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코 와 반제띠 / Sacco e (and) Vanzetti 리뷰 + 음악과 동영상모음
1971년/ 각본+감독: Giuliano Montaldo / 주연: Ricardo Cucciola +
Gian Maria Volonta / 음악: Ennio Moricone /120분
2000년에 개봉이 된 우리나라 영화의 제목이기도 했던
‘아나키스트‘(애너키스트- Anarchist)라고 하면
무정부주의자, 폭력 혁명가, 또는 테러 분자까지도
(백과사전에서는) 의미를 하고 있는데,
이 영화 제목 속의 두 실제 인물,
훼르디난도 니꼴라 싸코(Ferdinando Niccola Sacco. 1891-1927)와
바르토로메오 반제띠(Bartolomeo Vanzetti. 1888-1927)도
오늘날의 역사에는 일반적으로 ‘아나키스트’로 분류가 되어 있다.
그러나 한편, ‘역사의 순교자’로까지 묘사되고 있는 이 두 사람이
과연 ‘아나키스트’ 였었나 하는 점과
또 그들이 사형을 당한지 반세기가 지난 1977년에
미국, 메사추세츠 사법부가 그들의 무죄를 공개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싸코 와 반제띠의 관한 논쟁은 사상과 이념적으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역사에서 가장 요란하고 또 유명한 반공 운동으로 알려 진
1950년의 ‘매카시즘(Mccarthyism) 선풍’ 훨씬 전인 1920년대부터
미국은 이미 반공 정신이 싹텄다고 하는데,
이는 물론 1917년의 러시아 혁명으로부터 시작이 된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그 두려움(The Red Scare)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이념적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앨러지(Allergy)현상이
사회적으로 팽배해 있던 1920년 5월의 어느 화창한 날,
이태리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온 노동 계층,
싸코 와 반제띠가 체포 되는데,
같은 해, 4월에 있었던 어느 살인사건에서부터 이들에 관한 기구한 사연은
시작이 된다.
그리고 1927년 8월23일,
수많은 여론의 논쟁 속에서 7년 이상을 끌어오면서
말도 많았던 오랜 재판의 결과에 의해 이들은 함께 사형 집행을 당하였는데,
이 사형집행은 이후, 뉴욕, 런던, 빠리, 암스텔담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대도시와 또 남미의 수많은 도시들에서
무고한 이민자들을 사법 살인하였다는 대규모 항의 집회와 폭동을 유발하였다,
물론 이 재판이 정당하지 못한 점에 관한 논쟁은
21세기, 아직까지도 이곳저곳에서 여전하며,
이들에 관한 서적들만 해도 현재 약 50여종 이상이 출판되었다고 한다.
매사추세츠, 사우스 브레인트리(South Braintree),
1920년 4월15일 오후,
슬래터-모릴(Slater-Morrill) 구두 제조회사의 경리 직원인
후레데릭 파맨터(Frederick Parmenter)와
그가 수송 중이던 약 만 오천 달러의 급여 경비를 맡았던 보안요원,
알레산드로 베라르델리(Alessandro Berardelli),
두 명이 살해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을 한다.
그리고 같은 해 5월5일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는 뉴욕 주, 버팔로(Buffalo)에서
이들 두 명의 살인과 무장 강도혐의로
바로 싸코 와 반제띠가 체포되었는데,
체포 될 당시에 권총을 휴대하였다는 것 외에
따로 특별한 물적 증거가 있지는 않았었다고 한다.
훼르디난도 니꼴라 싸코는 17살 때(1908년) 이민을 온 구두제조 기술자였고,
바르토로메오 반제띠는 20살 때(1908년) 이민을 온 생선 장수였는데,
둘 다 이태리 출신의 유명한 공산주의 아나키스트,
루이기 갈레아니(Luigi Galleani. 1861-1931)의 열렬한 추종 무리
(갈레아니스트-무정부주의 전사들)의 일원이었고,
또 그들과 함께 많은 저항 운동에 관여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따라서 사건의 물적 증거보다는 이들이 공산주의자들이었고,
이태리 출신이란 ‘사상과 출신 배경’이 체포 정황의 우선이었다는 이 사건은
결국 7년 이상을 끈 기나긴 불공정 논쟁속의 재판으로 이어지고,
결국 싸코 와 반제띠는 1927년에 전기의자에서 세상을 하직하였다.
성직자들의 입회를 거부한 싸코의 마지막 말은
“아나키아 만세!”(Viva L'anachia!)였고,
반제띠는 “나에게 이런 짓을 하는 자들을 용서하고 싶다.“ 였었다고 한다.
2007년에도 ‘Sacco And Vanzetti ’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이 되었었지만,
1971년에 개봉이 된 이 작품이야말로 사건발생 반세기만에
다시 이들, 싸코 와 반제띠를
당시의 신세대들에게 유명인사로 부각시키는데 조금의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1960년의 영화계 데뷔 때부터
빨치산(Partisan)저항 운동을 주제로 한 작품부터 만들었다는
줄리아노 몬탈도(Giuliano Montaldo. 1930. 이태리)감독의
연출도 연출이었지만,
세르지오 레오네(Sergio Leone. 1929-1989)감독과 줄곧 협력을 해오면서,
영화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던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icone. 1928. 이태리)의
오리지널 스코어(OS)와 주제곡이야말로 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하였다.
동창 친구 사이였던 세르지오 레오네 와 엔니오 모리꼬네,
둘 다 젊은 시절에는 좌익 이념사상에 흠뻑 빠져있었다고 밝힌 적이 있었지만,
엔니오 모리꼬네에게 이 작품은 다른 작품들이 주는 의미 이상의
(이념적)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1960년대에 그가 들려주었던
서부영화들의 특이한 주제곡들과도 차원이 아주 다른, 완전히 새로운
(현실적인) 스타일의 모리꼬네 음악을 또 다시 선보였는데,
전체적으로 비장하면서도 때론 공포영화의 음악같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연출한 오리지널 스코어(OS)의 기본 컨셉은
바로 ‘전기의자의 공포’였었다고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사형대의 멜로디‘라는 부제도 붙였었다.)
한편, 멕시칸 이민 2세이면서 자유 민권운동가로 큰 활동을 하던 싱어 송 라이터,
조앤 바에즈(Joan Baez. 1941. 뉴욕)가
영화 내용에 걸맞게 OST 제작에도 참여를 하여,
‘The Ballad Of Sacco And Vanzetti’ 와
‘Here's To You’ 를
모리꼬네와 함께 만들고, 또 직접 불러 주면서
이 영화음악을 더욱 유명하게 하였다.
특히 제1 주제곡인
‘The Ballad Of Sacco And Vanzetti(La Ballata Di Sacco E Vanzetti)‘는
‘Introduction‘을 포함해 총 4부작으로 만들 정도로 긴 가사가 특징 인데,
이 가사들은 모두 싸코 와 반제띠의 실제 옥중서신(기도문 포함)에서
인용을 하였다고 한다.
“아버지여, 저는 (죄인 아닌) 죄인의 몸입니다.
두려운 건 나의 죄가 소문나는 게 아니라 잊혀지는 것이고,
단지 침묵만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
‘The Ballad Of Sacco And Vanzetti: Part 2’의 가사 첫 구절인데,
바로 이 ‘Part 2’가 바에즈가 부른 주제곡으로는
가장 널리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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