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22.04.06 13:29
http://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2823834&PAGE_CD=ET001&BLCK_NO=1&CMPT_CD=T0016
러시아의 빅픽처, 결국 한곳을 향하고 있다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러시아 주변에서 반복되는 역사
1991년 8월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개혁-개방 정책에 반발하는 구세력이 반동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민중 저항에 부딪쳐 실패로 끝났다. 고르바초프는 복귀했지만 힘의 균형은 반 쿠데타 민중 저항을 이끈 옐친 러시아 대통령으로 급격히 쏠리게 된다.
사실상 최고 실권을 쥔 옐친 대통령은 같은 해 12월 우크라이나의 크라우추크 대통령, 벨라루스의 슈시케비치 대통령과 함께 소비에트 연방을 공식 해체하는 데 합의한다. 고르바초프 연방 대통령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은 12월 8일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 인근 한 별장에서 연방 해체와 독립국가연합(CIS) 창설에 합의하는 벨라베자 조약에 서명했다.
12월 25일, 러시아 의회 격인 최고인민회의는 국호를 '러시아사회주의공화국연방'에서 '러시아연방'으로 공식 변경했고 연방 대통령 고르바초프는 곧바로 대통령직 사임을 발표한다. 이튿날 저녁 크렘린 궁의 상공을 펄럭이던 소련 국기가 하강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이로써 소비에트연방은 건국 69년 만에 공식 해체됐다.
▲ 나치 독일 승전 75주년을 기념하는 승리의 날에 러시아 카잔에 공개된 소련 군인 동상. 2020.5.9 ⓒ 연합뉴스
소련 해체, 그리고 CIS 출범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가 합의한 독립국가연합(CIS)은 소비에트연방을 이루던 15개 공화국 모두를 대상으로 하며 급격한 해체 이후 상호 독립을 보장하면서도 연대를 보장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 이듬해 열린 동계올림픽에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독립국가연합(CIS)이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식 명분에도 불구, 해당 국가들의 입장은 저마다 달랐다. 옛 소련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러시아는 모든 국가가 CIS에 참여하기를 원했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러시아와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투르크메니스탄도 현재는 탈퇴한 상태지만 창립 멤버였으며 여전히 러시아와 우호적 관계에 있다.
반면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은 소련의 공식 해체 이전부터 어느 지역보다 강력하게 독립을 원했으며 CIS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현재도 이 세 나라는 러시아와 다소 긴장관계에 있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앞서 말했듯 CIS 창설 멤버였지만 발트 3국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길 원했고 갈등관계를 유지하다 결국 2018년 조약을 탈퇴했다.
캅카스 지역의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세 나라도 입장이 서로 다르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창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회원국이며 특히 아르메니아는 현재도 러시아와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다소의 거리두기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의 관계를 중요시 한다. 특히 이웃나라 아르메니아와 영토 분쟁이 이어지면서 러시아의 지지가 절실한 입장이다.
조지아의 경우는 좀 더 특별하다. 18세기 이후 줄곧 러시아의 지배권에 놓였던 조지아는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그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했다. 소련이 무너진 후 독립을 이뤘지만 러시아의 압력에 의해 CIS에 마지못해 참여했다. 2008년 러시아와 전쟁까지 치른 끝에 CIS를 결국 탈퇴했다.
▲ 푸틴 인형 불태우며 춤추는 조지아인들 27일(현지시간) 흑해 연안국인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인형을 불태우면서 춤추는 반전 시위가 펼쳐지고 있다. 2022.3.28 ⓒ 연합뉴스
회원국들의 3가지 처지
현재 9개의 CIS 회원국들은 이처럼 러시아와의 관계에 따라 적극적 참여, 소극적 참여 또는 미 참여로 나뉘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회원국이면서 러시아와 우호적 관계에 있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중앙아시아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그와 반대로 과거 소비에트연방 소속이었으나 현재 독립국가연합에 참여하지 않은 나라들은 대체적으로 유럽 대륙에 위치한다. (조지아 역시 유럽 지향의 정체성을 띤다.) 대부분이 러시아와 비우호적 관계에 있거나 크고 작은 분쟁을 겪고 있는 나라들이다. 결국 연방이 해체된 후 CIS 체제의 양상은 러시아의 대외 전략과 패권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러시아의 전략적 대외관계는 이처럼 전통적으로 유럽에 집중돼 있다. 새로운 포스트소비에트 체제 모색도 유럽의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와 결정했고 현재 전략적 동맹관계(벨라루스)뿐 아니라 적대적 전쟁 상황(우크라이나)까지 이들과 얽혀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점점 수렁으로 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도 관심을 끈다. 초기 예상과 달리 장기화되고 양측의 피해 규모도 커지면서 전후 처리 문제 역시 복잡해지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가 있는 북쪽 지방에서 발을 빼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남쪽 전선에 집중하는 양상이다.
러시아의 선택지
현 상황에서 앞으로의 전망을 예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역사적 배경과 러시아의 전략적 중요성을 감안하면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좁혀진다. 러시아가 유럽 인접국들과 분쟁 관계에서 어떤 전략을 견지했는지 이해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의 양상이 한곳을 향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소련이 건국되던 당시 연방체를 구성하는 공화국은 해체될 무렵과 달리 16개국이었다. 이 가운데 몇 개의 공화국은 해체되었고 자캅카스 공화국은 1936년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으로 분리됐다. 자캅카스 공화국이 해체된 지 4년 후 스칸디나비아 반도 동쪽 핀란드 접경 지역의 러시아 땅에는 카렐리야-핀란드라는 새로운 공화국이 만들어진다. 이름이 암시하듯 카렐리야-핀란드는 러시아가 과거 점령하던 핀란드를 다시 손에 넣기 위해 급조해 조직한 공화국이다.
러시아가 핀란드를 강점하던 당시 친러파 핀란드인들은 핀란드를 러시아에 합병하기 위해 핀란드 민족주의자들과 치열한 다툼을 벌였다. 결국 주도권이 민족주의자들에게 넘어가자 이들 친러파들은 대거 러시아로 망명한다. 이들이 핀란드 국경지역에 세력을 형성한 것은 향후 재공략을 위한 포석이었다.
▲ 핀란드 국기 ⓒ pixabay
이렇게 되면서 러시아의 뒤를 이은 소련이 친러파 핀란드인들을 중심으로 해당 지역에 카렐리야-핀란드 공화국을 설치한 것이다. 20세기 초 제국주의 세력들이 약소국들의 영토를 갈가리 나눠 먹던 당시의 흔한 모습이었다.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맺은 소련은 폴란드의 일부를 독일이 가져가는 것을 용인하는 대신 핀란드 전체를 얻으려 했던 것이다.
핀란드 영토를 분쟁지역으로 규정하고 이 지역의 유일한 합법적 정부로 카렐리야-핀란드를 인정한 후 결국 핀란드를 합병하겠다는 계략이었다. 하지만 소련-핀란드 전쟁이 장기화되고 자국의 피해도 커지면서 소련은 전략을 수정한다. 소련은 핀란드로부터 중립국 약속을 받아내고 핀란드 동부 카렐리야-핀란드 지역만 자국 영토로 편입하는 B플랜을 가동하게 된다. 그렇게 정해진 것이 현재의 러시아-핀란드 국경선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2014년 크림반도의 합병은 그런 의미에서 러시아의 계획이 원안대로 이뤄진 셈이다. 크림반도 내부의 친 우크라이나 세력과 친 러시아 세력의 분쟁 과정에서 '물심양면' 친러 세력을 지원해 결국 그들이 세력을 장악하게 하고 스스로 러시아에 합병 선언을 하게 한 것이다.
최근 조지아의 분쟁지역 가운데 친러 성향의 남오세티야는 러시아로 합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또 다른 친러 비승인 국가 압하지야는 당분간 합병 의사가 없다고 밝혔지만 카렐리야-핀란드와 크림반도에 이어 조지아 분쟁지역의 러시아 전략이 다시 한 번 드러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 28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동쪽으로 약 400km 정도 떨어진 트로스트시아네츠 마을에서 청소년들이 부서진 러시아 탱크를 보고 있다. 2022.3.28 ⓒ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러시아의 입장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지역에서 물러서는 듯 보이면서 남부 지역에 집중하는 러시아의 행보는 의미심장하다. 우크라이나 남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 비승인 국가 돈네츠크 공화국, 루한스크 공화국이 러시아와 합병하겠다는 의사를 보인 마당에 더더욱 그렇다.
역사는 지역과 주체를 바꿔가며 시간을 관통해 반복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피해가 커지면서 대화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동부 돈바스 지역이 협상의 최대 쟁점이 될 것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크게 잃을 것이 없어 보인다. 인간을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지 국가를 위해 인간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답이 후자에 있다면 말이다.
'세상 이야기 > 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레바논 여인의 삶과 죽음 /시사in 302호 (0) | 2022.05.21 |
---|---|
서방 언론은 허구였다! 러시아 뜻대로 끝나가는 전쟁 (이해영20020404) (0) | 2022.04.07 |
이코노미스트가 실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은 서방에 있다”(민중의소리20220315) (0) | 2022.03.16 |
군부가 장악한 '유사 민주주의' 태국의 앞날 /프레시안20171011 (0) | 2017.10.12 |
부메랑이 된 룰라의 사법 개혁 /시사인 522호 (0) | 2017.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