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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시·글

[시] 흔들리며 피는 꽃, 담쟁이 /도종환

by 마리산인1324 2013. 11. 19.

 

도종환의 詩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 어디 있으랴
 
젖지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않고 가는 삶 어디 있으랴

 

 

담쟁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아홉 가지 기도 

 


나는 지금 나의 아픔 때문에 기도합니다.
그러나 오직 나의 아픔만으로 기도하지 않게 하소서
나는 지금 나의 절망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오직 나의 절망만으로 기도하지 않게 하소서
나는 지금 깊은 허무에 빠져 기도합니다
그러나 허무 옆에 바로 당신이 계심을 알게 하소서
나는 지금 연약한 눈물을 뿌리며 기도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남을 위해 우는 자 되게 하소서
나는 지금 죄와 허물 때문에 기도합니다
그러나 또 다시 죄와 허물로 기도하지 않게 하소서
나는 지금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모든 내 이웃의 평화를 위해서도 늘 기도하게 하소서
나는 지금 영원한 안식을 기도합니다
그러나 불행한 모든 영혼을 위해 항상 기도하게 하소서
나는 지금 용서받기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자 되게 하소서
나는 지금 굳셈과 용기를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더욱 바르게 행할 수 있는 자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