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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 이야기/신영복

퇴임식 직전에 만난 신영복 교수(오마이뉴스 060826)

by 마리산인1324 2007. 1. 16.

 

<오마이뉴스> 2006-08-26 14:17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55542

 

 

 

"역사는 나선형... 진보세력, 더 낮은 곳을 향해야"
[기자간담회]
    김병기(minifat) 기자   
▲ 신영복 교수.
ⓒ 오마이뉴스 권우성
안타까움 그리고 답답함.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25일 퇴임식 직전에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소회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후배 교수는 "우리 모두가 안개 자욱한 길 위에서 헤매일 때 등대가 되어주셨던 분"이라고 평가했지만, 신 교수는 '추락하는' 진보진영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이 앞서는 모양이다.

하지만 신 교수는 이런 때일수록 '여럿이 함께 하면 길은 등 뒤에 생겨난다'면서 철저한 자성에서부터 희망을 만드는 작업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새롭게 시작해 신뢰집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학생들 '보안사' 하면 절인 줄 알아"

우선 신 교수는 '요즘 학생들은 어떠냐'라는 질문에 대해 씁쓸한 우스개를 소개했다.

"보안사라는 말을 하면 어떤 학생은 '어디에 있는 절'이냐고 묻기도 한다.(웃음) 6·10항쟁 등 민주화운동으로 희생을 치른 시기가 불과 10~20년 정도 됐는데 아득한 '역사적 화석'처럼 굳어지고 잊혀지는 것이 안타깝다."

하지만 신 교수는 "학생들은 청년 실업 등 혹독한 과제에 노출돼 있다"면서 "절실한 개인 문제에 봉착하면 사회적 관계성과 역사성을 인식하는 성찰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신 교수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신뢰 집단이 없다'는 점을 꼽았다. 이런 상황에서 "집단과 집단의 이해관계가 사활적 대립구도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신뢰할 만한 집단이 등장해 빨리 구심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신영복 교수.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는 방법론으로 '하방연대'를 주장했다. 변혁 주체역량을 모으기 위해서는 낮은 곳으로의 연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대기업 노조는 하청노조, 노동자는 빈민, 정규직은 비정규직과 연대를 모색해야만 물처럼 아래로 흘러 바다를 만들 수 있고, 그게 신뢰의 기초"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진보집단과 신뢰집단이 사라진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

"88년 출소했을 때 많은 활동가들이 현장을 버리고 중앙에 집중하는 것을 목격했다. 난 그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중국 등에서의 역사적 경험으로 봤을 때도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87년 이후 우리가 확보한 민주 공간이 엄연히 존재했는데, 그걸 누가 먼저 점령하는가에 목적을 두고 활동한 측면이 있었다.

실패한 정파가 깃발을 내린 뒤에 보여준 모습도 실망스런 것이었다. 그들은 '아직은 진보가 무언가를 하려면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하지만 함께 해본 적도 없지 않은가. 기회주의적으로 접근해 실패한 뒤 불성실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보면서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데올로기 못지않게 인간적인 문제도 중요

신 교수가 출소한 뒤 처음으로 쓴 붓글씨는 '여럿이 함께'. 신 교수는 지금 시기에도 그런 정신이 중요하다면서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한 후배가 찾아와 '함께 한다는 것은 좋은데 방법론만 있고 목표지향성이 없다'는 말을 했다. 대체 어디로 가자는 건가라는 질문이다. 그래서 난 '목표도 여럿이 함께 속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 뒤부터는 '여럿이 함께'라는 글 뒤에 '(여럿이 함께) 하면 길은 등 뒤에 생겨납니다'라고 쓴다. 어려운 시기다. 지금 목표를 내거는 것보다 지난 과거를 냉정히 평가하는 것에서부터 '여럿이 함께' 하는 게 중요하다."

신 교수는 정년퇴임 이후 '변방으로 밀려나는 것 같은 느낌은 없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이렇게 답변했다.

"사회 역사의 중심은 어디인가. 피카소는 캠버스를 혁명의 중심으로 봤다. 붉은 띠를 두른 사람만이 변혁의 한복판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이어 "학생운동을 할 때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조직적이며 사명감이 투철한 친구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는데 출소한 뒤 근황을 알아보니 그 길에 남아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다들 출세했다"면서 "남아있는 사람들은 사명감과 역량이 뛰어나기 보다는 친구들이 하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참여했던 사람들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데올로기 못지않게 인간적인 문제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지금 무대의 한복판이 역사의 중심이 아니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오히려 자기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가장 오래 견딜 수 있는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신뢰 회복의 길로 '하방연대' 제안

▲ 신영복 교수.
ⓒ 오마이뉴스 권우성
'길고 긴 반동의 터널로 들어가는 초입인가.'

얼마전 성공회대에서 열린 지방선거 평가 토론회에서 한 교수가 던진 질문이다. 이 질문을 간담회장에서 소개하니 신 교수는 이런 답변을 내놨다.

"희망을 볼 수 있는 작은 움직임이라도 있다면 좋은데 그것조차 없는 것 같다. 힘들다. 역사가 직선이 아니라 '지그재그' 나선형이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등 민주화 정치지형을 거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보수 구조가 완강하게 남아있다. 우리 사회의 권력은 행정부에 있지 않다.

조선 후기에서부터 군정, 군사정권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회지배구조에 변화가 없다. 민정당이 인적청산이 되지 않은 채 한나라당으로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자본 축적의 패턴, 인적 축적의 패턴이 그대로다. 국회에 권력이 있는가, 미국 등 강력한 외세가 뒷받침하고 있어서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신 교수는 해방정국에서 활동했던 분으로부터 들은 '금언'을 소개하기도 했다.

퇴임 후 강단에서 '저자와의 대화'

신영복 교수는 정년 퇴임 뒤에도 성공회대에서 한 강좌를 맡아 계속 강단에 설 예정이다.

개설된 강좌명은 '교육사회학 특강'. 교재는 자신의 책 중 개설 과목에 부합되는 내용을 편집했다. 정치경제영역을 비롯해 인간적 성찰을 내용으로 하는 고전강독. 자신이 쓴 책 중 30여편의 뽑아 학생들과 함께 읽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강의를 진행한다.

신 교수는 "학생들은 항상 저자와의 대화를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론은 좌경적으로, 실천은 우경적으로 하라."

이론에 매몰되면 안 되지만 (진보) 주체 역량이 취약한 역사적 유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곱씹어보아야 할 의미심장한 말이라는 것이다.

신 교수는 이날 간담회에서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물처럼 흘러 강을 이루고 바다와 만나는 '하방연대'를 제안했다.

이를 통해 각 분야별로 신뢰집단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가 '지그재그'로 진전하더라도 '희망의 연대'를 통해 진보의 길로 접어들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느껴진다.
  2006-08-26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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