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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의사들은 무엇을 두려워하나 /미디어스20140312

by 마리산인1324 2014. 3. 13.

<미디어스> 2014.03.12  08:43:32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707

 

 

의사들은 무엇을 두려워하나
의료민영화,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도움 안 돼

한윤형 기자

 

박근혜 정부는 연초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 보건·의료, 교육, 관광, 금융, 소프트웨어(SW) 등을 5대 유망 서비스산업으로 선정하고 이 영역에 대한 규제 철폐와 집중투자를 계획하고 있음을 고지했다. 이른바 ‘의료선진화 방안’으로 치장된 원격진료 도입과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 허용도 보건·의료 부문을 육성하겠다는 산업정책의 일환일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의사들은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10일 전일파업에 돌입하였고, 11일에서 23일까지는 환자 15분 진료하기, 전공의(흔히 ‘인턴’과 ‘레지던트’라 나뉘어 불리는, 전문의 국가고시 이전의 과정. ‘수련의’라고 부르기도 함) 하루8시간 주40시간 근무하기 등으로 요약되는 준법진료 및 준법근무를 실시하기로 하였다. 다만 전공의들은 현실적으로 중환자가 널린 병원에서 준법근무가 불가능하여 대국민 캠페인으로 대체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의협은 정부가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을 경우 24일부터 29일의 기간까지 6일 동안의 전면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월말의 ‘의료대란’을 방지하기 위해 민주당은 고심하고 있다. 김용익 민주당 의료영리화저지특별위원회 위원장은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정부는 의사들을 범죄자 취급하지 말고 즉각 대화에 나서라"면서 "어제(10일) 의료영리화저지특위는 긴급 회의를 개최하고 정부의 처벌과 강경 대응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의료 공공성 강화와 의료제도 개선을 위한 협의체 구성을 정부여당에 촉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11일 국회에서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건강권을 담보로 한 집단행동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며 “국민의 건강권·생명권을 위협하겠다는 무책임한 발상으로서 이로 인한 모든 책임은 의사협회가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질타하는 등 현실적으로 볼 때 정부 여당의 입장이 바뀌기를 바라기는 힘든 상황이다. 
   
▲ 시민 사회단체 관계자들이 11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의료 민영화.영리화 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출범선언 기자회견'에서 의료 민영화 정책 철회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사들은 투쟁의 논거로 원격의료 문제,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으로 드러난 의료영리화 문제, 건강보험제도 개선 문제 등을 내세우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의사들이야 물론 의료수가 인상 문제를 집어 넣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간 국민적 지지를 잃을 수 있다는 판단도 있으니 뺀 것 아니겠느냐”라면서 “의료영리화 문제는 의료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비타협적으로 반대할만한 부분인 만큼 현재의 요구조건 수준에선 지지할 만하다”라고 평했다. 
 
그러나 생활인의 입장에선 그들이 어떤 상황을 예측하고 무슨 정책에 반대하고 있는지, 그들이 반대하는 것이 과연 의사라는 특정 전문직에서 발생하는 손해이기만 한지 아니면 시민들 모두가 누려야 할 공익적 가치의 훼손인지가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의사들이 두려워하는 미래상이 무엇이며 그럴 경우 시민들은 어떤 상황에 처하는지를 한번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의사, SSM에 잠식당하는 영세자영업자에 비유되다 
 
의사들은 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의료계 상황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의사는 근무지에 따라 개인자영업자라 볼 수 있는 개원가, 병원에서 일하는 교수, 그리고 전공의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은 대한병원협회가 찬성하는 부분이다. 병협 사람들이야 대체로 의사보다는 경영자에 가깝다. 이들의 입장에서야 지금은 못하던 것들을 이것저것 투자자 자본 유치해서 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개원가는 동네슈퍼가 SSM에 먹히듯 쭉 빨아 먹힐 거라는 걱정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전공의들은 앞으로는 개원하기 더 어려워지고 봉급을 받는 봉직의로만 일해야 하게 될 거라는 걱정을 하게 된다”
 
이 관계자는, “다만 개원가에서 돈 좀 만진 의사들은 본인이 소자본가의 입장이라고 보기 때문에, 자회섭 설립 등 영리화 제안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말하자면 의료 영리화의 흐름은 영세자영업자가 운영하는 동네 상권이 SSM에 잠식당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런데 개원의 비율이 줄어들고 봉직의가 늘어나는 현상은 이미 있었다. 큰 병원이 별로 없어서 의사들의 형편이 비슷했던 과거와는 달리 2000년대 이후로는 개원할 때 여럿이 뭉쳐서 클리닉으로 내는 식의 그룹개원이 유행이 되었다. 2013년 8월 <의협신문> 보도에 따르면, 2008년 당시 53.30%였던 개원의 비중은 2013년 상반기엔 전체의 46.45%(7만 454명 전문의 중 3만 2729명)으로 5년 사이에 무려 6.85%나 줄어 들었다. 이 시기 동안 탈개원 현상이 가장 급격했던 곳은 가정의학과(73.36%에서 64.85%로 8.51% 감소)와 정형외과(53.06%에서 44.75%로 8.28% 감소)로 드러났다. 
 
의료 영리화를 뒷받침하는 정책이 시행된다면 이러한 경향성은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더 큰 문제는 개원의 비중이 줄어드는 상황은 동네 상권의 쇠퇴보다 공익의 훼손이 심하다는 것이다. 물론 동네 상권은 생업이 연루된 이들의 숫자가 더 많기는 하지만, 동네 슈퍼마켓이 SSM으로 대체되는 상황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소비자들에게 이로운 지점도 있다. 여러 종류의 물건을 한 군데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고, 가격도 조금이라도 더 떨어진다는 점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개원의 비중이 줄어들게 되면 환자 측의 의료비 지출도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된다. 상급 의료기관의 진료비가 더 비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럴 경우 한국의 의료보험 체계에서 국가가 부담하는 보험료 지출이 늘어나고 보헙료 인상이 불가피해질 수도 있다. 
 
상급 의료기관에서의 상황도 더 좋을 것이 없어서, 동네 병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사소한 질병을 가진 이들이 상급 의료기관으로 몰릴 경우, 정작 빠른 진료를 필요로 하는 큰 병을 앓는 환자는 진료를 받기 위해 몇 달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도 올 수 있다. 결국 진료의 편의성과 질적인 측면에서 모두 환자들이 손해를 보게 된다.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장은 (SSM에서 한꺼번에) 미리 봐둘 수 있겠지만 병원은 미리 가거나 몰아서 갈 수는 없지 않느냐”라고 이러한 사정을 토로했다.
 
동네 병원의 의사들은 자연스럽게 환자의 이전 병력은 물론 가족관계까지 기억하게 된다. 똑같이 5분 진료를 하더라도 종합병원의 진료와는 질이 다를 수 있다. 특히 가정의학과 의사는 동네에 개원할 경우 한 가정의 주치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역할이라는 평을 듣는다. 이런 영역에서조차 개원의 비중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현실은, 한국의 의료산업에 필요한 개혁이 영리화가 아니라 다른 방향임을 암시한다.  
 
의사, 프랜차이즈 가맹점주처럼 될 수도 있다
 
영리화가 충실하게 진행될 경우 의사와 자본의 관계는 영세자영업자와 SSM의 관계를 넘어 프렌차이즈 가맹점주와 본사와의 관계처럼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익명의 의료계 관계자는 “이제 전공의들은 개원의 보다는 봉직의를 노려야 할 텐데, 이 봉직의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프렌차이즈 가맹점주가 본사에게 착취당하는 것처럼 당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 같은 경우는 동네 병원들도 대체로 어떤 종류의 의료보험(insurance plan)에 묶여서 체인점처럼 있다. 네트워크 병원이라고도 하는데, 보건의료정보시스템도 그 네트워크 안에서만 공유하고, 그 네트워크 안에서만 상급병원으로 보내는 것(refer)도 시킨다. 영리자법인이 생기면 대기업 자본이 들어와 이런 종류의 체계를 만들려고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다소 음모론 같기는 하지만, 삼성이 삼성실비의료보험, 삼성네트워크병원, 원격의료, 건강증진서비스를 묶어서 통째로 먹을 거라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소 무리한 시나리오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일이 이렇게 진행될 경우 이제 전공의들은 전문의 자격을 따서 나왔을 때 체인점주 내지는 ‘삼성맨’이 되는 것이 가능할 거라는 전망도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체제는 오직 대자본에게만 유리할 뿐 의사에게 불리할 뿐만 아니라 환자에게도 불리하다. 자본의 입장에서 생산성은 ‘빠른 시간에 많은 이윤을 내는 것’이다. 지불할 돈이 많지 않고 의사가 자신을 오래도록 바라보기를 바라는 서민의 입장에서 그 ‘생산성’의 향상은 서비스 질의 악화로 나타난다. 철도민영화 논쟁에서부터 시작된 공공기관 민영화 논쟁에서 줄곧 드러나는 것은, 정부가 이와 같은 방식의 ‘그릇된’ 생산성의 논리로 ‘선진화’ 방안을 짜고 시민들을 설득하려고 든다는 것에 있다. 
 
의료 문제에 관심이 많은 한 시민은 “최근에 영업실적 재촉당하는 봉직의에 관한 기사를 보고 쇼크를 받았다”라면서 “나를 진료하는 의사가 뒤에 있는 투자자의 눈을 신경쓰면서 실적 관리하는게 내 병을 치료하는 것에 도대체 무슨 도움을 주겠느냐”라고 푸념했다. 의료 영역에 영리자법인을 들여오는 흐름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 것인지에 대해, 우리는 지나치게 과장할 필요도 없겠지만 뚜렷하게 직시해야 할 필요도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의사라면 한 명의 전문가이자 환자의 대리인으로서, 의학적인 지식에 의거해서 진료를 봐야 하는데 대기업 노동자가 되면 환자의 대리인이 아니라 이윤추구를 하는 자본의 대리인으로 일해야 되니 본인들의 입장에서도 엄청나게 불행해 질 거라고 생각한다. 단지 돈을 못 벌게 되는 것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 대한의사협회가 원격의료 도입과 낮은 수가(의료서비스 대가) 등 정부의 의료정책 전반에 반발하며 10일 집단 휴진에 들어간 가운데 강원 춘천시 강원대학교병원 본관 앞에 의료민영화에 반대하는 내용이 담긴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강원대병원에서는 이날 전공의 78명 중 필수과인 응급실(5명)과 중환자실(5명) 근무 인원을 제외한 총 68명이 휴진에 들어갔으나, 외래 등 타부서에 전문의들이 대신 투입되면서 진료에는 큰 차질이 없는 상태다. (연합뉴스)
 
의료수가 문제, 시민들도 이득 보는 길 있다
 
의사협회는 투쟁의 3가지 논거 중 하나로 원격진료와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 허용 문제 뿐 아니라 건강보험제도 개선 문제를 넣었다. 앞의 두 가지 목표는 특정한 정책에 대한 반대이기 때문에 분명해 보이나, 건강보험제도 개선이란 목표는 다소 모호해 보인다. 의사들이 줄곧 요구해온 의료수가 인상을 우회하는 표현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새누리당은 “의사들이 관심이 있는 건 의료수가 인상 밖에 없다. 이 파업도 의료수가 인상을 위한 파업일 뿐이다”라고 폄하하는 중이다.
 
실제로 의사들 역시 다른 직능군의 생활인들과 마찬가지로 의료정책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도는 크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의료계 관계자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선 “사실 앞의 두 조건이 의사들의 향후의 삶에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보지만, 지역 사회의 의사들, 특히 개원가들은 의료수가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세 번째 조건을 넣지 않았더라면 조직이 힘들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의사 파업’에 부정적인 이들은, 정부가 의료수가를 올려주기 힘든 상황이라 다른 방식으로 벌이를 보상해 주려고 의료 영리화를 추구하는 건데 의사들이 그것까지 반대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박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의 의료수가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도 옳은 말이다. 의사들의 의료수가 인상 요구를 단지 그들의 ‘밥그릇 싸움’만으로 보지 말고, 한국의 의료산업을 정상화하는 개혁의 차원에서 바라본다면, 영리화보다 훨씬 더 나은 정책 대안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의료보험이 지원하는 급여 항목의 의료수가가 현저히 낮은 상황에선, 의사들은 되도록 많은 환자를 진료하고 비급여항목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회에서 시민들은 평소에는 싼 값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는 듯하지만, 의료보험이 커버하지 못하는 중병에 걸리면 감당이 안 되는 의료비를 지출해야 한다. 의료수가를 올리되 비급여항복을 줄이는 식의 정책개혁이 가능하다면, 이는 의사들 뿐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유리한 일이다. 
 
의사가 다른 종류의 정책에 무관심하고 의료수가에만 집착하는 것이 현명하지 못한 일이라면, 시민들이 다른 종류의 정책대안에 무관심하고 의사들의 의료수가 인상 요구에만 눈살을 찌푸리는 것도 현명한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 현재의 의료산업의 문제를 우회하면서 대자본에게만 유리한 일을 하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기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결과적으로 의사들도 시민들도 이득을 보는 새로운 정책대안이 제출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정책대안 안에서라면, 의사들의 의료수가 인상 요구도 조화롭게 반영될 길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