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3-03-12 21:09:2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3122109235&code=990100
[표창원의 단도직입]새 정치와 정의로운 정치
표창원 | 범죄심리학자
서울대 의대 출신의 엘리트,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한 천재, 사업에 크게 성공한 유능한 최고경영자(CEO), 전 국민에게 무료로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제공한 공익정신의 모범적 실천자. 그런 안철수가 전국을 돌며 토크콘서트를 열어 지치고 상처 입은 젊은이들을 위로하고 기성 정치인들에게 환멸을 느낀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지역감정과 세대 간 갈등, 이념 간 대결의 ‘낡은 정치’를 타파하고 ‘새 정치’를 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국민들이 안철수에게 열광했다. 이른바 ‘안철수 현상’이다. 그는 열화와 같은 지지자들의 성원을 받아들여 정치활동 개시를 선언하면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다.
그러나 여론조사에서 자신보다 현저히 뒤진 박원순 후보에게 양보하면서 후보 단일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국민들은 더 안철수에게 기대와 희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 운동이 시작된 뒤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의 야권 단일화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던 끝에 석연치 않은 뒤끝을 남기면서 ‘합의에 의한 단일화’도, ‘경선에 의한 단일화’도 아닌 일방적인 ‘후보 중도 사퇴’를 했다. ‘안철수 현상은 거품’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노무현·정몽준 두 후보 간의 ‘아름다운 단일화’로 극적인 반전을 이루었던 추억에 잠겨 있던 야권 지지자들은 혼란과 아쉬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에 보여준 안철수의 문재인 후보에 대한 ‘소극적인 지원’에 대해서도 해석이 분분했다. 절정은 12월19일 투표일 당일, 야구로 치자면 팽팽한 3대3 접전이 이루어지던 9회 말 공격 상황에서 4번 타자 경쟁에서 밀린 호타준족의 5번 타자가 더그아웃을 벗어난 뒤 경기장을 아예 빠져나가는 괴이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안철수가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떠났다.
경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선수와 응원단은 아쉽고 황당하긴 했지만, 그에게 큰 관심을 줄 여유가 없었다. 경기에 진 선수와 응원단이 침통해하고 있던 그 긴 시간 동안에도 그는 침묵했다. 아니, 미국에서 영화 <레미제라블>과 <링컨>을 보고 독서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 그가 4월 국회의원 재·보선에 출마한다고 전격 선언하고 귀국했다. 그것도, 석연치 않은 ‘삼성 X파일 공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유죄 판결 때문에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전 의원의 지역구인 노원병을 콕 찍었다.
국회의원 지역구가 특정인이나 특정 정당의 소유물은 아니다. 누구든 출마할 수 있고, 또 그런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냥 일개 후보가 아닌,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 가까운 사람에게 ‘새 정치’를 열 희망의 상징이며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자인 그라면 출마선언 전에 반드시 했어야 할 일들이 있다.
그저 ‘새롭기만 한’ 정치인이 아닌, ‘새롭고 정의로운’ 정치인임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 먼저, 문재인 후보 측과의 단일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왜 중도사퇴를 했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둘째, 왜 선거 당일 출국했으며 그 계획은 언제 세워진 것이었는지를 정확히 밝혀야 한다. 셋째, ‘노원병’이라는 선거구의 특성에 비추어, 자신이 노회찬 전 의원이 표방하는 ‘진보’ 정치인인지, 그래서 그를 대표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노 전 의원을 지지하지 않은 노원병 주민들의 보수적 기대와 열망에 부응하겠다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지 않은 채 선거를 치르겠다면, 안철수는 ‘새 정치’를 열수 있을지는 몰라도 ‘정의로운 정치’를 열 수 있으리라고 믿을 수는 없다. 그저 ‘새로운 방법’을 사용해, 최대한 많은 표를 끌어모으겠다는 ‘구태의연한 정치인’이 또 한 명 나왔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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