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 이야기/세계

가깝고도 먼 ‘세 지붕’ 쿠르드족 /시사IN 20131206

by 마리산인1324 2013. 12. 8.

 

<시사IN> 324호  2013.12.06  09:06:40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8561

 

 

가깝고도 먼 ‘세 지붕’ 쿠르드족

‘중동의 집시’ 쿠르드족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터키 쿠르드 노동자당이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로 철수하고,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는 터키 정부와 손잡으려 한다. 여기에 시리아 쿠르드족이 변수로 떠올랐다.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쿠르드족은 3000만~3800만명이나 되는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나라가 없어서 ‘지구의 미아’나 ‘중동의 집시’로 불리는 세계 최대 유랑민족이다. 성경에 메데족으로 기록돼 있을 만큼 유구한 역사를 가진 쿠르드족은 1차 세계대전 이후 터키·이라크·이란·시리아 등지에 흩어져 살며 나라 없는 수난의 세월을 견뎌왔다.

그런 쿠르드족의 최근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먼저 터키에 사는 쿠르드족에게 큰 변화가 왔다. 터키는 쿠르드족이 가장 많이 사는 나라로 1500여만 명이 거주한다. 터키 쿠르드족은 쿠르드 노동자당(PKK)을 중심으로 1984년부터 분리 독립을 요구하며 터키 정부에 대해 무장 항쟁을 했다. 이 과정에서 터키인 4만5000여 명이 숨졌다.

이렇게 무려 28년을 끌어온 터키 정부와 쿠르드족 간 무력 대립은 지난 2월 쿠르드족 반군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이 정전을 선언하며 끝나가는 분위기다. 1999년 종신형을 선고받아 터키 이스탄불 인근 교도소에 수감된 오잘란은 20쪽에 이르는 평화안 로드맵을 직접 써서 자신이 지휘하던 쿠르드 노동자당에 보냈다. 이 평화안에는 쿠르드의 설인 3월21일에 정전을 선언하고 여름까지 무장을 해제하면서 터키를 떠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FP Photo</font></div>11월17일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의 마수드 바르자니 대통령(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터키 디야르바키르를 방문해 에르도안 터키 총리(맨 오른쪽)를 만났다.  
ⓒAFP Photo

 

11월17일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의 마수드 바르자니 대통령(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터키 디야르바키르를 방문해 에르도안 터키 총리(맨 오른쪽)를 만났다.

이에 화답하듯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도 쿠르드족 문제 해결에 중점을 둔 민주화 개혁안에서 쿠르드족의 정치 참여 기회를 넓히고, 사립학교의 쿠르드어 교육을 허용하겠다는 등의 방침을 밝혔다. 쿠르드 노동자당도 지난 5월부터 이라크 북부 칸딜산으로 철수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의 배경에는 이라크 쿠르드족이 있다. 이들은 이라크가 전쟁통에 정신없는 틈을 타서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KRG)를 강화하고 아르빌을 중심으로 치안을 확보해나갔다. 이들의 최대 재원은 석유였다. 쿠르드 지역과 키르쿠크를 중심으로 유전을 개발해 자체 재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송유관 관리권을 가진 이라크 중앙정부가 쿠르드 지역 석유 수출액의 83%를 가져가고 17%만 쿠르드 자치정부에 분배하기 때문에 경제성장에 제한을 받았다. 쿠르드 자치정부는 중앙정부가 지난해 5월까지 단 2차례 총 5억1400만 달러를 지급하고 지금까지 돈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불만이 많았다.

쿠르드 자치정부는 이라크 중앙정부의 손을 벗어나 독자적인 수출 루트를 원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터키였다. 쿠르드 지역과 가까운 이라크 북쪽 터키로 송유관을 건설하고 중앙정부와 상관없이 직접 석유를 수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터키의 골칫거리인 터키 쿠르드족을 어떻게든 해결해서 터키와 손을 잡아야 했다. 지난 11월17일,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의 마수드 바르자니 대통령이 터키 동남부 디야르바키르를 방문했다. 그가 터키 수도 앙카라를 방문한 것은 여러 번이지만 쿠르드족 중심 도시인 디야르바키르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에르도안 터키 총리와 회담을 하고 상호 간 협력 방안을 논의했는데, 특히 터키 정부가 쿠르드족 반군인 쿠르드 노동자당과 합의한 평화안의 이행을 전적으로 지지했다. 이는 쿠르드 자치정부가 터키로 석유를 원활하게 수출하기 위한 제스처로 해석되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9월29일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정부의 수도 아르빌에서 연쇄 폭발이 일어나 6명이 숨졌다.  
ⓒAP Photo
9월29일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정부의 수도 아르빌에서 연쇄 폭발이 일어나 6명이 숨졌다.

 

내전 틈타 자치정부 세우려는 시리아 쿠르드족

그런가 하면, 시리아의 쿠르드족은 그들 역사상 가장 극적인 순간을 맞았다. 시리아에서도 쿠르드족만의 자치정부를 세우려 하는 것이다. 무려 3년 가까이 끌고 있는 참혹한 시리아 내전이 이들에게는 기회가 되었다. 시리아 전체 인구의 10%가 쿠르드족이다. 내전으로 시리아 정부가 반군과 싸우느라 정신없자 쿠르드족에게도 숨 쉴 공간이 생긴 것이다. 내전 초기에 쿠르드족은 그들의 정당인 민주동맹당(PYD)이 중립을 선언하며 시리아 정부 편에도 반군 편에도 서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중반 정부군이 북동부의 쿠르드족 거주지역에서 철수한 이후 시리아 북부 쪽에 쿠르드 세상이 왔다. 이를 하늘이 내려준 기회라고 생각한 쿠르드족은 곧 자체 무장조직을 만들어 시리아 반군과도 전투를 벌였다. 쿠르드족은 시리아 북부 주요 도시인 라스알아인에서 반군에 참여한 알누스라 전선과 격전을 벌인 끝에 이 지역을 완전히 장악했다. 그 지역은 원래 시리아 반군이 장악했던 곳이지만 쿠르드족은 이곳을 접수해 반군인 자유시리아군의 깃발을 내리고 민주동맹당의 깃발을 올렸다. 최근 살레 무슬림 민주동맹당 대표는 내전이 끝나기 전에 시리아에 자치정부를 설립하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했다. 이제 시리아에도 쿠르드족 자치구가 생긴 것이다.

시리아 내전이라는 불행이 쿠르드족에게는 기회가 되어 ‘내전의 승자’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는 이라크 전쟁에서 수니파와 시아파가 싸우는 사이 이라크 쿠르드족이 북부 지역을 장악해 쿠르드 자치국가를 세운 과정과 흡사하다. 로버트 로 런던정경대(LSE) 중동센터장은 최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시리아 쿠르드족이 이런 수준의 자치권을 누린 적이 없다. 완전히 새로운 국면이다”라고 분석했다. 시리아에 쿠르드 자치정부가 공식 인정되면 이라크의 쿠르드 자치정부와 더불어 쿠르드족의 오랜 염원인 독립국가 ‘쿠르디스탄’ 건설도 현실화될 수 있다.

그러나 시리아에 쿠르드 자치정부가 생기는 것은 인근 국가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 터키에 상당히 위협적인 일이다. 시리아 쿠르드와 터키 쿠르드가 합동으로 터키에 대항하는 최악의 상황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터키는 시리아 동북부 일부 도시를 장악한 쿠르드족의 자치정부 설립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강경 대응에 나섰다. 당장 시리아 쿠르드족 민주동맹당 살레 무슬림 대표를 터키로 불러 따졌다. 또한 민주동맹당이 시리아에 자치정부를 수립하지 않도록 촉구하고 시리아 정부군에 대항하라고 주문했다.

시리아에게도 이 문제는 민감하다. 정부군과 반군 둘 다 전투에 바쁘고 나라가 초토화된 상황에서 이를 기회 삼아 쿠르드족이 시리아 내부에 나라를 세운다는 게 괘씸하기 때문이다. 쿠르드족은 시리아 정부군에게도 반군에게도 공공의 적이 된 상황이다. 미국도 쿠르드 자치정부 수립은 시리아 사태 해결에 부정적이라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11월13일 정례 브리핑에서 “시리아 내 쿠르드족 거주 지역에서 자치정부를 수립하려 한다는 보도와 관련해 우려를 표명한다”라고 밝혔다.



시리아에서 쿠르드족 자치국가가 생기는 것은 이라크 쿠르드족에게도 돌발 상황이다. 내전 초기 이라크의 쿠르드 자치정부는 쿠르드족의 보호를 위해 시리아 사태에 개입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같은 민족인 시리아 쿠르드족 편을 들었다. 그러나 시리아에서 쿠르드 자치정부가 생기고 이로 인해 터키의 심기가 불편해지자 상황이 달라졌다. 시리아 쿠르드족이 이라크 쿠르드족의 석유 수출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 쿠르드족 처지에서는 터키와 화해 모드를 만들며 석유 수출을 꿈꾸는 와중에 동족이 자신들의 발목을 잡는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처음 태도와 달리 이라크 쿠르드 대통령 마수드 바르자니는 “시리아 쿠르드 민주동맹당이 시리아 정부와 비밀 거래를 해서 자치정부를 설립하려 한다”라고 맹비난했다. 그는 지난해 7월 시리아에 있는 모든 쿠르드족 단체가 단일 행동을 하기로 합의했던 협약을 시리아 쿠르드족인 민주동맹당이 파기했다며 “불행히도 민주동맹당이 이 협약을 어겨 쿠르드족의 분열을 가져왔다. 이번 결정으로 쿠르드족이 위협받을 것이다”라고 비난했다. 같은 쿠르드족이지만 이제는 제각각 이해관계가 얽혀 서로 다른 입장이 된 것이다. 요동치는 정세 탓에 ‘쿠르디스탄’이라는 쿠르드족만의 독립국가 건설은 여전히 멀어 보인다.

 

-----------------------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8562

 

 

석유는 피보다 진하다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쿠르드족의 최대 관심사는 그들만의 ‘독립국가’ 건설이다. 그런데 근대 들어 그들이 독립국가를 세울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매번 인근 국가나 미국의 배신으로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이 벌어지고 나서 쿠르드족에게도 조금씩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는 이라크 중앙정부와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자치 구역을 평정해 나갔다.

이렇게 쿠르드족이 자신감을 가지고 그들만의 정부를 만들어 나가는 데는 석유를 수출하고 이를 재원 삼아 국가를 만들어가겠다는 포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달에는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가 터키에 석유를 수출하기 위해 두 번째 송유관을 건설할 방침이라는 기사가 터키 일간지 <휴리예트> 등에 나오기도 했다. 

첫 번째 송유관은 이라크 북부 키르쿠크에서 터키 제이한을 잇는다. 이번에 하라미 장관이 발표한 두 번째 송유관은 생산량 증가에 대비해 필요하다고 한다.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의 바르자니 대통령도 이스탄불을 방문해 에르도안 총리 등 터키 정부 고위 관리들과 만나는 등 터키와의 협력 모색에 집중하고 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8월15일 시리아 쿠르드인들이 이라크 쿠르드 자치지역에 들어와 구호기관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  
ⓒAP Photo
8월15일 시리아 쿠르드인들이 이라크 쿠르드 자치지역에 들어와 구호기관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 판국에 시리아 쿠르드족이 자치국가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이라크 쿠르드족에겐 황당한 일이다. 더욱이 시리아 쿠르드족도 시리아 북부에 있는 유전을 접수한 상황이다. 시리아 정부나 반군 모두 이 유전을 간수하기가 쉽지 않을 만큼 내전이 심해진 와중이라 시리아 쿠르드족은 아주 간단하게 이 유전을 얻었다.

문제는 이들도 여기서 나오는 석유를 수출할 루트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전쟁이 한창인 시리아 남쪽으로 석유를 가지고 내려갈 수도 없으니 자연히 북쪽인 터키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이라크 쿠르드족이 터키와 공을 들여 석유 수출의 길을 연 상황에 시리아 쿠르드족도 어떻게든 밥숟가락을 올려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당연히 이라크 쿠르드의 반대가 시작됐다.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의 총리실 관계자는 “지금 시리아 쿠르드인 민주동맹당(PYD)에 대한 이라크 쿠르드 정부의 분노가 엄청나다. 그들(시리아 쿠르드)은 터키와 우리의 상황을 전혀 고려치 않고 쿠르드족의 분열만 부추기고 있다. 시리아 쿠르드 자치정부 건설은 절대 안 된다”라고 흥분했다. 그러나 PYD 관계자는 “이라크 쿠르드 정부(KRG)는 자신들의 석유를 팔아먹기 위해 동족인 시리아 쿠르드의 아픔을 외면하고 있다”라며 맹비난했다. 석유를 두고 같은 쿠르드인끼리 이해관계가 얽혀 갈등이 일어난 것이다.

터키의 쿠르드 노동자당(PKK)도 상황이 곤란하다. 이라크 쿠르드 지역으로 근거지를 옮기고 평화협정을 이행하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지만, 시리아와 이라크 양국의 쿠르드족이 서로 불협화음을 내고 있어 향후 터키의 분풀이가 터키 쿠르드족에게 미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쿠르드의 봄’을 기대할 만한 호기에 쿠르드족이 석유 때문에 분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