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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금요일 저녁 7시쯤. 방학 기간이지만, 내가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작은 학교 교정이 북적이고 있었다. 학교 축제 때보다 한층 더 들뜬 분위기다. 한쪽에선 테이블과 음식준비가 한창이었고, 다른 한쪽에선 시끄럽게 무대 리허설을 하고 있다. 큰 느티나무가 있는 잔디밭에서는 아이들이 뛰놀고 아줌마, 아저씨들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벤치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잠시 서성이는 데 조명도 잘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연신 번쩍였다. 신영복 교수였다. 그곳에서 신 교수는 초대장 소유 여부와 관계없이 손님들을 한 분 한 분 반갑게 악수로 맞고 있었다. 보디가드들이 따라붙은 유명 인사부터 모시 옷 차림의 동네 할아버지까지 그 누구에게도 차별 없이 악수를 청했다. 그 중 어려보이는 학생에게 다가가서 "신 교수님을 직접 보니까 어떠냐"고 질문하자 박성진군(16·부산시 해운대구 좌3동)은 "생각했던 대로 얼굴에 지적인 게 묻어난다"고 답했다. 내 뒤쪽에서 또다른 사람은 "이렇게 정년 퇴임식을 하는 분은 없을 거야"라고 말했다. 판에 박힌 그리고 권위주의적인 형식과 격식을 파괴하고 '열린 콘서트' 형식으로 치르는 퇴임식을 처음 본 사람들이 신기해서 하는 말이다. 저녁 8시, 일만광장 무대에서 행사를 시작하겠다는 소리를 듣고 나는 얼른 무대로 달려갔다.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인 건 처음" 광장 옆 학생회관에는 이번 퇴임식 제목인 '여럿이 함께'라는 글씨가 신영복체로 쓰여 크게 걸려 있었다. 앞의 의자는 다 차있었고, 나는 뒤에 서서 행사를 지켜봐야 했다. 한 1500여명 모였을까. 주위에서 한 성공회대 학생은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인 적은 입학 후 처음"이라며 감탄했다. 그 옆에 있던 또다른 학생은 "나는 7년이나 됐는데 처음인 걸"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무대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 신 교수의 다큐멘터리가 시작되자, 7분 동안 장내엔 정적이 흘렀다. 신 교수가 화면에 나올 때마다 희미한 감탄사들이 새어나왔다. 다큐는 신영복의 일생을 짧게 압축해 놓은 내용이었다. 연출자 이동현(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04학번)군은 "평소 존경하던 분의 다큐멘터리를 찍게 되어 영광이었다"며 "인간 신영복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소탈하고 인간적인 면이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다큐멘터리에는 신영복의 초등학교 시절 응원단장의 모습, 여장했던 이야기 등 평소 신 교수의 이미지와 다른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신영복 교수 좇아 입학한 가수 윤도현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왜 다른 학교 음악 관련 학과에 가지 않냐고 물으면 "성공회대학교가 제일 좋으니까"라고 대답한다며 특별한 애교심을 표현했다. 윤도현씨는 "신 선생님, 너무 멋있습니다. 땡큐!"라는 말에 이어 두 번째 곡으로 새 앨범에 수록된 '오늘은'을 부르고 무대를 내려갔다. 이어 이현재 호암재단 이사장(신영복 교수의 스승), 조정래 소설가,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시간 관계상 축사 시간을 2분으로 제한하라는 사회자의 말에 조정래씨는 "대하소설을 세 작품이나 쓴 나에게 2분이라니…. 너무한다"고 말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김근태 의장은 자신이 직접 써온 편지를 꺼내들고 "감옥에서 20년, 대학 강단에서 20년 그리고 오늘부터 새로운 20년을 시작하는데 우리에게 새로운 상상력과 열정을 나누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신영복 교수의 여인들?
소주 '참이슬'과 '산'의 이름을 지은 손혜원 크로스 포인트 대표는 '처음처럼'이란 이름을 짓게 된 뒷이야기를 소개했다. 그는 또 "처음처럼이라는 소주 이름으로 인해 남녀노소빈부에 관계없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며 그 글씨를 무상으로 제공해준 신 교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신 교수가 대학생 시절 가정교사로 지도했던 심실 유니온커뮤니케이션 회장은 신 교수가 했던 '사랑은 그 생활에서 이루어가며 경작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새기며 살아간다고 전했다. 유난히 경호원이 많이 따라 붙었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무대에 올라와 글씨를 통해 맺게 된 인연을 소개하며 마지막엔 "대북사업을 도와달라"고 해서 관객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다음 무대는 '누구없소'의 주인공 가수 한영애였다. 그만의 노련한 무대매너와 허스키한 목소리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신 교수께 '처음처럼' 글씨를 선물 받고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다며 신 교수에 대한 존경을 표현했다. 영화배우 권해효씨가 머쓱하게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대학 시절에 연기를 공부하던 때 신 교수의 글을 외우고 다니며 감성을 키웠다"며 그 자리에서 직접 외워 낭독해 장내를 숙연케 했다. 그 다음에 무대에 오른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도 고향·고등학교 선배인 신 교수가 자신의 하숙집에 자주 놀러왔었다며 신 교수와의 친분을 과시했다.
명사들의 말을 적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취재수첩 위로 빗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 굵진 않았지만 신경이 안 쓰일 리 없었다. 초대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우비를 걸치고 있었다. 뒤쪽에 서 있는 사람들은 우산을 지니고 있었지만, 펴는 사람은 없었다. 신 교수의 퇴임식 콘서트라서 였을까. 뒤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였다. 그즈음 강산에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의 앨범에 수록된 노래 중 유일한 러브송이라는 '지금'을 무반주로 불러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구구단을 이용한 노래 역시 즉석에서 반주를 만들어 불러 또 한 번 박수를 받았다. 소문난 소리꾼 장사익은 특유의 입담으로 관객들과 호흡하며 '동백아가씨'와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열창했다. 절창이었다. 그의 선율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그의 구성진 노래 가락 때문인지 객석 곳곳에서 추임새가 새어나왔다. 기타를 달랑 둘러매고 무대 위로 올라온 사람은 가수 안치환. 그는 "퇴임식을 축하드린다기보다는 석좌교수로서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드린다"며 '광야에서'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불렀다. 관객들은 후렴구를 따라 부르며 신이 났고, 비가 오는 와중에도 분위기는 식을 줄 몰랐다. 안치환의 노래가 끝난 뒤 밤 10시가 다 되어서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이 무대 위에 올랐다. 시간은 늦었고, 비가 내리는 데도 사람들은 빠져나갈 생각을 안했다. 김 총장의 간단한 인사말이 끝나고 뒤이어 신영복 교수가 무대 위로 올랐다. 고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꽃다발을 건냈다. 기다리던 사람이 무대에 서자 객석에선 사진도 찍어대고, 수군거리며 신 교수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有朋而 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그는 논어 첫 장 한 구절을 인용해 기쁜 마음을 표시했다. 그리고 무대를 준비하신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자신이 퇴임 후에도 할 일을 열심히 할 것을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성공회대의 교수들로 결성된 '더 숲 트리오(김창남 교수, 김진업 교수, 박경태 교수)'와 신 교수의 합작무대로 '상록수'를 불렀다. 관객들은 촛불을 들고 모두들 상록수를 따라 부르며 신 교수의 정년퇴임식 마지막 무대를 함께 마쳤다. 특별하게 하지만 다함께
'좌파 대학'에 찾아와 무대에 선 굴지의 대기업 인사들과 여야 정치지도인들, 젊은 감성을 노래하는 가수와 우리시대의 참 소리꾼이라 불리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오른 것이다. 신 교수의 광범위한 인간적 관계와 사상적 깊이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런 색다른 퇴임식을 본 박윤숙(46·서울특별시 양청구 목동)씨는 "평소 신영복 교수님을 좋아해 가족끼리 왔는데 정말 재미있었다"면서 "기존의 형식을 파괴하고 사람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있는 것 같아 기분 좋았다"고 말했다. 스태프로 참가하게 된 석찬우(성공회대 사회과학부 06학번)군은 "아직 1학기 수업밖에 못 들어 봤는데 벌써 가신다니 너무 아쉽다"면서 "교수님의 수업은 다른 학교에서도 청강하러 오기 때문에 항상 강의실이 꽉 찬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이날 행사를 총연출한 사람은 탁현민 다음기획 콘텐츠 팀장. 그는 지난 99년 신 교수의 조교 생활을 1년 동안 하기도 했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새삼 선생님의 다양한 인간관계를 알 수 있었다"면서 "정재계, 연예인들, 그 누구를 섭외해도 다 나오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선생님께서는 이런 자리를 마련하는 것을 불편해 하셨다"면서 "하지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선생님께 이 자리를 헌정하는 의미가 아니라, 신 교수님을 은사로 모시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그동안 배웠던 것들을 실천하며 살자는 다짐의 자리라는 데 퇴임식의 의미를 부여했다"고 말했다. 무대가 끝나고 나서는 다른 장소에서 피로연이 열렸다. 그곳에서는 지인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와인과 음료수를 나눠주고 있었다. 초대권이 없어서 신 교수의 책을 받지 못한 분들께는 두산에서 제공하는 소주 '처음처럼'을 나눠주며 차별과 담이 없는 피로연을 즐겼다. 사람들은 시간이 늦었는데도 불구하고 여기 저기 삼삼오오 모여 우리시대 대표적인 진보학자인 신 교수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그 위로 '여럿이 함께'라는 글씨가 쓰인 하얀 플래카드가 비에 젖은 채 펄럭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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