후변화의 쟁점이 우파와 좌파의 구분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기후변화의 올바른 정치화를 강조한다.
비록 그 피해가 당장 나의 일상생활에 직접 와 닿지 않는다 해도 지금 진행되고 있는 기후변화는 21세기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위험’임에 틀림없다. ‘위험사회’론을 제창한 독일의 사회학자 벡(Beck)은 ‘위험은 현재 일어나지 않는 미래의 재앙’이라고 말한다. ‘위험은 성찰하고 연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벡은 ‘위험의 정치 도구화’를 제안한다. 기후변화란 위험을 시민들이 제대로 성찰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를 스스로 촉발하는 것이 곧 기후변화 대응의 첫 발걸음이라는 뜻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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