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닮은 사람들> 2006-09-08 14:02:33 http://www.naturei.net/CONTENTS/contents_view.html?section=2&category=77&code=3755
‘도법자연’ 아름다운 생명농업을 일구는 우리시대의 진정한 자유인 | ||||||||||||||||||||||||||||||||||||||||||||||||||||||||||||||||||||||||||||||||||||||||||||||||
경상북도 울진군 태백산맥 자락에 울려 퍼지는 무지렁이 농사꾼 강문필, 최정화 부부의 외침 | ||||||||||||||||||||||||||||||||||||||||||||||||||||||||||||||||||||||||||||||||||||||||||||||||
태백산, 오미산, 퉁고산, 일월산으로 이어지는 장대한 산맥사이로 늦여름 반짝이는 햇살이 주는 풍요로움은 평화로 가득하다. 계곡마다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했으면서 그 흔한 가든 이나 상점하나를 찾아 볼 수 없는 땅 영양군 수하계곡에 들어서니 맑은 물이 흐르고 깨끗한 돌 무리들이 소복하게 모여들어 잠시 오가는 이들을 쉬어가라 하는 듯 손짓한다. 울진으로 통하는 길목에 영양의 반딧불이 축제현장이 있어 잠깐 들렀다. 이런 오지에 폐교를 활용한 반딧불이 생태공원과 체험장, 천문대는 자연스럽다. 하지만 발상부터가 도시문화의 주류인 콘크리트 건물로 첨단의 설비를 갖추는 꼴이 되었으니 당초 생태성이니 친화경이니 하는 말은 허구가 아닌가 생각든다. 지자체는 단기적인 수익사업을 위한 시설물 한두 곳만을 꾸미기 위하여 100억 이상의 예산을 쏟아 붓고 있지만, 실제적인 파급효과는 미지수다. 더구나 해마다 들어가는 유지보수와 운영비용은 무엇으로 감당하겠다는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러한 사업들이 진정으로 농촌과 산촌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무엇을 주고자하는 것인지는 잃는 것은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를 우리 모두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다.
수하계곡의 멋진 자연풍경을 즐기기 보다는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반환경적인 구조물에 온통 정신을 팔리게하는 농촌과 농민의 문화는 더 이상 농촌다움의 자연스러움이사라진지 오래다. 머지않아 이곳도 아스팔트와 콘크리트가 뒤덮는 관광지가 되어 반딧불이는 좀처럼 살지 못하는 곳이 될성싶어 안스러운 마음이 든다. 울진 왕피천의 지류가 되는 수하리 계곡을 되돌아 나와 울진과 봉화를 이어주는 신암리 때 묻지 않은 산수를 대하니 답답하던 가슴이 어느새 안정되었다. 전교생이 3명뿐인 신암초등학교를 지나 전국에서 가장 생태계보존이 잘 되어있는 낙동정맥의 지류인 영양군과 봉화군, 울진군의 경계 남회룡과 옥방계곡에 넋을 잃었다. 미리 연락을 드리지 못해 옥방에 거의 다다라서야 미안한 마음으로 방문전화를 드리니 대충 농산물가공작업이 끝나 술 한 잔하고 있으니 염려 말고 집으로 오란다. 과거 불야성을 이루었던 탄광촌 옥방은 광산업이 사향산업으로 들어서자 이곳의 경제도 곤두박질 쳤다. 남회룡에서 옥방검문소로 나오면 좌측은 봉화로 통하는 관문이고 우측은 울진으로 통하는 36번국도 관문이다. 우측 울진으로 가는 언덕길에 올라서니 잔잔한 이슬비가 오락가락하면서 초록의 숲 속 생명들을 살찌운다. 우람한 퉁고산의 자태와 오미산의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구 비진 계곡을 따라 난 아름다운 길을 지나다가 쌍전리마을을 조금 지나 자연된장 팻말이 보이는 곳에서 살짝 좌회전하여 들어서니 숲과 계곡이 어울려 물소리 바람소리를 더욱 요란하게 토해내고 있었다.
20년 전 무지렁이 농사꾼에 비하면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은 성공을 이루었지만 생명이 존중되는 농업을 위하는 마음만은 여전히 변치 않는 농부, 어느 신문기사를 보니 한국의 노자로 옹고집 농부로 자연이 곧 도의 스승임을 깨달고 도법자연(道法自然)인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이가 바로 강문필(55세)님 이시다. 고달픈 농부의 길을 걸어 오면서 인생에 차디찬 좌절을 맛 보았으나 그의 뜻을 굽히지 않고 지속적으로 자연 속에 살고있는 생명들과 함께 살고자 애쓰셨던 유기농업의 선구자이자 각종 발효농사의 전문가이다. 방주산방, 방주농원, 방주공동체 등은 이분의 또 다른 표현이자 미래의 지표다. 그는 산골 무지렁이 농부로 살아가면서 문화가 흥하고 쇄하는 이치처럼 인류 역사의 흐름도 끊임없이 일정한 흐름을 갖고 반복한다는 현매문명의 위기를 알았다. 이러한 절망 앞에서 문뜩 성서에 기록된 노아홍수사건은 그가 실낱같은 희망을 발견하는 계기를 가져왔고, 이러한 연유로 농원이름을 '방주'로 조성했던 것이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 잠재된 생명의 가치를 귀중히 여긴다는 차원에서 오갈데 없는 이들에게 평안한 쉼을 주는 터가 이곳이다.
해는 지고 어두운 밤길을 뚫고 방주농원에 들어서니 빨간 옷을 입은 젊은이가 달려와 반갑게 맞이하는 모습을 자세히 보니 강문필님 이다. 몇 년 전 다녀갔지만 잘 몰라보는 눈치다. 하지만 지나가는 나그네를 정성껏 맞는 따스함에 오롯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곧바로 살림집 옆에 있는 나그네의 쉼터(살림의 집)로 안내되어 짐을 풀고는 서로간에 인사를 나누었다. 커다란 방에는 손님들이 직접 밥도 지어먹고 쉬었다 갈 수 있는 숙소로 안성맞춤이었다. 첫 말문을 여시면서 요즘 도시에서 산골로 귀농 보따리를 가지고 내려온 부류중에 도시문화에 찌든 몸과 마음 그리고 사고의 틀(가치관)을 버리지 못한 귀농자들이 오랜동안 농촌을 지키며 살아온 분들과의 필연적인 마찰을 빚게되는 안타까움을 토로하셨다. 그나마 어린시절 농촌에서 나고 자란 귀농은 잘 적응하는 편이나 책이나 TV에서 익힌 낭만적인 귀농을 감행하는 분들 중에 당장에 필요한 농사일은 뒷전이고 요즘 유행하는 생태건축으로 수천만원 이상되는 통나무주택이나 흙집을 짓느라 아까운 힘과 돈을 다 소진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 우울하다고 했다.
20년 가까이 유기농업으로 고추농사를 짓고 있는 그는 1996년 전국 최초로 무농약고추 인증을 받았다. 혼자 잘 살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싶어 공동체를 지향하며 부가가치의 공유를 시작, 뜻있는 사람을 모아 1994년부터 방주공동체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주변에 귀농한 분들에게 초기 의무감처럼 땅을 알아봐주고 농사일을 챙겨주었던 일이 지금은 많이 후회스러운 모양이다. 공동체를 생각하시고 사심 없이 일방적인 도움을 주었던 일이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오해와 더불어 실망감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리라. 이어 살림집으로 안내되어 자연밥상을 대했다. 손수 정성으로 키우고 만드신 채소며 맛난 된장을 곁들인 생명밥상을 대하니 감회가 깊다. 고요한 밤 주변에서 체집한 다양한 곡채류로 맛있게 찌게랑 반찬은 입맛을 돋우어 주기에 충분했다. 슬하에 3남매를 두었는데 맏딸은 출가했고, 풀무학교를 나온 큰아들은 한살림에서 실무자로 근무, 작은 아들은 군복무를 마치고 도시에서 직장생활하고 있는 중이라는데, 저녁식사 중 한살림에 근무하는 큰아들과 농사일을 돕는 부인 최정화(50세)님을 자연스럽게 소개받았다. 어느덧 장소를 살림의 집으로 옮겨 강문필님의 삶과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풍성하게 들었다. 손수 빚고 지진 김치전으로 안주를 삼아 술잔을 기울이며 회포를 풀었다. 강문필님께서는 대뜸 “한살림은 초창기의 유기농업, 공동체 정신이 많이 사라졌다.”고 말씀하시며 실망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않으셨다. 그리고 앞으로는 자신과 같이 묵묵하게 생명의 농업을 지어온 분들과 마음의 문을 열고 진지하게 교류를 갖는 장이 필요함을 덧붙이셨다.
방주공동체는 공동생산, 공동분배, 공동경작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전체공동으로 농사짓는 땅은 고추 1,500평, 콩 6,000평 등 1만평 정도. 그가 농사짓는 땅은 3,000평. 1975년부터 가공식품으로 솔잎효소, 과채효소를, 5년 전부터 된장, 고추장, 간장까지 만들어 팔고 있었다. 현재 공동으로 농산물을 가공하여 한살림 생산자로 있는 방주공동체 가족은 모두 이십 명이었다. 강문필님은 초등학교 졸업 후 방황을 거듭하다가 머슴, 이발소 보조원, 광부 등을 전전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기독교에 눈을 뜨면서 광신자가 되기도 하고 일본의 후쿠오카 마사노부농법과 자연농업을 접하면서는 유기농업의 길을 걸었다. 이야기중에 앞으로의 남은 생을 잘 정리하여 자연과 합일하여 살아보는 소박한 꿈을 밝히면서 앞으로는 아들에게 이 자리를 물려주고 산속으로 들어가 조용히 살 것을 구상하고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봉 춤의 전문가로 징이나 꽹과리 등의 음악과 신명이 어울리는 이색적인 농법인 신바람농법을 창안하면서 다양한 언론에 소개도 되었다한다. “사람이 즐거울 때 작물이 좋아하고 사람이 화날 때 작물이 싫어함을 이용한 농업이다. 경험으로는 고추가 장마직전에 번개치고 비가 올 때 진딧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강한 금속성을 쳐서 이와 비슷한 소리환경을 만들어 내면 해충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후로 장마가 질때면 아내와 함께 징과 꽹과리를 들고 수시로 밭에 올라가 신명나게 진딧물을 없앴다"고 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과 부인은 나의 이러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사람 취급하고 있다. 그러니 자연 대중화가 못됐다. 또 한편으로는 그린음악을 들려주고 키우는 작물은 싱싱하게 잘 자란다. 지금은 스피커들이 작년에 모두 불타 없어져 그린음악을 들려 줄 수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이제는 뜻이 맞는 마을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옛날의 두레를 되살리고 싶은 마음도 전했다. 30년 동안 유기농을 해 오면서 농사 하나만을 진실하게 짓느라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을 못 느꼈는데 이제는 그런 것들이 자꾸만 생각나는 모양이다. 그러면서 현재의 농사는 하늘이 지어주는 것이지 절대로 기술이 좌우하는 것이 아님을 힘주어 말했다. "현재농업기술은 필요치 않다. 인간이 돈을 벌기위해 생각해낸 것이 하우스 농사다."하면서 이제는 맑은 날에도 밭에 나가고, 비 오는 날에도 하우스에 나가 일을 해야되니 몸과 마음이 예전같지 않아 고단함을 전했다.
“앞으로의 농업은 돈을 벌기위한 농업이어서는 안된다. 전국의 농업기술센터의 교육은 실적위주다. 허나 농사기술보다는 판매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소비자와의 직접적인 만남의 장이다. 그래서 방주농원에서는 매년 단오제와 송이축제를 1박2일간 하게 되었다. 9월말에서 10월초로 참석대상은 한살림 회원 30명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방주공동체에 딸린 살림의 집은 앞으로 도시에서 지친 분들이 편안하게 쉬었다가는 공간을 꾸미려고 한다." 그러면서 누구든 편안한 안식처로 제공해 줄 것을 약속하시면서 "이곳은 거리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도시민들에게 배려를 해주어도 오지 않는다. 지속성 없이 작심 삼일에 빠진다. 바빠서 조급해서 오지 못하는 것 같다. 또한 도시민들의 농촌체험은 당일치기가 문제다. 그래서 모든 시설을 비롯하여 쌀과 부식도 무료로 제공하겠다. 제발 많이들 찾아와 하룻밤 생명농업의 현장을 체험하면 좋겠다"는 바램을 이야기했다. 현재는 고추농사와 더불어 효소와 장류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희망은 농산물 가공시설은 디딜방아, 물레방아, 적정한 기술이 가미된 기계적인 방아 등을 설치해 도시민들이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농장가꾸기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농산물의 영양소를 파괴하지 않고, 중금속 등 유해물질들을 제거할 수 있는 가공방법으로 고유한 맛과 소비자들의 건강까지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방안을 강구중인 것 같다. 귀농에 대한 의견은 귀농학교의 이상이 너무 높고 감성적인 농업교육에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하셨다. "농촌엔 기술이 필요 없다. 과학이 필요 없다."면서 욕심을 줄이는 마음공부부터 해야 올바른 농업의 가치관, 농촌의 가치관이 정립될 것임을 이야기하셨다. "욕심을 부리면 괜히 마음이 답답해진다. 부디 욕심을 줄여 자연스럽게 내 몸속에 계신 하나님 만나기를 바란다." 또한 도시아이들의 정서적 교육이 사라지고 있으니 보여주는 교육, 본보기 교육, 자연의 교육, 따라하기 교육을 실행하기에는 농촌만한 곳이 없음을 일러주셨다.
그는 또 "농촌에는 대안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옛날에는 오지 않는다고 했던 아들이 농촌으로 돌아오려고 한다."면서 세상이 많이 변해가고 있음을 암시했다. 그러나 "아들이 농사짓겠다고 하니 사귀던 여자들이 모두 도망갔다."면서 아직도 농촌현실의 어려움을 들려 주었다. 농사꾼이 좀더 너그러워지고 건강하려면 그만큼의 농촌과 농업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야 함을 절실히 공감한다. 강문필님은 농사 이외의 여가문화가 필요함을 이야기하면서 농사일에는 여가가 허용되지 않고 있음을 강조 하셨다. "일주일 중 주일오전에 맞는 한 시간의 기도시간이 가장 유일한 휴식시간이자 하나님을 만나는 행복한 시간이다.”라며 새로운 꿈을 찾고 계셨다. 울진은 일교차가 심해 적송이 쑥쑥 잘 자라는 곳이지만 13년 전보다 기후가 많이 따스해져 모기가 극성을 부림을 이야기하셨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조건에서 과거로부터 생명을 지켜온 무지렁이 농부에겐 농촌의 자연과 주변환경이 어려운 기억으로 남겠지만 그 어려울 때 주경야독하면서 보냈던 시절이 가장 소중한 시간으로 지금 기억되는 것은 과연 무엇때문이겠는가. 억지로 아내를 데리고 산골로 들어오면서부터 텔레비전을 드려오고 그것에 집착하면서 자유시간이 많이 줄었음을 시인했다. 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위장이 나빠 고생하다가 솔잎을 연구하여 효소를 만들고 직접 먹어보면서 머리가 검어지고 위장이 치료되어 솔잎에 대한 기능성 식품을 생각하게 되었단다. 서로간의 마주 이야기는 퉁고산 자락을 밤새 빠알갛게 달구고는 다음날을 맞았다.
일찍 잠에서 깨어나 농장주변의 화려한 정원과 고추밭, 산속으로 이어진 숲 만큼이나 마당 한가운데 있는 수많은 장독대에 놀랐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는 우측에 난 숲길을 따라 아무도 가지않는 폭포를 감상했다. 울창한 숲, 청정한 공기는 나를 신선으로 만들었다. 집 앞으로는 천둥번개를 맞아주는 커다란 노 나무도 있고, 산소를 많이 공급해 주는 회화나무가 작년 불길에 휩싸임을 이기고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이 회화나무는 귀신을 좆거나 부자가 되는 나무라하여 많은 사람들이 집 가까이에 심는 것을 보았다. 아침밥상으로는 작년에 잘 갈무리 했던 송이를 찌개로 끊여내어 대접을 받았다. 신선한 야채와 정갈한 반찬들이 줄지어 놓여진 밥상은 말로만 웰빙 휄빙하는 잘 나가는 도시 식단에서는 구경조차 하기 힘들 것이다. 강문필님은 식사후 곧장 주문받은 물건을 공급하기 위해 공장으로 달려갔다. 밥상을 물리는 듯 마는 듯, 무지렁이 농사꾼을 남편으로 맞아 온갖 고난과 엮경을 헤치고 살아온 부인 최정화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한 꼭지씩 꺼내 들었다. 우선 주변에 귀농한 분들의 이야기를 서두로 꺼내셨다. 온전하게 농촌과 농업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감상적인 믿음과 낭만적인 소망을 가지고 귀농하는 분들이 현실에서 겪게 되는 자연스럽지 못한 삶을 예리하게 지적하셨다.
"이곳까지 들어와 도시문명의 때를 벗지 못하고 그저 돈벌 욕심에 바쁘게만 살아가려는 욕심은 결국 화를 자처한다." 시며 자식 없이 귀농하여 살고 있는 분들은 약초농사나 채집농사로도 연명이 가능한데 구태여 벼와 고추농사, 고구마와 감자농사 등 정신없이 심고 가꾸느라 기운을 소진했고, 결국에는 이것들 모두는 멧돼지의 밥이 되고 그나마 장마로 인한 피해로 제대로 결실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올해는 씨앗 값과 비닐 값도 건지지 못해 걱정이야" 그들은 마흔 한 살의 나이에 7년 전 이곳으로 귀농했는데 고생 고생하다가 빚만 늘었다고 한다. 이제는 몸도 마음도 모두 병에 걸렸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또한 가정은 5년 전에 남자는 프로듀서(PD)로 여자는 작가로 일을 하다가 귀농을 했는데, 귀농하자마자 수천만원짜리 우람한 통나무집을 짓자 동네분들의 원성이 자자 했다한다. 마을 분들은 대단한 부자가 왔거니 하면서 이런 산골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집을 못 마땅하게 생각했는가 보다. 이 가정의 농사는 이곳 저곳에다가 표고버섯을 재배하는데 인근에서 제일 크게하면서 고추도 제법 많은 량을 심었단다. 표고버섯에서 따온 표고를 일일이 썰고 말리고 시장으로 내고, 고추도 키우고, 걷고, 말려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는 등 1년간 고생하여 지은 농사수익은 겨우 4~5백만원 뿐이란다. "정말로 농촌에는 수입이라는 것이 별로 없다." "그들이 살고있는 집은 번듯 하지만 집안은 정리와 정돈이 전혀되어 있지 않아 엉망이다. 아무리 집만 잘 지으면 뭘 하나 집안엔 정리가 하나도 안 되어 있는데" 하신다. 그러시면서 남들이 생각하는 우리의 삶은 어떤 모습인가? 엄청난 수의 장독만 보아도 기업냄새가 풍겨오지 않는가.하시며 가만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고 조심스러워 했다.
어릴 때부터 농촌에서 나고 자란 열세살 소녀가 농사일에 신물이 나 나물망태를 메고 보리밭에 갔다가 급기야 가출을 했다. 산골에서 사는 소녀아이의 어머니가 장에 간 사이를 이용하여 도시 친구들이 자랑스럽게 살고 있는 멋진 곳으로 말이다. 그 후 어머니의 정에 이끌리어 산골로 되돌아와 자주가던 언니네 방앗간 옆 이발소 총각과의 인연으로 연애편지와 꽃다발 공세, 뒤이어 연애를 하지않으면 자살까지 감행 하겠다는 소동까지 벌이던 열렬한 농사꾼의 꼬임에 넘어가 방년 17세의 꽃다운 나이에 당당히 농사꾼 아내가 된 이가 강문필님의 부인 최정화님이다. 첫아이를 가져 만삭이 된 몸으로 재 너머의 마을로 가서 곡식으로 돈을 바꾸던 고생스러운 일거리에 수시로 보따리를 사기도 여러 번, 어렵사리 우유 장사와 문방구점, 하숙집 등의 일을 하면서 큰맘먹고 별으고 별러 남편과 이혼까지 생각하여 농업과 이혼선택을 강요했으나 여지없이 농업을 선택하는 바람에 체념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한때는 영주로 이사하여 남편께서는 45만원 받고 소먹이를 주는 머슴으로 남의 집에 취직하고 부인께서는 35만원 받고 가정부로 취직했는데, 얼마가지 않아 남편은 머슴 생활을 접고 예천으로 집과 땅을 얻어 농사지으려고 갔다고 한다. 허나 그곳에서의 심한 더위와 엄청난 모기들과 싸우면서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있다가 1년 후 쌍전리 인근 옥방으로 들어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무렵 부인께서는 영주에 있는 고등학교 기숙사 식당에서 학생들을 위한 하숙을 맡아 정직하지 않은 주인과 학생들의 식탁을 개선시키기 위하여 애썼던 일, 결국 뜻이 맞지 않아 나오려고 했는데 주인이 가게를 맡아 달라는 부탁에 어쩔 수 없이 빛을 내어 식당을 운영하게 됐는데 잘한다는 소문이 나 성공으로 이끌었던 기억 등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20년 전 옥방으로 들어오기 전 남편은 교회목사님과 기도로 농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고 한다. 1주일간의 기도로 목사님은 더 이상 고생하지 말고 농업을 포기하라는 현실을 기도의 응답으로 말씀하셨다하고, 남편께서는 농사에 소명이 있음을 응답 받았다하면서 결국 농사를 계속 짓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8년 전 옥방에서 이곳 쌍전리 방주농원으로 들어와 지금껏 자연과 공생 공존하는 생명농업을 실천하여 왔고, 게다가 뜻이 맞는 분들과 농산물을 가공판매하는 방주공동체를 설립, 커다란 장류 가공공장을 직접 운영하니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작년에 방문자들의 쉼터를 지으면서 모자라는 돈 2,000만원을 빌려 다 지어놓고 마무리를 하는데 그 다음날 갑잡스런 전기합선으로 살림집 농가가 모두 불에 전소돼 다시금 지인들의 도움으로 돈을 보태 지금의 아름다운 한옥 집을 마련한 속내를 털어 놓으셨다. 남편인 강문필님은 농사지으면서 짧은 치마입고 키타치면서 노래만 부르라고 했는데 현재까지 말로만 했다면서 주일아침 묵상하면서 나눈 이야기를 고백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바로 사는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욕심 없이 살고자 하는 농부의 마음을 소원하셨다.
농촌에서 재일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이 여자라는 것을 알아주는 곳이 한살림밖에 없다하시며 농사꾼의 아내로 살아가는 수많은 이 땅의 여인들을 생각하라셨다. 그동안 기억에 제일 남는 것은 남편께서 4년간 한살림 이사를 맡다가 그만두시면서 아내에게 선물을 했던 목걸이를 더올리셨다. 하지만 작년 집에 불이나서 그 목걸이도 불에 타 없어졌던 것을 한살림 식구들이 알고는 일일이 돈을 모아 똑같은 목걸이를 최근 선물로 해준 것이 어찌나 감동스러운지 모른다며 눈물을 글썽인다. 울진 방주농원을 떠나오면서 얼마 전 다시 출판한 ‘하느님, 개구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수필 집 두권을 받아 들면서 무지렁이 농사꾼 강문필, 최정화님이 우리시대의 진정한 자유인으로 빛을 보게 되기를... 이쯤에 안동에 사시는 권정생님은 종교인들이 흔히 알고 있는 세상과 구별짓는 거룩한 부처님과 예수님의 모습이 아닌 우리와 함께 땀 흘리고 눈물 흘리며 살아가고 있는 농부들이 진정한 부처님이요 예수님이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오늘도 울진 태백산맥 첩첩산중 골짜기에 '도법자연'의 메아리가 영원히 울려퍼지기를 천연을 동경하며 살아가는 동산지기들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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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기석 기자 [2006-09-08 14:0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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