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은 늘 밤 늦게 강화 집에 온다. 정확히 따지자면 토요일에 오는 셈이다. 게다가 토요일 출근을 안 하니 늘 토요일 아침은 늦다. 그런데 오늘은 일찍 봉천산에 가야 한다고 서두른다. 도착해 보니, 벌써 모임이 시작됐고 윤여군목사가 앞에서 설명을 하고 있다.
48번 국도를 4차선으로 확대한다는 걸 반대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 그 전해엔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한 여학생이 차에 치여 죽은 것에 대한 추모와 사람길되찾기한걸음대회를 했었는데, 그것과 맥이 통하는 운동이다. 그때 우리는 사람 다니는 길을 차길에 모두 빼앗긴 것을 지적하고 적어도 한쪽이라도 사람길(인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행히 요즘 만드는 길은 모두 그렇게 하고 있고, 온수리에서 초지대교 가는 길은 우리 주장대로 기존 도로에서 한쪽을 넓혀 사람길을 만들고 있다. 그때 우리는 이런 방향을 잘 살리면 강화에 사는 사람도 안전해 지는 것은 물론, 자전거도로로 홍보해 수도권 젊은이들을 불러들이는 관광상품이 될 거라고 입을 모았다.
“봉천산은 광개토대왕이 백제를 칠 때 주요 전투지역이었습니다.”
향토사학자이기도 한 덕신고 김경준교감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한반도의 중심인 한강 하구에 있는 강화도는 삼국시대부터 주요 전략요충지라는 설명이다. 가까이엔 유명한 선사유적인 고인돌도 있다. 그런데 이 봉천산 중턱으로 4차선 국도를 내겠다고 한다.
“꼭 필요하면 지금 도로를 넓혀도 되는데, 왜 산 중턱을 깍으려 하지요?”
“돈 벌려고 그러지~.”
옆에 있던 마리학교 황선진 교장선생님의 거침없는 대답이다. 단순명쾌한 대답이다. 물론 여러 가지 대의명분과 기술적인 것들이 합쳐 있겠지만, 본질은 그것일 것이다.
“각자 맘에 드는 나무를 하나씩 껴안아 보세요.”
중턱쯤에서 윤여군 목사가 일행을 세우고 설명한다. 여기가 도로가 지나가기로 되어 있는 지점이라면서, 도로가 생기면 여기 있는 나무와 생물들이 모두 죽는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무차별적인 벌목사업을 반대하는 운동을 할 때 여자들이 나무껴안기 운동을 했다고 한다. 죽음을 무릅쓴 그런 운동 덕에 지금은 그런 무식한(?) 벌목사업은 중단되었다고 한다. 윤목사가 제안한대로 나무에게 마음 속으로 한마디 해주었다. ‘내가 너를 꼭 구해줄게.’ 등산로로 다시 나오는데, 투덜이 한재호가 한마디 혼자 소리를 한다. “시키는 사람이나 따라 하는 사람이나 똑같다니까~.”
300미터 정도 되는 작은 산이지만, 강화 북쪽 너른 들판을 굽어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산이다. 꼭대기에 고려시대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냈고, 조선시대에는 봉수대로 쓰였다는 단이 있다. 뒤로 능선 몇 개가 이어진 게 정말 그 옛날에는 산성으로 쓰였음 직한 느낌이다. 멋쟁이 임영미 선생과 딸 봄들이는 맨발로 산에 올랐고, 여든셋 어르신도 정상까지 올랐다. 네 살짜리 아기도 아빠랑 함께 올랐다. 일곱 살 여자 아이는 엄마와 할머니보다 더 힘차게 혼자 올랐다. 중간중간 ‘봉천산을 살립시다’란 헝겊쪽지를 매달았다. 무슨 산악회나 자연보호, 산불조심 같은 쪽지를 많이 보았지만, 오늘 내가 매다는 쪽지는 정성이 깃든 것이다.
“사람들은 군청 앞에서 시위를 하지 왜 별로 사람도 없는 봉천산에서 하냐고들 합니다.”
하지만 봉천산을 살리는 시민모임 분들은 48번 국도 반대운동을 그냥 남에게 보이기 위한 운동으로 하지 말자는 분위기라고 한다. 우리 스스로 자연을 함께 하면서 애정을 느껴보자는 것이다. 그래야 운동도 오래 재밌게 할 수 있다면서.
가을에 이 길에서 만명이 넘는 사람이 뛰는 마라톤대회가 있는데, 그런 행사도 이런 뜻을 알리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48국도 확장반대’, ‘봉천산을 살립시다’ 이런 구호를 나라도 몸에 붙이고 뛰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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