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닮은 사람들> 2006-08-23 18:32:53 http://www.naturei.net/CONTENTS/contents_view.html?section=1&category=72&code=3717
해발1,000m 오대산 깊은 숲 속에 울려퍼지는 생명의 노래, 평화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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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 흙집 짓고, 자연 통한 깨달음의 농사로 도시와 농촌의 희망을 노래하는 원중연, 송선희 부부. | ||||||||||||||||||||||||||||||||||||||||||||||||||||||||||||||||||||||||||||||||||||||||||||||||||||||||||||||||||||||||
예비 귀농자로서 소비자로서 농촌과 농업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이고 뒤 쫒기보다는 우리의 자연성과 역사성 그리고 공동체성을 새로이 발견하고 그 토대위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생명의 가치관 평화의 가치관을 되찾아야 함을 요즘 느낀다. 속도에 주눅이 들어 어떠한 것이 행복한 것인지를 상실한 채 그동안에 유지되어왔던 천연의 생활문화는 경제성과 효율성, 편리성 등으로 산산이 조각이 난체 방황하기에 이르렀다. 파괴되어진 생명의 흐름 속에서도 어려운 길을 함께 인식하고 가는 사람들은 많지가 않다. 자기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욕심을 쌓아둔 채 좋은 것들만 바라고 아님 산속에서 도를 닦듯 혼자만 맹목적 기도나 드린다고 없던 평화가 저절로 굴러 들어오기는 만무할 것이다. 당신에게 혼돈과 무질서가 찾아왔다고 실망하지 말고 능동적으로 현실에 부딪치고 단단한 각오와 작정으로 오늘의 힘든 상황을 견디어 나아간다면 당신과 나 사이에는 놀라운 지혜가 발견될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요 사랑이요 평화다.
이는 틀이 있는 도시와 틀이 없는 농촌, 화학적으로 오염된 농산물과 유기적으로 생산된 농산물, 순수하지 못한 동기와 순수한 동기의 이분법적인 태도를 품어내 가난한 백성들에게 새로운 문화를 열어줄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홀로 살아가는 연습과 함께하는 살아가는 연습을 동시에 배우고 익혀야 한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나와 이웃이 한쪽만을 믿고 기대게 되거나 사소한 문제라도 풀어내는 작은 문화의 장이 없으면 그 공동체는 분명히 얼마가지 못하고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도시인들은 자신을 너무 과시하려는 특권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수입한 농업정책과 유기농산물인증제도는 가뜩이나 어려운 농촌과 농업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아직 일부이긴 하지만 유기농이 농민을 고통으로 내몰고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벌레 먹고 못생긴 유기농산물에 관심을 기울이고 농민들은 과거에 집착했던 자리를 털고 스스로 분연히 각자의 위치에서 정직한 농산물을 생산하고 도시인들과 직접적인 교류의 기회를 넓혀 투명하게 유통하는 관계의 시각변화를 이루어야 한다. 더 나아가 자신의 농토가 아름다운 식물원이나 카페, 소박한 정원같이 꾸미고 가꾼다면 피폐한 농촌마을에 아름다운 경관과 풍요로움의 공동체문화가 삶을 더욱 햇살처럼 밝게 해줄 것이다.
농촌은 온전한 농사와 온전한 문화가 어우러지는 온상이다. 이러한 바탕위에서 생각과 형태만 바꾸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 도시인들은 농촌에 새로운 쉼터와 프로그램을 원한다. 휴식과 건강, 여가와 치유를 위한 생태(네트워크)문화개념의 어울림의 장(場)말이다. 지금까지의 생각과 틀을 바꾸기만 한다면 농촌에서 자연이 주는 충만한 농업활동으로 얼마든지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다. 산골짜기 구석구석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기쁨의 웃음소리가 다시금 울려 퍼져나갈 그 때를 간절히 바래본다. 이러한 때에 여기 오대산 자락에서 자연농업으로 돌아 선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자연에 반하고 야생화에 반해버린 부부가 있다. 바로 원중연(55세), 송선희(52세) 부부다. 도시의 가로등에게 빼앗겼던 아늑한 밤, 조용한 밤을 되찾기 위해 오늘도 자연과 하나된 2만평이 넘는 자신의 농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들 부부의 꿈은 흙집인근에 도시 소비자들을 위한 생태문화공간을 만들어 무료로 개방하시겠다고 한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자연의 향기에 아토피와 스트레스가 치유되는 숲 속의 공간 말이다. 이곳에서는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옛것의 문화를 되살려 날마다 축제를 열어, 농촌을 살리고 농업을 살리려 한다. 이러한 마음이 동하시는 분이 있다면 내게 살짝이 귓뜀해 주기를 바란다. 지난 8월 19일(토)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두일리 원가네 자연농장을 아내와 함께 방문했다. 원가네 농장은 지난봄, 자연농법으로 키운 파프리카와 고추, 비트, 설탕무우, 셀러리, 양상추 모종을 대량으로 조건 없이 보내준 아름다운 마음씨를 만나 뵙고 감사함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남양주시 광릉수목원인근에서 길을 나서려는데 태풍 우쿵의 영향으로 영남과 영동에 큰 비가 내린다는 예보에 신경이 거슬렸지만 몸과 마음은 벌써 국도를 따라 양수리와 양평을 넘어 홍천쯤에서는 횡성으로 향하는 한적한 외곽도로를 따라 가다가 시골경치와 주변의 풍광이 아름다운 우천을 지나 둔내 나들목으로 들어서서 영동고속도로 위를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전화로 속사 나들목을 빠져나와 하진부 고개를 넘어 내려오면 해발700m, 말 목장, 좌우측, 내리막, 삼거리, 반사경, 포크레인, 콘테이너, 비포장 순으로 된 이정표가 있으니 찾아오라는 지령아닌 지령을 받고 열심히 오대산과 계방산, 호령산으로 이어진 험준한 준령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탐정하기 시작했다.
더위의 기세가 한풀 꺾였는지 서늘한 느낌이 들었던 속사 나들목을 빠져나오면서 점심을 먹고 뵙겠다고 하니 반찬은 없어도 집에 와서 먹으라신다. 그 말에 찾아가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속사 나들목을 나와 좌회전하면 운두령으로 향하는 길과 진부와 강릉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조금 가다보면 옛길과 함께 갈림길이 또 하나 나오는데 초행길이라 우리는 아랫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안전표식과 흙무더기가 곳곳에 위험을 알린다. 좀 이상스러운 느낌으로 천천히 차를 몰던 순간 수해로 유실된 도로로 인한 바리게이트가 더 이상의 전진을 막았다. 아~ 방송을 통해 보고 듣던 수해의 현장 깊숙이 들어섰던 것이다. 가던 길을 되돌아 좀더 위쪽으로 난 길을 통해 말 그림이 있다는 목적지로 가던 중 또다시 길을 지나쳐 하진부에 다다르게 되었는데, 그곳은 막대한 태풍피해의 현장이 아직도 복구가 되지 않아 곳곳에서 포크레인과 덤프트럭 등을 동원한 수해복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말 그림의 진입로를 찾아 샛길을 들어서자 커다란 말 목장들이 이국적인 정취를 풍기며 맞이한다. 산위로는 고랭지 채소밭과 감자밭이 즐비한 비포장 길, 태풍 흔적으로 피폐한 하천들과 밭두둑을 헤집고 깊은 산속으로 향했다. 세 곳이나 끊겨졌던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 한참을 들어서서야 비로소 원가네 자연농장의 비닐하우스를 만나고 그 위쪽으로 1년 동안 손수 지었다는 흙집을 만날 수 있다. 천연의 숲은 우중임에도 불구하고 그들만의 매력으로 낮선 방문자에게 신선한 기운을 뿜어주고 있었다. 더욱이 때 묻지 않은 이곳의 자연 속에서 보이지 않는 미물까지 생각하는 자연농업을 적극적으로 일구신다니 이분들에게서 전 지구적 생각하고 전 지구적으로 행동하라는 사회적 운동이 반향이 되어 일어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산속 골짜기마다에는 씨감자들이 한 가득씩 들어차 새로운 주인을 만날 기대에 부풀어 있는 듯이 보였고, 비닐하우스는 많은 돈을 들인 시설물이 아님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커다란 돌배나무가 인상적인 비닐하우스를 돌아 나와 좌측으로 이어진 좁다란 길 위로 들어서려는데 특이한 문패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목장용 철책을 둘렀으니 주의를 하라’는 주인장의 당부가 이집의 문패인가(?) 밭 양쪽으로 많은 량의 양채류들이 즐비하게 심겨져 있었고, 비트 밭은 폭우피해로 시커멓게 타 죽어가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렇게 많은 양채류들을 심고 관리하자면 제초제와 농약이 대량적으로 뿌려지겠지! 생각하며 적송과 황토로 지은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예상이 빗나가고 있음을 감지했다. 이미 마당에 나와 계셨던 원중연님의 환한 미소가 그 증거다.
아내도 주위의 원시적인 산림에서 느낄 수 있는 푸근함과 소담한 집의 분위기에 압도당한 듯 제법 상기된 표정으로 집안으로 들어섰다. 남양주 집을 출발한지 3시간 만에 목적지인 평창군 진부면 두일리 전나물이라는 동네에 도착한 것이다. 집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커다란 적송의 대들보가 멋지게 놓여져 있어 예사농부가 아님을 짐작했다. 집안에서는 시골 아줌마 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고 마음씨도 따스하게 느껴지는 송선희님과 군에서 막 제대를 하고 부모님의 일손을 돕기위해 찾아온 둘째 아들이 맞아 주었다. 곧바로 차려내온 자연밥상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감을 주는 듯 했다.
밥상을 물리고 손수 지었다는 황토방 이곳 저곳을 흩어 보았다. 요모조모 앙증맞게 만들어 놓은 나무조각들을 바라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식탁과 소품장, 화장실의 나무장식들과 받침대 등 그 쓰임에 맞게 배치해 눈길을 끌었다. 우리부부와 원중연(55세), 송선희(52세)님 부부와의 이러쿵 저러쿵하는 대화의 물꼬는 이렇게하여 트이게 되었다. 1972년까지 잘 나가던 공무원이셨다. 공무원 한달 월급이 3만원하던 시절, 한달에 50만원의 소득만 보장된다면 농사를 짓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계기가 되어 농사를 시작했는데 크게 성공했다고 한다. 고양시 서오능에 있는 원주원씨의 집성촌에서 16대까지 대대로 살아오던 고향 땅과 외가가 있다는 당진과 서산을 벗어나 지금의 강원도에 이르기까지 대농의 꿈을 이루기 위한 행보가 시작된 것이다.
초기 경기도 파주시 법원리에서 15,000평의 땅에 200평짜리 비닐하우스 60동을 지어 농사를 시작했고, 곧이어 화학적 관행농과 기계화 영농의 선두주자로 경제적인 성공도 이루었다고 한다. 서양채소류와 파 등을 썩어심어 규모화 시킨 농사는 파주에서 두 번의 커다란 수해가 날때마다 오히려 큰 돈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후 파주와 남양주 마석, 경남 하동과 평창군 용평면과 현재의 진부면 두일리까지 14년 동안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이제막 전나물골 2만평이 넘는 너른 농장을 발판으로 브르콜리, 비트, 빨간 양상추, 파프리카 등을 미생물을 이용한 자연농업으로 훌륭히 키워내고 있다. 초기 강원도로 떠나올 때 양채류 농사를 짓는데 어려움이 많았단다. 예로부터 농사는 대나무가 잘 자라는 곳이라야 좋다라는 말이 있듯이 겨울이 길지 않은 곳을 택하라 했던가.
원중연님이야말로 도시민들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위한 상업적 자본에 길들여진 화학적, 기계적으로 고비용 구조인 관행적 농업방식과 관주도의 친환경농업을 따랐던 터라 농업에 대한 철학과 종교적 영성이 약하지 않나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올초부터 본격적인 자연농업 매니아로 입문하면서 그 즉시 미생물을 배양하고 실험삼아 비트 밭에 감주를 만들어 20cm 깊이로 뿌렸다. 자외선 노출이 심하지 않은 야심한 저녁에 토양을 흠뻑 적시도록 해줌으로서 미생물의 활동을 최대한 왕성하게하고 그에 따른 효과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과거의 농부들은 누가 먹어도 좋은 것을 생산하는 진정한 백성(百姓)으로 존재해 왔었으나, 자본이 지배하는 현재는 다수의 시장상황에 따라 기준이 바뀌고 그에 맞는 물건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모순이다. 잎으로는 정부나 지자체에 끌려가거나 의존하는 농업이 아니라 자기자본으로 생산물을 책임지고 만들어내는 자기 주도적 농민이 필요함을 지적하셨다. 괴산에 있는 자연농업연구소에서 실시하는 자연농업연찬에 인연이 되어 두부부가 교대로 참석하여 많은 것을 배우셨는가 보다. 미생물에 의한 발효농업으로 돌아선 것은 물론 삶도 혁명적으로 변화되었다고 한다. 계절이나 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한 새로운 방식의 농업은 이렇게 오대산과 같은 악조건의 산악지형에서부터 시작하여 전라도의 평야지대에까지 골고루 퍼져가야 됨을 강조하시면서 산업적 개념이 아니라 환경적 차원에서 다루기를 바라고 계셨다.
작게는 보이지 않는 미생물에서부터 동식물과 숲 속의 다양한 식생들,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서로서로가 지속적인 순환의 관계를 맺으며 존재의 가치를 느끼는 종합예술이 농사요 삶의 목표임을 덧붙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생각해 본다면 지역농업인 스스로가 자체역량을 가지고 저비용 고효율의 농업문화를 생활속에서 실천하다면 좋을 것이라 하셨다. 국가간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모든 무역 장벽을 제거시키는 협정(FTA)에서 농촌이 살길은 농민 스스로가 농산물 안전성의 기준을 더욱 높이고, 농약이나 제초제, 각종 비료 등의 사용을 억제하면서 자발적으로 검사하여 투명한 생산과 유통으로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는 마음의 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시면서 '우리정부가 힘을 쓸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농민이다. 농산물의 검사를 철저히 하고 당장의 이익을 위한 지엽적인 건설과 개발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발전을 이룰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된다'고 하셨다. 또한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며 짓는 농사와 바른생활이 생활의 근간을 이루어야하며, 몰입과 갈등, 혼돈과 무질서를 통해야만 평강에 이룰 수 있다는 핵심을 이야기하셨다. 그리고는 언제 어느 때든 내 농토와 내가 농부로서 부적절한 퇴출 대상으로 찍힌다면 후회 없이 나가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같은 맥락에서 농촌에 남아있는 그룹들이 농촌을 더욱 피폐하게 만드는 근원일 수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농촌이 도시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농촌문화를 복원시키고 자연적인 생태계를 신앙의 대상으로서 여겨 지금과 같이 무분별하게 유기되고 강제로 해체되는 부분들을 막아야 됨을 강조하셨다.
부인 송선희님은 강원도의 야생화에 푹 빠져 사신다. “제비동자꽃, 동자꽃, 하늘말나리, 하늘나리의 색들이 선명하여 파아란 속에서 주황색이 한 가닥 가냘프게 보일 때 그것을 본 느낌을 잊을 수 없다”고 하신다. 그러시면서 “도시사람들이 자신의 일이 힘들면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짓지”를 이야기하는데 그런 감성적인 말이 제일 싫다고 했다. 모름지기 농사꾼 밥이 제일 어려운 것이라 그러시는 거다. 원중연님은 “농민이 아니라 백가지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써 농민을 이해하고 농심을 알 수 있다는 뜻의 백성(百姓)임을 강조하셨다. 각자가 주인이 되어 사는 세상, 백성으로 주인의식을 가져야 됨을 잊지 말아야 됨을 이야기해 주신 것이다. 두 부부는 다품종으로 규모를 크게 늘려 단가를 나추는 중이다. 파프리카, 캐일 등이 이때쯤 생산하는데 올해는 40일 동안 비가오고 태풍이 지나가 수확할 것이 없단다. 주변에서 함께 농사짓는 농부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외지에서 오신 다양한 분들과의 모임을 갖는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부부가 함께 우리 땅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공부도하고 얼마 전까지는 집짓는 곳이라면 만사를 제치고 구경했다고 했다.
그리고 수해가 난후 흥하는 농사현장과 망하는 농사현장을 방문했다고 하셨다. 결론적으로 흥했던 농사는 시설을 하지 않은 농사였고, 망했던 농사는 최첨단의 시설을 한 곳 이였다고 한다. 특별히 원중연님은 ‘무슨 일이건 체득된 만큼이 자기 깊이고 지혜다. 의욕을 앞세운 꾀로 일을 했을 때는 오래가지 못한다. 자연농업은 결론이 없으므로 각자 각자가 어려운 일, 힘든 일을 겪으면서 느끼는 것으로써 결과를 삼아야 한다.’ ‘우리가 살고 간 것이 없다. 곧 중고가 없고 자연적인 문화가 사라졌다. 정돈된 생활의 문화를 만들어야겠다. 산에서 깨달았던 배달민족의 기상을 알게 되었다. 농민 스스로가 농산물 수준을 높여나야 한다. 우리나라가 사는 방법은 핸드폰과 자동차도 팔고, 농산물도 팔아야 산다. 그것을 위해서는 농산물의 수준을 몇 단계 끌어 올리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냥 묵묵히 가면 파동이 일어 제대로 된 질서가 성립된다. 자연을 두려워하거나 잘못 이해하여 참지 못해 적대시 한다는 산업논리는 없애야 한다. 정부나 학계에 농촌과 농업의 미래를 맡겨놓고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며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는 그래서 자신들의 기반마저 무너뜨리는 무지한 백성은 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그러시면서 원중연님이 자연농업을 이끌고 계시는 분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자연농업인과 협회가 지역과 품목을 아우르는 유기적으로 네트워크로 ‘농산물의 안정적인 유통과 판매문화’에 계획만 간직하지 말고 진정으로 실천을 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현장과 함께 행동할 수 있는 준비를 서둘러 달라는 것이다. 즉, 현장에서 열심히 농사를 담당하고 있는 농민들을 도구로 삼아서 힘 있게 좋은 뜻을 도시민과 농민들을 위해서 펼쳐 나가기를 바라시는 것, 의식이 확실해도 잘못 되어질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철학을 가지고 제아무리 애써본들 자칫 공허해 질 수 있는 점도 잘 감안하여 뜻을 모으자는 뜻일 것이다.
저녘 늦게까지 대화의 꽃을 피우고는 식사와 함께 잘 익은 돌배주로 모처럼만에 회포를 풀었다. 그렇게 오대산자락에 신령한 어두움은 우리를 기분좋게 만들어 주고 '우리의 농촌과 농업문화는 자연성과 역사성, 공동체성이 적정히 어우러져야 희망'이 있음을 영감으로 느끼게하여 주었다. | ||||||||||||||||||||||||||||||||||||||||||||||||||||||||||||||||||||||||||||||||||||||||||||||||||||||||||||||||||||||||
류기석 기자 [2006-08-23 18:3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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