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농사꾼
"벼농사의 명인 강대인"
글쓴이: 손 주 완 (목사, 작은예수공동체)
졸다가 내릴 역을 지나치고
밤새 얼어버린 국도를 달려서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추어 충주역에 도착했다. 아직도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는 새벽열차를 타고 순천으로 향했다. 아주 오랫동안 떠나지 못했던 여행을 이제야 비로소 떠나는 느낌이었다. 나는 오늘 이 시대의 농사꾼 강대인씨를 만나러 간다. 새벽에 집을 나서기 전 아내와 함께 농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만약에 아들이 농사를 짓겠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 질문을 가슴에 안고 순천 벌교로 향하고 있다.
나는 조치원에 내려야 했다. 거기서 순천행 열차를 타기로 예약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졸았다. 무려 30분이나 졸았다. 결국 대전역에 내렸다. 다행히 서대전으로 가서 순천행 열차를 탈 수 있었다. 어디를 가든지 늘 정확하게 분명하게 다니는 나로서는 졸다가 역을 지나쳤다는 사실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최근에는 화장실 갔다가 지퍼를 열고 나온 적이 두 번 있었다. 나의 한심함의 극치였다. 나도 늙어가나?
드넓은 호남벌을 바라보며
기차 차창밖에 펼쳐지는 넓은 대지(大地)를 보았다. 물은 더러워졌고 땅은 거칠어져 보였다. 과연 내년에도 저 대지에서 풍요로움을 생산해 낼 수 있을까? 쓰레기들이 나 뒹구는 밭과 논들, 시꺼멓게 죽어있는 제방사이의 물들, 무엇에 취했는지 피곤에 쩔어있는 것 같은 논바닥들, 나는 대지의 신음소리를 들었다.
아! 그 털보네 집이요?
벌교에 도착하여 기차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전남 보성군 벌교읍 마동리로 향했다. 택시 기사는 '털보'라는 말로 강대인씨의 집을 가르쳐 주었다. 광주에 갔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그를 기다리며 나는 그 부인의 대접을 받았다. 옛날 풀무원 농장(의정부)에서 연수생으로 있다가 정농회 회원이었던 남편을 만나 딸 셋과 아들 하나를 낳아 키우고 계신 부인의 얼굴에서 많은 사람을 대접하며 나누어주고 사는 인생의 넉넉함을 볼 수 있었다. 한국농업전문학교에 다니는 이영철 형제가 그 집에 실습생으로 와 있었고 그 형제의 안내로 흑향미, 녹미 등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한빛 유기농영농조합법인 건물과 50여가지 이상의 각종 식품을 발효시켜 만든 백초액을 생산하는 우리원 식품 공장을 견학했다. 그리고 강대인씨가 1만여평의 논농사와 약간의 밭농사를 짓고 계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유기농산물 속에는 하나의 중심체로 된 생명의 기(氣)가 들어 있어요!
어둑어둑해질 무렵 광주에 갔다가 돌아 온 강대인씨를 만날 수 있었다. 오십줄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는 평범하지 않은 어떤 기운이 있어 보였다. 나는 초면의 실례를 무릅쓰고 여러 가지 질문들을 쏟아 놓았다.
"강선생님! 선생님은 어떤 정신으로 농사를 짓고 계십니까?"
"유기재배 농사는 유기질 퇴비와 쌀겨 등 발효퇴비를 사용하여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저는 농업을 경제적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고 생명의 먹거리를 만드는 농민의 마음으로 농사를 집니다. 그 농민의 마음은 좋은 농산물을 만들어서 이웃에게 나누어 줘야겠다는 생각입니다. 화학농법으로 만든 농산물에는 그 안을 들여다보면 두 개의 중심체로 분리되어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것을 먹는 인간은 자연히 마음과 몸이 병들게 되고 인간사이가 분열되게 됩니다. 그러나 바이오 다이나믹의 유기농법으로 만든 농산물에는 하나의 중심체로 되어 있습니다. 그 기(氣)는 생명의 기(氣)요, 우주의 에너지입니다. 결국 그 농산물을 먹는 사람은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농민이 바로 그 농산물입니다. 내가 생산한 그 쌀이 바로 나 자신인 것이지요. 이러한 생명의 먹거리를 먹을 때 인간이 사는 것입니다. 이 먹거리는 모든 사람이 다 먹어야 합니다. 오늘날 인간들을 화학농산물과 육류를 지나치게 많이 섭취함으로 정신불안의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러한 불안은 정신적 혼란을 가져오게 되고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단순, 도발적 사고를 일으키게 합니다. 결국 생명의 기(氣)가 충만한 농산물을 먹어야 우리 인간의 몸뿐만 아니라 영성까지도 맑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침마다 벼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어떤 남다른 방법으로 농사를 지으십니까?"
"첫째, 저는 벼를 볼 때 객체로 보지 않습니다. 벼를 곧 나 자신으로 여기며 농사를 짓습니다. 아침마다 논에 나가 손뼉을 치며 벼에게 이야기합니다. '사랑하는 내 벼들아 잘 잤냐?' 식물도 인간과 같이 교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야기하면 식물들도 대답을 합니다. 우리 옛 속담에 '농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농사꾼은 밝은 마음으로 논과 밭에 나가야합니다. 만약 내 기분이 좋지 않고 화가 나 있다면 농작물을 대해서는 안됩니다. 사랑하는 마음, 쓰다듬는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씨앗을 파종할 때에도 가장 기분 좋은날 기쁜 마음으로 축복 기도를 하면서 파종을 합니다. 왜냐하면 씨앗의 파종단계가 그 작물의 일생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씨를 넣는 사람이 씨를 넣을 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백배, 천배의 결실을 얻어라!' '병충해와 냉해에도 꿋꿋하여라!'
둘째, 저는 논에다 숯을 넣습니다. 숯에서 이온이 나와 작물을 잘 자라게 합니다. 또한 논 끝자리에 대나무를 꽂아 우주의 에너지가 논에 충만하도록 합니다."
참된 농업은 성직(聖職)입니다.
"강선생님의 농업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세상에는 4종류의 농사꾼이 있습니다. 첫째, 하농(下農)은 작초(作草) 즉 풀을 만드는 농사꾼입니다. 둘째, 중농(中農)은 작곡(作穀) 즉 곡식을 만드는 농사꾼입니다. 셋째, 상농(上農)은 작토(作土) 즉 땅을 만드는 농사꾼입니다. 넷째, 성농(聖農)은 작인(作人) 즉 사람을 만드는 농사꾼입니다. 다시 말해 먹거리를 통해 인간을 구원하는 농사꾼이지요. 그러므로 참된 농업은 성직(聖職)입니다.
그러나 농업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옛말에 농사를 지으려면 3대가 가난하고 3대가 무식할 것을 각오하고 농사를 지으라고 하였습니다. 저도 20년 전에는 무척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농산물이 없어서 못 팔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농업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야 합니다. 경제적 생각을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농사져서 돈을 많이 번다는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농사를 질 때 이웃사랑의 정신이 깃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농약을 많이 치는 사람은 그 마음속에 살인하는 마음이 이미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농사는 농민 혼자 짓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함께 짓는 것입니다. 농사속에는 소비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앞으로의 바램이 있다면 화폐보다는 물물교환의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는 쌀을 생산하여 쌀을 주면 상대방은 옷을 생산하여 나에게 옷을 주는 물물교환 말입니다. 그러면 농민들도 돈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살 수 있겠지요. 또 농산물의 값도 소비자의 빈부에 따라 다르게 매기고 싶습니다. 저 사람이 부자면 쌀값을 좀더 받고 저 사람이 가난하면 거저라도 줄 수 있는 관계를 말합니다. 평화(平和)란 무엇입니까? 곡식(禾)+입(口)+평화(平) 즉 모든 사람이 곡식을 같이 먹을 때 이루어지는 세상이 아닙니까?"
겨울에 산에 들어가 20일씩 또는 40일씩 혼자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종교에 대한 생각 특히 기독교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 주시지요."
"저는 어릴 때부터 주일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러니 제 신앙은 기독교적 바탕 위에 서 있는 것이지요. 아버지는 농사꾼이셨는데 농사일 때문에 제가 주일학교에 나가는 것을 반대하셨습니다. 즉 신앙적 박해를 받았지요. 그런데 19세가 되었을 때 교회의 설교에서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이야기보다는 세상이야기가 더 많더군요.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3년간 성경만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기도생활도 시작했지요. 산상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섭기도 했지요. 그러나 3일간 철야와 금식을 계속하면서 성경을 다시 보며 생각하니 '모든 것이 하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죄인까지도 감싸주시고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깨달았습니다. 80년도에 정농회에서 오재길 고문과 만남을 갖고 원경선 선생님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분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제가 성경을 이해한 것과 그분들이 이해한 것이 같더군요."
"그러면 언제부터 남다른 신앙생활을 하셨습니까?"
"저는 21세 때부터 성경만 가지고 생식만 하면서 돌아다녔습니다. 지금도 겨울에는 산에 가서 21일 또는 40일씩 혼자서 금식하면서 기도합니다.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하지요. 어디에도 제도적으로 얽매이지 않고 신앙생활합니다. 그러니 어떤 목사님들도 다 만나서 대화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특별히 깨달은 바를 말씀해 주십시오."
"흙으로 사람을 지었다는 말씀은 흙(土)에서 먹을 것(食)이 나오고 그 먹거리를 사람이(身) 먹고 그러므로 산다(生)는 것이지요. 신토불이(身土不二)도 같은 맥락입니다. 즉 흙을 내 몸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내 몸에다 농약을 칠 수 있습니까? 더 나아가 교회뿐만 아니라 온 우주와 대지가 다 내 몸입니다.
그러므로 농사짓는 사람이 가장 위대합니다. 목사님들은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말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정말 사랑하시는 사람은 농사를 짓게 한다고 말입니다. 농민은 생명을 쥐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제일 위대하고 제일 큽니다. 예수님은 포도주와 빵을 놓고 내 몸이요 살이라 했습니다. 포도주와 빵은 그들의 주식(主食)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밥과 국은 주님의 살과 피인 것입니다. 세끼 밥먹는 것이 곧 성찬의식입니다. 그것은 거룩하고 깨끗한 일입니다. 몸이 깨끗해야 은혜와 영성이 충만합니다. 성전에 깨끗한 것만 들어오듯 우리 몸도 깨끗한 것만 들어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임하십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느끼고 농사짓는 것이 큰 축복입니다. 농촌교회 목사님들은 농민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식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쥐고 있듯이 농민도 생명을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농민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생명체가 잘되기를 바라며 보살피듯 농민도 모든 작물이 잘 되기를 바라며 보살핍니다. 마치 잃은 양을 찾듯 말입니다. 그러므로 돈을 주고 타인에게 농사를 짓게 하는 사람은 농민이 아닙니다. 실제로 내가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농촌에 대한 앞으로의 전망을 말씀해 주십시오."
"앞으로 농촌은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기도 중에 깨달았습니다. 그러기에 나에게 농사를 짓게 하셨고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수염은 하늘의 메시지를 느끼는 안테나와 같지요.
"실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수염은 왜 기르셨습니까?"
"89년도 겨울에 40일간 금식기도를 했는데 그때 수염을 깎지 말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모발이나 수염을 깎지 않아야 하늘의 은혜와 메시지를 잘 감지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삼손도 모발을 자르지 않았을 때 하늘의 힘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머리와 수염을 깍으면 육체적, 영적 힘도 제한을 받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제 나름대로의 이유는 수염도 하나님의 창조의 필요성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리 몸의 어느 곳 하나 버릴 것이 있겠습니까? 또한 수염으로 인해 행동을 절제할 수 있게 되고 사물에 대해 새롭게 느끼게 됩니다. 하하하"
강대인 선생 주소/ 전남 보성군 벌교읍 마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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