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04.01.3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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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의 주목할만한 발언들
'관권선거 우려' 추기경의 정치적 발언을 '우려'하며
- 지용민 기자 -
우리 사회가 자랑할만한 사회 원로는 정말 몇 사람 안 된다. 사람을 존중하는 풍토에 인색한 결과다. 그 몇 안 되는 원로 중에서 늘 선두로 꼽히는 인물이 김수환 추기경이다. 그는 한국 가톨릭의 수장이지만 종파를 초월한 사회적 존중을 받고 있다. 대통령 후보들이 찾아가 머리를 가장 많이 숙이는 사람, 현직 대통령 앞에서도 고언을 서슴지 않은 사람. 김수환 추기경이다.
1968년 서울 대교구를 맡게 된 김 추기경은 1971년 12월 영구집권을 노리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하자 TV로 생중계되던 '성탄미사 강론'을 통해 "지금도 대통령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데, 특별법을 만들면 국민과의 일치를 깨고 국가안보에도 위협이 될 것입니다. 이 땅의 평화에 해를 끼치지 않겠습니까"라고 그 당시로서는 매우 강도 높은 비판을 던졌다.
김 추기경의 시국 메시지는 전국을 강타했고, 폭압과 탄압에 짓눌려 있던 민중에게 단비와도 같은 시원함으로 전해졌다. 종교의 힘을 빌렸을지언정 그는 절대 권력을 향해 '해야 할 말'을 했던 것이다. 그 뒤로도 김 추기경은 목말라 하는 사람들에게 단비를 내려줬다.
1987년 6월 항쟁의 '메카(이슬람 제1의 성지)'는 단연 김 추기경이 관할하던 명동성당이었다. 전두환 정권이 학생들이 집결한 성당에 공권력을 투입하려 하자 김 추기경은 "맨 먼저 내가 거기 있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신부님들이, 그 뒤엔 수녀님들이, 그 뒤에 학생들이 있을 것"이라는 유명한 말로 공권력 침투를 막았다.
시사저널에서 매년 실시하는 '한국을 움직이는 인물 2003년'에서 김 추기경은 노무현, 최병렬, 이건희 다음으로 4위에 선정됐다. 질문을 바꿔 '한국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꼽는다면 압도적인 비율로 추기경이 수위에 오를 것이다. 종교적 권위에 사회적 발언권까지 갖춘 이 시대의 원로 중 원로가 김 추기경이다.
그런데 언론에 비친 김수환 추기경은 무서운 '반노'다. 추기경의 반 노무현 발언을 찾다가 포기했다. 너무 많아서였다. 2002년 12월 23일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올 김용옥과 가진 인터뷰 자리에서 대통령 당선자에게 축하할 말이 없냐는 질문에 추기경은 이렇데 대답했다.
"대통령 당선자에게는 축하할 말이 없어요. 당선이란 축하할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누구나 당선되는 사람들은 축하받을 말만 해왔는데, 여태까지 아무도 그 축하를 받을 만한 짓을 해온 사람이 없거든요. 축하는 당선자에게 할 것이 아니라 퇴임자에게 할 수 있어야 해요. 축하는 들어서는 자의 것이 아니라, 물러서는 자의 것이 되어야 한다 이 말이오."
후보 중에서 누가 당선될 것이냐는 짓궂은 질문에 "우리 같은 세대들은 노무현 후보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이후로 추기경은 어느 자리에서고 노무현은 불안하다는 말을 꼭 빼놓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와 같은 발언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2004년 1월 1일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노 대통령에 대해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말을 많이 하니까 그 분에 대해 될 수록 말을 아끼려고 합니다. 코드가 맞는 사람들은 대부분 386 세대를 비롯한 젊은이인데, 자신이 하는 일에 찬성하고 언론이나 기성 정치인은 자신을 비판하는 집단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한쪽으로만 기울어지고 자신도 모르게 다른 쪽을 배척하고 그러다가 편을 가르는 겁니다"라는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를 두 번 방문했다는 김 추기경은 인권문제 등이 아닌 조·중·동과 싸우지 말 것을, 더 나아가 조·중·동을 껴안을 것을 주문했다. 이에 노 대통령은 "껴안는 것은 강자가 할 수 있지 저는 약자입니다"라고 대답했는데 추기경은 이 말에 큰 충격을 받았고 기자들에게 "말문이 막혀 빤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노 대통령에 대해서는 이해의 폭이 넓지 않았다.
또 김수환 추기경은 '노 대통령 특유의 소신'에 대해 언급하며 "그의 소신이 나라와 민족을 그릇된 길로 이끌어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 정부에 대한 평가요청을 받을 때면 늘 "노무현 정부에 대해 아직도 불안한 게 사실이다. 처음에는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는데, 그 기대는 자꾸만 무너진다"고 대답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발언을 가장 반기는 부류, 한나라당과 조·중·동
김 추기경이 갖는 사회적 무게 때문에 그의 발언은 늘 언론에서 비중있게 다뤄진다. 특히 조·중·동에서는 사설에 이름을 실어 논평할 정도로 호의적이다.
2003년 6월 23일 김 추기경이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에 대해 강도높게 비판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중앙일보 '분수대'에서는 "그가 지난 23일 한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난국을 헤쳐 갈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추기경의 평소 말투라기엔 극히 이례적일 정도로 강한 표현이다"라고 인용해 대통령에 대한 공격의 소재로 삼았다.
중앙일보뿐만 아니라, 조선일보·동아일보에서도 '추기경'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이 게재됐다. 모두 추기경이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한 발언을 소재로 삼아 '그토록 민주화에 앞장서셨던 분이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할 땐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고 동일하게 노 대통령을 비판했던 것이다. 김 추기경이 노 대통령에 대해 비판 발언을 하면 1면의 주요 기사로 보도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노 대통령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추기경이 유독 한나라당측 인사에 대해서는 우호적이다. 이회창 후보에 대해서도 그렇고, 이회창 부친의 영결미사를 집전한 사람이 바로 김 추기경이었다.
최병렬 대표가 단식할 때 직접 찾아가 명분 없는 단식을 어렵게 이어가던 최병렬을 크게 격려하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2003년 10월 최병렬 대표는 국회 대표연설에서 "대통령 한 사람이 바로서면 다른 것은 저절로 된다라고 김수환 추기경께서 말씀하셨습니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회창, 최병렬, 노무현의 공통점은 모두 가톨릭 신자라는 것이고 차이점은 이회창, 최병렬은 독실한 신자이고 노무현은 1986년 부산 당감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으나 신앙 생활은 하지 않는 '냉담자'라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들어와서 김 추기경은 주목할 만한 발언을 꽤 많이 했다. 인터넷신문 업코리아 창간리셉션 자리에서는 '햇볕정책이 북한을 변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남남 갈등만 야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추기경이 '대결적인' 대북정책을 지지하는 것도 아닐텐데 의외의 발언이었다. 이뿐 아니라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 직후 추기경은 교황과는 달리 '파병 찬성' 입장을 보였고 그 입장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2004년 1월 29일. 정동영 의장을 비롯한 열린 우리당 지도부가 김수환 추기경을 예방했다. 이 자리에서 김 추기경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노무현을 비판했다.
▲ 4·15총선이 첫째 걱정인데, 신문지상에 자꾸 관권선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표를 많이 못 얻더라도 공명선거를 해야 국민이 결과를 신뢰한다. 행정력을 동원한다는 의심이 생기면 과반수 정당이 돼도 국민 안의 갈등은 계속 남아 정치개혁을 하기 힘들다.
▲ '국민참여 0415' 주축이 노사모라는데 사실이냐
▲ 민족공조를 강조해 어떤 것이든 좋다고 하면 안 된다. 남북문제를 풀어가면서 북한 인권문제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2003년 12월 18일 민주당 조순형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예방한 자리에서는 "대선자금 문제는 감옥갈 마음으로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며 노 대통령의 탈당으로 대선자금에 관한 한 자유로웠던 민주당 지도부를 격려했다.
2003년 7월 14일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 등 지도부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도 "요즘 경제와 안보문제로 국민의 걱정이 많은데 또 돈(대선자금)문제가 나와서 더 걱정스럽고 혼란스러운 것 같다. 정부는 국민을 안심시키는 모습을 보여야 하고 여야가 서로 협력해 나라를 구해야 한다"고 덕담을 나눴다.
그런데 왜 유독 우리당에 대해서는, 특히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는 덕담보다는 비판과 포기의 발언이 많은 것인지, 본인 스스로 보수주의자가 돼서 그런지 알 길이 없다. 또한 가톨릭 기도문에도 포함돼 있는 '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을 지향해야 할 추기경이 왜 '북한은 변하지 않고 있으며, 남남갈등이 문제'라는 식의 인식을 갖게 된 것인지 묻고 싶다.
김 추기경은 1922년생으로 올해 82세이다. 그 분은 한국에서는 유일한 추기경이며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한국을 움직이는 인물 4위에 기록되는 등 교파를 넘나드는 존경과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 추기경이 적어도 언론보도를 보면 역대 대통령 중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가장 비판하고 있다. 심지어 관권선거를 치를지도 모른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이러다 또 다시 시국 선언문이 낭독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면 기우일까.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됐지만 거대 야당으로부터 탄핵, 인정 못하겠다는 조롱을 받았으며 이 때문에 '선거는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라고 공개적으로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밝히기도 했다. 나라가 혼란스러운 건 사실이나 그 책임을 온전히 대통령에게만 돌리는 것은 합당한 것인지 묻고 싶다.
다소 혼란스러운 우리 사회에서 추기경 역시 혼란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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