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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선녀 이야기/마리선녀 철학

철학의 새로운 독자들Les nouveaux clients de la philo/ Le Monde, 26.06.2012

by 마리산인1324 2012. 8. 12.

naver 블로그 <물질문명>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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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Le Monde 26.06.2012

http://www.lemonde.fr/culture/article/2012/06/25/les-nouveaux-clients-de-la-philo_1722708_3246.html#xtor=AL-32280270

 

 

  르 몽드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려 번역해 보았다. 철학의 나라, "철학이 종교를 대체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인 프랑스도 인문학 위기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기사이다. 


  읽고 나서 몇 가지 생각이 들었다. 먼저, "분과학문"화 된 여러 인문학은 19세기 말-20세기에 그것이 획득한 바 있는 유례 없는 영향력을 점점 상실하고 있다는 것. 분과화, 자율화가 심화되면 학문은 점점 더 '세계'가 아닌 자기 자신의 역사(철학사, 문학사 등등)를 1차적 작업대상으로 삼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부르디외가 "예술의 규칙"에서 잘 보여주었듯, 이와 같은 장 내부로의 접힘은 장의 고유한 역사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 장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 강력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즉, 철학사나 문학사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이들은 현재 장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논의(장 내부의 코드들과 역사를 암묵적으로, 하지만 끊임없이 참조하면서 이루어지는)들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논의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는 것. 따라서 전문가가 아닌 대중 독자는 점점 더 이 학문들과 멀어지게 된다. 


  프랑스에서 인문학에 그 권력을 쥐어준 이들은 다름 아닌 60년대에 새로이 형성된 광범위한 대학생층, 68 혁명의 주동자였던 새로운 세대의 학생들이었다. 분과 학문화가 심화되면서, 이와 같은 종류의 대중 독자층은 이 기사에서 언급되고 있는 새로운 "대중 철학자들"(철학사를 알지 못해도 이해할 수 있는, 삶, 사랑, 죽음 등에 대한 철학적 에세이를 저술하는)을 향해 이동했고 아카데믹한 철학은 전문가들의 이너서클로 변모했다. 


  또한 경제 영역에서 가해지는 지속적인 압력 덕택에, 취업로가 보장되지 않는 철학과는 점점 그 학생들을 잃고 있다. 6-70년대에 프랑스 학생들은 철학을 전공하고 대학 생활 내내 시위에만 참여해도 졸업 후에는 쉽게 취업할 수 있었다. 게다가 프랑스의 인문학적 전통은 (고등사범학교로 대표되는) 인문학 전공생에게 사회적 엘리트라는 후광을 부여한 것도 사실이다. 이제 그러한 시대는 지났다. 고도로 분업화 된 경제영역은 대학에 각 분야에 특화된 스페셜리스트들을 공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 특성상 제너럴리스트의 양성(유럽적 표현을 따르자면 "시민 양성")에 보다 친화적인 인문학과들은 기업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인력시장이 아니다. 분과 학문화가 심화되면서 인문학부는 철학 스페셜리스트, 문학 스페셜리스트들을 키워냈으나, 철학 스페셜리스트는 학교라는, 매우 한정되어 있으며 매우 경쟁이 치열한, 공간만을 직업 영역으로 삼을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알 수 없는 것은, 철학이 혹은 인문학의 여러 과목이 고립된 분과학문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소통에 나선다면 과연 그 힘을 회복할 수 있을지의 여부이다. 나는 부정적이다. 분과 학문화는 인문학의 위기를 심화시킨 요인일 뿐, 그 근본적 원인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라타니 고진이 "근대문학의 종언"에서 문학을 두고 이야기한 바를 인문학 전반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역사적 국면이 변한 것이지 특정 학문들이 저지른 실수들로 인해 위기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한 국면에 맞추어 새로운 형식을 발명해야 할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같은 영광을 회복할 수 있다는 말도 안되는 기대는 버리고, 새롭게 주어진 국면에 어느 정도나마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발명하는 것 말이다. 현재와 같은 심화된 분과 학문 체제에서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느껴진다. 이건 전공자이기 이전에 독자이자 소비자로서 하는 말이다. 나는 여전히 인문학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소비자임에도 불구하고, 분과 학문 체제의 강한 영향력 아래서 쓰여진 글들은 전혀 읽을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나조차 이럴진대, 도대체 누구를 독자로 삼아 논문들은 쓰여지는 것이냐는 말이다


                                                                                                                                               


철학의 새로운 독자들

(Les nouveaux clients de la philo, Le Monde, 26.06.2012) 


(원문링크 : http://www.lemonde.fr/culture/article/2012/06/25/les-nouveaux-clients-de-la-philo_1722708_3246.html#xtor=AL-32280270 )



철학 과목이 바칼로레아의 시작을 알렸다. 6 18 월요일, 네시간에 걸쳐 50만명 가량의 고등학생들이 ≪ 시험의 여왕 ≫이라 불리는 철학 논술 시험을 치렀다. 철학 논술 시험은 프랑스적 특수성 하나이다. 철학을 중등 교육 과정의 최종 시험에 포함시키는 나라는 프랑스 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칼로레아 시험을 넘어서 살펴보더라도, 자크 루소 탄생 300주년을 기념하고 있는 프랑스에서 철학은 다시 붐을 맞고 있다고 있다.  15 가량 전부터,  대담과 토론은 항상 만석을 이루고 있었고, 대중들은 끊임없이 철학자들 그들의 판매부수를  보고 소설가들은 질투로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 대화를 나눌 기회를 찾아다니고 있다.


 

프랑스 중등 교육의 상징, 바칼로레아 시험


이와 같은 ≪ 대중 ≫ 철학의 호황은 대학에서 철학이 겪고 있는 비참함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 학생수의 부족, 불확실한 취업 진로,  폐지 위기를 겪고 있는 학과들... 이와 같은 심각한 간극은 철학이 종교를 대체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프랑스의 이미지를  일부 혼란에 빠뜨린다.


고등학교의 예를 들어보자. 프랑스에서 철학은 졸업 과정에 있는 50만명의 학생들과  그랑제꼴 준비반에 있는 8만명여의 학생들이라는 노예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철학 과목이 중등교육 과정에 도입된 19세기 이래 지속되어 왔다.  자신들의 의견을 차분히 숙고하여 투표할 있는 미래의 시민들을 교육한다는 이념과 함께 말이다. 헤겔의 친구이자 공공교육 장관이었던 철학자 빅토르 쿠쟁(Victor Cousin) 논술시험을 철학과목 평가에 있어 최상의 시험으로 격상시킨 역시 시기였다.


이후 학생들에게 ≪ 사리 판단에 있어서의 성찰적 훈련 ≫ 교육한다는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 되었다. 이데올로기는 예컨대 이탈리아의 경우처럼 철학사에 대한 지식들을 과시하는 것보다, 학생들이 ≪ 스스로 생각하는  ≫ 높은 가치를 부여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기조는 점점 지탱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것이 이상 학생들에게 매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학생들은 철학 수업으로 인해 낙심하고, 이상 수업을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며, 지루해하고, 철학을 그들의 실제 삶과 지나치게 유리된 학문으로 여긴다. , -이는 중요한데- 교사가 학생들에게 적합한 낱말들을 찾아내는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경우 철학 과목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 있다.


이전에 철학 과목 수석 감독관이었던 루이 푸와리에(Jean-Louis Poirier) ≪ 2007-2008 프랑스에서 철학 교육의 현황 ≫이라는 자신의 보고서 -졸업 준비반과 그랑제꼴 준비반에서 가르치고 있는 5-6000 가량의 교사들 사이에 논쟁을 불러 일으킨- 에서 그와 같은 사실을 확언한 있다. ≪ 상당한 수의 학생들이 철학의 해방적 측면에 대해서 완전히 무관심하다는 , 학생들이 철학을 모든 측면에서 시대에 뒤쳐진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교육부 장관인 뱅상 페이용(Vincent Peillon) -그는 우리의 질문에 대답하기를 거부했다- 전임자 하나인 페리(Luc Ferry) , 고등학교 졸업반은 여전히 ≪ 시민 교육 과정 ≫으로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평가 학생들에게 자의적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는- 문제는 여전히 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


사르셀 고등학교 교사인 세실 빅토리(Cecile Victorri) 상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학생들은 철학을 지나치게 어려운 과목으로 간주하고, 이상 앞으로 나갈 없다고 여긴다. 그들이 철학적 언어나 코드들을 모를 경우에는 더욱 그렇게 느낀다”. 파리의 젊은 철학교사인 프레데릭 뒤팽(Frederic Dupin) 다음과 같은 놀라운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가 학생들에게 철학의 목적은 그들을 일반적 견해로부터 해방시켜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자, 학생들은 자신들은 일반적 견해에 동의하며, 거기로부터 해방되어야 이유를 찾을 없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이와 같은 어려움은 세대의 교사들이 다음과 같은 가지 태도를 취하도록 만들었다절망적인 저항, 혹은 대학으로의 도피”.


세기 동안 손대지 않은 남겨졌던 철학교육을 발전시키기 위한 조치 하나는 철학을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나아가 1학년때부터 가르치자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제안은 이미 30여년 전에 ≪ 철학 교육에 대한 연구 모임(Greph) ≫ - 모임은 철학자 전국 회의에 이어 창설되었으며,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모임의 핵심 인물이었다- 의해 제기된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변화는 2011 9월에 들어서야 공식화 되었을 뿐이며, 게다가 조치의 시행은 학교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


계획은 철학사를 가르치기 보다, 철학이 아닌 다른 과목 수업들 속에서  ≪ 목적성을 가진 개입들 ≫ 실천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확률에 대한 수학 수업 도중에 철학 교사가 우연의 개념에 대한 강의를 행하는 방식이다. 최초로 얻어진 결과들은 그리 대단하지 않으며, 이와 같은 영토 확장의 혁명적 성격을 판단하기에는 아직 시기 상조이기도 하다.


적어도 고등학교에서는, 철학 과목이 의무적 성격으로 인해 보호되고 있다. 하지만 대학에서 상황은 더욱 나쁘다. 강의실은 해마다 비어가고 있다. 관련 학과들은 살아남기 위해 잔꾀를 부려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중전공(철학-문학, 철학- 그리고 철학-역사) 대해서는 이상 말할 것도 없다. 68 5 이후 저항적 철학의 본거지였던 낭테르 대학은, 대학 출신의 ≪ 철학자 ≫들이 감소하는 것을 목도했고, ≪ 인문학부 ≫라고 이름 붙여진 상호학제적 학부를 출범시켜야만 했다. 낭테르 대학 학장인 프랑수아 발로드(Jean-Francois Balaude) 다음과 같이 말한다. ≪ 1990년대에, 우리 대학 철학과는100명의 신입생을 받았습니다. 이후 숫자는 50명으로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3 전부터 학생수는 다시 증가하고 있습니다 ≫.


다른 대학들에서 철학 교육은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렝스 대학의 예를 들어보자. 철학과 학과장이자 교수인 베로니크 (Veronique Le Ru) 다음과 같이 인정한다.  ≪ 1학년에서 3학년까지를 포함한 80명의 학생으로는 수지가 맞지 않습니다. 우리는 학과 폐지를 막기 위해서 분투하고 있습니다 ≫. 렝스 대학은 철학과 학생들을 철학과 통신교육과정과 합병하는 동시에 렝스 고등교육학교와, 그리고 의학부와 협정을 체결했다. 니스에서도 역시 대응책이 요구되었다. 니스 대학의 미카엘 비지우(Michael Biziou) 교수는 ≪ 우리는 학생들이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 지나치게 전문화된 철학과정을 폐지해야만 했습니다 ≫라고 말한다.


몽펠리에 3대학 학장인 안느 프라이스(Anne Fraisse) 말에 따르면, 다른 분과와의 통합 전략은 그것이 부조리한 것은 아니더라도-  분명히 철학 교육을 약화시켰습니다. (예컨대) 의학적 윤리를 찾고 있는 의사들에게 철학교육을 하는 , 이건 철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 ≫. 코린 펠뤼숑(Corine Pelluchon) 이와 같은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푸아티에 대학 교수이자 생명윤리 전문가인 그는 이렇게 말한다. ≪ 텍스트에 대한 엄격함을 유지하면서도 의사들에게 강의를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


재미가 없다는 것이 학생들의 무관심을 설명하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과장 없이 말해서, 철학 석사학위는 취업로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다. 교직을 소명으로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있어서도, 그들에게 제공될 중등교원, 고등교원의 정원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2002년에서 2011 사이에 중등교원, 고등교원 자격시험 지원자는 1102명에서 442명으로 줄었고, 합격자 정원은 82명에서 43명으로 줄었다. 고등교육자격시험 심사장이었던 드니 캉부쉬네(Denis Kambouchner) 거기에 다른 설명을 덧붙인다. ≪ 진정으로 재능있는 지원자들의 수는 이전에 비해 훨씬 적어졌습니다. 최고의 인재들은 다른 직업에 끌리고 있습니다. ≫.

 

올리비에 제라니앙(Olivier D’Jeranian) 그를 가르친 선생님의 카리스마에 힘입어 고등교원 자격증을 획득하는 성공했다. 젊은 교수자격자는 로얄 로드라 있는 고등사범학교가 아니라 일반 대학 출신으로서 시험을 패스했다. 그는 거의 자연재해에서 생존해 돌아온 이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 학부 때와 석사 환멸이 찾아옵니다. 포기하는 학생들의 수는 어마어마 합니다. 자격시험은 철학을 메마른 것으로 만들어요. 년이 지나면, 학생들은 이대로 가면 아무 것도 안될거라고 말하며 다른 길을 찾아볼 밖에 없게 됩니다 ≫. 석사 2학년 , 일반 대학 출신으로서 교원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이는 2-3 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고등사범학교학생이나 고등사범학교 준비생들이었다. ≪  같은 처지의 학생 교수자격시험을 통과한 것은 밖에 없습니다 ≫라고 그는 말을 맺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떠나 대중적 영역으로 가보면, 철학은 앞에서 말한 바와 반대로 매우 지내고 있다. 라디오  France Culture에서 방송하는 ≪ 지식의 새로운 길들(Les nouveaux chemins de la connaissance ) ≫ 인기는 폭발적이다. 매달 43만명이 방송을 다운로드하고 있다.  2011년부터 라파엘 앙토벤(Raphael Entohven) 뒤를 이어 방송진행을 맡고 있는 아델 리스(Adele Van Reeth)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우리 방송은 France Culture 팟캐스트 방송 중에 1, Radio France 전체 방송 2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철학을 통해 우리가 모든 문제를 다룰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명확하게 말해진다는 조건 하에서 말이지요 ≫.


 

France Culture의 라디오 방송 "지식의 새로운 길들"



페리(Luc  Ferry), 앙드레 콩트-스퐁빌(Andre Comte-Sponville), 미셸 옹프레(Michel onfray) 같은 철학자들 신문, 잡지, 텔레비전에 종종 등장하는- 저서를 출판하는 출판사들은 매우 만족해 한다. 그라세(Grasset)에서 출판된 미셸 옹프레의 ≪ 무신론 개론(Le Traite d’atheologie) ≫ 22만부가 팔렸고, ≪ 우상의 황혼(Le Crespucule d’une idole) ≫ 12만부가 팔렸다. 플롱(Plon) 에서 출판한 페리의 대중적 저작, ≪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Apprendre a vivre) ≫ ≪ 신화에서 배우는 지혜(Sagesse des mythes) ≫ 각각  24 , 10 부가 팔렸다. 알뱅 미셸(Albin Michel) 출판사에서 나온 앙드레 콩트-스퐁빌의 가장 성공을 거둔 저작인 ≪ 무신론의 정신(L’Esprit de l’atheisme) ≫ 11만부가 팔렸다. 다른 증거로, 월간지 ≪ 필로조피 매거진 (Philosophie Magazine) ≫ 예기치 않은 성공 역시 거론할 있다. 2006년에 출범한 잡지는 2011년에 45,831부를 판매했다. 잡지는 또한 독일에도 수출되었다.



 

뤽 페리(좌)와 미셸 옹프레 (우)


이와 같은 출판적 성공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페리, 앙드레 콩트-스퐁빌, 미셸 옹프레, 심지어 알랭 바디우(Alain Badiou) –그의 몇몇 저작에 있어- 등은 , 사랑, 죽음 등에 대해 열심히 글을 씀으로써 대중들을 끌어 들였다. 페이지 밑에 적힌 많은 끔찍한 주석들 없이 말이다. 철학자들은 분명히 철학이 사회적 문제들 혹은 모든 이들과 관련되는 다른 문제들과 공명하도록 만들었다.  철학잡지 ≪ 에스프리(Esprit) ≫ 최근 호에서  철학자 Michael Foessel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 거대한 사변보다 개인의 발전과 친화적인 철학적 저술들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은, 사회 속에서 증대해 가는 전문가들의 역할에 반대하는 여론의 일시적인 반란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다.


완전한 질투지요!”, 자신의 전문성과 그의 대학교수 지위를 내세우며 페리는 분개한다.  “우리는 미디어 친화적인 일군의 지식인들과는 다릅니다”.  그가 , 대중적 철학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그는 고독한 늑대로서의 철학자라는 이미지는 비교적 짧은 기간, 1850-1970년대에만 적용될 있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 (고독한 철학자라는 이미지는) “철학자라는 형상이 아방가르드라는 형상과 뒤섞였던 시기에만 적용가능한 이미지라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 시기를 제외하면, 철학자들은 언제나 유명인들이었습니다. 볼테르는 부자이자 유명인이었고사람들은 루소가 길을 가면 그를 알아 정도 였습니다. 과거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낸 것은 앞에서 말한 아방가르드로서의 철학자들입니다.” 

  

게다가, 베스트셀러 철학은 이상 프랑스만의 현상이 아니다.  젊은 독일인인 리하르트 다비드 프레히트(Richard David Precht) 역시 독일에서 수십만 독자의 호의를 받고 있다. 영국에서 알랭 보통(Alain de Botton) 그렇고, 스페인에서 페르난도 사바테르(Fernando Savater) 그러하듯 말이다.


 

뭐 다 알겠지만, 알랭 드 보통(좌)과 페르난도 사바테르(우)


철학 나가는 철학과 위기의 철학- 사이의 장벽은 공고해 보인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전자의 철학이 후자의 철학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교육자는 철학 문외한을 만난 적이 있는데, 미셸 옹프레와 그의 텍스트들 종종 전통을 신랄히 비꼬는- 영감을 받은 사람은 입문 과정으로서 플라톤이나 칸트를 읽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왜나하면 플라톤은 ≪ 전체주의로 이끌고 ≫,  칸트는 ≪ 나치에 영향을 주었기 ≫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또한 철학이 삶에 어떤 의미를 있다는 관념 자체에 단호히 반대한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전문가이자 철학 국제 학교(College international de philosophie) 학장인  마티유 포트-본느빌(Mathieu Potte-Bonneville), 서점에서의 성공은 ≪ 철학의 비판적 차원 ≫ -, 사회적 요구에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 교란하고 전복시켜야  ≫- 약화시킨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직업적 철학자들 역시 대중적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그들은 점점 만남의 자리, 축제, 20 전부터 지속적으로 수가 증가해 대중독자와의 토론 등에 참여하고 있다. 반대로, 1990년대 이래 급증했던 ≪ 철학 카페(cafe philo) ≫ 활기를 어느 정도 잃고 있으며, 이상 학교 교육에 대한 대안으로 여겨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철학 카페에서  하는 일이란 단지  상반되는 의견들을 대립시키는 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2008년부터 ≪ 협약 대학(Universite conventionnelle) ≫ 하고 있는 일은 정확히 반대이다. 대학은 파리 북동쪽 지역의 많은 장소에서 무료이면서 모두에게 개방된 저녁 철학 수업을 행하고 있다.  수강생들은 많지 않지만, 면면은 종업원에서 기업 고위 간부까지, 아무런 학위도 없는 이로부터 대학 학위 소유자까지를 포괄하고 있다. ≪ 협약 대학 ≫ 사이트에는 매일 300명이 방문하고 있으며, 자유롭게 접근할 있는 강의 파일들은 1000-2000건의 다운로드 수를 기록하고 있다. ≪ 철학은 인내와 고유의 규율들을 전제하는 학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통 사람들이야 말로 장애물을 제거하기 가장 좋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학의 직업적 요구 사항들이나 지식인의 허영 요소로 인해 많은 명민한 지성들은, 실제로는 손쉬운 편의주의나 집단적 정념에 양보하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은 자유롭게 사고하고 판단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되지요- 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라고 프레데릭 뒤팽(Frederic Dupin, 협약 대학 책임자) 말한다 

  

15 전부터 (Lille)에서 열리고 있는 시테필로(Citephilo) 축제 역시 지식에 있어서의 엄격함과 접근성이라는 가지 요구를 결합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행사 책임자인 질베르 글라스망(Glibert Glasman) 레옹 위즈니아(Leon Wisznia)  ≪ 우리는 결코 손쉬운 철학에 양보한 적이 없습니다 ≫라고 말한다.


오늘날, 아카데미적 철학의 전파는 점점 인터넷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인터넷은 블로그들, ≪ 관념들의 (la vie des idees) ≫ 같은 사이트들, 온라인 잡지 (Cairn 같은 포탈을 통해 접근가능한) 등으로 가득하다. 마찬가지로, 1901년에 창설된 존경할 만한 철학 협회(Societe de philosophie)” –카트린 킨즐러(Catherine Kintzler) 주도 하에- 역시 점점 상에서의 텍스트 생산에 집중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열기에도 불구하고, 대중 철학의 소비자들은 전문 연구자들을 자극하는 흐름들이나 논의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 채로 머물러 있다. 20여년 부터 대학에 안착하기 시작한 ≪ 분석 철학 ≫ 예를 들어 보자. 분석 철학은 플라톤이나 데카르트, 칸트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영미권의 유수한 대학들 내에서 크게 발전해온 학파는 형이상학적인 대상에 몰두하거나 ≪ 존재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는 ≫(마르틴 하이데거) –, ≪ 대륙 ≫ 철학이 지난 세기 동안 해온 - 거부한다. 분석철학의 목적은 배타적으로 언어적 논증에만 관심을 쏟는 있다.


프랑스에서 분석철학을 이끌고 있는 이들 자끄 부브레스(Jacques Bouveresse), 파스칼 엥겔(Pascal Engel),  뱅상 데콩브(Vincent Descombes) - 오랫동안 지배적인 ≪ 대륙 ≫ 학파들-현상학(후설, 하이데거)이나 정치철학(토크빌, 찰스 테일러)- 비해 주변적 위치에 머물러 있는 보였다.  분석 철학의 침공에 대한 비판 역시 없지 않았다. 파리 4 대학의 피에르-앙리 타보와요(Pierre-Henri Tavoillot) , 분석철학은 ≪ 동시대적 문제들을 무시하는 같은 ≫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분석철학의 전문적 성격은, 그것이 아카데미의 벽을 넘어서는 일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클로드 르포르(Claude Lefort) 사상을 전공하고 있는 박사과정생이자 잡지 ≪ Raison Publique ≫ 웹사이트의 편집 책임자인 폴린 콜론나 디스트리아(Pauline Colonna d’Istria) 분석철학의 재발견이 너무 지체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프랑스가 (학문 간의) ≪종합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대해 너무 폐쇄적이었다는 ≫ 사실에 대해 한탄한다그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미국에서 (학문 간의) 다리를 놓고자 노력하고 있는 이들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 세일라 벤아비브(Seyla Benhabib) - 이름이 프랑스에서는 아직까지도 알려지지 않거나,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


  더 많은 철학이 있을수록,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게 되는 같다. 철학의 실제 현황과 학생들이 하고 있는 철학 혹은 대중들이 즐기는 철학 사이에 존재하는 이와 같은 부조화는 ≪ 쉬운 ≫ 철학과 대학 사이에 존재하는 단층이 메워지려면 아직 멀었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만든다.


- 나탈리 브라프망, 니콜라 베이(Nathalie Brafman et Nicolas Wei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