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이야기/생태환경

30대에 강원도 산골짜기 들어가 된장 담그는 캠퍼스 커플(자연을 닮은 사람들 060301)

by 마리산인1324 2007. 1. 15.

 

<자연을 닮은 사람들> 2006-03-01 20:12:01

http://www.naturei.net/CONTENTS/contents_view.html?section=1&category=72&code=3191

 

 

 

30대에 강원도 산골짜기 들어가 된장 담그는 캠퍼스 커플

"가재, 옆새우가 사는 깨끗한 물과 공기...된장 맛도 좋고 사는 재미도 좋아요"
 
된장 만드는 일이 즐겁기만 한 강범용 최부용 씨 부부.
www.naturei.net 2006-03-01 [ 오현주 ]


서울 춘천 간 46번 경춘국도를 타고 가다 가평- 강촌을 지나 긴 다리 하나를 건너면 오른쪽으로 화천 들어가는 표지판이 보인다. 그 길로 들어서면 서울 근교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코스 중의 하나인 의암호가 나온다. 완만한 곡선의 2차선 지방도이다. 오른편에 눈높이로 짙푸른 북한강이 넘실댄다. 길과 강이 가까이 얼굴을 맞대고 있다. 싱그런 강물 냄새와 차가운 물이 몸으로 느껴진다.

의암호를 지나면 박사가 많이 배출됐다는 춘천 서면 마을이다. 계속 달리다보면 오른편으로 근사한 야외 조각전시장, 춘천애니메이션센터 등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 길은 조선일보 마라톤 코스이기도 하다. 구간 거리 표지판이 길 따라 세워져 있다. 춘천댐을 건너자마자 급하게 좌회전을 했다. 용화산 들어가는 지방도 407호이다. 곧장 가면 춘천시내이다.

좌우의 풍경이 제법 강원도 답다. 왼쪽으로 북한강이 흐른다. 때는 2006년 2월의 마지막 주다. 아직도 강물이 얼었다. 이곳은 가끔 들른 곳이다. 강가의 멋진 카페에 앉아 커피 마시며 강물을 쳐다보던 추억이 서려있는 지역이다. 여름에 화천댐에서 물을 내보내지 않으면 강바닥이 내비쳐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카페가 보이지 않는다. 없어졌다. 분명히 그 자리인데...자세히 보니 담벼락만 조금 남아 있었다. 오던 길로 계속 들어가자 왼편에 송암리라는 마을 이정표가 나왔다. 커다란 정자를 끼고 들어가 논길을 달렸다. 국도 건너편 산 중턱에 전원주택 단지가 있었다. 장난감 같은 미국식 2층 목조건축물들이 우리의 낮은 산과 조화를 이루지 못해 부자연스럽게 보였다.

강씨의 집은 음식점을 염두에 두고 지어 시골집 치고는 컸다. 50평이다.
www.naturei.net 2006-03-01 [ 오현주 ]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마을 중앙의 이층 건물을 마주보고 우회전 해 산 쪽으로 향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강범용 씨(50세)가 트럭을 타고 마중 나왔다. 그의 뒤를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 전원주택 두 채를 지났다. 야트막한 언덕으로 올라서자마자 왼편에 커다란 집이 나타났다. 강씨의 집이다.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 송암리.

마당 한쪽에 차를 세웠다. 강씨의 집도 만만치 않았다. 시골에 웬 집을 이렇게 크게 짓고 사는가했다. 집 현관과 벽을 따라 진한 갈색 나무를 둘러대 일본의 목조주택이 연상됐다. 집 뒤로 산꼭대기까지 경운기가 다닐 정도의 시멘트길이 나 있었다. 길 오른편으로 비닐하우스와 밭들이 계단식으로 이어져 있었다.

-집 입구에 커다란 전원주택이 보이던데요.

“서울의 대학 교수분이 사는 곳이에요. 여기 땅 대부분은 서울사람들이 다 샀을 겁니다.”

땅값도 상당히 올랐겠구나 생각했다. 하긴 서울에서 3시간 내외이고 공기 좋고, 물 좋고, 경치 수려하니 가만 놔둘 리 없을 것이다. 강씨가 집 주변을 다니며 구경시켜 주었다.

강씨의 집과 하우스. 혼자서 야산을 개간해 길을 만들고 밭을 일구었다. 멀리 화악산이 보인다.
www.naturei.net 2006-03-01 [ 오현주 ]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 험한 산비탈에다가 돌투성이였어요. 제가 길을 닦고 밭도 다 만들었습니다.”

개발 비용이 땅값과 맘먹을 것이라는 강씨의 말에 과거 험했던 지형이 짐작됐다. 낡은 포크레인이 비탈에 서 있다. 중고를 구입해 그것으로 묵은밭을 일구었다고 한다. 조금 더 오르자 마을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멀리 화악산이 보였다. 집 뒤로는 낙엽송이 한 줄로 들어서있다.

“조선시대 책 ‘산림경제’에 우리나라 5대 길지 가운데 하나로 소양댐 근처 우두벌을 들었어요. 여기를 말합니다. 소양강 맑은 물이 흐르고 경치가 빼어난 산이 있는 곳이지요. 이곳은 태풍 피해도 없어요. 화악산이 가려줍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명당자리였다. 강씨는 이곳의 땅 6,500평을 사들여 그 중 일부를 밭으로 개간해 콩과 감자, 고추 농사를 짓는다. 강씨는 ‘솔바우’란 브랜드로 된장, 간장, 막된장 등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솔바우는 마을이름이기도 하다. 강씨의 땅도 구입 당시보다 많이 올랐다고 한다. 16년 전에 샀다. 현 시세는 당시보다 20~30배를 부른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서 쓴다. 가재 옆새우 등이 사는 오염 안된 물이다.
www.naturei.net 2006-03-01 [ 오현주 ]


강범용 씨는 서울에서 귀농했다. 귀농이란 말이 나오기 훨씬 이전인 1989년에 시골로 들어갔다. 당시 나이 32세였다. 처음은 이곳이 아니었다. 강원도 화천 원천리라는 곳이다. 그곳으로 친구와 낚시를 갔다. 친구의 부모가 내놓은 집을 보게 됐다. 250평의 시골집으로 우사도 있고 텃밭도 있었다. 강씨는 솔깃했다. 당시 내놓은 가격이 400만 원, 그런데 사겠다는 쪽에서 380만 원을 고집해 서로 버티는 중이었다. 강씨가 중간에 들어가 달라는대로 주고 사버렸다.

강씨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다. 국문학을 전공했다. 그는 직장 생활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강씨는 어릴 적부터 시골 생활을 동경했다. 농장을 갖고 싶은 꿈을 가졌다. 커서는 생태 농업과 농민 의식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일찍 시골에 눈을 뜬 이유는 남다르다. 그는 서울에서 음식점을 하다가 쫄딱 망했다. 권리금은커녕 보증금도 날렸다.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그때 강씨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잘못 되면 땅이라도 남지 않느냐는 생각을 했다. 망해봤자 씨앗 값이나 비료 값만 날리면 됐다. 하지만 도시에선 전부를 잃는다. 그래서 시골로 들어간 것이다.

대학 시절 한 때 운동에 열을 올렸던 그가 시골 들어간다고 하자 주변에서 “시골에 농촌운동 하러 가느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는 “밥 먹고 살려고 들어간다”고 대답했다. 물론 말은 그렇게 했지만 힘들다는 걸 알고 들어갔다.

강씨의 부인은 은행원 출신이다. 남편보다 적극적으로 농사일을 한다고.
www.naturei.net 2006-03-01 [ 오현주 ]


혼자 먼저 들어갔다. 강씨의 부인 최부용 씨(47세)는 이곳 춘천이 고향이다. 소양강댐 수몰지구이다. 최씨의 부모는 춘천을 떠나 경기도 김포로 들어가 농사를 지었다. 최씨의 어릴 적 환경은 농촌이었다. 물론 최씨는 일찍 서울로 올라와 농사의 농자도 모른다. 강씨 부부는 캠퍼스 커플이다. 최씨는 은행을 다니며, 남편과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왔다.

두 사람은 1986년에 결혼했다. 강씨가 시골에 들어갈 당시 최씨는 아이를 낳고 김포 친정집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최씨는 복직해 상업은행 영등포지점에 있었다. 남편과 떨어져 친정집에서 아이와 지냈다. 주말에 남편이 있는 화천에 가려면 산 넘고 물을 건너야 했다.

“퇴근하고 김포에 들러 아이를 업고나와 청량리역에 가서 기차를 타고 춘천에 도착해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화천으로 들어갑니다. 하루가 꼬박 걸렸어요.”

다음날 출근 때문에 잠만 자고 다시 서울로 와야 하는 고달픈 이산가족 생활이었다. 최씨는 몇 번을 그러다가 견디지 못하고 과감하게 직장을 그만 두었다. 그리고 남편이 있는 화천으로 들어갔다. 최씨는 “대충 들어왔어요. 시골 생활이 힘든 줄도 몰랐지요. 남편 따라 들어왔어요. 왔다갔다는 하는 게 너무 힘도 들었고요.”라고 기억했다.

메주콩을 삶는 가마솥이 3개나 된다.
www.naturei.net 2006-03-01 [ 오현주 ]


강씨는 처음에 꿩 사육을 했다. 도시 출신 귀농인들이 매스컴의 화려한 광고만 보고 쉽게 판단을 내리고 손을 대는 작목이 몇 가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꿩이다. 강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농사 경험 없이 큰 노동을 들이지 않고,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꿩은 불교에서 길조로 치는 새이죠. 제사상의 최고 고기가 치적이라고 꿩고기 아닙니까.”

그는 처음부터 판을 크게 벌였다. 꿩 협회 회장도 지냈다. 아직까지도 꿩 사육하는 사람 가운데 강씨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직접 꿩도 키웠고, 꿩 위탁 판매 사업도 했다. 우리나라의 고려꿩이 세계 어느 꿩보다 맛이 좋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고려꿩을 보급하려는 야심찬 계획도 있었다. 방송국 프로에도 강씨 집 꿩 사육 얘기가 소개되기도 했다.

그는 10여 년간 꿩 사육을 했다. 귀순용사 김용이 했던 프랜차이즈 모란각 냉면집에 꿩을 대려고 한 적도 있다. 북한의 유명한 모란각 냉면이 바로 꿩 냉면이었다. 그 점에 착안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김용이 사업에 실패하면서 뜻대로 되지 않았다.

5년 전에 된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강씨집 된장이 맛있다고 소문이 났다.
www.naturei.net 2006-03-01 [ 오현주 ]


그는 서울의 유명 음식점 음식개발부장과 함께 꿩 요리를 연구했다. 그 음식점은 소 요리 전문점이었다. 광우병 파동으로 타격을 입고 다른 활로를 찾던 중이었다. 그 부장은 꿩고기 판로를 개척하겠다는 일념으로 3개월간 연구를 했다. 일본에서 자재까지 들여와 검토했으나 시장성이 없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강씨는 그 말을 듣자마자 꿩 사육에서 손을 뗐다.

“꿩 하면서 빚을 많이 졌어요. 문제는 판로였지요. 사료 값은 계속 들어가고... 결국 손을 들었어요.”

아직도 사육의 흔적이 남아 있다. 강씨의 집 앞 공터에 당시 수백만 원 하는 꿩 부화기와 사육장을 비롯해 자동온도조절기 등 설비들이 녹슨 상태로 창고에 방치돼 있다.

“시설비용이 많이 들어갔어요. 사육장 바닥에 난방 파이프를 깔고 그 위를 황토로 덮었어요. 자동온도조절기는 외제로 하나에 10여만 원 하는 겁니다.”

강씨는 화천에서 꿩 사육을 하던 도중 춘천으로 이사를 했다. 화천 집이 마을 한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크게 할 수가 없었다. 지도를 펴놓고 땅값이 싸고 축산을 할 수 있는 자리를 골랐다. 군 생활 중 터득한 독도법이 도움이 됐다고 한다. 지금도 지도 한 장 만 있으면 물소리 새소리를 들을 정도라고 한다.

이곳에 들어오려는 강씨를 보고 마을 사람들이 "귀신 나오는데 거기는 뭐 하러 들어 가냐"고 할 정도였다. 강씨도 농사를 지었다면 여기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편평한 곳을 찾았을 것이다. 꿩 때문에, 축분 때문에 이곳까지 찾아들어오게 된 것이다.

강씨 부부는 4자녀를 두었다. 시골에서 농사일을 배우며 공부를 한다.
www.naturei.net 2006-03-01 [ 오현주 ]


집도 없어서 마을의 사랑채에서 1년 남짓 기거했다. 현재의 집터에다가 슬레이트 집을 지었다. 그 집도 99년 구정 직전 불에 전소됐다. 다행히 집을 비운 상태라 인명 피해는 없었다. 강씨는 “그때 KBS 뉴스에 우리 집이 나왔어요”라면서 “꿩에 이어 두 번이나 방송 탔다”면서 웃었다. 그리고 현재의 집을 지었다. 벽돌과 목조로 된 집이다. 농가주택개량기금도 받고, 빚도 얻었다. 보험금도 조금 나왔다. 벽돌 쌓는 친구와 도자기 하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지었다. 강씨는 꿩 사육을 접고 잠시 집 짓는 곳을 따라다닌 적이 있다.

“프랑스식용달팽이 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친구가 조립식주택을 지으러 다녔어요. 거기 같이 다니면서 집 짓는 거 배웠어요.”

그 때 포크레인도 다루고, 용접도 배우고, 보일러, 상하수도 기술을 배웠다. 전기 수도도 다할 줄 안다. 요즘도 동네에서 고장이 나면 강씨부터 찾는다고 한다. 집 설계는 원주에서 도자기를 하던 지인이 해주었다. 홍대 미대 출신으로 낚시터에서 만났다고. 그 지인과 첫만남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한 토막.

“꽁지머리하고 젊은 여자를 데리고 와 낚시를 하더군요. 가만히 보니 그 사람은 낚시대만 잡고 아무것도 안하고 턱으로 지시합니다. 그러면 여자가 담뱃불 붙여주고, 낚시밥 매달아 주고, 바늘에서 고기 떼 내고 하는 겁니다. 처음엔 돈 좀 있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알고 보니 도자기 만들면서 진흙 묻은 손으로 아무 것도 잡지를 못해 생긴 습관이었던 겁니다.”

그 젊은 여자는 현재 부인이 됐다고 한다.

꿩알껍질을 숙성시켜 밭에 뿌려준다. 천연칼슘이다. 강씨는 이처럼 직접 자재를 만든다.
www.naturei.net 2006-03-01 [ 오현주 ]


그 지인은 나중에 꿩 사업을 접을 경우 음식점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를 해주었다. 그래서 집이 커졌다는 것이다. 건평이 50평이다. 30평은 안채로 쓰고 나머지 20평은 메주방으로 쓴다. 강씨는 집을 거저 지은 셈이다. 평당 100만 원도 안들었다. 자재 값만 들었다. 개당 60원짜리 시멘트벽돌이 3만 장, 180만 원이 들었다. 붉은 벽돌로 했다면 비용이 10배는 더 들었을 것이라고 한다. 한사람이 보조 붙여서 하루에 2천 장을 쌓는다고 했다. 3, 4일이면 다 쌓는다고.

스티로폼 100mm짜리를 중간에 넣어 보온도 잘 된다. 안팎으로 황토와 생석회를 섞어 2cm두께로 발라 유리창에 물기가 안 생긴다. 황토가 다 빨아먹는다고 한다. 도배를 하지 않아도 된다. 연한 황토색이라 은은하고 운치 있어 보인다. 내벽의 허리 높이까지 나무를 댔다. 벽에 기댈 경우 촉감 때문이다.

“자세히 보시면 나무 두께에 강약이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특이하고 멋지게 지으려고 애를 썼어요. 형광등 갓도 나무로 짰고요.”

강씨의 산에서 각종 약재가 나온다.
www.naturei.net 2006-03-01 [ 오현주 ]


춘천은 춥다. 겨울이 10월부터 시작이다. 런닝을 벗자마자 내복을 입어야 한다. 그런 곳이다. 강씨는 심야전기보일러를 설치했다. 훨씬 경제적이다. 된장을 말리기 위해 가정집보다 난방을 더 하지만 전기세는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는다. 기껏해야 한 달에 20만 원 선이다.

“시골집들 크게 짓는 경우가 많아요. 시골에선 나무 높이보다 높이 짓지 말라고 하잖아요. 2층 구조도 그래요. 땅값이 비싼 도시에서나 그렇게 하지 시골까지 와서 그럴 필요가 있나 해요. 주위 경관하고도 어울리지 않고요.”

강씨가 된장을 하게 된 계기는 예부터 내려오는 이 마을의 된장 맛 때문이다. 마을에서 담근 된장 맛이 주변 지역까지 널리 알려질 정도였다. 춘천은 원래 오이, 호박 하우스농사가 유명했다. 가락동시장을 뒤흔들 정도였다고. 강씨 부부는 이 마을에 들어와 살면서 자연스럽게 된장 만드는 법을 배웠다. 겨울에 주민들은 함께 모여 콩을 삶고, 메주를 쑤고, 된장을 만든다. 남자들은 한쪽에서 새끼를 꼬아 시렁에 메주를 매단다.

강씨의 농산물. 인터넷 검색창에 '솔바우'라고 한글로 치면 강씨의 홈피로 들어간다.
www.naturei.net 2006-03-01 [ 오현주 ]


“마을 사람들이 우리 집 된장 맛이 좋다고들 해서 본격적으로 판매용 된장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저는 맛으로 승부를 내려고 합니다.”

2001년부터 된장을 만들었다. 콩을 매입하고, 된장독을 사는데 수천만 원의 돈을 투자했다. 강씨 집 마당의 된장독에 약 1억5천만 원어치의 된장이 숙성 중이다. 된장은 적어도 3년은 지나야 맛이 나기 시작한다고. 장맛이 좋다는 소문이 나려면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 5년이 채 안됐으니 초기 단계이다.

“장맛은 물과 공기에 의해 결정됩니다. 우리 집 뒤 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있어요. 반디불, 가재, 도롱룡에 옆새우가 살아요. 그 물맛이 장맛을 살려줍니다. 나무에서 나오는 맑은 공기도 한몫을 하죠. 기온도 낮아 저온발효가 됩니다.”

속 타는 꿩사육 시설. 한대에 10만 원 이상하는 자동온도조절기도 무용지물로 창고에 쌓여 있다.
www.naturei.net 2006-03-01 [ 오현주 ]


그는 밭에 화학비료 주지 않는다. 강원대 농대를 나온 그의 처남이 농약회사에 다닌다. 제초제 살충제를 박스로 가져다 쓰라고 해도 한포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농사 철학은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농사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연농업을 존경한다고 했다. 제대로 된 농심을 가진 농민이 생산한 걸 제 값을 받을 수 있는 농촌을 꿈꾼다.

그는 10명으로 구성된 용화산 친환경작목반원이다. 강씨를 비롯 모두가 전환기유기농을 받았다. 그의 집 마당에는 꿩알 껍질 등 각종 천연자재들이 통속에서 숙성되고 있었다. 집 한 켠에는 콩을 삶아내는 가마솥이 3개나 걸쳐 있다. 강씨로부터 된장 만드는 과정을 들어보았다.

1. 콩을 삶는다. 가마솥에서 3시간 끓이고, 2시간 뜸을 들인다.
2. 기계로 갈아 메주 형태를 만든다. 한 말에 3장 정도 나오도록 한다.
3. 시렁에 매달아 약 30일간 건조한다.
4, 방바닥에 볏짚을 깔고 메주를 놓고, 그 위에 다시 볏짚을 깔고 메주를 놓는다. 솜이불을 덮고 발효를 시킨다.
5. 30일이 지나면 메주를 닦아서 항아리에 넣고 소금물을 넣는다.
마지막으로 40일이 지나서 메주를 꺼내서 버무리면 된장이요, 물은 간장이 된다.

포크레인 중고를 구입해 밭을 개간했다.
www.naturei.net 2006-03-01 [ 오현주 ]


강씨의 된장과 간장, 청국장 등은 서울의 유기농판매처에 나간다. 농협에도 조금 나가지만 주로 직거래로 소비된다. 강씨는 “우리나라 대규모 유기농 농산물매장을 가보면 모두 중국산입니다. 국내산은 소규모 매장에나 가면 볼 수 있어요. 유기농 농산물을 지금 가격보다 훨씬 저렴하게 누구나 먹을 수 있도록 판매 구조가 바뀌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강씨는 시골에 들어온 이후 한 번도 서울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서울 갈 일이 있어도 볼일만 보면 집으로 돌아온다. 도시에서 술에 약했던 그는 여기서 술도 늘었다고 한다. 부인 최씨는 건강해졌다. 머리가 아프고 냉방병으로 실실 앓았던 증상이 없어졌다.

최씨는 처음에 농사일을 힘들어 했으나 이제는 남편보다도 일을 더 잘 하고 적극적이라고 한다. 강씨는 “나는 놀기만 해요, 우리 집사람이 일 다 해요”라며 미안한 듯 웃었다. 기자가 찾아간 날도 최씨는 점심상을 차려놓은 후 집 뒤쪽으로 돌아가 두꺼운 앞치마를 목에 걸치고 된장독을 닦았다. 자그만 체구에 어디서 무거운 독을 옮기는 힘이 나오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춘천의 북한강은 채 녹지 않았다.
www.naturei.net 2006-03-01 [ 오현주 ]


부부는 문화적 갈등도 느끼지 못한다. 친지들이 찾아오면 고기 굽고 술 마시며 살아가는 얘기 주고 받는다. 그런 게 다 사는 재미다. 춘천 시내도 웬만한 건 다 갖춘 큰도시다. 시내만 나갔다와도 답답함을 못 느낀다고.

강씨는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나서는 곧장 밭으로 나가 일을 한다. 요즘은 한가한 때이다. 봄이 되면 마을 전체가 품앗이로 일을 시작한다. 강씨 부부가 남의 밭에 나가 일을 해주면 마을주민들도 강씨 집 밭에 와서 일을 해준다. 마을은 100호 정도 된다.

3월에 해토가 되면 거름 주고, 돌을 줍는 등 영농 준비를 한다. 3월 말에 감자 심고, 4월에 고추 준비하고, 못자리 들어간다. 5월에 고추 심고, 중순에 모내기를 한다. 6월에 감자 캐고 7월에 콩 심고, 배추 무도 심는다.

작년에는 배추를 3천 포기 수확했다. 콩 5가마, 고추는 300근이 나왔다. 고추 수확량은 해마다 다르다. 작년의 경우 농가 소득이 약 2천만 원이다. 그 돈은 이자를 갚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강씨는 농가 부채가 많다. 이곳 땅도 빚을 내서 샀다. 꿩 사육하면서 많은 손해를 보았고, 집을 지으면서 돈을 빌렸으며, 된장을 하면서 또 새로 빚을 지었다. 그래서 땅의 일부를 팔아 빚 정리를 할 생각이다.

3월이 눈 앞인데도 춘천의 북한강에선 얼음 낚시가 가능하다.
www.naturei.net 2006-03-01 [ 오현주 ]


강씨 부부는 4명의 자녀를 두었다. 고3, 중1, 초6, 초3 등이다. 초등학교는 마을에 있다. 중고등학교는 춘천으로 나간다. 아침에는 특별히 학생들을 위해 버스가 다닌다. 아이들도 시골 생활에 적응을 잘 한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도 도시로 나갈 계획이 없는가 하고 묻자 오히려 강씨는 “우리 아이들은 미국이나 선진국보다도 선택된 아이들”이라고 대답했다. 학생 수가 적어 교사가 신경을 더 많이 써주고, 컴퓨터 등 교육 시설도 월등히 좋다는 것이다.

“한 번은 콘도에서 근무하는 친지가 콘도 수영장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오라고 했어요. 제가 거기보다 여기 강물이 깨끗하다고 하니까 그 친구 말이 ‘맞다’ 고 하더군요. 수영장 그거 소독약 천지잖아요.”

강씨는 철저히 자연생태적인 교육을 지향한다. 학원에는 말할 것도 없고, 필요하면 학교도 쉬게 하는 경우가 있다. 아이들이 여름에는 강에서 수영하고, 겨울에는 얼음낚시에 썰매 타고 스케이트 타고 얼마나 즐겁게 보내는 줄 아는가하고 되묻는다.

“우리 아이들은 고추도 따고, 불도 피우고, 눈 치우고, 메주도 닦으면서 농사일을 도와요.”

강씨는 대학 전공을 살려 한동안 글을 쓰려고 시도했으나 상상력의 벽에 부딪쳐 좌절의 경험을 겪어야 했다.

“모든 예술 창작이 모방에서 시작됩니다. 시 소설을 쓰려고 해도 농촌경험이 없으니까 자연을 묘사하지 못해요. 농촌 인물을 등장시키지 못하는 거죠. 그런 아쉬움이 있습니다.”

솔바우된장은 날로 먹는게 훨씬 맛 있다. 쌈장으로 최고다. 양념이 필요없다.
www.naturei.net 2006-03-01 [ 오현주 ]


남들이 귀농이란 말을 생각하기 훨씬 이전에 시골에 들어와 나름대로 자리를 잡은 강범용 씨. 그는 도시 귀농인들에게 몇 가지 주의할 점을 들려주었다. 그 중 하나가 작목 선택이다. 강씨는 특수한 작목을 하지 말고 일반적인 농사, 벼나 밭농사로 시작하라고 충고한다. 그것도 소규모로 할 것을 권한다.

귀농인의 호주머니를 노리며 접근해오는 무리가 있으니까 작목 선정에 신중을 기하라고 주의를 준다. 예컨대 신종특수가축이 그것이다. 타조, 칠면조, 호로호로새, 금계 은계 같은 가축을 키우면 대박 난다는 식으로 과대 선전들을 한다고. 이런 것들에 현혹되지 말라는 말이다. 나무 쪽에도 있다. 한 때 두충나무, 오갈피, 은나무, 허깨나무, 옻나무 등이 돈 버는 나무라고 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알량한 귀농자금을 노리는 이들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판로가 문제에요. 남의 말만 듣고 돈 쏟아 붓고 벌여놓은 다음에 팔리지 않으면 망하는 겁니다. 관상수 쪽에도 있어요. 타조 같은 경우 그걸 사육해 고기를 팔 경우 수지가 안 맞아요. 차라리 타조 고기를 수입하는 쪽이 낫지요. 주변 사람 중에 재산 들어먹고 자살하는 사람까지 봤어요.”

남의 말만 듣고 대규모로 꿩 사육했다가 빚만 지고 실패한 자신도 피해자 중 하나라고 말했다.

강씨와의 긴 인터뷰를 마치고 강씨 집을 나와 춘천댐을 향해 오던 길을 달렸다. 봄기운이 완연히 느껴지는 오후였다. 그런데도 북한강은 녹지 않았다. 얼음 낚시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감쪽 같이 사라진 카페 앞을 지나는 순간 강씨의 말이 떠올랐다. “그 카페 불나서 없어졌어요.”

오현주 기자
[2006-03-01 20: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