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2013-07-31 20:55:58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225
민간인 사살한 미군 vs 폭로한 매닝, 누가 처벌받아야 하나
[백병규의 글로벌 포커스] 136년 ‘유죄판결’ 메시지는…“내부고발? 꿈도 꾸지 마!”
“무고한 이라크 민간인과 로이터 통신 기자 2명을 사살한 미군들은 지금 어떻게 돼 있나? 매닝 일병을 이라크에 파병한 사람들은?”
30일, 25살의 브래들리 매닝 미 육군 일병에게 최대 136년의 징역형이 가능한 유죄 평결이 나오자 영국 웰시 출신 앤 클뤼드
하원의원이 한 말이다. 인권과 이라크 문제에 관한 초당파적 모임을 이끌고 있는 클뤼드 의원은 브래들리 매닝 문제를 하원에 상정한 바
있다. 로이터통신 기자 2명이 사살된 이른바 ‘부수적 살인(Collateral Murder)’ 동영상과 매닝이 ‘영국인
자녀’라는 점 때문이었다. 매닝은 모친이 영국인이고, 10대를 영국 웰시 지역에서 보냈다. 영국 여권을 갖고 있진 않지만 법적으로
그는 ‘영국인 자녀(British by descent)’다.
무고한 민간인과 로이터통신 기자 사살한 미군은 지금…
▲ 브래들리 매닝 일병은 가장 중죄인 이적죄 혐의는 벗었지만 간첩죄 혐의로 최대 136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사진=슈피겔 인터내셔널 인터넷기사 화면 | ||
<위키리크스>가 2010년 4월 5일 공개한 ‘부수적 살인(Collateral Murder)’ 동영상에는 이라크
바그다드 인근에서 미군 아파치 헬기가 기관총을 쏘아 민간인을 무차별 사살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사살된 민간인 가운데는
취재 중이던 로이터 통신 기자 2명도 있었다. 전 세계에 ‘충격’과 ‘전율’을 안겨준 동영상이었다. 매닝 일병이
<위키리크스>에 제공한 것이었다.
이 때 민간인을 사살했던 미군 가운데 법적 처벌을 받은 이는 아직 없다.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며 이라크를 침공해 수많은
무고한 인명을 빼앗은 전쟁을 일으킨 자들 가운데도 처벌을 받은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클뤼드 영국 하원의원이 매닝에 대한 유죄
판결이 과연 정의로운 것인가를 물은 까닭이다.
배심원 없이 단독심으로 진행된 미 군사법정에서 재판장 데니스 린드 중령은 30일 매닝 일병의 이적죄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평결을
내렸다. 매닝 일병이 <위키리크스>에 제공한 미 국무부 외교문건과 전쟁일지 등이 적인 알카에다를 이롭게 했다는
혐의였다. 이적 혐의가 벗겨짐에 따라 매닝 일병은 일단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면할 수 있게 됐다. 이적죄면 최고 사형까지
가능하지만 군 검찰이 사형을 구형하진 않았다.
린든 중령은 그러나 나머지 21건의 혐의 가운데 16건에 대해 유죄 평결을 내렸다. 특히 8건의 간첩법 위반 혐의 가운데 7건을
유죄라고 판결했다. 각각의 혐의에 최고형이 선고될 경우 총 136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할 판이다. 매닝 일병이 사전 심리에서
유죄를 인정했던 혐의는 최대 20년 형이 선고될 수 있었다.
매닝 일병의 변호인단은 물론 가족들은 이적혐의가 무죄가 된 것에 대해서 일단 다행스럽다는 반응이다. 변론을 주도한 데이비드 쿰부즈
변호인은 판결 직후 “전투에서 이겼다. 이제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 오늘은 좋은 날이다. 하지만 브래들리는 아직 전투 중”이라고
말했다. 일단 이적 혐의를 벗은 만큼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 평결이 내려지긴 했지만, 해볼 만 한 싸움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적죄는 무죄…최고 136년 형량 어떻게 될지가 관건
“130년의 징역형을 살린다면 말라 죽이는 것이나 다를 게 없다.” “설마 130년이나 살리겠느냐? 많이 깎이겠지…” “절반 뚝
잘라서 60년을 징역에서 보내라 하면 뭐가 다르냐. 지금 25살인 매닝 일병이 85살이 돼서 세상에 나오라는 것인데…” “그러니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에 들어올 수 있겠느냐?” “본때를 보이려는 것이다. 다시는 매닝이나 스노든처럼 폭로하지 못하도록…”
이적 혐의는 무죄가 됐지만 매닝 일병이 최대 136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는 유죄 평결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 붙은 댓글을 보면 이런 반응이 많다.
독일의 <슈피겔>의 분석 또한 이런 댓글 여론과 맥을 같이한다. 미 군사법원이 간첩죄 위반 혐의에 대해 대부분 유죄
평결을 한 것은 매닝 일병 같은 내부고발자에게 앞으로 그 어떤 ‘관용’도 베풀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 것이란 분석이다.
다만, 이적 혐의에 대해선 무죄 평결함으로써 제보된 기밀을 보도하는 언론의 모든 행위까지를 ‘이적행위’로 처벌해야 하는 ‘파국적인
상황’은 피해갔다는 것. 한마디로 이번 군사법원의 판결은 일종의 분리 지배 정책이라는 것. 모든 ‘언론’을 적으로 돌리지
않으면서 ‘내부고발자’에 대한 엄단 의지를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내부고발자에 대한 간첩 혐의 적용은
매닝이 처음은 아니다. 오바마 정부 들어서만 벌써 6번째다. 오바마 정부 이전 역대 정부에서 간첩죄를 적용한 사례를 모두 합한
것보다도 더 많은 숫자다. 대통령 선거 때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겠다고 다짐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공약은 휴지조각이 됐다.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기밀 유출 사건 등에 대한 반작용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이런 가혹한 대응을 정당화하긴 어렵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대통령이 전쟁의 ‘거짓’과 ‘폭력’을 드러내고 ‘초법적 감시사회’의 위험성을 경고한 내부고발자를 평생 감옥에 가두려 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매닝 재판의 메시지…“내부고발 하려면 평생 감옥살이 각오하라!”
▲ 매닝 일병은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에 큰 관심과 소양을 보였다. 초등학교 땐 과학경시대회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사진=버즈피드 | ||
브래들리 매닝 일병은 재판과정에서는 물론 기밀 유출과정에서 그 동기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바 있다. 또 자신의 기밀 유출이 부를
파장이 어떨지를 세심하게 살핀 흔적도 있다. 가령 이라크․아프간 전쟁일지를 <위키리크스>에 넘길 때는 다음과 같은
메모를 같이 전달했다.
“정보원이 노출될 수 있는 것은 이미 삭제 처리됐습니다. 이들
방대한 데이터들을 효과적으로 공개하고, 또 정보원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90일에서 100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 자료는 전쟁의 실상과 21세기 비대칭 전투의 진면목을 잘 드러내주는 이 시대의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지난 2월 28일 본 심리에 앞선 모두진술에서도 방대한 ‘전쟁일지’와 ‘외교전문’을 왜 공개했는지, ‘자신의 입장’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혔다.
“우리는 해가 갈수록 수렁에 빠지고 있다. 우리는 명단에 있는
인간들을 죽이거나 체포하는 데 혈안이 돼 있으며,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현지의 파트너들과도 별로 협조하지 않는다. 근시안적인
목표나 과제를 수행하면서 야기될 제2, 제3의 파장들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런 실상을 알려주는 이들 정보들을 미국인들이 접할 수
있게 된다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관련 군사적 대응이나 외교정책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잠시라도 망설였던 것은 미 국무부의 외교전문을 보낼 때뿐이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대중들에게 공개돼야 할 정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적인 토론과 논쟁, 개혁이 이루어졌으면 했다.”
그러나 판결은 간명했다. 그 어떤 해석도, 풀이도 없었다. 물론 유죄 평결은 매닝과 변호인의 항변을 배척하고 군 검찰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을 뜻한다. 재판관인 데니스 린든 중령이 판결문을 모두 읽어 내리는 데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검찰의
기소 항목에 대해 몇 건의 ‘무죄’ 선고를 빼놓고 ‘유죄’라는 말을 끝없이 이어갔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매닝에 대한 유죄판결 직후 이런 성명을 내놓았다.
“매닝이 위키리크스에 전달한 정보는 바로 뉴욕타임스나 가디언, 슈피겔, 르몽드 같은 신문들이 보도했던 것들로 부시 정부가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의 어두운 실상을 드러내준 것들이다.
2007년 바그다드에서 미 헬기의 기관총 사격으로 로이터 기자들을 사살한 ‘부수적’인 치명적 발포 사건은 그 단적인 사례다. 바로
이런 진실을 미 국민과 전 세계에 계속 숨기고 감추었어야 하는가? 그런 범죄행위를 저지른 것이 잘못된 일인가, 아니면 그런
범죄행위를 시민들에게 알린 것이 잘못한 일인가?
매닝이 겪어야 했던 가혹한 구금 환경과 불공정한 재판, 투명성을 결여한 심리과정 등은 잠재적인 휘슬블로어(내부고발자)를 위협하는
것이자 법의 적용이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에 송환될 경우 제네바협약의 기준에 따를 때
박해를 당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점을 매닝의 이번 사례가 분명히 확인해주고 있다.”
매닝의 이번 재판이 확인해주고 있는 것은 비단 이 뿐만이 아닐 것이다. 미국 사법 시스템의 정의는 물론 미국인들이 그렇게
자랑해마지 않았던 미 수정헌법 제1조 ‘언론의 자유’ 또한 지극히 위태로워지고 있다는 점을 이 보다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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