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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11.03.05 00:22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5145934&cloc=olink|article|default

 

[BOOK] 천황주의 반대했지만 ‘학계의 천황’이라 불린 마루야마 마사오

 

전중(戰中)과 전후(戰後) 사이 1936~1957


마루야마 마사오 지음
김석근 옮김, 휴머니스트, 685쪽

 

 

조우석 / 문화평론가

 

일본의 정치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1914~96·사진), 역시 거물은 거물이다. 『전중과 전후 사이』는 그가 쓴 짧은 글 모음이지만, 20세기 일본의 지성을 대표하는 인물다운 글의 격(格)이 느껴진다. 때문에 강연·서평·신문기고 등 60여 꼭지의 글 하나하나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고, 매 꼭지에서 번득이는 그 무엇을 발견할 수 있다. 책의 부제가 ‘마루야마 마사오, 정치학의 기원과 사유의 근원을 읽는다’라며 묵직한 것도 그런 배경이다.

 일테면 『미국의 민주주의』로 유명한 프랑스의 알렉시스 토크빌에 대한 그의 짧은 언급이 인상적이다. 그에 따르면 토크빌은 “진짜배기”다. “어중이떠중이와 달리 진품”(621쪽)이라서 그를 자유주의자·보수주의자로 단정하는 게 바보짓이다. 후대 사람들은 얼핏 반동사상가로 보이는 그를 한 방울도 놓치지 않고 빨아들여야 하다. 헤겔·홉스 등 거물 역시 그렇다는 게 마루야마의 지적인데, 그것이야말로 마루야마를 대할 때 필요한 우리 자세가 아닐까?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민주주의의 이론적 리더로 급부상했던 그는 ‘학계의 덴노(天皇)’로 불린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 같은 이도 깍듯하게 존경한다. 『충성과 반역』『일본정치사상사연구』 등 묵직한 저술 등이 이미 국내에 소개됐기 때문에, 기회에 짧은 글 갈피에 스며있는 그의 인간적 목소리와 디테일을 접하는 것도 훌륭한 공부이리라. 새삼 재확인하지만 마루야마 자체가 토크빌의 경우처럼 여러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옮긴이의 말처럼 래디컬 리버럴리스트(진보적 자유주의자)이기 때문에 근대 시민의 정치윤리에 충실하다. 일본 특유의 파시즘적인 국체론(천황 중심의 초국가주의)에는 당연히 비판적이다. 동시에 마르크시즘 같은 이론신앙(마루야마의 용어임)이나, 극단적 투쟁에도 멀찍이 거리를 뒀다. 60년대 말 과격 학생운동에 나선 토쿄대생들이 그를 잠시 연금하기도 했지만, “비이성적 광란을 멈추라”고 호통을 친 것도 바로 그이다.

 마음이 편치 않은 건 두루 반복되는 메이지시대에 대한 그의 긍정이다. “메이지의 역사는 곧 나의 역사”라고 말했던 소설가 나쓰메 소세끼의 말을 언급하는데, 그게 마루야마의 속생각이다. 이토 히로부미가 죽었을 때 많은 급진 사상가들도 애도했다는 대목 같은 게 좀 걸린다. 확실히 일본 메이지와 우리의 구한말·일제강점기는 서로 극과 극을 달렸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의 실패한 근대화를 되비춰보는 거울로 딱 좋은 게 이 책이다.

 이 책에 유독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후쿠자와 유기치와, 우치무라 간조 두 사람이다. 후쿠자와는 메이지일본을 대표하는 저술 『문명론의 개략』으로 유명하며 현행 1만 엔 권 지폐의 초상화로 등장한다. 반면 함석헌이 스승으로 모렸던 우치무라는 그 시절 이례적으로 기독교에 입신해 국체론 교육에 반대했던 종교 사상가이다. 마루야마가 이 두 명을 메이지의 시대정신과 씨름했던 거인으로 받들며 분석하고, 또 천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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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2011-03-25 오후 6:15:43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10325153010

 

'사상 천황'은 '일본 제국'을 어떻게 지웠나?

[프레시안 books] 마루야마 마사오의 <전중과 전후 사이>

 

 

권혁태 /성공회대학교 교수 

 

마루야마 마사오(1914~1996년)의 <전중과 전후 사이 : 1936-1957 정치학의 기원과 사유의 근원을 읽는다>(김석근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가 '드디어' 출판되었다. 여기서 '드디어'라고 쓰는 것은 옮긴이 김석근이 해설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이 마루야마 생전에 단행본으로 출판했던 중요한 연구서 중에서 유일하게 한글로 번역되지 않았던 책이기 때문이다.

이미 <일본 정치 사상사 연구>(통나무 펴냄), <현대 정치의 사상과 행동>(한길사 펴냄), <일본의 사상>(한길사 펴냄),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문학동네 펴냄) 등의 책은 모두 김석근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따라서 이 책의 번역 출간으로 마루야마의 일본 사상 연구의 큰 줄기를 이제는 한국 독자들도 계통적으로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마루야마는 매우 논쟁적인 인물이다. 경력으로 보자면 그는 좋은 집안에서 자라난 전형적인 엘리트이다. 아버지는 유명 언론인이었고 자신은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쿄 대학 법학부를 거쳐 도쿄 대학 법학부 교수를 지냈다. 이런 성장 배경을 가진 그가 엘리트주의와 무관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동시에 엘리트라고 해도 일본이 겪은 시대의 풍랑을 비켜갈 수는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유물론 연구회'에 연루되어 경찰의 조사를 받은 적이 있는가 하면, 또 전쟁 말기에는 두 차례나 군인으로 소집되어 히로시마에서 피폭까지 당했다. 게다가 1960년대에는 전공투(전학공투회의) 학생들에게 감금까지 당했다. 시대의 최고 엘리트가 겪은 시대와의 불화는 그의 사상의 궤적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를 근대 부르주아 시민사회를 옹호하는 '근대주의자'라 비판한다. 우익들은 그를 "일본 해체를 꿈꾸는 반일주의자"라 비판한다. 탈식민주의자들은 그를 "국민주의적 내셔널리스트"로 명명한다. 평자도 이 입장에 가깝다. 하지만 그의 사망(1996년)을 보도한 언론들이 "전후 정신의 기둥", "전후 민주주의의 리더"라고 표현했듯이 일본의 전후 사회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지식인 중의 하나임에 분명하다.

옮긴이가 역자 후기에서 소개하고 있듯이 그를 일본에서 "학계의 천황"이라 부르는 것은 천황제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천황'이라는 존재를 권위와 권력의 결합이라 본다면, 그는 틀림없이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학계에서 독보적인 학문적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마루야마는 수없이 많은 비판에 시달렸지만 그 비판에 대해 응답한 적이 거의 없다. 그의 사후에 발견된 메모를 중심으로 출판된 <자기내대화(自己內對話)>를 보면, "내가 해온 지금까지의 학문에 대해 나는 단 한 번도 내 가슴을 찌르는 비판을 들은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듯이 그는 이런 비판에 대해서 침묵이라기보다는 묵살이나 무시에 가까운 태도를 견지했다. 그는 주위의 평가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스스로에 의해서도 독보적이었다.

<전중과 전후 사이>는 1936년부터 전쟁 기간 동안에 쓴 글 25편과, 전후부터 1957년까지 쓴 글 36편을 모아 1976년에 출판된 책이다. 마루야마가 후기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같은 시기에 쓴 글 들 중에서 <현대 정치 사상사 연구>, <현대 정치의 사상과 행동> 등에 수록된 글을 제외한 나머지 글들을 출판사 미스즈가 모은 것들이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면 마루야마의 저작이면서 미스즈가 편집한 책이라고 해도 좋다.

이 책이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나누어지는 전쟁 기간과 전후를 주제로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패전을 전후로 한 일본 사회의 '분기점'을 마루야마가 동시대 속에서 어떻게 호흡하고 사유하고 있었는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그러나 마루야마의 사상을 이 책만으로 정리하고 비판하는 작업은 용이하지 않다.

이 책에 추상도와 이론성이 뛰어난 학문적인 글들과 당면한 시대 상황을 비판적으로 언급한 에세이에 가까운 글들이 혼재되어 있다는 사정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사회철학자 나카노 도시오가 <오쓰카 히사오와 마루야마 마사오>(서민교·정애영 옮김, 삼인 펴냄)에서 정교하게 분석하고 있듯이 그는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책을 계통적으로 낸 적이 없다. 마루야마는 과거에 쓴 글들을 나중에 한권의 책으로 묶어내는 형태로 단행본을 출판했다. 게다가 새롭게 단행본을 묶어내면서 후기, 보기라는 형태로 자신의 생각을 다시 추가하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사후 해석'의 여지가 많다.

그렇다면, 이 책이 갖는 의미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역시 이 책에 실려 있는 '정치학에서의 국가 개념'이라는 논문일 것이다. 이 글은 마루야마의 첫 번째 논문으로 그가 대학 재학 중이었던 스물세 살에 썼다. 이 글은 도쿄 대학 법학부의 학생자치회가 발행했던 미도리카이(緑会) 논문집에 실려 있었기 때문에 1976년에 단행본으로 묶여 나오기 전까지는 쉽게 읽을 수 없었다. <전쟁과 전후 사이>에 실린 글들 중에 이 논문이 가장 논쟁이 되었던 것은 흔히 근대주의자로 알려져 있는 마루야마의 사고와는 다른 사유를 이 글에서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소 길지만, 논쟁이 된 마지막 부분을 책에서 인용해보자.

"전체주의 국가 관념이 세계를 풍미하고 있다. 하지만 그 핵심은 결국 표면상 배격하고 있는 개인주의 국가관의 궁극적인 발현 형태와 다르지 않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개인이냐 국가냐 하는 양자택일(Entweder-Oder)에 입각한 개인주의적 국가관이나, 개인이 등족(等族) 속에 매몰된 중세적 단체 국가, 양자의 기괴한 절충인 파시즘 국가관이 아니다. 개인은 국가를 매개로 하여 구체적으로 정립되며, 끊임없이 국가에 대해 부정적 독립을 지탱하는 관계에 서 있어야 한다. 게다가 이런 관계는 시민사회에 제약을 받고 있는 국가 구조에서는 도저히 생겨날 수 없다. 여기에 변증법적인 전체주의를 오늘날 전체주의로부터 구별해야 할 필요성이 나온다."

추상도가 높은 이론적인 용어나 글을 구체적인 시대 상황과 직결시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지만, 마루야마의 글들은 항상 시대 상황이라는 맥락을 고려해 매우 전략적으로 쓰인 경우가 많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따라서 그가 개인주의적 국가나 파시즘 전체주의와 대치시키고 있는 '변증법적 전체주의'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는 당시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힘을 얻고 있는 파시즘이 개인주의적 국가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주의적 국가의 귀결이라 보았다. 즉 한마디로 시민사회가 파시즘을 낳았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그가 상정한 것이 '변증법적인 전체주의'이며 이를 파시즘과 구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개인주의적 국가를 리버럴 국가라 한다면, 파시즘을 리버럴 국가의 '발전'된 형태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1940년 이후에, 특히는 전후에 펼치는 근대주의적 사유와 매우 대조적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변증법적 전체주의'가 무엇을 뜻하는가? 히구치 요이치 같은 헌법학자는 '변증법적 전체주의'를 루소적 자유주의로 해석한다.

혹자는 이를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지칭하는 것이라 해석한다. 실제로 마루야마는 '변증법적 전체주의'가 마르크스주의를 염두에 두고 사용한 개념이라고 그답게 1990년에 '사후 해석'을 덧붙이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 마루야마에게 "반일주의자=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싶어 하는 우파들의 언설은 논외라 하더라도 마루야마 사상의 계승자인 다구치 후쿠지도 이런 해석을 취하고 있으니 설득력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1930년대 후반이라는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새로운 해석을 시도해볼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근대 비판'이 전개되던 1930년대 일본의 지적 상황이 그 단서를 제공해준다. 서양과 동양을 대치시키고 투쟁과 대립을 서양적 근대의 필연적인 귀결로 인식하면서 근대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키워가던 근대 비판의 사고가 서양과 군사적 대립을 높여가던 일본 군국주의자들에게 사상적 안식처를 제공해주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마루야마가 말하는 '변증법적 전체주의'란 이런 근대 비판의 지적 풍토와 무관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 논문은 1940년 무렵부터 전개되는 근대주의자 마루야마의 사유와는 이질적인 사유공간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이 중요한 것은 단지 뛰어난 정치학의 고전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이 책을 비롯한 마루야마의 사상이 중요한 것은 일본의 전후 체제를 전전과 단절적으로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아니면 인식하고 싶어 하는가를 '전후 사상의 기둥'인 마루야마를 통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제국 질서(전전)와 냉전 질서(전후)는 단절되어 있지 않다. 서로 이어져 있다.

그러나 이런 연속에 대한 성찰적인 사유를 그의 사상에서는 읽어내기는 어렵다. 그의 사상에 식민지 인식이 통째로 빠져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의 사상을 읽을 때는 하나의 사상을 자기완결적인 구조로 이해하는 시점과 동시에 그의 사상이 당시의 사회 구조 속에서 어떻게 기능하고 작동하였는가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점이 요구된다. 마루야마 저작을 줄곧 번역해온 옮긴이 김석근의 앞으로의 연구에 이를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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