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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생태환경

[책]헬렌 니어링, 스코트 니어링,『조화로운 삶』(문순홍)

by 마리산인1324 2007. 1. 10.

 

<진보평론>  제5호

http://jbreview.jinbo.net/

2003-02-18 10:46:22

 

 

 

어느 사회주의자가 보여준 생태친화적 삶
 -스코트 니어링­


문순홍(이화여대 대학원/ 여성학과 후박사 연구자)

* 헬렌 니어링, 스코트 니어링,『조화로운 삶』류시화 옳김,(2000, 보리출판사)

1997년 ꡔ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ꡕ가 번역․출판되면서 우리 사회에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이 알려졌다. 100세의 나이에 자발적 절식으로 삶의 또 다른 세계로 되돌아간 남편과의 만남, 삶, 그리고 보냄을 기술한 이 책은 대안운동을 추구하고 있는 한국의 환경운동가들에게 애독되는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환경관련 독서모임(특히 주부 모임)의 1순위 단골 메뉴가 되었다.*주)

*주) “어떻게 주부들과게 생활양식 전환을 도모하고 이를 자치모임으로 연결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온 의정부 YMCA의 황주석 총무님은 주부들의 환경교육 프로그램을 이 책에 대한 독회 및 토론으로 시작하는데, 반응이 좋다고 말한다.

스코트 니어링은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이 물음에 답하기라도 하듯, 올해 보리출판사와 실천문학사는 각각 ꡔ조화로운 삶ꡕ과 ꡔ스코트 니어링 자서전ꡕ을 번역하여 출판계에 내놓았다. ꡔ아름다운 삶ꡕ이 헬렌 니어링의 삶 속에 개입된 스코트 니어링을 엿볼 수 있다면, 뒤의 두 책은 스코트 니어링이 스스로 집필한 자신의 삶에 관한 것이다. ꡔ자서전ꡕ에서 독자들은 1910년대와 1930년대 미국 사회전반의 사회이슈와 변화 그리고 도회적 삶 속에서 체제에 저항하는 니어링을 만날 수 있다면, ꡔ조화로운 삶ꡕ은 서구 문명과 결별하고 뉴잉글랜드 버몬트 주로 들어가 1932년부터 52년까지 자급자족적인 삶을 개척한 니어링 부부의 농촌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그리고 만일 귀농을 준비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 책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 중반 이후 그 지배적 사회문제가 노동에 관한 것이었다면 21세기로의 전환기에 주된 사회물음은 자연과 인간관계에 관한 것, 곧 생태이슈에 관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후반의 100년 동안의 사회적 격동기를 살아낸 니어링의 삶에는 이 두 가지 문제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자본주의 체제의 착취와 파괴의 극한적 결과물로. 널리 알려져 있듯이, 생태이슈에 초점을 둔 담론적 실천(필자는 생태주의란 용어를 그리 달가와 하지 않는다)에는 여러 입론들과 저항방식들이 공존하고 있다. 물론 사회주의의 논의 및 실천도 생태이슈를 수용하고 있는데 그 수용태도는 다양하다. 이 다양성은 사회주의 논의 계열화에 따라 무정부주의 계열과의 접합, 포스트-맑시스트 계열과의 접합, 그리고 맑시스트와의 접합 등으로 나타난다. 니어링의 삶은 후자에서 전자로 이행되고 있다. 미국의 사회당이 소련의 반대자, 방해자, 반혁명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1922년 사회당을 떠난(ꡔ자서전ꡕ, 277쪽) 그는 이제 공산당에 의해 레닌의 제국주의론과 다른 시각을 제기한다는 이유로 제명되었고(ꡔ자서전ꡕ, 282쪽), 그 후 근대문명은 물론 미국의 지배적인 사회체제와 결별하고 버몬주에서의 자급적 삶을 실험하는 일에 전생애를 바친다(ꡔ자서전ꡕ, 369쪽 이하).

이 사회혁명가이며 저항아로서의 삶은 펜실베니아 대학 경제학 교수 시절 이미 그 발을 내딛고 있었다. 1910년대의 미국 사회는 소득분배가 균등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개인주의적인 사기업사회였으며, 제국주의 전쟁에 깊숙히 개입하기 시작한 광기의 사회였다. 당시 주요한 사회․경제․정치 문제에 사회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의견을 여러 방식으로 피력하던 니어링*주)은 대학과 지역사회에서 그리 달가운 존재는 아니었던 것 같다. 1916년 대학에서 쫓겨난 - 또 다른 대학에서 한번 더 해임되지만 - 이후, 그는 학교밖의 사회를 인생역경대학이라 칭하고 여러 곳에 사회공론의 장을 열어갔다. 그러나 가르칠 권리와 말하고 표현할 권리에 대한 그의 외침과 몸부림이 커지면 커질수록 미국의 지배사회는 그를 더욱 더 배제시켜갔다.

*주) 이미 1911년 ꡔ아동노동문제의 해결책ꡕ, 1912년에는 ꡔ여성과 사회진보ꡕ란 책을 출간하였다.

“정의롭고 선하다”고 인정할 수 없는 국가에서 자신의 양심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주) 이 물음에 대한 니어링의 실천 전략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진행되었다. 버몬트 주에서의 삶으로 들어가기 전, 그는 주로 시민사회 내 공공영역 창출과 공식적으로 주어진 기회(선거)를 통한 제도로의 진입을 추구하는데 50년을 투자한다. 물론 역점은 전자에 두어져 있었다. 이후의 50년 삶을 니어링은 자급적 삶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실험에 투자한다. 시장의 거래관계/권력관계로 편입되지 않기 위해 자급자족이란 형식으로 재조직화한 자신의 삶을 통해 니어링은 자본주의체제의 자본지배에 대한 정당성과 암묵적 강제에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였다. 물론 이 저항은 60년대 반문화운동과 맞물려 젊은 층들에게 동조를 얻게되고 이어 생태지향적인 세계로 가기 위한 하나의 열쇄로 주목받게 된다.

*주) 또한 이 물음은 소로우의 것이기도 하다. 사실 니어링의 사유와 실천은 초월적 낭만주의자 소로우에서 사회생태론자 머레이 북친로 이어지는 미국 공동체 운동의 역사적 맥락에서 재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소로우, ꡔ시민의 불복종ꡕ 이레, 1999 를 참조하라.

이 생태지향적 세계로 자신의 사회주의 이념을 확장한 니어링의 후기 삶은 사회생태론 계열에 가깝다. 니어링은 자본주의를 경제체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문명으로 보았고,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혁명을 부르짖었지만 그 방법은 노동세력의 규합이나 운동의 정치조직화(아마도 1930년 공산당에서 탈당한 이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안적인 공동체를 스스로 실험하고 이를 증명하는 과정을 통해서 였다. 이런 대안공동체를 통한 혁명에의 길은 1945년 8월 6일 헤리 트루먼 대통령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라는 명령을 내렸들 때 확신에 찬 선언으로 미국정부와 결별한다. “당신의 정부는 더 이상 나의 정부가 아닙니다.” 당일, 니어링이 트루먼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그에게서 사회주의는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란 생태적 사유자들의 화두와 맞닿아 있었다. “사회주의는 인생의 참된 목적과 관련이 있다… 오늘날 삶의 무게중심이 재화를 얻는 것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다. 오히려 육신을 위한 의식주는 표현과 개발과 창조를 위한 노력에 비해 덜 중요한데 말이다”(ꡔ자서전ꡕ, 246쪽). 이런 그의 눈에서 미국사회를 특징 짓는 “개인주의적 사기업사회는 내내 경쟁을 부추겨 왔는데 그 결과는 살인과 경쟁이었다. 니어링은 협동을 사회적인 사고와 행동의 중심에 두고 경쟁을 효과적인 협동을 위한 하나의 하위개념으로 보는 정책의 급반전 없이는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었다. 이 경쟁을 협동으로 대체해주는 것이 곧 사회주의였다, 니어링에게.

1932년 버몬트와 메인주로 들어가 그의 부인 헬렌과 살아낸 숲속의 독특한 절제와 검약의 생활양식은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으로 의미있고 충만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실천적으로 보여주었다. 그가 실천한 대안으로서의 조화로운 삶은 몇 가지 기본원칙들에 의거한 것이다. 니어링은 이를 약 10개 정도로 제시하고 있지만(조화로운 삶,37-40), 평자는 자급자족과 교환의 균형적 조화, 생필품 생산으로서의 노동과 창조행위로서의 노동의 조화, 그리고 자연과 조화된 건강으로 압축할 수 있다고 본다.

첫째, 시장의 교환법칙에서 삶을 가능한 이탈시킨다. 니어링에게 돈은 어디까지나 교환수단이고 그래서 경제생활을 하는 주된 목적도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살려는 것이어야 했다.

둘째,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으로 전락한 노동에서 벗어난다. 그에게 노동은 더 이상 부를 창출하는 행위가 아니었다.*주) 그래서 그는 “일을 해서 삶의 기쁨을 키워 나갈 수 있는 환경을 찾는 일” 그리고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많은 자유시간을 늘려가고자” 하였다. 이런 니어링의 노동에 관한 태도는 하루 4시간 이상 노동하지 않았고 년 3개월 이상 노동하지 않는다로 구체화 되었다. “반드시 필요한 현금에 맞추어 돈을 벌려고 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진 것은 사회활동, 그리고 독서와 글쓰기와 작곡 같은 취미생활이었다”(ꡔ조화로운 삶ꡕ, 37쪽).

*주) 이는 슈마허의 노동관 및 불교적인 노동관과 같은 것으로, 생태적 사유체제에서 노동은 사람에게 자신의 능력을 유용할 기회를 주는 것, 공동작업에 다른 사람과 함께 참여함으로써 자기중심성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실존하는데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슈마허, ꡔ작은 것이 아름답다ꡕ를 참조하라. 작년 이후 김대중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우리 삶의 방향에 영향력을 높여가는 신조어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신지식인. 이의 핵심은 부가가치를 높이는 인간이라는 점에 있다. 이런 인간유형에의 강조는 생태적 사계관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셋째, 단순한 삶과 건강을 추구한다. 이런 단순한 삶에의 추구는 여러 방식으로 실험되었다. 특히, 먹거리 부분에선 자연식품에 의거한 채식주의자로서의 삶으로 나타났다. “건강은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이다… 병은 좋지 않은 환경에서 사는 사람과 좋지 못한 음식을 먹는 사람을 공격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을거리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니어링의 답은 이윤을 남길 가능성이다. 그래서 슈퍼마켓에 진열되어 있는 먹거리는 대개 한편에선 자연적인 영양분과 무기질이 제거되는 과정을 거치고(ꡔ조화로운 삶ꡕ, 128쪽) 동시에 인공합성 화학물질이 첨가되는 과정으로 대체된다.

자본주의 체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체제가 그의 소망, 대학에서 가르키고자 하는 소망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집필하고 발표하려는 소망을 철저히 앗아 갔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한 개인에게 체제가 부과한 인위적 운명에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하고 있었다. 이 책 두 권을 통해 잔잔한 감동으로 드러난 니어링의 삶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란 속담 속에 살아가는 우리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라는 물음을 갖게 해준다. 감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를 철저히 체제에서 이탈시켜간(정확히 배제시켜간) 역사를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인간은 자신의 생활방식을 전면적으로 변화시키게 될 결정에 주기적으로 직면해왔다. 식인풍습을 버리기로 한 결정이나 노예제도를 폐지하기로 한 결정 등이 그렇다… 우리가 착취를 일삼지 않게 하겠다는 결정도 앞의 두 결정 못지 않게 중요하다”(ꡔ자서전ꡕ, 246쪽) 이런 역사에 대한 긍정성은 바로 인간에 대한 신뢰에 기반하는데, “끊임없는 결단과 투쟁으로 이어지는 힘겨운 삶 속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이 바로 역사 속에 살아있기 때문이다(ꡔ자서전ꡕ, 41-42쪽).

그의 삶이 우리에게 준 메시지는 자본주의 소비문화가 극대화되면 될수록 그리고 우리의 삶이 더욱 바빠지고 황폐해질수록, 더욱 강하게 되살아날 것이다. 대안을 창조해가려는 사람들, 한국 사회에서 이를 실현하려는 집단들로 독자들은 귀농운동 및 생태마을 인터넷 사이트 http://www.refarm.org을 탐방해보지 않겠는가? 니어링과 유사한 삶을 공동체적 삶의 조건 속에서 시도하고 있는 머레이 북친의 사회생태학 연구소 또한 방문할 만한 곳이다. http://www.tao.org.ca/ise~
 

2003-02-18 10:4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