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 Guevara's Diary> 2012. 2. 25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 길이 체 게바라를 만들 었고 체 게바라는 길이 되었다
- 장재준 :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학교에서 중남 미문학을 전공했다.
1.
혁명이 혁명적으로 폐기되던 1990년대는 〈굿바이, 레닌〉의 시대였다. 자본주의 이외의 길은 역사적 정언명령이라도 되는 듯이 몰락과 해체의 수순을 밟았으며, 대항적 사고와 대안의 길은 향수와 자성의 늪에 발목이 잡혔었다. 한마디로 환희와 애도가 교차하는 역사적 변곡점이었다. 하지만 손목이 잘려나간 체 게바라의 유골이 발견된 1997년은 체 게바라 신드롬의 비등점이기도 했다. 세상은, ‘가장 깨끗하게 살아남은’ 이 혁명가에게 대중스타 이상으로 열광했다. 영웅이 부재하고 싸움의 구심점이 와해된 시대에 놀랍게도 체 게바라는 저항과 자유의 아이콘으로 부활했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속절없이 저물었지만, 사람들은 체 게바라의 베레모에 아로새겨진 붉은 별에 열광했다. 정치적 허무주의와 냉소주의가 웜 바이러스처럼 진보 진영을 허물던 시절, 많은 사람들에게 체 게바라는 꿋꿋하게 버티는 몇 안 되는 깃발이었다. 결코 박제될 수 없는 치열한 정신이자, 가보지 못한 길을 증언하는 이정표였다.
그러나 1990년 이후로 탈영토적ㆍ공격적 투자 형태로 전환한 세계 문화자본은 체 게바라를 무장 해제하는 작업에도 게릴라적 기동성과 치밀함을 선보였다. 체 게바라의 가장 큰 적이던 자본은 역사적ㆍ정치적ㆍ사회적 문맥을 제거하고 사상과 서사를 표백하여 체 게바라를 문화상품으로 시장에 ‘복권’시켰다. 잡식성 유기체인 자본은 체 게바라를 적극적으로 기억하고 추억하는 세대와 계층까지도 이미지 소비층으로 포획하는 데 탁월한 혁명적 수완을 발휘했다. 영화〈에쥬케이터〉의 얀(다니엘 브뢸)의 한탄에도 불구하고 문화자본의 지원사격을 받은 체 게바라는 급기야 저항과 변화의 이미지에 관한 한 최고의 파워브랜드로 등극했다. 체를 소유하고 소비하고 카피하는(코스튬) 반문화적 혹은 저항 문화적 태도는 더 이상 문화적 훌리건이나 이데올로기적 컬트가 아니다. 자본은, “전복이라고 여겨지던” 체 게바라를 전복시켜버렸다.
“두 번째, 세 번째, 더 많은 베트남”을 꿈꾸던 괴테 애호가 체 게바라가 서른아홉 살에 CIA와 볼리비아 군 당국에 의해 처형된 지 40년이 지난 지금, 이 “20세기 최후의 게릴라”는 사이버 게릴라 성향을 지닌 우리와는 이제 한 클릭 사이다. 마우스와 키보드로 무장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체 게바라의 주둔지(website)를 마실 다니듯이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체 게바라 인터넷 전문 매장(www.thechestore.com)에 접속하면, “모든 사람들의 혁명적 욕구를 충족시켜준다”는 걸개 광고 아래 다채로운 상품이 체 게바라의 이미지를 창조적으로 전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갑과 혁대로부터 체 게바라도 무장 해제시킬 여성용 탱크 탑까지. 가치가 고갈될 정도로 착취당한 문화 아이콘이자 캐릭터 상품으로 체 게바라는 이렇듯 대중문화 속에 자기 근거지를 확고히(?) 구축했다.
체 게바라와 볼리비아 무장투쟁을 함께 했으며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특별자문으로 활약했던 이미지 이론가 레지스 드브레(Régis Debray)의 표현을 빌리자면 체 게바라는 가장 비(非)메시아적인 비디오 스피어(Video sphere) 시대의 가장 메시아적인 이미지로 부활했다. 쿠바 정부의 항의에 의해 결국 시장에서 퇴출된 영국의 체 맥주, 록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앨범 및 티셔츠, 장 폴 고티에의 체 선글라스와 스와치 시계, 마이크 타이슨과 디에고 마라도나의 체 문신, 베네수엘라 정부에 의해 방송금지 조치를 당했던 TV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호모 심슨이 입었던 체 티셔츠와 패러디 옷 문구 “Hasta la cerveza siempre”, 그리고 스키전문 업체 피셔사의 체 게바라 이미지 광고와 1999년 영국 교회광고네트워크의 부활절 광고에 혁명적으로 부활한 체 게바라 예수상……
체 게바라를 닮은 ‘새로운 인간’의 창조와 교육은 전무하거나 극히 드물다 하더라도 이렇게 그를 쏙 빼닮은 이미지 원용 상품은 게릴라처럼 시장에 불쑥불쑥 출몰했다. 그때마다 체는 실체 없는 이미지와 기호로 대중매체 속에서 호들갑스럽게 규정되곤 했다. 당연히 체 게바라는 너무나 친숙한 ‘인간적인’ 이미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소비 패턴의 낭만적 취향으로 유통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영상산업과 영상 수사학은 체의 실체와 체의 이미지를 어떻게 기획, 제작, 배급, 해석하고 있는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어떤 루트를 통해 관객이 체 게바라를 향해 걷도록 유도하는가? 12,425km를 질주하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빠르게 한번 따라 가보자.
2.
우선,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전형적인 로드무비다. 로드무비. “녹슬지 않는 창을 가슴에 지닌 채”, “구두굽 밑에서 로시난테의 박차”를 느끼며 20세기의 모험을 위해 대장정에 오른 체 게바라에게는 검정색 베레모처럼 딱 맞는 장르다. 푸세르(럭비 선수시절 친구들이 게바라에게 붙여준 별명)가 체로 변모해가는 여정을 정갈하게 편집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그 자체로 길이 남을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고, 혁명가 체 게바라를 찾아가는 모든 여행의 필수 코스로 통하게 되었다.
영화는 생태체험 관광코스인 ‘루타 베르데 볼리비아’를 새롭게 개발시켰을 뿐만 아니라 ‘바예그란데의 예수’ 체 게바라를 순례하는 ‘체 게바라 루트’를 세계화시켰으며, 쿠바의 ‘체 게바라의 길’(Camino del Che)에 새로운 정치적 명분까지 수혈해줬다. 아울러 2006년 1월에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의 마르코스 부사령관이 모터사이클 솜브라루스를 몰고 멕시코 전역을 누비며 두 번째 사파투어(Zapatour)를 연출하는 데도 일조했다. ‘제2의 체 게바라’ 마르코스에게 현실 정치적 함의 이외에도 역사적 상징성을 추가로 부여한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모토디스커버리 여행사로 하여금 체 게바라의 여행 경로를 32일간 모터사이클로 종주하는 패키지 여행상품을 1인당 6,950달러에 출시하도록 사업 아이템을 제공했다. 명실 공히 영화는 라틴아메리카판 ‘산티아고 순례길’을 탄생시켰으며, 결과적으로는 ‘체 게바라의 길’이 대중화ㆍ상업화ㆍ상품화의 길로 우회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다채롭게 ‘길거리 캐스팅’된 자연ㆍ지역ㆍ기후ㆍ인종ㆍ유적ㆍ언어ㆍ음악은 다양한 층위의 문화적 이정표 역할을 수행했으며, 영화는 볼거리 풍성한 라틴아메리카 여행 입문서로서 구실 또한 톡톡히 해냈다.
한편, 이탈리아 영화감독 지아니 미나(Gianni Minà)는 영원히 늙지 않는 체 게바라 대신에 82살의 알베르토 그라나도(체 게바라와 함께 라틴아메리카를 일주한 실존인물)를 주인공으로 놓고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촬영 및 제작 과정을 다시 카메라에 담아 〈체 게바라와 함께 한 여행에 관하여〉(2004)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월터 살레스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의 대표적인 지성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와 체 게바라 전기 『에르네스토 게바라 - 일명 체라고 알려진 인물』의 저자 파코 이그나시오 타이보 2세가 엑스트라로 출현, 증언하기도 했다. 특히 마르코스 부사령관과 함께 ‘네 손’(a cuatro manos) 탐정소설 『불편한 죽음』을 쓰기도 한 파코 이그나시오 타이보 2세의 체 게바라 전기는 한국에 체 게바라 붐을 상륙시킨 장 코르미에의『체 게바라 평전』보다 훨씬 더 선이 굵으면서도 문학적이다.
이렇게 사우스 포크 픽쳐스의 로버트 레드포드와 〈중앙역〉의 월터 살레스가 의기투합해서 제작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2004년 5월에 브라질에서 첫 개봉된 이래 전세계인들의 눈길과 발길을 사로잡는 데는 일단 성공했다. 영화는 3년에 걸친 조사와 현지답사, 2년간 공을 들인 시나리오 작업 끝에, 라틴아메리카 현지 캐스팅ㆍ제작ㆍ촬영 파트너인 아르헨티나의 비디시네, 칠레의 사하라필름, 페루의 잉카시네와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완성되었다. 영화는 리얼리즘을 포획하기 위해서 체 게바라의 『여행노트』와 알베르토 그라나도의『체와 함께한 라틴아메리카 여행』을 에피소드별로 선택적으로 참고하여 만들어졌다.
그러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쿠바혁명의 브레인” 체 게바라의 혁명적 편력을 치밀하게 재구성하거나 커트 코베인의 죽음을 추론으로 재현한 〈라스트 데이즈〉류의 전기영화는 아니다. 영웅의 사상적 궤적을 역사적 맥락에서 추적하고 포착하기 위해 근접 촬영된 〈전설적인 혁명가, 체 게바라〉류의 각진 다큐멘터리는 더더욱 아니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는 장소익 연출의 연극 〈체 게바라〉에서와 같은 인물과 시공간의 허구적이고 상징적인 겹침과 절합도 찾아볼 수 없다. 산티아고 알바레스의 19분짜리 다큐멘터리〈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처럼 체 게바라와 라틴아메리카를 미국이라는 상수(常數)와 연계시켜 조명하지도 않는다. 체 게바라의 8개월(1951년 12월에서 1952년 7월까지) 남미 종단여행을 카메라에 담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비록 체 게바라를 입체적으로나 총체적으로 조망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록그룹 롤링스톤즈의 믹 제거처럼 체의 야사에 유별나게 집착하지도 않는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기존의 체 게바라를 전복시키지도 않고, 체 게바라의 숨겨진 이면을 발굴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입담 좋은 길벗인 그라나도를 앞세워 마르셀로 달토처럼 〈체 게바라를 찾아서〉체 게바라를 만든 길을 되밟을 뿐이다.
3.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을 창조적으로 계승한 브라질 시네마노보 운동의 적자(嫡子)이자 ‘흥행작’인 월터 살레스는 나름대로 용의주도했다. 그는 주류 상업영화가 발설하지 못하는 소재와 내용을 선도적으로 영상언어로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장르적 한계를 극복하고 자율적인 제작 방식에 대한 고민과 실천을 통해 자본의 논리와 시스템에 조용한 틈입을 시도했다. 비전문배우 현지 캐스팅, 스페인어 사용, 아르헨티나 출신의 배우와 억양 채용, 체 게바라 여행 경로에 대한 치밀한 사전조사와 연구, 체 게바라와 라틴아메리카에 관한 공동 학습 및 실제 나병환자들 캐스팅 등, 월터 살레스 감독은 영화 제작 자체를 체 게바라 정신을 구현하는 학습과 연대의 장으로 적극 활용했다. 아메리카 횡단여행을 통해 아르헨티나 청년 푸세르가 “하나의 메스티소 민족”인 라틴아메리카의 청년으로 변모했듯이, 월터 살레스 역시 휴머니즘과 연대의 미학을 스크린 안팎에서 구현해냄으로써 브라질 감독에서 라틴아메리카 감독으로 발돋움했다. 비록 명확한 한계를 노정시키기도 했지만.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월터 살레스는 무엇보다 관객에게 섣부른 희망이나 투박한 분노를 떠안기는 대신 차분한 정서적 엿듣기 전략을 선택했다. 관객이 체를 찾으러 가는 경로인 12,425km의 대종주를 헨드헬드 기법으로 추적하며 푸세르의 ‘의식의 흐름’을 가장 두텁게 응시했다. 그리하여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돈키호테』의 경쾌한 패러디로 읽혀질 뿐만 아니라 스물세 살의 에르네스토 게바라에 관한 내밀한 성장소설 혹은 ‘이니세이션 스토리’(initiation story)로 다가서기를 바랐다.
월터 살레스는 푸세르의 현실인식과 역사의식이 성장해 가는 루트를 클로즈업하고, 그의 내면의식이 현실의 실체와 대면할 때 파생되는 파열음과 공명을 녹음하고자 했다. 따라서 월터 살레스는 논쟁과 주장이나 인물과 사건의 중층적인 갈등과 대립이 시퀀스를 열고 닫는 서사구조를 택하지 않고 내레이션, 곧 농밀한 독백과 고백, 혹은 자문(自問)이 모터사이클 “포데로사”의 기어와 브레이크 구실을 하도록 했다. 즉, 내재적 디제시스인 내레이션이 모터가 되어 로드무비를 운반하도록 했다. 그리고 영화가 정치적 감상주의와 냉소주의 혹은 이데올로기적 경건주의와 엄숙주의로 탈선하지 않도록 카메라의 시선과 태도, 배우의 대사와 내레이션, 커트 속도 및 음악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물론 월터 살레스는 마추픽추와 쿠스코에서 체 게바라의 대륙적 역사의식이 배태되고 “패배한 민족”을 향한 민중의식이 잉태되는 과정을 다큐멘터리적 터치로 포착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또한 월터 살레스는 체 게바라의 ‘스물세 살 고별사’를 통해서 허구적이고 실체 없는 경계 허물기와 대륙적인 연대 및 통합이 숙명과도 같던 혁명적 방랑생활의 실질적인 이유이자 종착점이었음을 축제와 (통과)의례처럼 풀어내기도 했다.
특히 그라나도의 여행기와는 달리 체 게바라의 『여행노트』에는 단 한 줄로 기록되어 있지만, 영화에서는 또 그것이 다소 헐겁게 삽입된 과잉 의도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월터 살레스는 체 게바라에게 최소한의 휴머니즘은 강 가로지르기였음을 산 파블로 나병요양소에서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동시에 다름, 차별, 격리, 분리를 표상하는 장갑을 벗어던지는 행위가 차이와 구별의 기제를 더 이상 전파 혹은 전염시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지름길임을 의미심장하게 예시했다.
게다가 페루적인 현실에 철저히 의거해 노동자뿐만 아니라 농민을 주력부대로 한 창조적인 인도아메리카 사회주의 건설을 주창했던 민족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인 호세 카를로스 마리아테기의 유명한 『페루의 현실에 대한 7가지 해석』을 체 게바라가 탐독하는 장면에서 카메라의 시선이 비교적 오랫동안 서성이게 했다. 하지만, 그뿐이다. 우리가 월터 살레스에게, 체 게바라에게 기대하는 것은 이런 차원이 아니다. 탈정치화된 문장과 상징으로 구축되는 영화언어는 아니었다. 체 게바라 정신을 역사적 문맥과 정치적 문법으로부터 탈구시켜 선택적으로 나열하거나 선별해서 영화 공간에 이식시키는 그런 식의 ‘편집’과 ‘커트’의 미학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큰 반가움이지만 긴 아쉬움이기도 하다. 영화는 “20세기의 가장 완전한 인간”을 온전히 재생시키지 않았다. 푸세르 내면의 전이과정을 치밀하게 포착하거나 치열하게 형상화할 의도는 영화기획 단계부터 우선적으로 배제되었다. 적어도 그런 혐의로부터 월터 살레스는 자유롭지 않다. 월터 살레스의 가능성이자 한계 혹은 결핍으로 작동하는 양날의 칼인 ‘절제의 미학’은 영화의 밀도를 떨어뜨리는 데 한몫 단단히 할 뿐만 아니라 영화적 공간에 시대적, 정치적 구체성과 질감을 부여하는 데도 생래적 한계를 드러낸다. 카메라의 시선은〈중앙역〉에서처럼 여전히 따뜻하다. 하지만 월터 살레스의 소통미학은 비록 체 게바라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는 소기의 목적은 성취하였다고 하더라도 휴머니즘이나 인간애를 넘어 새로운 실험적ㆍ실천적 도약을 감행하지는 않는다. 자유주의적이고 윤리적이며 휴머니즘적인 경향성에 다시 한번 포박당하고 만다.
월터 살레스는 결코 의식과 현실의 접점들을 낱낱이 투사하거나 그 결절점들을 심층적으로 파고들지 않는다. 체 게바라의 권위에 막연히 기대며 관객이 흥미를 잃지 않을 만큼의 볼거리에 적당히 무겁지 않은 내레이션을 병치시키고 있다. 따라서 시적 내레이션, 어머니, 천식, 나병, 정직함, 의대생, 통 큰 연민, 뛰어난 언변, 이국적인 라틴아메리카 풍광 등은 체 게바라를 “낭만자객”으로 머물게 하고, 건강한 역사의식 내지는 치열한 사상과 휴머니즘을 미학적ㆍ해석학적으로 분리시키는 기제로 작동한다.
예를 들면 체 게바라가 『여행노트』에서 추키카마타 광산을 회고할 때 비교적 세세하게 언급하고 있는 열악한 노동조건, 계급제도, 칠레의 정치탄압, 사회주의, 살바도르 아옌데, 이바네스 정권(1952~1958), 자원 민족주의, 미국인 광산주 혹은 라틴아메리카의 “등짝에 붙어 있는 양키라는 성가신 친구” 등은 대부분 스크린에서 전략적으로 배제된다. 그 자리는 가난한 칠레 노동자 부부에게 건네준 돈과 담요, “가장 추웠던 밤”과 영화 속 유일한 분노와 저항의 징표였던 ‘짱돌’ 하나로 서둘러 봉합되고 만다.
사실의 정확한 재현의 정도가 영화적 완결성을 판가름하는 리트머스지일 수는 없지만, 역사성ㆍ정치성ㆍ사회성과 맥락의 구체성이 결여된 인간주의적, 낭만적 시각은 때때로 사실을 은폐하거나 호도하여 문제의 본질을 희석시킬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영화적 밀도와 긴장감에 파열구를 낸다. 특히나 추키카마타 광산과 관련하여 앞에서 열거했던 것들은 1952년의 라틴아메리카뿐만 아니라 현재의 라틴아메리카를 사유하는 데도 빼놓을 수 없는 주제어들이다. 영화 언어로 그것들을 새롭게 읽어보지 못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그저 따뜻한 마테차와 모닥불 아래 푸세르와 그라나도의 “여행을 위한 여행”(viajamos por viajar)에 브레이크를 걸었다는 사실에 의미를 둘 수밖에.
실제 여행 기간 중에 체와 그라나도가 가장 장기간 머문 곳이 틀림없지만, 체가 그의 『여행노트』에서 ‘고작’ 6~7페이지만 할애한 산 파블로 나병요양소에서 카메라가 가장 오랫동안 서성거린 결과도 위와 별반 다르지 않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나병요양소에서 가장 길게 다리쉼한 실질적인 이유는 그 공간이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 과부하로부터 자유로우면서 의사와 전사, 구급상자와 탄약통, 연민과 분노, 휴머니즘과 급진적 정치이데올로기, 푸세르와 체라는 이항대립의 ‘사이’ 혹은 완충지대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월터 살레스에게는 나병요양소가 그의 영화 미학을 고수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진지(陣地)이자 이데올로기적 엄폐물이며 메시지 공작소로 기능한다.
강 건너기, 장갑, 푸세르의 축배로 표상되는 소통과 연대 및 통합의 의미망들은 모두 이 산 파블로 나병요양소에서 구축된다. 하지만 이것들은 체 게바라적 현실과 문맥에서 유리된 상징적인 공간에서 제기되기 때문에 앞에서 열거한 두 의미 영역의 등가적 접합조차도 이루어내지 못한다. 따라서 역사적ㆍ정치적ㆍ대륙적 함의와 실천적 비전을 획득하는데 실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체 게바라적 기의와 분열된 기표로 휴머니즘의 자장 안으로 수렴될 개연성을 동반한다. 말하자면 소통과 연대 및 통합의 의미망들이 나병요양소에 격리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한편, 『돈키호테』를 혼성모방한 그레이엄 그린의 『키호테 신부님』에서는 신부 돈키호테 와 공산주의자 산초 사이에 벌어지는 활발한 ‘길거리’ 정치 논쟁이 포데로사의 역할을 수행하며 서사를 실어 나르는데,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두 길동무에게서는 의외로 체험과 인식의 통합과 교류과정을 찾아볼 수 없다. 예외가 있다면, 마추픽추 산정에서 호세 카를로스 마리아테기의 인도아메리카 사회주의 혁명과 투팍 아마루 혁명을 농담처럼 얘기하는 그라나도에게 돌출적으로 푸세르가 무장혁명의 당위성을 주장할 때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것은 논쟁이나 정파적인 진술, 적극적인 현실 개입이나 구체적인 발언을 대신해 정제된 내레이션이〈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구조적 심층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다소 밋밋하고 팍팍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푸세르가 역설하는 무장혁명의 필요성은 영화 속 내러티브 흐름상 상당한 비약이며, 체의 『여행노트』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대단히 전투적인 혁명가 체의 사회변혁 방도이다. 이러한 혁명적 무장투쟁노선은 체 게바라의 두 번째 라틴아메리카 횡단여행지인 과테말라에서(1953~54) 사실상 처음으로 구체화된다.
하지만 체로 탄생하기 전의 푸세르가 떠났던 두 번째 라틴아메리카 횡단 기차여행(1953~1956)을 기록한 체 게바라의 『다시 한번』이나 여행 친구 카를로스 칼리카 페레르의 『에르네스토에서 체로』는 유감스럽게도 이 영화에 초대받지 못했다. 체 게바라가 해방전사로 거듭나는 데는 이 두 번째 여행이 훨씬 더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체 게바라의 대장정은 베네수엘라 카라카스공항 상공에 회한처럼 결박당하고 만다. 관객의 눈길과 발길은 82살 그라나도의 시선 끝 허공에 맥없이 걸리고 만다. 영화음악〈뜨거운 혁명〉의 울림과 떨림이 아직 채 스크린을 벗어나지도 못했는데. 영화는 푸세르가 체로 변신하는 서막에서 서둘러 막을 내리고 만다. 막 체의 체취를 느끼려던 참인데. 12,425km는 그래서 너무 짧고 얕다. 스크린 밖, 편집된 길이 너무 길고 깊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그래서 자꾸만 길 너머 길, 길 밖의 길을 동경하게 만드는 로드무비다. 128분 긴 여정에 끝 모를 허기가 스크린에 꽉 찬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흐르는 호르헤 드렉슬러의 노래 제목처럼 〈강 건너편으로〉 길을 잇고 싶지만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끌어안지 않는 그곳으로는 산 파블로 나병요양소를 두 동강내며 흐르던 강보다 더 건너기 힘든 선택과 단절, 배제와 격리라는 스크린 밖 논리가 도도히 흐른다. 이 영화의 주된 전략과 선택이 저항과 해방의 여정 순례가 아니었음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할리우드의 리버럴 로버트 레드포드는 분명 게릴라를 캐스팅할 의도가 없었으리라. 혁명에 투자할 의지 또한 갖지 않았으리라. 다만 푸세르와 그라나도의 ‘게릴라적 생존방식’만을 덜컹덜컹 촬영하는데 자족했을까. 〈로스트 라이언즈〉에서 이상주의적 교수로 장광설을 풀어놓던 독립영화의 대부 로버트 레드포드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는 너무 크게 침묵한다. 그는 단지 전사(戰士)의 전사(前史)만을 제작했다. 흡사 엄홍길을 따라가면서 카메라의 시선이 관악산만 맴돈 격이다.
그래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는 부재(不在)가 가장 주목받는 캐스팅이 된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는 우리가 동경하는, 우리가 소비하는 그 체 게바라는 부재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한창 여행 중이다. 없다. 숨 가쁘게 달려온 12,425km 어디에도 혁명의 시나리오는 없다. 체 게바라의 전매특허인 화약 연기 매캐한 시가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혁명가를 다루는 영화에 혁명은 편집되었고, 총성은 녹음되지 않았다. 미겔 바르네트의 말대로 체 게바라는 분명 시인이었다. 하지만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그 전투적 시인의 삶을 낭만적인 서정시 운율에 옭아맸을 뿐 서사시적 층위를 펼쳐 보이는 데는 치밀하게 무관심했다.
그리하여 〈소이 쿠바〉에서 시커먼 설탕눈물을 흘리던 쿠바도, 프란츠 파농의 하얀 콩고도, CIA에 의해 손목이 잘려나간 볼리비아도, 그저 스크린 밖에서 종종거릴 뿐이다. 후안 도밍고 페론 시절의 아르헨티나도, 망명 정치인들의 천국이던 멕시코도, 미국의 ‘빅스틱’(Big Stick)에 의해 역사 밖으로 축출된 과테말라의 하코보 아르벤스 좌파정권(1951~1954)도 카메라 앵글 밖으로 모두 커트 당했다. 당연히 그란마 호에 관객은 승선하지 못한다. 푸세르는 마이애미 행 비행기에 탑승할 뿐이고, 영화의 열린 구조 안에 체 게바라는 덜컥 갇히고 만다. 자본에 생포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자본에 투항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그렇게 체 게바라는 마이애미, 미국으로 진출한다. 체를 체로 만든 굵직한 ‘체 게바라의 길’들은 〈강 건너편으로〉의 선율에 묻히고 만다. 푸세르가 아닌 체를 태운 비행기는 마침내 완벽하게 스크린을 탈출한다.
4.
보지 못한, 편집된 길에 대한 갈증이 참 길다. 5월 14일에 열리는 61회 칸 국제영화제는 그래서 더더욱 멀게만 느껴진다. 4시간 28분의 장편 서사 〈체〉. 칸 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이름을 올린 체 게바라에 관한 영화다. ‘감히’ UN 앞에서 ‘Red 필름’을 찍은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어떻게 〈늑대인간〉이기도 한 베니치오 델 토로를 체 게바라로 되살렸을지 참으로 궁금해진다. 하지만 그때까진 아직도 멀었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로 다시 눈길을 돌리는 수밖에.
관객은〈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나쁜 교육” (La mala educación)일 것이라 섣불리 단정하고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을 외면할 어떠한 영화 밖 이유도 없다. 포데로사의 맨 뒷좌석에 올라타기 전에 『체 게바라의 시집』을 엮은 이산하처럼 “체 게바라의 찢어진 군화를 꿰매고 구겨진 전투복을 다리미질하는 마음”을 애써 만들 필요도 없다. 그저 푸세르 뒤에서 길만 꼭 붙들면 된다. 눈만 놓지 않으면 된다. 누가 알겠나. 영화의 눈 먼 그 소처럼 눈 뜨고 못 본, 눈 뜨고 보지 않은, 눈감고 애써 외면해버렸던 라틴아메리카 현실이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곳곳에 아직 이정표처럼 많이 남았을지. 시간은 비록 오십년 넘게 흘렀지만 스크린 밖 2008년의 라틴아메리카 현실이 스물세 살 청년의 눈에 파고들었던 그 슬픈 라틴아메리카 속에 여전히 티눈처럼 빼곡하게 박혀있을지. 누가 알겠나. 뚜렷한 한계에도 불구하고〈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2008년의 라틴아메리카 정치사회적 지형도를 오롯이 담고 있는 갓맑은 스틸사진일지. 하여 익숙한 길을 버렸기에 푸세르처럼 우리도 현실로 깊숙이 돌아올지. “생각보다 더 많이 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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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 연구소 웹진 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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