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 2002/01/09 19:36
http://weekly.hankooki.com/whan/200201/w2002010919362961510.htm
[농촌, 위기탈출] 유기농법으로 '최고의 쌀' 생산
농촌은 위기다. 우루과이 라운드에 이은 뉴라운드 협정은 농촌을 옥죄면서 농민들을 시름에 젖게 한다. 이미 쌀 감산 정책과 추ㆍ하곡가 동결 등에서 나타나고 있는 변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탈ㆍ이농을 부채질, 농촌의 공동화를 심화시킬 것이다.
농촌 인구가 사상 처음으로 전체 인구의 10%이하로 떨어졌다. 이농과 귀농 급감에 따라 농촌에서 젊은이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귀결은 농촌의 황폐화다. 이는 곧 신토불이의 파괴다.
정부의 보다 거시적이고도 적극적인 정책이 절실하고 농민과 도시의 소비자가 달라져야 하는 이유다. 변화의 격랑속에서 활로를 찾고 있는 타산지석의 사례들을 찾아보았다.
“화학비료로 키운 쌀은 결국 우리 농민과 국민의 올바른 정신까지도 망가뜨리게 합니다.”
전남 보성군 벌교읍 마동리에서 ‘무농약’ 쌀 농사(1만2,000평)를 짓는 강대인(50)씨. 그는 다른 농민들과 달리 독특한 농사철학이 있다. ‘사람을 살리는 농부’다.
“농사를 짓는 농부도 단계가 있습니다. 단순히 쌀을 재배하는 하농(下農)과 땅을 기름지게 하는 중농(中農), 그리고 좋은 먹거리를 통해 사람을 살리는 상농(上農)이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성농(聖農)’이라 할 수 있죠. 이는 농부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입니다.”
사람 살리는 농사철학
강씨가 27년째 그 흔한 농약과 화학비료를 마다하고 인간과 쌀의 교감을 통한 유기농법을 고집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는 특히 “농약을 칠 때 ‘병해충아 제발 죽어라’하는 농민들의 ‘살생의 마음’이 그대로 벼에 전해진다”며 이를 무척 경계한다.
“살생의 마음으로 키워진 나쁜 먹거리를 먹고 어떻게 좋은 생각을 하겠습니까. 사람들이 오염된 먹거리를 먹으니 범죄도 많고 만날 싸움이 끊이지 않죠. 좋은 먹거리를 생산하는게 바로 사람과 세상을 살리는 길입니다.” 그래서 그는 벼농사를 짓는 동안 내내 매일 새벽 논을 돌면서 “잘 잤니”라고 아침인사를 하며 박수를 친다.
그가 이 같은 유기농과 인연을 맺은 것은 순천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하던 1974년. 농사를 천직으로 삼았던 아버지가 농약중독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암으로 돌아가시자 “농약으로 오염돼가는 환경과 농민을 살리는 길은 유기농 밖에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러나 당시 유기농 기술보급이 전무한 상황에서 농약 없이 쌀 농사를 짓기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농약을 치지 않으니 벼멸구 등 온갖 병충해들이 벌떼처럼 달라 들어 수확량은 보통 논보다 30%나 적게 나왔고, 벼 알도 잘아 수매만하면 3등급을 받기 일쑤였다.
실패를 거듭한 그는 우선 화학비료로 허약해진 논의 지력(地力)회복에 힘을 쏟았다. 논바닥 곳곳을1㎙가량 파고 숯을 묻은 뒤 10여년동안 추수 이후 볏짚과 왕겨 쌀겨를 넣고 갈아엎었다. 논을 몰라보게 힘을 되찾았고, 쌀 수확량도 신기할 정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땅심을 키우자 이번에는 병충해가 극성을 부렸다. 농약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던 그는 84년때 죽나무와 어성초 돌미나리 칡순 등이 벌레가 끌지 않는다는 데 착안, 방충효과가 있는 100여가지 산야초를 발효시켜 만든 농축액을 개발했다.
이 농축액은 해충을 80%이상 제거한 데다 벼에 영양분까지 공급하는 등 효과는 대만점이었다. 그는 특히 89년에 이 농축액만으로 49일간 단식을 해 인체에 무해하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다.
그는 쌀 유기농법 재배의 온갖 시행착오 끝에 94년부터 정상 수확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현재 그의 논에서 생산되는 유기농 쌀은 40㎏들이 400여가마.
화학재배 쌀 수확량과 비슷하지만 값은 일반 쌀보다 2배 이상 높다. 실제 일반미는 ㎏당 4,000원, 구수한 향이 뛰어나고 밥맛이 찰진 흑향미ㆍ녹미(綠米), 적미(赤米) 등 특수미는 1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판로 확보, 쌀 브랜드화 추진
그는 이렇게 생산한 유기농 쌀을 소비자단체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한 ㈜ 새농과 정농생협등에 공급하고 있어 일반 농민들이 매년 겪어야 하는 쌀값 하락과 판로 확보 걱정도 없다. 덕분에 그가 쌀 농사로 벌어들이는 연간 순소득은 무려 8,000여만원에 달한다.
그에게 유기농법은 쌀값하락과 수매가 동결 등 ‘쌀 대란 시대’의 탈출구인 셈이다.
그는 또 2004년 쌀 시장 개방에 대비해 ‘고려인삼’과 같은 우리 토종 쌀 종자의 우수성을 알리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우리 쌀의 세계적 브랜드화를 추진하고 있다.
실제 그는 올 10월 건국대 농생물학과 생식연구팀과 함께 심장병에 효과가 있다는 적미의 맛과 성분, 조직분석을 벌이고 있다.
“농민도 단순히 쌀만 팔면 된다는 경제논리에서 벗어나친 환경농법을 통한 쌀 경쟁력을 키워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저는 유기농을 원하는 일반 농가에게는 재배 노하우는 물론 경영과 유통에 대해서도 도움을 줄 계획입니다.”
사회부기자 khan@hk.co.kr
입력시간 2002/01/09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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