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14.03.13 19:00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28121.html
이제 ‘기본소득제’를 외치고 쟁취할 때다
- 홍세화 (<말과 활> 발행인)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그러나 먹지 않으면 일할 수 없다. 그리고 일자리는 어디 있나?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나친 이상주의이고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는 좌파도 있다. 하지만 과연 무엇이 비현실적일까?
지금은 역사적 유적지가 된 폴란드 남부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 아치 철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100만명이 넘는 유대인을 절멸시킨 지옥의 문 앞에 적힌 이 말은, 다름 아닌 서구 근대가 인간에게 명한 시대적 정언명령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다만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성서 구절에 대한 나치의 조롱이 아니었다. ‘진리’의 자리를 ‘노동’이 대체해버린 것, 그것이 바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요, 자본주의 정신이었다. 이 점에서 나치즘은 반(反)이성이 아니라 인간에게서 이성 말고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았을 때 생겨난 근대의 정치라는 비판적 사회과학의 지적은 옳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시를 쓸 수 있을까?”(테오도어 아도르노) 우리는 다시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고, 다른 이의 고통을 덜기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인간으로 살아가게 된 것일까? 우리가 인간과 사회의 진화를 상식으로 받아들인다면, 21세기의 인간은 과연 어떤 면에서 진화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날마다 지옥의 문 앞에서 서성대고 있다.” 요즘 비비안 포레스테의 유작 <최악의 약속>을 번역 중인데, 그녀가 어디에서 이 말을 남겼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19세기 이래 20세기 중반까지 근대 산업사회에서 착취당하는 비극으로부터 달아나려 했던 인간은 21세기에 노동의 지옥문 앞에서 서성이며 그 문으로 들어가 착취당하는 혜택을 누릴 수 있기를 애타게 기원하고 있다. 가차없는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의 법칙이 인간을 포함한 자연을 지배한다는 다윈식의 진화론에 맞서 상호부조의 법칙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던 이 중에 러시아의 아나키스트 크로폿킨이 있다. 지리학자이기도 한 그는 곤충과 조류와 포유류에 이르기까지(예를 들어 허기진 이웃을 위해 피를 토해주는 흡혈박쥐처럼), 살아 있는 생명체들은 종의 경계까지 넘어선 상호부조를 통해 자연이 주는 혹독한 시련을 넘겨왔다는 점을 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인간은? 지난달 23일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1000명 선언이 발표되었고 ‘기본소득공동행동 준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한겨레21>은 1000호 기념호에서 표지기사(‘기본소득 이제는 상식입니다’)로 이 주제를 다루었다. 나 또한 기본소득공동행동의 제안자 중 한 사람인데, 솔직히 이제 막 기본소득에 관한 공부를 시작한 초심자에 불과하다. 공부가 부족함에도 기본소득제에 강하게 끌리게 된 데에는 한때 두 아이와 함께 아무 연고도 없는 땅에 떨어져 “불안은 인간 영혼을 잠식한다”는 명제를 절감해야 했던 개인적 경험이 작용했을 것이다. 거기서 보편복지인 가족수당과 무상교육, 선별복지에 속하는 주거수당의 혜택을 받아, 인간 영혼이라고 부르든 존엄성이라고 부르든 덜 훼손된 채 살아남은 자로서 이 땅에서 속절없이 이어지는 죽음의 행렬, 여간해서는 신문의 한쪽 기사에도 오르지 않는 죽음의 행렬 앞에서, 그 행렬에 오르기 전이어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지만 그래도 눈에 잡히는 “죽지 못해 살아가는” 존재들의 강요된 굴종과 참담함 앞에서 무감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날 인간을 불안하게 만드는 구체적인 요인으로 꼽히는 주거, 건강, 교육·양육, 노후, 실업 문제에 하나하나 대응하기엔 “어느 세월에?”라는 물음이 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그 위에 없는 사람들이 있는 사람들과 재벌 기업을 걱정해주는,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이 팽배한 사회에서 일인당 매월 30만~50만원을 조건 없이 제공하라는 기본소득제의 단순명료한 성격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존재의 요구를 다시 돌아볼 수 있게 해주리라는 사회운동적인 기대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점을 강조하고 싶다. 기본소득에 대한 문제제기는, 또 하나의 복지정책(전략)이 아니라, 오늘의 세계와 인간성의 한계와 가능성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라고.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존재 그 자체로 삶을 존엄하게 영위할 권리를 가지며, 사회와 국가는 어떤 조건도 없이 이 영토에 존재하는 모든 개인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은 다름 아닌 잔혹성의 한계를 잃어버린 자본주의 체제와 이 체제가 강제하는 삶의 공포 앞에 짓눌린 우리에게 지금과는 다른 세계, 다른 삶의 형식을 발명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 묻는 질문이라고 말이다.
<레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위고는 일찍이 사람들은 온정, 시혜에 관해 생각할 때 모두 베푸는 쪽에 서서 생각한다고 말했다. 베푸는 쪽이 아닌, 받는 쪽에 서서 사유하라는, 그래서 남의 온정과 시혜에 기대서 생존해야 하는 존재는 이미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된 상태에 있음을 인식하라고 주문했다. 점심을 굶어야 하는 아이들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해야 한다고 하자 부잣집 자제들에게까지 식비를 낭비하는 건 오히려 복지를 왜곡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가 서울시장 자리에서 물러난 사람이 있었는데, 그때 불온한 나는 이렇게 스스로 물었다. 그의 진심은 혹시 대가 없이 제공되는 변변찮은 점심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들에게 모욕이 된다는 점에 있지 않았을까? 또 온정과 시혜를 베푸는, 가진 자의 특혜가 사라진다는 점에 있지 않았을까? 아무튼 오늘날엔 아무도 복지(국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선별적 복지든 보편적 복지든, 복지가 필요하다고 누구나 말하고 있을 만큼 지금의 자본주의가 인간의 삶에 차가운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는 점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한편 신기하다. 복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오늘의 자본주의가 별 탈 없이 유지되고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고용도 창출되리라는 믿음, 그리고 그것이 복지사회(국가)의 기본 방향이라는 믿음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다면 결국 “한명의 천재가 십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말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쪽이거나, 그 말에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둘 중의 하나에 속한다. 사실 이건희 회장은 신자유주의 체제라고 불리는 탈근대 자본주의의 진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준 셈이다. 단적으로 오늘의 자본주의는 한명의 천재에게만 일자리가 제공될 뿐 나머지 십만명을 위한 자리는 없다는 선언으로서. 그래서 부지런한 한 사람의 구세주가 모든 이에게 젖과 꿀을 나누어주는 천국을 연상시키고 싶어 하지만, 오지 않은 천국 대신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은 ‘노동(고용) 없는 지옥’이고 배제와 탈락과 경쟁의 불안과 공포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그러나 먹지 않으면 일할 수 없다. 그리고 일자리는 어디 있나?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나친 이상주의이고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는 좌파도 있다. 하지만 과연 무엇이 비현실적일까? 지금의 자본주의를 그대로 둔 채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약속하는 것이야말로 비현실적이며 거짓이다. 기본소득은 무엇보다 우리의 인간적 가능성에 대한 자기 물음이어야 한다. 탈무드에 따르면 모든 인간에게는 천국과 지옥에 각각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성서가 말하는 갑절의 축복과 저주라는 표현은 어떤 이가 천국에 간다면 그곳에 오지 못한 다른 이의 자리를 얻게 되는 상황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거꾸로도 마찬가지일 터. 그 자리는 인간 존재에 불가피하게 부여된 이웃(타인)의 자리이다. 기본소득은 이웃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이 아닌 이 공동성의 발견에서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그것은 ‘생활 전체가 죄’(조세희)인 ‘가진 자’들에게 주머니를 열어 달라고 요청하는 게 아니라, 세상의 질서를 바꾸겠다는 의지이며 행동이어야 한다.
홍세화 <말과 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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