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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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귀농 5년째, 다시 처음으로 | |
입력: 2006년 09월 04일 18:32:49 |
〈이우성/ 농부·충북 괴산〉
시골에 내려와 맞는 5년째. 올해는 유난히 비가 자주 오고 뜨거운 날이 많다. 하늘과 함께 농사 짓는다는 말을 실감한다. 고추농사에 어느 정도 이력이 붙었다고 생각한 것이 오만이었는지 600평 노지에 심은 고추가 전멸했다. 지난 7월 3일을 빼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내린 비 탓에 모두 역병이 걸려 바싹 말랐다. 나와 아내의 속도 시커멓게 말랐다. 한 포기도 제대로 건지지 못하고 밭을 치우면서 고추에 애정을 더 쏟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알게 모르게 내 손으로 지은 안전한 농산물이 아는 사람들 밥상에 올라가 식탁을 건강하게 한다는 생각으로 뿌듯했었는데, 우리집 최고의 경제작물인 고추에서 실패를 맛본 올해는 큰 시련을 안긴 해로 기억될 것이다. 그래도 고추 외에 다른 채소들이 남아있으니 밭 전체가 쓸려간 곳에 비하면 얼마나 면구한 일인가?
큰 자연 재해 앞에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겸손을 생각한다.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 썩은 고추대를 다 뽑고 김장배추를 심는다. 고추를 예약한 분들에게 애정과 정성이 부족한 제 탓을 적은 사죄의 편지를 한 통씩 드려야겠다.
5년 전, ‘잘 나가던’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가족 모두 충북의 시골마을로 거처를 옮길 때는 왜 마음고생, 우여곡절이 없었겠는가. 다람쥐 쳇바퀴처럼 바삐 굴러가는 도회지 일상이지만 네 식구 먹고 살기에 넉넉한 월급에 풍족한 문화생활, 전원도시 일산에서의 남부럽지 않은 시간들, 서울 한복판 건물로 출·퇴근하는 자부심 따위를 모두 내려놓고 자발적인 가난 속으로 뛰어든다는 것은 그리 짧은 동안에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아니었다.
주체적으로 산다는 것, 마흔 넘어 얼마 남아있지 않은 시간 동안은 내가 내 삶을 설계하고 싶었다. 가장 소중한 것,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간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땅으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두드리기만 하고 겁내기만 하고는 삶의 일정이 자꾸만 유예될 것만 같았다.
내 입속으로 들어가는 반찬 가짓수가 늘어갈 때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뿌듯함이었다. 내가 기른 농작물로 만든 반찬으로 밥상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하는 것이 귀농의 제일 큰 즐거움이었다. 비로소 아비의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한 음식을 아이들에게 먹이고 있다는 아비의 의무감 같은 것 말이다. 귀농 5년차, 어느 정도 기반이 닦일 시간이다. 나는 기반이 닦인 것인가. 결론은 아직도 헤매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이웃과도 완전히 결합되어 시골 촌부와 같은 모습으로 비춰지질 않는 것이다.
후쿠오카 마사노부는 농사를 지으며, 자연을 만나면서 신을 만나는 느낌이었다고 했는데 난 그저 호사나 부리고 만용이나 부리고 뭔가 우월한 생각에 사로잡혀 나 아닌 다른 방식의 사람들을 홀대하거나 거들떠보려고 하지 않은 적은 없는지 반성한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래 마흔 이후 삶의 처음 모습이 그랬었지”를 기억하며 이 숙연한 결의를 또 미소 지으며 다질 때도 있겠지. 이제 나는 겁내지 않고 나 자신을 정화시키는 저 광활한 햇살 속으로 당당하게, 즐겁게 맞서 걸어 나갈 수 있다. 그 발걸음보다 소중한 것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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