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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누가 ‘법치주의’를 뒤흔들고 있나 /이택광(경향신문20131108)

by 마리산인1324 2013. 11. 14.

<경향신문> 2013-11-08 21:13:2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1082113235&code=990100

 

 

누가 ‘법치주의’를 뒤흔들고 있나

 

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체코의 유태계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법학을 공부해서 1908년 보헤미아왕국 산재보험국에 취업했다. 보헤미아왕국은 독립 이전에 체코를 지칭하던 명칭. 그의 업무는 산재노동자가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 받을 수 있도록 법률상담을 해주는 것이었다. 폐결핵으로 그만둘 때까지 그는 이 일을 계속했다. 세인이 보기에 ‘좋은 직장’이었겠지만, 카프카는 그의 평생지기 막스 브로트에게 “부조리한 정부와 회사에 저항하기는커녕 보상금 한 푼을 더 받기 위해 비굴한 자세를 감추지 않는” 노동자들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한다.

법을 전공하고 법률 관련 일에 종사했기 때문에 카프카는 현실과 법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괴리를 잘 알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발 더 나아가서 부당한 대우에 항거하지 않게 보상금 몇 푼으로 노동자들을 달래는 사회복지제도의 보수성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고 할 수 있다. 사회복지에 대한 옹호를 좌파, 시장경제에 대한 지지를 우파로 분류하는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본다면 여전히 낯선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카프카의 시대를 뒤로하고 지금 여기로 와보자. 법무부가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해산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활동과 목적이 기본적으로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는 것인데, 법률적 타당성으로 통합진보당이 표방하고 있는 ‘진보적 민주주의’와 ‘민중 주권주의’를 거론했다. 전자는 북한의 건국이념이라는 것이고 후자는 ‘민중’만을 주권자로 인정함으로써, ‘국민’ 모두가 주권자라는 ‘국민 주권주의’에 반한다는 논리. 그러나 어렵지 않게 반박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한국 현대사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를 주장했던 이들은 여운형과 박헌영으로 지금 북한의 권력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인물들과 직접적 관련성을 찾기 어렵다. 심지어 박헌영은 한국전쟁 이후 북한 정권이 미국의 간첩으로 몰아 숙청했던 인물이다.

‘민중 주권주의’에 대한 해석은 법리적 차원을 넘어선 정치철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민중’이나 ‘국민’이라는 용어는 영어 ‘피플’(people)의 번역어이기도 한데, ‘인민’이라는 말을 북한이나 중국에서 사용했기 때문에 검열을 피하기 위해 사용했다. 그리고 이 말은 홉스나 루소 같은 근대 초기 정치철학자의 문헌에 등장하는데, ‘물티투도’(multitudo)의 상태를 벗어나서 근대국가를 구성하는 주권자라는 의미이다. ‘물티투도’와 달리, ‘피플’은 ‘늑대들의 투쟁’이라는 자연 상태의 공포를 벗어나서 생명을 보장받기 위해 국가와 계약을 맺은 ‘국민’이기도 하다. 따라서 ‘민중’이냐 ‘국민’이냐, 용어 사용을 놓고 북한의 ‘인민민주주의’를 추종하는 세력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정치철학용어에 대한 무지에서 기인하거나 아니면 외국어를 못하는 경우라고 볼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막연한 심증이나 용어법의 유사성만을 두고 통합진보당을 ‘자유민주주의질서’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단정해서 해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게다가 법무부가 해산의 당위성으로 거론한 것이 이석기 의원이 관여되어 있는 ‘RO사건’인데, 아직 재판에 계류 중인 사건에 대한 판정을 미리 내린 것도 그렇고, ‘RO사건’을 통합진보당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기 위한 증거도 여전히 부족한 상태이다. 이렇게 ‘법치주의’를 벗어난 무리수에 대해 보수 내부의 지적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카프카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가서 보면 사안이 명확해질 것이다. 카프카를 절망에 빠트린 것은 현실과 법의 괴리였고, 부조리한 법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순응하는 노동자들이었다. 법무부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지키기 위해 통합진보당을 해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일찍이 국가보안법 7조의 위헌요소 판결에서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 즉 반국가단체의 일인독재 내지 일당독재를 배제하고 다수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 자유·평등의 기본 원칙에 의한 법치주의적 통치질서의 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것”을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에 대한 위해로 규정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법치주의적 통치질서”를 혼란에 빠트리는 행위야말로 위해의 본질이라고 명시한 대목이다.

통합진보당이 ‘법치주의’를 실질적으로 뒤흔드는 행위를 했다는 구체적인 정황이 있는가. 오히려 이들은 자신들을 ‘상식적인 시민’이라고 강변하면서 ‘민주주의를 지키자’고 주장하고 있다. 카프카가 목격했던, 현실과 법의 괴리에서 법에 순응하는 노동자들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오히려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면서 헌법재판소마저 압박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법과 질서를 강조해야 할 우파들인 것처럼 보인다. 이 전도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한 나날들이다. 자유민주주의를 그토록 지키고 싶으면 최소한 기본은 갖춘 뒤에 질서를 운운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