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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안녕들 하십니까" 다른 대자보 /클리앙20131213

by 마리산인1324 2013. 12. 17.

<클리앙> 2013-12-13 12:01

http://www.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25949302

 

 

"안녕들 하십니까" 다른 대자보

 



안녕하지 못합니다, 불안합니다.

현우를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돌아보니 저는 이 시대를 믿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말을 합니다.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대운하사업? 내부 양심선언이 나오고 전문가들이 반대할 때 그칠 줄 알았습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람이 24명이나 죽었으니 국정조사는 할 줄 알았습니다. 원자력? 일본에서 원전이 터지고 우리나라 부실원전은 전면 재검토할 줄 알았습니다. 시간강사? 학교에 텐트농성 2년이면 강사 임금 올려줄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솔직히 제가 대학 다닐 때 대선에서 부정선거를 목도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이 21세기에!! 대정부 투쟁, 정말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싸움, 이런건 옛날에 다 끝난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우린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입니다. 환상은 철저히 깨졌습니다.

100만명이 넘는 지지서명을 받은 KTX 민영화 반대 파업. 3만명도 안되는 회사에서에 3일동안 6748명을 직위해제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들립니다. "더 이상 개기면 사회에서 묻어버린다." 그들마저 사라지면, 우리에게 정녕 희망은 있을까요? 이후의 폭주를 막을 수 있을까요?

지금 이 시대를 믿을 수 있게 해주었던 사람들이 이젠 거의 다 쓰러져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이 불안이 쉽게 가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불안한 사람들,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이 뭉쳐 서로를 지켜주어야 안녕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안녕하지 못한 1인으로서, 토요일 오후 3시 이곳에서(정대후문), 서울역으로 함께 가기로 말입니다. 여러분도 안녕하시겠습니까?

07 철학 태경







즐거운 日記

나는 이 글을 쓰는 것이 즐겁습니다. 바로 어제 코레일 직원 807명이 직위해제 되어 일자리를 잃은 직원이 7000명이 넘어섰지만, 나는 이 글을 쓰는 것이 즐겁습니다. 국정원에서 121만 건의 트위터 글을 써서 선거개입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나는 이 글을 쓰는 것이 즐겁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어제 내가 안녕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제 침대에 누워 페이스북을 뒤적이다가, 친구가 공유한 어떤 선배님의 글을 보았습니다. 스마트폰의 번쩍이는 화면은 저에게 물었습니다. 너 지금 안녕하냐고, 정말 별 탈이 없느냐고.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다음 주가 시험기간이지만, 그래서 어서 잠들어야 했지만 도저히 잠에 들 수 없었습니다. 결국 뜬 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나는 안녕했던 사람입니다. 내가 입학하던 해 용산에서 여섯 명이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 교수님은 선배들은 그리고 친구들은 아무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 이렇게 사는가보다 생각했습니다. 나도 안녕했습니다. 그 해 5월에 전직 대통령이 바위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나는 그 날 괜히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안녕했습니다. 내가 훈련소에 있을 때 제주도의 강정마을이라는 곳에 해군기지가 들어섰습니다. 울면서 끌려가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불쌍했지만 어쩔 수 없는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안녕했습니다. 진보적이라는 시사주간지를 구독하고, 선거에서 야당을 찍고, 친구들과 낄낄대면서 대통령이 멍청하다고 욕하면서 나는 그래도 ‘개념 대학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세상에 나가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 그렇게 사는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있었어도, 지금까지 나에게 아무도 ‘너는 안녕하냐’고 묻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나는 내가 진짜 안녕한가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나는 안녕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시험을 치고, 영어를 공부해도 내가 사는 세상은 나아질 것 같지 않습니다. 내가 사는 세상이 곧 내가 살 세상이 될 것입니다. 내가 사는 세상이 지금 분명 안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안녕하지 않습니다. 술은 왜 먹을수록 무력해지고, 학년이 높아질수록 더 답답해져만 갔는지. 이제 좀 알 것 같습니다. 안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안녕한 척 해왔기 때문입니다. 부끄럽지만 나는 조그만 용기를 내어 고백하려 합니다. 나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는 것이 즐겁습니다.

2012.12.12. 우리학교 09 강훈구







<누군가 내게 안녕하냐고 묻는다면>

시국이 위기에 빠진 것을 알면서도,
세상과 나의 삶을 분리시킨 채 언제나 침묵했던
어제까지의 내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당장 내일까지는 살만할 것 같다고 자위하며,
오늘의 낭만에 빠져 살았던 내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것이 나의 잘못이라고 지적하지는 않겠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살라고 배웠으니까요.
그래서 꾹 참고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니까요.

이렇게 ‘나는 아직 안녕하다’며 자기최면을 거는 동안에,
나는 목소리를 낼 기운조차 잃은 것 같습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에도, 원전 비리에도,
4대강 사업의 뒷통수에도,
언제나 나의 삶을 이런 문제들로부터 격리시켜온 것 같습니다.
그저 사회가 나에게 요구하는 역할에만 목매온 것 같습니다.

정신차려보니 결국,
파업에 참가하는 6748명의 노동자가 직위해제 당하는
작금의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자본과 권력의 이해에 따라 불법/합법이 결정되는,
이에 대한 어떠한 저항도
불법으로 규정되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지경까지 밀려난 상황에서 누군가 내게 안녕하냐고 묻는다면,
안녕하지 못하다고 말하렵니다.
더 이상 나의 분노를 유예하지 않으렵니다.
이제 더는 물러날 곳도 없으니까요.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권력의 횡포로 점철된 ‘저 세상’과 결국엔 하나라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으니까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이
사실상 거짓이란 것을 알게 된 이상,
고착화된 사회의 메커니즘안에서 사태를 판단하고 순응한다면
저절로 자본과 국가권력을 옹호하는데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공공의 이익’이라는 위선 아래에서 횡포를 일삼는
자본과 국가권력에 나도 함께 저항하려 합니다.

따라서 저도 안녕하지 않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동참하려고 합니다.
입대를 앞둔 시점이지만
조금이라도 나의 목소리를 보태고자 합니다.
현실의 끈이 썩은 동아줄이라 할지라도,
누군가 내게 진정으로 안녕하냐고 묻는다면,
아직까지 희망의 끈은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함께 현실에 맞서 “노호”를 외쳤으면 좋겠습니다.

군입대를 앞둔 어느 사범대 11학번 학생







안녕들 하십니까!

공공산업의 민영화, 7608명의 직위해제, 밀양 유한숙 할아버지의 음독, 삼성서비스노동자의 자결, 줄어가는 일자리와 정리해고, 비정규직,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그리고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의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입니다. 이토록 하수상한 시절에 어떻게 안녕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단 하루의 파업으로 인한 철도 노동자 수천명의 직위해제는 너무나도 갑작스러웠습니다. 말도 안 되는 현실에 대한 분노로 나온 대자보 한 편이 우리에게 물었습니다. 안녕하지 못한 것이 과연 우리뿐이냐고. 그에 연이은 새로운 자보들과 새로운 사람들이 모여 12일 정경대 후문을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학우 분들은 80여개의 따스한 음료수와 수많은 핫팩과 간식으로 호응해주셨고, 아침 8시 20분 혼자로 시작했던 1인 시위는 언젠가부터 결코 혼자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학생들의 열기는 “고대 대자보”를 포털 싸이트 다음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올렸고, 경향신문, 조선일보 등 주요 언론에서 저희의 소식을 전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사회에서는 우리의 행동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시냐는 질문은 우리가 가진 불안을 절절히 공감하도록 했나 봅니다. 결국 우리는 확인했습니다. 더 이상 우리가 안녕하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외쳤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안녕하시냐고 묻지 않겠다고. 대신 왜 안녕하지 않은 지를 우리들이 직접 말하고 싶다고.

그리고 이제 안녕하지 못한 우리들의 행동이 시작됩니다. 우리의 행동은 지금의 부당함을 이야기하고, 억압에 대한 저항에 힘을 보태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14일 토요일 오후 3시, 고려대학교 정경대 후문에서 함께 모여 서울역으로 갑시다. 우리 모두의 안녕을 찾으러 갑시다.

- 안녕하지 못하는 사람들 일동






**고대 대자보가 붙은 이후 성균관대에서도 시작된 대자보**



<성균관 학우 여러분은 안녕들 하십니까?>

저는 오늘부터 안녕하지 않습니다.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 시험공부를 하다가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보니 ‘안녕들 하십니까?’라 는 문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내용은 주변의 문제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우리 사회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잘못된 것을 향해 잘못됐다는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수상한 시절을 살 아가고 있는 우리가 과연 ‘안녕한지’ 묻고 있습니다. 글을 읽고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또 펜대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휴대폰 알림이 울립니다. 860명의 철도노동자들이 또 직 위해제되었다는 속보입니다.

문득 처음 성균관을 들어설 때가 생각납니다. 저는 입학할 때부터 안녕하지 못했던 사람이었 습니다. 입학하기 전, 광화문 한복판에 세워진 컨테이너 산성과 국민들이 든 촛불에 쏘아지던 물대포를 보며 저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입학하던 해 겨울, 용산에서 여섯 명의 철거민이 불에 타 죽는 것을 보며 이 세상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그해 여름, 평택 쌍용자 동차 공장에서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모습을 보며 이 세상 무엇인가가 잘못됨 을 확신합니다. 이렇게 잘못된 현실에 맞서고 이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이러한 작은 힘이 모인다면 언젠가 세상은 바뀔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습 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은 높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번번이 좌절되곤 했습니다. 과연 내가 믿고 있는 생각이 맞는 것인지 스스로 의심하기 시작했 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군 복무 후 복학을 하면서 과거의 나를 세탁하고 어느새 안녕 하고자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당장에라도 스펙을 쌓고 학점 관리를 잘한다면 좁은 경 쟁의 문을 뚫고 성공할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언젠가 대성로에 취업 또는 고시 합격생 최 종학을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휘날릴 것이라 믿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너무도 안녕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세상은 안녕하지 않은가 봅니다.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한 대통령 선거에서 국 가기관이 개입했다는 증거가 계속 발견되고 있고, 참교육에 힘쓰시던 선생님들은 전교조를 지 키기 위해 학교가 아닌 거리로 나와야만 했습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키고자 하는 비정규 직 노동자들의 노력은 갑의 횡포에 수포로 돌아가고, 민영화에 반대하며 파업에 나선 7,000여 명의 철도노동자들은 불법 파업이란 낙인과 함께 직위해제를 당했습니다. 상식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지고 있는 시절입니다. 그간 안녕하지 못한 세상을 보면서 안녕하고자 했던 제가 부끄 러워집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안녕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복학하고 일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안녕한 사람으 로 지내고자 노력해 왔었던 제 모습이 부끄러워지기만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용기를 내 어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에 답하고자 합니다. 저는 오늘부터 다시 안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안녕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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