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노컷뉴스> 2013-06-10 11:10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2519098
터키의 민주화, 그 뒤에 얽힌 '세속과 종교'
CBS 변상욱 대기자
터키의 반정부 시위가 주말에도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시위 참가자들을 약탈자라고 비난하면서 시위대의 요구를 거절하고 있다. 터키의 시위사태를 터키 민주화의 맥락 속에서 읽어보자.
◇ 80년 집권의 세속주의 엘리트 동맹
터키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 젊은 장교시절 급진개혁운동에도 몸담았던 그는 영국, 그리스와의 잇따른 전투에서 공을 세워 국가적 영웅으로 떠오른다. 그리고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오스만투르크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국가체제를 바꿨다.
그는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이슬람과 정치권력을 엄격히 분리했고 정당정치, 남녀평등, 신앙의 자유 등 민주제도를 대폭 도입했다. 또 국가주도의 경제개발 추진 등 터키 근대화의 기반도 마련했다. 그 대신 왕정복고나 소수민족 독립 등은 철저히 탄압하고 언론도 통제해 철권통치를 벌여나갔다. 그러나 부정부패, 친인척 비리, 정치적 경쟁자 탄압은 없었고 혁명과제를 이룬 뒤 민정으로 이양하고 권좌에서 내려왔다.
이런 배경 때문에 터키 군부는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정치집단이다. 군부는 사법부, 고위관료층, 지식인 사회까지 끌어들여 거대한 지배세력을 구축하고 오스만투르크 왕정과 이슬람 보수주의를 밀어냈다. 이것을 흔히 ‘세속주의 엘리트 동맹’이라고 부른다.
이 동맹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80년 장기 집권한 끝에 1997년 야당인 복지당에게 패배했다. 복지당은 최초의 이슬람 집권당이다. 이때부터 세속주의와 이슬람 세력의 밀어내기 싸움이 본격화 되는 것. 복지당은 먼저 세속주의를 약화시키고 친이슬람주의로 방향을 선회하려했다. 그러나 군부는 세속주의는 헌법이 정한 것인데 집권세력이 이슬람 종교를 정치에 끌어들이는 것은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를 움직여 집권여당을 해산시켜버렸다.
이후 과도기를 다시 거치며 2002년에 다시 등장한 것이 지금 집권당이자 총리가 이끄는 온건 이슬람계 정의개발당이다. 엘리트 지배세력에 염증을 내며 민주화를 원하던 터키 국민은 정의개발당을 지지했고, 정의개발당은 총선 때마다 승리를 거두며 장기집권에 돌입한다.
친군부 세속주의 엘리트 세력은 다시 한 번 친이슬람 집권당을 해산시키려다 실패하고 군 장성들이 대거 퇴진하며 세력이 약해져 여권을 견제하기엔 역부족이 돼버렸다.
두 세력을 성격적으로 비교하자면 세속주의 엘리트 세력은 집권 세력은 서구지향적이고 친유럽연합 성향을 띠며 문화적으로는 개방적이다.
◇ 세속주의에서 이슬람주의로, 과연 가능할까?
여기에 맞서는 현 친이슬람 집권세력은 경찰, 하급공직자, 시민단체, 언론이 뭉친 이슬람과 민주화운동세력의 연대라고 볼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를 지향하지만 이슬람 성격이 짙고 이념과 문화로는 보수적이다. 집권 후 신중산층과 이슬람 세력을 모아 체제를 굳건히 해 왔고 세속주의 일방으로 흘러 온 터키의 진로를 바꾸려고 한다.
그러나 터키 헌법은 정치에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고 국민 다수가 원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리고 의원 내각제로 대통령과 총리가 권한을 나누어 견제하고 균형을 잡아가도록 했다.
문제는 야당의 견제 없는 여당의 독주에서 시작된다. 2003년 기득권 엘리트 동맹을 물리치고 집권한 정의개발당의 에르도안 총리는 터키의 고도 성장을 이끌어 내며 높은 지지를 얻었다. 그리고 자신의 지지기반인 이슬람을 강화하려 한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슬람교도이지만 이슬람 전통적 가치에 충실한 이슬람 원리주의적 방식은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집권세력은 심야 주류 판매를 금지하고 공공장소에서의 남녀 간 애정 표시를 규제하는 등 방향전환을 꾀하다 반발을 샀다. 또 의원내각제를 대통령제로 바꿔 장기 집권도 노리고 있다.
시민들의 저항을 두고 대통령과 총리의 입장이 다르고 집권당을 이끄는 총리가 시위 배후에 불순세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배경은 이런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충돌과 민심이양은 10년 간 야권 견제가 미미한 채로 독주하다보니 벌어지는 상황이다. 퇴근 후의 술 한 잔, 남녀 간 애정표현, SNS를 사회악으로 규제하기에 터키 사회는 이슬람 전통가치관에서 너무 멀리 와 있다. 하지만 집권세력은 이를 읽지 못하고 있다.
보수적인 이슬람 문화로의 방향전환과 일방적 개발정책에 항의하는 반정부시위를 '독재 vs 반독재', '세속주의 vs 이슬람주의'의 충돌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 물론 앞으로의 사태 진전에 따라 반독재민주화 시위로 번져 나갈 가능성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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