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나눔 아카데미>2012.11.18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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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강 저항과 해방의 불온한 상상력 '아나키즘' 강의 스케치
작성자 | 푸른나무
[들어가며]
1. 아나키즘은 새로운 사상인가?
가. 인류의 지혜/문화다.
내가 삶에 대한 결정권이 있으면 근원적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한 결정권이 정치, 행정, 사법을 쥐고 있는 권력자들에게 있다는 데서 문제가 비롯된다. 나를 포함한 사회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권력자들이 쥐고 있기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들에게 맞서기 위해 혼자가 아닌 옆에 있는 사람과 손잡고 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계나 두레는 아나키즘의 한국적 가능성을 보여 준다.
나. 우리 몸 속에 스며든 상호부조의 윤리다.
남이 시켜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 능력을 쓰지 못하게 만든다. 우리가 자신의 내면을 응시할 시간과 여유가 있으면 우리가 원하는 삶을 충분히 살 수 있다. 혼자서 하기에는 용기가 필요하기에 옆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과 함께해야 한다.
다. 아나키즘은 회복의 사상이다.
라. 농업과 땅을 강조하는 유일한 근대사상이다.
농업은 자급의 가장 기초이자 근간이다. 아나키즘 역시 농업과 땅을 사상적 기반으로 한다. 왜냐하면 아나키즘은 신세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기초를 더 단단히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 반강권주의(反强權主義)
아나키즘을 반강권주의라고 보면 아나키스트의 스펙트럼이 훨씬 더 넓어진다. 반강권주의는 바로 자립, 즉 스스로 주인이 되는 것이다.
2. 아나키즘은 정치권력을 바꾸려 하나?
가. 아나키즘은 정치혁명이 아니라 사회혁명이다.
지속적인 변화는 정치가 아닌 사회를 통해 이뤄진다.
나. 정치적인 문제를 경제적 문제로 해결한다.
따라서 정치권력을 바꾸는 것과 상관이 없으며 경제적 자급과 자립을 중시한다.
3. 왜 아나키즘은 불온한가?
기존 질서(status quo)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이하에서 보게 될 모든 아나키즘 실천가들은 당대의 이념, 정치권력의 주류와 비주류 어느 쪽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핍박과 박해를 받았다.
[본론: 아나키즘 인물을 중심으로]
1. 프루동(1809~1865)
[사상]
“노동계급으로 태어나고 자랐으며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진심으로, 천성적으로, 언제나 이익과 희망을 나누면서 여전히 노동계급에 속할 것”이다
소유란 무엇인가에서 “만일 내가 익사할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러 물 속에 뛰어든다면, 나는 그의 형제이자 그의 동료이다. 만일 내가 그를 구하기는커녕 물 속에 처박아버린다면, 나는 그의 적이자 그의 살해범이다. 자선을 베푸는 자는 헐벗은 자를 동료로 대한다. 물론 완벽한 의미에서 동료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나누는 금액 정도로만 동료로 대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자신이 생산하지 않은 것을 무력이나 교활한 짓으로 빼앗는 자는 자기 자신에게서 사회성을 파괴하는 자이다. 그는 강도이다”에서 인용한 글이다.
- 소유는 도둑질이다.
- 인민은행
- 연방주의
[생애]
프루동은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정규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 인쇄소에서 자판을 맞추면서 라틴어를 모두 읽힐 정도로 명석한 두뇌를 소유했다. 주변 사람들이 이를 아깝게 여겨 대학에 보내주지만 중도에 그만두고 마을에 내려와 위와 같은 사상을 실천에 옮긴다. 의회에서 의원생활을 잠시 했지만 아나키즘적 사상으로 인해 제명당한다. 두 딸을 두고 있었는데 가난으로 인해 모두 일찍 사망한다.
[활동]
(1) 소유는 도둑질이다
‘소유란 무엇인가’라는 저서에서 소유는 도둑질이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소유는 자기의 필요 이상으로 많이 가진 것이며 이는 프루동에 의하면 도둑질이다. 프루동이 살던 시대적 배경은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인클로저 운동(이전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던 목초지에 지주들이 울타리를 치기 시작하면서 배타적 소유권을 주장하던 운동)의 기운이 프랑스에 상륙하던 때이다. 프랑스는 인클로저 운동의 영향을 받기 이전에는 지주들 소유의 농지에서 수확 이후에 떨어진 나락들을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권을 위해 이를 줄을 권리를 보장해 주었다. 하지만 인클로저 운동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가 프랑스에 불어 닥치면서 이를 금지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지금과 같은 소유권 개념이 자리잡기 이전인 수십 년 전만 해도 남의 산에서 땔감을 베어도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나무 한 그루만 베어도 절도죄로 처벌을 받는다.
프루동은 왜 소유가 필요한가라는 도발적이고 근원적인 문제제기를 한다. 개인의 소유권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권력과 법률, 경찰이 필요하게 된다.
(2) 인민은행
가난한 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은행을 설립하는 것이다. 이 은행은 돈이 필요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어 이들의 자립을 돕는다. 사람이 실제로 자립할 수 있는 실질적 기반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 인민은행이 100여 년을 뛰어 넘어 1976년 방글라데시에서 그라민 은행으로 실현된다.
이 인민은행의 근본 취지는 개인에게 모든 짐을 떠넘기지 말고 사회가 공동으로 짐을 떠맡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3) 연방주의
프루동이 살던 시대는 역사적으로 각국에서 민족국가가 발흥하던 시대이다. 프루동은 이러한 시대적 조류와 반대로 중앙집권적인 민족국가가 아닌 지방자치적인 연방국가를 주장한다. 이 연방국가는 각 지방이 독립적이되 다른 지방이 어려울 때는 이를 도와주는 형태를 취한다. 우리나라에서 전력을 예로 들면 서울은 전력 자립율이 2%도 채 되지 않는다. 반면에 경남지역은 전력 자립율이 100%를 넘는다. 우리나라가 연방국가를 취하게 되면 현재 뜨거운 감자인 핵발전소 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 경남지역 주민은 이를 굳이 찬성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2. 미하일 바쿠닌(1814~1876)
[사상]
“상호 침투되고 있고 분리할 수 없는 이 두 가지 법칙이 인간성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다. 이처럼 자유는 연대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와는 반대로 자유는 연대가 발전한 것이고, 말하자면 연대를 인간화한 것이다”
[활동]
러시아 귀족 출신으로 “지상에 단 한 명의 노예라도 있다면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고 했다.
- 원초적인 반란의 선구자
- 서구의 68혁명에서 부활함
막스가 만든 국제인터내셔널에서 막스와 사상논쟁을 한다. 노동자가 아닌 실업자, 룸펜, 도적이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점에서 첨예하게 막스주의와 대립한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추락할 것도 없는 사람들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기 직전에 “욱”하는 마음으로 행동을 해야 비로소 참다운 혁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는 연대애서 나온다는 것을 특히 강조했다.
3. 표트로 크로포트킨(1842~1921)
[사상]
“투쟁하라, 모든 이가 풍요롭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리고 이 투쟁에서 다른 무엇이 줄 수 있는 즐거움보다 더 큰 것을 당신이 찾게 되리라 확신하라”
- 청년에게 호소함
- 만물은 서로 돕는다
- 농업과 소공업의 결합
“노동대중에게 모든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상을 전파하는 것, 도래할 사회혁명에서 지켜져야 할 원칙과 개념을 심화 확대시키는 것, 이상과 원칙을 지도자가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대중이 결정함으로써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새롭고 평등한 사회의 건설자로서 역사의 전면에 나서기를 요구하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여 노동대중들이 자신의 선도성을 깨닫는 것은 내가 당시 러시아에서 해야 하는 일 못지 않게 인류의 진보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활동]
한 의사를 예로 들면서 많은 아이들이 있는 좁은 집에 빈혈로 인해 병든 가난한 여인에게 잘 먹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편히 쉬라고 말하는 것과 많은 하인이 있는 큰 저택에 너무 일을 하지 않은 탓에 병들어 큰 방에 누워 있는 귀부인에게 잘 먹고 잘 쉬라고 말하는 것 가운데 당신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라고 질문한다.
남을 돕는 것은 1차적으로 바로 나를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적 불의 앞에 침묵하고 외면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정신과 영혼을 병들게 하기 때문이다.
4. 신채호(1880~1936)
[사상]
“내 짧은 필봉으로 도적을 물리칠 무기가 될 수 없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종이에다 그들의 죄악과 만행을 알릴 것이다”
- 1921년 천고(天鼓) 창간
- 조선혁명선언
[활동]
천고라는 잡지는 신채호 선생님의 1인 잡지다. 신채호 선생님이 아나키스트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5. 레프 톨스토이
[사상]
바보 이반 소설 中
“(말쑥한 신사로 등장한 늙은 마귀가 이반의 궁전에 들어와 식탁에 앉자 벙어리 여동생은 그의 손을 만져 본다. 그러고는 뭐라고 외치더니 마귀를 식탁에서 끌어낸다.)
이반의 아내 – 이 처녀를 나무라지 마세요. 우리 시누이는 손에 못이 박힌 사람이 아니면 식탁에 앉히질 않는답니다. 잠깐 기다렸다가 다른 사람들이 먹다 남은 것을 들도록 해요”
- 바보 이반
-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소설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기로 한다.
"우리는 땅만 많다면 세상에 겁날 사람이 없지. 악마도 말야!"
그런데 악마란 놈이 난로 뒤에 숨어서 빠홈의 말을 다 들었습니다.
악마는 생각했습니다.
"좋아, 어디 한번 겨뤄보자. 내가 너에게 땅을 많이 주어 그것으로 너를 사로 잡겠다."
"땅값은 얼마로 할까요?"하고 빠홈이 물었습니다.
"여기서는 땅값이 하나로 정해져 있습니다. 하루치에 1000루블입니다."
"하루치란 대체 어떻게 재는 건가요?
"하루에 걷는 만큼 그 땅이 당신 것이 되는 것입니다. 다만 하루 안에 출발한 곳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당신 돈은 못 받게 됩니다."
빠홈은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빠홈은 발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쓰러지면서도 두 손으로 모자를 잡았습니다.
머슴이 달려가서 빠홈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그의 입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죽어서 쓰러져 있었던 것입니다.
바쉬끼르 사람들은 혀를 차며 빠홈의 죽음을 애석하게 생각했습니다.
머슴은 삽을 들고 빠홈의 무덤을 판 뒤 거기에 그를 묻었습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가 자치할 수 있었던 땅은 정확히 3아르쉰(1아르쉰은 약 71센티미터)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천사 미하엘을 통해 모든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사랑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은 서로를 의지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가야 함을 알려준다.
- 전체로서의 나
- 사랑, 미래를 소유하지 않고 지금 더불어 사는 행복
레프 톨스토이는 3가지 단편은 통해 자신의 아나키즘적 메시지를 전하려고 한 것이다. 초등학교 때 한 번쯤은 읽고 감명받았던 책들이다. 그런데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주식과 아파트로 대표되는 자본주의가 주는 거짓 행복의 꾐에 빠져 살고 있지 않은가? 바보 이반,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가 주는 메시지를 깡그리 잊어버린 채 자기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이런 질문에 스스로 답해봐야 할 때이다.
아나키스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미래의 공산주의(유토피아 혹은 천국)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 여기서(now here) 천국을 사는 것처럼 행동하라”는 주장으로 했고 이것이 아나키즘의 핵심사상이다. 이는 성서에서 예수가 하나님나라가 도래했다는 선포와 맥락에서 일치한다.
6. 네스트로 마흐노(1888~1934)
[사상]
“형제들이여, 우리는 여러분을 도우러 왔습니다. 우리는 지주들과 그들의 마름들을 따랐지만 이제 우리는 자유인입니다. 정의와 평등의 이름으로 여러분끼리 땅을 분배하십시오. 그리고 모두의 행복을 위해 동등한 관계에서 일하십시오.”
- 우크라이나의 작은 아버지
- 농민 아나키즘의 실천자
[생애]
네스트로 마흐노는 우크라이나 농민들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 싸운 사람이다. 지주로부터 땅을 되찾은 후에 자기의 이름을 내세워 땅을 분배하지 않았다. 해방된 마을 농민들이 스스로 땅을 분배할 때까지 마을을 지켜주는 역할만을 했다. 마을 농민들이 스스로 땅을 분배하고 살아가기 시작할 때 마을을 떠났다. 네스트로 마흐노는 당시 러시아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적군과 백군 모두에게 배척을 당했다. 네스트로 마흐노가 꿈꾸는 사회가 적군이나 백군이 쟁취하거나 지키려던 사회와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네스트로 마흐노의 경우는 지주의 땅을 빼앗기 위해 폭력을 사용했다. 이 폭력은 내 옆의 이웃이 강도에게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이웃을 외면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테러였던 것이다.
비단 네스트로 마흐노뿐만 아니라 모든 아나키스들은 공산주의자나 자본주의자 어느 쪽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했다. 이들의 사상은 양 진영의 낡은 부대로는 담을 수 없는 새 술이었기 때문이다. 네스트로 마흐노는 적군과 백군에 쫓겨 결국 프랑스로 망명하고 결핵으로 쓸쓸히 최후를 마감한다.
러시아의 아나키스들은 지금 여기서의 공산주의(유토피아)를 꿈꾸었다.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은 수많은 아나키스들을 “도적”으로 취급하여 처형, 유배를 통해 이들을 철저히 배척했다. 이들을 역사의 기록에서 지우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 여기 한국 땅에서 부활했다. 그리고 다른 또 어딘 가에서도 계속 부활할 것이다, 이름을 달리해서.
7. 엠마 골드만(1869~1940)
[사상]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
- 아나키스트이자 페미니스트
- 반전운동과 징병제 반대
[생애]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당시 징병을 반대하는 것은 당시 현행법 위반을 넘어 당시 미국의 국가권력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엠마 골드만 같이 아나키즘은 일상 속에 스며든 국가를 비롯한 일체의 권력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 방식은 폭력이 아닌 저항의 형태로 나타난다.
8. 류자명(1894~1985)
[사상]
“막스와 엥겔스는 공산당선언에서 과거의 일체 세력이 역사는 모두 다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봤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관점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었다.
농업이 발달하지 못하면 밥도 배불리 먹을 수 없는데 어떻게 건설할 수 있겠나?”
의열단 등 만주에서 활동한 아나키스트이며 원예학자이자 농업교육자였다.
김좌진 장군으로 알고 있는 분 역시 아나키스트였다. 김좌진 선생은 독립 이후의 구체적인 사회로 자주적인 마을 정착촌을 구상했다. 김좌진 선생은 당시 공산주의자에 의해 암살당했다. 공산주의자가 내민 손을 뿌리쳤기 때문이다. 당시 대부분의 아나키스들이 그랬던 것처럼.
9. 구스타프 란다우어(1870~1919)
[사상]
“사회주의를 자본주의의 모순에 의해서 언젠가 필연적으로 도래할 미래로 생각하지도 않았고, 진보를 믿지도 않았으며,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찬성하지도 않았다. 그가 생각한 사회주의는 철저히 자발적인 상호부조와 협동적 공동체들의 연합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사회주의의 기초는 생산력의 발전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인간의 사회적 관계였다. 그는 자본주의 국가가 혁명에 의해서 전복될 수 있으리라고 믿지 않았고, 새로운 사회공동체가 국가권력의 장악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믿지 않았다”
- 지금 여기서의 사회주의
- 협동조합, 신용조합 등을 통한 국가 내에서 국가 밖을 살기
9. 도로시 데이(1897~1980)
“우리가 민권이나 인권, 혹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의라는 좀 더 큰 명분을 가진 문제에 맞서 싸워야 하지 않느냐고요? 예 물론 그래야지요. 만약 우리가 그런 추상적인 도덕에 관해 말한다면, 우리는 세상 모든 곳에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바로 여기 바워리 거리(뉴욕의 부랑자 거리)의 사람들을 위해 스프를 준비하는 일!
이 이상의 일을 한다는 짓은 주제넘은 짓입니다”
- 환대의 집
미국 대공황 당시 무수한 실업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구제를 위해 설립한 단체이다. ‘카톨릭 노동자’ 운동을 주도하여 평생 실직한 노동자와 가난한 자들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다.
10. 애먼 헤나시(1893~1970)
[사상]
“나는 만약 내게 용기가 있다면, 사람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내가 생각하는 대로, 오늘 당장 살기 시작할 수 있다. 나는 사회가 바뀔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방법은 자기 자신의 변화를 위한 시도이다”
- 한 사람의 혁명(One-Man Revolution)
11. 머레이 북친(1921~2006)
[사상]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고 하는 상식에 선행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 라이프스타일 아나키즘 비판
생태파괴(인간의 자연지배)는 인간사회의 지배구조에서 비롯된다는 사회적 생태론을 제창하였다.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주장 대신 인간 사회의 적극적 반성과 해결 의지로 새로운 생태적 공동체를 꿈꾸었다.
12. 하기락(1912~1997)
[사상]
1987년 6월 항쟁 이후 노도같이 등장한 한국의 노동자대투쟁 과정을 지며보면서 한국의 노동운동이 자주관리를 요구하는 방향하는 나아갈 것을 천명하였다 “노동자 동지 여러분! 우리는 9월 항쟁에서 얻어 낸 임금인상으로 만족하려고 하는가? 그것으로써 우리는 과연 임금노예의 처지에서 벗어 날 수 있을 것인가? 노동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주인으로서의 인간다운 품위를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 자주인 사상, 꼬뮨쥬의
13. 데이비드 그레이버(1961~ )
[사상]
“미국 좌파들의 진짜 문제는 이기주의와 이타주의를 내세우지만 실은 대부분 자기 자식들을 위해 그렇게 한다는 점에 있다. 역설적으로 우파가 자신들을 노동 계급의 대변자로 자처하면서 나설 수 있는 여지를 준 것이다”
예일대 인류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아나키스트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2005년 예일대 교수직에서 제명당했다. 이후 아나키즘 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으며 최근에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을 지지했다.
참고로 미국은 법적으로 아나키즘을 금지하고 있으며 뉴욕시에서는 10여 명 이상이 허가 없이 모이면 불법집회로 간주하여 처벌을 받는다.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듯이 미국은 자유의 천국이 아니다.
선생님은 한국 내 정치와 관련해서 잠시 진보와 녹색당 등 아나키즘 운동의 차이점에 대해 이렇게 정리해 주셨다. 진보는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나라는 근본적인 회의 속에서 가진 자에게서 무엇을 쟁취하려는 것이다. 반면에 녹색당 등 아나키즘 운동은 다른 누군가로부터 무엇을 쟁취하지 않고도 지금 우리가 가진 것에서 무언가를 충분히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14. 함석헌(1901~1989)
[사상]
“그 꿈틀이 무서운 꿈틀이다. 그것은 사나운 겨울바다, 같은 권세 밑에 갇히는 민중의 꿈이다. 그러나 그 꿈이 터지고야 마는 봄이 온다. 삶은 절대이기 때문에 터지고야 만다. 말도 못하고 죽는 민중의 꿈틀거림은 생(生)의 항의다. 삶의 외침이다. 삶의 음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이다. 말씀이다. 역사의 길이다. 내가 이름 없는 민중이라도 민중이기 때문에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아나키즘은 내가 자유롭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며, 나의 자유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15. 권정생(1937~2007)
[사상]
“진짜 한살림은 이웃끼리 마을사람끼리 서로 사고팔고 주고받으며 살아야 되는데 가까운 이웃은 다 버리고 먼 데서 깨끗한 음식만 먹겠다고 한 것이 정말 잘한 것일까? 먹는 것만 깨끗하게 먹는다고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것일까? 정말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것일까?
권정생은 시내의 한살림 식품가게에서 무공해식품을 산 뒤에 동네에서 자살한 농부를 떠올리며 비슷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나의 진정한 자유는 섬과 같이 홀로 떨어져 존재할 수 없고 이웃의 자유와 공유될 때만 이루어질 수 있다.
16. 조약골(1972~ )
[사상]
“어느 날 내가 귀걸이를 하고 나타났을 때 한 운동권 선배가 내가 부르주아의 물이 들었다면서 귀걸이를 억지로 떼어내려고 했다. 시대 자체가 지독히도 숨 막혔지만 나는 운동권 내부의 권위주의도 견디기 힘들다”
- 아나클랜(한국 아나키스트 온라인 네트워크), Food not Bomb
- 잡민사상
용산참사 등 우리 사회 문제의 현장에 빠짐 없이 참석한다. 선생님이 심리적 부담감을 느낀다고 하셨다.
[맺으며]
왜 지금 아니키즘인가?
1. 내 속에 깃든 뭇 생명들 – 공생의 원리
2. 협동과 관계라는 오랜 윤리가 무너지는 시대, 다시 민중의 힘을 회복하기
3. 교육(생각하는 방법)과 노동(일하는 방법), 문화(사는 방법)이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안 바뀐다.
4. 공부하고 땀 흘리며 다른 세상이 온 것처럼 살기
아나키즘은 내가 원래부터 가진 삶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아나키즘은 한 마디로 “유토피아가 올 것처럼이 아니라 온 것처럼 사는 것이다”
아나키스트는 역사적으로 대부분 사회불온 세력으로 몰려 박해와 핍박을 받았다. 정치적으로 어는 이념으로부터도 환영을 받지 못했다.
선생님은 오늘 현재 아나키즘의 실현에 대해서 상상력을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상상력을 발휘하되 나누면서 조직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제안했다. 내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눈을 맞추고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로 강의를 마무리하셨다.
[질의응답]
1. 아나키즘이 선생님께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선생님이 대학을 다니시던 91년에 명지대학교 학생이었던 강경대가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 도중 사망하게 된다. 이후 13명이 연달아 분신으로 사망을 한다. 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91년 정국으로 들어서면서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가 절망으로 바뀌면서 분신이 잇달아 발생하게 된다. 91년 5월 정원식 총리가 한국외대에 방문했다가 학생들로부터 계란투척을 받게 되고 그 해 6월에는 김기설이 분신으로 사망하자 강기훈이 유서를 대필했다고 사건을 검찰이 조작하면서 사회 분위기가 운동권에 대해 적대적으로 바뀌게 된다. 참고로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은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최근에 대법원에서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져 21년 만에 진실이 밝혀질 지 여부를 앞두고 있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운동에 몸을 담았던 선생님은 운동이 해방이 아닌 규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아나키즘 사상을 접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네 맘대로 살아라’로 이해하면서 아나키즘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이후 협동조합을 생각하게 되었다. 선생님에게 아나키즘은 이미 만든 삶의 방식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가는 삶의 방식이다.
2. 두레, 품앗이가 아나키즘과 관련이 있는가?
아나키즘은 시대를 불문하고 우리가 사는 방식이 낙후된 것이 아니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아나키즘은 정치문제를 경제문제로 푸는 것이다. 동학농민운동 때 수만 명이 모일 수 있었던 데는 마을 단위의 두레 조직이라는 연락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두레 조직은 일종의 한국적인 삶과 축제의 방식이다. 자본주의 이전에는 마을 단위로 스스로 자신을 삶을 사는가가 중요했다. 이런 맥락에서 두레, 품앗이는 아나키즘과 관련이 있다. 1920년대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사상적 조류는 아나키즘이었다.
3. 선생님의 삶 속에서 아나키즘을 어떻게 녹여내고 있는가?
아나키즘이 선생님에게 준 변화는 주변 사람과 함께하는 모임을 통해서 나타났다. 거주하고 계시는 곳을 중심으로 독서모임을 인도하고 계신다. 이 모임에는 노동활동가, 주부, 교수 등 다양한 분들이 함께한다. 모임을 통해 활력을 얻고 계시며 좋은 모임은 술과 밥을 함께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같이 기획하고 고민하는 것,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서 할 수 있는 것부터 같이 꿈꾸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개인 소감 및 양해]
강의 정리는 대부분 ‘아나키즘 저널 발행준비위원회’가 인터넷에 게시한 내용에서 도움을 받았다. 선생님이 아나키즘을 비교적 쉽게 설명하기 위해 역사적 인물들을 중심으로 강의를 진행하셨다. 선생님이 준비한 강의안의 내용이 너무 풍부해서 강의를 들으면서 강의안을 옮겨 적을 수가 없었다.
강의안에 담긴 아나키즘 인물들의 핵심사상은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가슴에 새길 내용들이었다. 강의안의 내용을 나누고 알리고자 하는 간절함에서 기억을 더듬어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 선생님의 강의안과 정확히 일치하고자 했다. 일치하지 않는 부분은 선생님이 소개해 주신 실천가들의 사상의 근사치에 접근하고자 최대한 노력했다. 선생님을 통해 아나키즘에 대한 내용과 강의를 처음 접했다. 강의를 듣기 전까지 아나키즘은 내게는 부끄럽지만 단순히 허무주의, 테러리스트에 불과했다.
강의를 들으면서 실천가들의 사상의 울림에 감동했으며 이 분들의 사상에 대해 차근히 공부해 볼 생각이다. 강의를 통해 진리의 길은 넓고 편한 고속도로가 아닌 좁고 협착한 길이며 환영이 아닌 박해를 기꺼이 감수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아나키즘에 대해 공부해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선생님이 쓰신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을 소개하고 해설한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과 크로포트킨의 자서전인 ‘한 혁명가의 회상’을 추천한다.
우연히 선생님의 강의를 듣기 전 읽고 있던 자끄 엘륄의 무정부주의와 기독교라는 책의 내용 중 강의 내용과 오버랩 되는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비단 기독교뿐만 아니란 모든 종교에 공통되는 내용이다.
“무정부는 지배와 정치 권력의 부재나 국가의 정죄 개념이므로 무질서와 혼란, 폭동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예수의 제자들은 사회를 떠나라고 종용 받지 않았으나 모든 정치적 개입을 거부하라고 권고 받는다. 권력은 부패하기 때문이며 독재 없이 정치권력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성서는 국가의 권세에 대항해서 저항과 싸움을 유발하는 반정치적인 메시지를 말한다. 이것은 국가의 사탄적 성격 때문이다. 따라서 성서는 기독교인이 국가에 대항하도록 촉구하는 무정부의적 책이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성전(聖戰)이라는 미명하에 신의 영광이 아닌 자신들의 영광을 구하는 권력자들과 추종자들, 방관자들이 반드시 귀 기울여야 하는 내용이다. 이들은 신의 영광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은 역설적으로 신을 다시 한 번 십자가에 못 박는 신성모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강의를 정리하는 지금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는 여전히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이스라엘 군의 무차별적인 학살이 진행되고 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구약 성서 이사야 11장 6절부터 9절까지).
팔레스타인에 하루 속히 이러한 세상이 오기를 애통하는 심정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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