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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조국 헌신' 김종훈의 진짜 모습은 /미디어스20130306

by 마리산인1324 2013. 3. 8.

<미디어스> 2013.03.06  12:17:47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363

 

 

'조국 헌신' 김종훈의 진짜 모습은

[분석]'기업사냥꾼'에서 '밤의 황제'까지

김완 기자  |  ssamwan@gmail.com

 

오늘자 조선일보 기사에서 정우상 기자는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였던 김종훈을 향해 “‘조국 헌신’이 이렇게 가벼운 것 이었냐”고 물었다. 정 기자의 문제의식은 매우 정당하다. 그는 김종훈에게 “‘조국’과 ‘헌신’이라는 말의 무게에 비해 장관 자리를 받아들이고 중간에 사퇴하는 과정이 너무 가볍지 않냐”고 비판했다. 또 “회사로 치면 모든 신입 사원이 거쳐야 하는 필수코스인 ‘극기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사표를 쓴 경우”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우상 기자의 문제의식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지 못하고 이미 떠나간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든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보다 본질적인 것은 김종훈이 ‘조국’과 ‘헌신’을 입에 올릴 만한 사람이었는가에 대한 검증이며 자격이 없는 이를 내정했다면 지금이라도 임명권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인사 검증은 언론이 행사해야 하는 마땅한 권리이며 인사권에 대한 무한 책임은 권력이 갖춰야할 마땅한 의무이다. 이 부분을 간과한 채 그를 향해 ‘조국’과 ‘헌신’을 입에 올렸다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공허하게 ‘뒷 붓’을 울리는 태도일 수밖에 없다.

 

   
▲ 6일자 조선일보 6면에 실린 김종훈 비판.

 

‘성공한 재미교포 벤처사업가’로 처음 등장

김종훈이 처음 국내 언론에 등장한 것은 IMF직후인 98년이다. 당시, BIS비율이 떨어져 구조조정 압박에 시달리던 조흥은행은 ‘정상화 계획’의 일환으로 미국에서 벤처 사업가로 성공한 김종훈을 접촉했다. 물론, 목적은 투자 유치였다.

 

이때 김종훈은 ‘성공한 재미교포 벤처사업가’로 처음 언론에 등장했다. 그가 어떤 과정으로 돈을 벌었는지, 혹은 어떤 정체성의 사람인지 소개하고 검증하기엔 당시의 상황이 급박했다. 그 때문에 김종훈은 조흥은행의 위기를 구원해줄 미국 부자로 호명됐다. 

 

그러나 당시 협상은 깨졌다. 김종훈은 일말의 ‘헌신’도 고려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김종훈은 자신의 돈을 관리하는 펀드회사를 대리인으로 내세웠다. ‘윈스로 파트너스(Winslow Partners)’라는 펀드회사였는데, 조흥은행은 이 펀드회사와 일주일간 ‘마라톤협상’을 벌였다고 한다.

 

조흥은행 부도에 결정적 영향 미치고 유유히 사라져 

당시, 윈스로 파트너스가 제시한 투자 방식은 한국 정부와의 합작 투자였다. 윈스로 파트너스가 5억 달러를 투자할 테니, 한국 정부가 동일한 액수를 조흥은행에 넣어달란 것이었다. 윈스로 파트너스가 요구한 정부 투자액은 당시 환율로 2조 가량의 금액이었다. IMF 당시 조흥은행장이었던 위성복 행장은 이에 대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윈스로 파트너스가 요구한 금액은) 조흥은행에 투입된 공적자금의 금액으로 이들의 예상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깨닫고 나중에 크게 놀랐다”고 밝혔다 윈스로 파트너스의 협상 방식은 전형적으로 ‘저평가된 고위험 투자처에서 고수익’을 내기 위한 것으로, IMF 이후 국제 투기 자본들이 익숙하게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즉, 부실 규모의 총액을 사전에 파악하고 이에 대한 정부 보증을 요구해 안전장치를 마련한 뒤, 기업가치가 회복되면 고배당의 투자액을 환수하는 정확한 계산을 당시 김종훈과 그의 대리인이 세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세는 둑이 너무 많아 조흥은행에 이런 공적자금을 넣을 여력이 안 됐다. 결국, 김종훈은 정부 합작 투자가 성사되지 않자, 조흥은행 투자에서 미련없이 발을 뺐다. 아시다시피 이후 ‘민족은행’이라 불리던 조흥은행은 ‘대형화’와 ‘국제 경쟁력 강화’ 패러다임에 밀려 신한은행으로 합병됐다.

 

저평가 기업 사냥꾼, 냉정한 비지니스맨 김종훈

이 과정에서 김종훈은 ‘조국을 위한 헌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냉정한 비즈니스맨의 모습을 보였다. 조국이 IMF라고 하는 국가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전형적으로 ‘저평가 기업 투자 사냥꾼’의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당시 정황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의 ‘증언’이다. 그가 조흥은행에서 발을 뺀 이후 저평가된 ‘조국’에 투자한 상황은 역설적이게도 ‘부동산 쇼핑’으로 이어졌다. 98년 이후 김종훈은 장모와 부인, 처남 등의 명의를 활용해 부도난 건물을 ‘법원 경매’ 등으로 사들이는 방식으로 강남 일대의 부동산을 사들였다. 그렇게 현재 그가 소유한 강남 일대 부동산 총액은 수백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대해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조흥은행 투자 협상 당시 이를 데 없이 냉랭한 모습을 보였던 김종훈이 느닷없이 ‘조국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소회로 화려하게 등장한 것에 대해 심한 자괴감을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종훈의 정체성은 국적과 상관없이 ‘돈’을 쫓는 사업가일 뿐이지, 언론에 알려진 대로 ‘조국에 헌신하기 위해 귀국한 천재 과학자’와는 아무 상관이 없단 얘기이다.

 

   
▲ 김종훈의 미국 생활을 자세히 기술한 한 블로그. 이 블로거의 포스팅 이후 몇몇 언론은 김종훈의 미국 생활에 대한 취재에 돌입했고, 공교롭게도 김종훈은 이 무렵 장관직을 스스로 던졌다.

 

카지노에 상시 출입하는 '밤의 황제'가 조국 위해 헌신?

김종훈은 애당초 ‘조국 헌신’과 같은 가치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라는 주장도 있다. ‘제임스 주’라는 이름의 미국 거주 블로거는 김종훈의 미국 생활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고 구체적인 증언을 남겼다. 다소 선정적이고 비하적인 그의 증언을 요약하자면 김종훈은 ‘카지노 상시 출입자’이며 ‘밤의 황제’라고 불리는 엽색행각을 일삼았던 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불로거의 주장을 전적으로 신뢰할 순 없다. 하지만 제임스 주가 당시 한인콜택시 회사에 근무했고 김종훈이 그 콜택시 회사를 이용해 룸사롱을 다녔단 점을 구체적인 업소명과 함께 기술하고 있단 점을 감안하면, 마냥 날조된 얘기라고 보기도 힘들다. 특히, 공교로운 것은 그 블로거의 포스팅 이후 이미 몇몇 언론이 미국 내 김종훈의 행각을 취재하기 위한 활동에 돌입했고 역시 공교롭게도 그 취재가 시작된 직후 김종훈은 장관 후보자 직을 스스로 던져 버렸다.

 

김종훈은 98년 ATM이라는 군사통신장치를 개발해 세계적인 통신장비업체인 ‘루슨트 테크놀로지’에 10억 달러에 매각하며 38세에 미국 400대 부자 반열에 올랐다. 엄청난 갑부가 된 이후 주식액의 변동은 있었지만 뚜렷한 활동은 없었다. 그의 이력에서 주요하게 제기되는 ‘벨 연구소 사장’ 역시 전화기를 발명한 벨의 명성에 힘입어 대단한 기관처럼 연상되지만 실제 활동은 미미한 연구소로 김종훈이 부임하기 전 3년 여 동안 전혀 활동이 없었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

 

서울시 투자 받으며 '미국 허가' 단서 넣은 완벽한 미국인

‘조국 헌신’과 관련해 벨 연구소 사장 김종훈의 석연치 않은 대목은 또 있다. 김종훈이 벨 연구소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설립한 서울 벨연구소는 지난 2005년 이명박 서울시장으로부터 200억 원에 가까운 투자를 받았다. 하지만 이후 실적이 전무한 ‘유령 사무실’을 운영했던 것으로 최근 드러났다. 김종훈과 이명박 서울시장이 체결한 MOU각서에 따르면 김종훈은 ‘미국의 허가 없이는 기술 이전을 할 수 없다’는 조건을 투자 단서로 달았고, 이에 이명박 서울시장은 ‘시는 기술 및 특허의 지적재산권 지분 30%를 갖는다’고만 했다. 물론, 이마저도 서울 벨 연구소가 아무런 특허등록도 하지 않는 바람에 무의미한 것이 됐지만 김종훈은 조국의 돈을 투자받으며 미국의 허가를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이던 사업가였다.

 

말하자면 김종훈은 미 해군 복무 경험을 바탕으로 소재가 서로 다른 망이 네트워크 되는 유용한 기술을 개발한 엔지니어였지만 이후 회사를 매각하고 특별한 공적 활동 없이 매각대금으로 호사스런 생활과 방탕한 인생을 살아온 인물로 보인다. ‘조국 헌신’이라는 공적 가치, 국가적 책임감을 말하기에 어울리지 않는 이력인 셈이다. 이에 대해 제임스 주는 “김종훈이 교민사회에 기여한 바는 전혀 없고, 단지 뉴저지와 맨하탄 일대의 룸사롱을 전전하며 돈을 뿌리던 인물이었다”고 말한다. 김종훈에 대한 교민사회의 평가는 “상것이 갑자기 벼락부자가 되어 양반의 행세를 하느라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거들먹거리는 모습”이라고 말한다.

 

양반 행세하며 거들먹거리는 이를 누가 불러들였나?

이런 김종훈을 잘 포장된 ‘기획 상품’으로 불러들인 것은 전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지금은 청와대 대변인이 된 윤창중 대변인은 인수위 시절 “김종훈이 인선의 꽃”이라고 말했다. 그 ‘꽃’이 꺾인 데 대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할 텐데 언론은 거기까지 묻지 않은 채, 단지 이 모든 것을 김종훈의 ‘셀프 책임’으로만 돌리고 있는 형국이다.

 

후보자 시절 김종훈은 업무 보고를 하는 방통위 직원에게 “현안이 뭐해요?”를 되물었다고 한다. 현안이라고 하는 한자어를 이해하지 못한 ‘촌극’이었다. 이런 이가 정부의 핵심이라고 하는 ‘창조경제’를 이끌고, 방송과 통신 그리고 과학기술을 경제적 성과로 융합하는 거대부처를 이끌 수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난센스’이다. 이 비상식은 박근혜 대통령의 비상식이고, 그 인선 시스템의 비상식이며, 미래창조과학부라고 하는 조합의 비상식이기도 하다.

 

* 자유의 남자 제임스주

http://blog.naver.com/jamesju_usa?Redirect=Log&logNo=110158886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