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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책]구춘권, '지구화, 현실인가 또 하나의 신화인가'(한영빈)

by 마리산인1324 2007. 1. 10.

 

<진보평론>  제7호

http://jbreview.jinbo.net/

2003-02-19 18:32:26

 

 

 

‘지구화’라는 신화를 넘어서


 
한영빈(베를린 자유대 박사/ 정치학)

* 구춘권, ꡔ지구화, 현실인가 또 하나의 신화인가ꡕ, 책세상, 2000

1.

“지구화”라는 주제는 오늘날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는 분야이다. 왜냐하면 “지구화”는 현재 세계의 흐름을 가장 간명하고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용어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학계에서도 최근 들어 이 주제에 대한 연구들이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서구 학자들의 결실에 비하면 미약한 형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2000년도 ‘책세상’에서 출판된 구춘권의 ꡔ지구화, 현실인가 또 하나의 신화인가ꡕ 라는 단행본은 우리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처음 접하는 순간 상당히 적은 분량의 단행본이라는 것을 느꼈다. 따라서 처음 의문은 어떻게 이 복잡한 “지구화”의 주제를 총 142 페이지밖에 안 되는 적은 분량 안에서 다 소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이 적은 분량의 글 속에 상당히 중요하고 많은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

이 작은 문고판 형태의 단행본은 크게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1장에서 필자는 지구화라는 개념을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저자의 의도 중 눈에 띠는 것은 ‘지구화’ 개념을 단지 사전적으로 정의하는 것을 거부하고 1970년대 중반이후 전세계적으로 나타난 중요한 정치경제학적인 변화와 연관시켜 과거와 구별되는 오늘날 지구화의 특수한 질적 측면을 보면서 지구화를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제2장은 지구화 과정 분석을 위한 단초로서 포드주의(Fordism)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는 포드주의란 무엇이며, 포드주의가 20세기 초반 세계대공황이라는 파국과 어떠한 연관을 가지고 있으며, 20세기 중반에 어떠한 정치적 조건하에서 정착하게 됐는지를 밝히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먼저 저자는 기술적 패러다임으로서의 포드주의가 노동자들의 노동과정에서의 숙련 박탈, 단순 노동화 및 이 단순노동의 일괄생산공정으로의 결합을 통해 노동자들을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체계로 완전 종속시키는 것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기술적 패러다임으로서의 포드주의가 생산성 상승을 가져와 공급이 급격히 팽창한 반면 수요는 상대적으로 정체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20세기 초반 세계대공황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포드주의는 저자에 의하면 대공황과 전쟁의 경험 뒤 나타난 특수한 정치적 조건하에서 임노동 관계를 새롭게 조응시키며 나타난 케인즈주의와의 결합을 통해 확고한 축적체제로 정립, 발전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제3장은 포드주의의 위기와 그 결과들에 대한 논의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저자는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의 유지 및 성장 조건을 실질임금소득 상승과 생산성 상승간의 균형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에 의하면 60년대 말부터 생산성 상승 둔화라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이는 결과적으로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의 균형조건을 파괴하여 위기를 낳았다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그가 1930년대의 세계대공황과 1970년대 중반의 위기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전자는 과잉생산의 위기였고 후자는 수익성의 위기로 나타났다고 강조하고 있다. 포드주의의 위기에 대한 이런 분석은 저자로 하여금 그 결과 나타난 신자유주의 및 후기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에 후한 점수를 주지 않고 있다. 그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포드주의의 심각한 위기의 반작용일 뿐 근본적인 대안은 아니라는 것이며 후기 포드주의적 축적체제 역시 특수한 사회관계위에 정립된 것에 불과하며 그 근본은 노동에 대한 자본의 우위 및 새로운 지배세력들의 노동배제 전락으로 특징 지워지는 것이다.

제4장은 지구화가 가장 극명하고 빠른 속도로 달성되고 있는 국제금융시장의 팽창을 다루고 있다. 이 장에서는 돋보이는 것은 저자가 맑스와 케인즈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화폐적 축적이 실물경제의 축적으로부터 점차 자립화한다는 이론적 근거를 배경으로 통화주의적 길의 문제와 이 자립화로 인한 금융지구화의 여러 가지 문제들, 특히 부채문제 및 사회적 갈등의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이러한 화폐권력으로부터 나타나는 폐단을 막기 위하여 그는 정치적 조절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결론에서 자신의 논의를 종합하면서 지구화는 현실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화는 결코 숙명이거나 자연현상 또는 시장논리만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적 프로젝트라는 것을 강조하며 대안적 지구화의 길을 네 가지 측면, 즉 국제금융시장 규제의 필요성, 지구적 불평등 완화 노력, 환경적 측면 고려 그리고 전지구적, 국제협력기구의 필요성이란 측면에서 역설하며 이 짧은 그러나 풍부한 내용을 지닌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3.

이 책은 무엇보다도 저자가 서두에서 ‘지구화의 패자와 희생자들에게’라고 쓰고 있듯이 오늘날 사회과학에서 빈번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지구화”에 대하여 진보적 시각에 입각하여 일관되게 그 문제점들을 분석했다는데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를 위해 “지구화”의 문제를 단순히 피상적이고 현상적인 측면에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깊은 연원을 포드주의의 위기로 거슬러 올라가 분석하고 있다는 점은 지구화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를 심화시켜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4장에서 논의되고 있는 금융지구화에 따른 문제점들을 분석하기 위해 도입하고 있는 그의 이론적 시각은 우리나라 학계에는 아직 생소한 것으로 지구화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이 미비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구화”는 우리들의 삶에 많은 것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긍정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많은 부정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양면적이고 다차원적인 “지구화” 과정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ꡔ지구화, 현실인가 또 하나의 신화인가ꡕ는 비단 학계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도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하겠다.
 

2003-02-19 18:3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