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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하워드 진 인터뷰(한겨레신문 010516)

by 마리산인1324 2007. 1. 27.

 

<한겨레21> 2001.05.16(수) 20:48

http://www.hani.co.kr/section-009100006/2001/05/009100006200105162048021.html

 

 

 

세계석학에게 듣는다 ② 하워드 진

 

 

80을 바라보는 하워드 진은 지금도 1년의 대부분을 전국을 돌며 강연하는 일로 보낸다고 했다. 이름없는 보통사람들이 역사의 주인임을 일깨우는 그의 이야기에 여성·환경·평화운동 등 갖가지 민중운동을 하는 단체들이 힘을 얻으며, 진 자신은 그들의 활동에서 희망을 본다고 했다. 노스캐롤라이나의 아카다라는 작은 마을에서 방금 돌아 왔다는 진을 보스턴 교외 뉴턴에 있는 그의 집에서 만났다. 강대국이 약소국에 대해서든, 정부가 국민에 대해서든, 고용주가 피고용자에 대해서든, 좌익이든 우익이든, 자신만이 진리를 독점한양 약자를 억누르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는 진은, 그래서 다양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부와 권력을 가진 강자들의 논리만이 아닌, 국민 대중의 생각과 움직임과 항의를 담아낼 진보언론, 대안언론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큰 시대라는 것이다. 편집자

 

 

지영선= 당신의 <미국 민중사>를 어떤 사람들은 `미국 혐오 역사책'이라고 비난한다.

 

진= 그 사람들은 미국과 미국정부를 혼동하고 있다. 내가 `미국 정부'를 비판한 것을 `미국'을 비판했다고 오해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18세기 건국 때부터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하도록 설계되었다.

 

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어떤가?

 

진= 지구상에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정부를 가진 나라는 극소수다. 대부분의 정부가 돈있고 힘있는 사람들을 대변한다. 그러나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커다란 힘을 가진 나라다. 다른 나라에 군대를 파견해, 베트남을 초토화하고, 유고슬라비아를 폭격하고, 이라크 국민을 굶겨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진 나라다. 그래서 나는 미국정부를 비판한다. 나에게 미국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다. 우리가 미국에서 아직 완성하지 못한 민주주의의 이념이다.

 

지= 당신은 과거의 다른 역사책과는 전혀 다른 미국 역사를 썼다. <미국 민중사>에서 사람들은 전혀 들어 보지 못한 생소한 사실들을 접하고 경악했다. 그러한 역사적 자료들을 어디서 구했는가?

 

진= 간단하다. 사람들은 내가 무슨 비밀자료라도 갖고 있는 줄 아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사용한 모든 자료는 도서실에 있다. 그것들은, 힘있는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사용되지 않았을 뿐이다. 바톨로뮤 데 라 카사스 신부는 콜럼버스가 인디언들에게 저지른 잔악한 행위를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콜럼버스 자신이 써 놓은 일기도 중요한 자료가 됐다. 도서관에는 미국과 멕시코, 미국과 필리핀 전쟁에 참가한 미군병사들이 전쟁의 참상과 미군의 만행을 생생하게 써 놓은 편지들이 얼마든지 있다.

 

지= 당신이 <미국 민중사>를 쓴 지 20년이 지났다. 그 사이 80만부가 넘는 책이 팔려 나갔다. 당신의 책이 미국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 왔다고 생각하는가?

 

진= 내 책이 어떤 변화를 가져 왔느냐고? 글쎄…, 내 책을 읽은 80만명은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다른 시각을 갖게 됐다.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이 자신의 생각, 어떤 사람은 인생 전체를 바꿔 놓았다고 말한다. 내 책을 읽고 정치,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독자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이다. 간접적으로는 이 책이 다른 역사학자들에게 전과 다른 방법으로 미국 역사를 쓰도록 자극했다. 그리고 교사들에게 전과는 다른 시각에서 미국 역사를 가르치게 했다. 많은 교사들이 내 책을 교재로 쓰고 있다.

 

지= 당신은 역사는 몇몇 영웅들이 아니라 대다수 민중들의 염원과 그들의 집단적인 운동에 의해서 발전해 왔다고 썼다. 그러나 민권운동과 반전평화운동이 압도했던 60년대와 달리 미국민들은 이제 각자가 파편화해 대중운동의 가능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사회에 전과 같은 대규모 대중운동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진= 오늘날 1960년대와 같은 강력한 운동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오늘날의 이슈가 간단명료하지 않다는 점이다. 베트남 전쟁은 문제가 명확했다. 우리가 베트남인들에게 끔찍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게 너무 확실했기 때문에 반전운동이 쉽게 조직될 수 있었다. 흑인민권운동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오늘날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경제문제, 부의 재분배 문제는 훨씬 복잡하다. 그것이 전국적 대규모 운동을 힘들게 한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조직되지는 않았지만, 수천 곳에서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나는 자주 여러 곳을 여행하는데, 가는 곳마다 아무리 작은 마을에도 군사주의와 인종주의에 대한 반대, 환경 개선, 여성 또는 노동자 권리의 확대를 위해 노력하는 그룹들이 있다. 며칠 전에 노스캐롤라이나의 아카다라는 작은 마을에 초청되어 갔었다. 인구 몇천명의 작은 마을에서 2천명의 청중이 모였다. 지금 미국 전국에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기존 질서에 대한 반대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60년대와 같은 열기는 아니라 해도, 새로운 전국적인 운동의 요소들이 자라나고 있다. 당장 하버드대학에서도 학생들이 대학에서 일하는 청소부, 수위 등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보장을 요구하는 농성을 하고 있지 않은가. 얼마 전 클리블랜드의 케이스웨스턴리저브 대학에 초청되어 갔었는데, 거기서는 학생들이 교내식당 노동자들의 노조결성을 돕고 있었다.

 

지= 그러나 미국에선 지난 10여년 동안 과거 어느 때보다도 빈부격차가 더 커지고 있지 않은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그러한 상황은 전세계적으로 심화되어 가고 있다.

 

진= 바로 그렇다. 어느 당이 집권하느냐에 관계없이 빈부 격차가 커지고 있다. 이것이 강력한 요소다. 상황이 더 악화되어 문제를 느끼게 되면 사람들은 행동에 나서게 된다. 빈부 격차 때문에 노동조합 결성이 촉진되리라고 본다.

 

지= 당신은 민중운동을 역사로 기록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 60, 70년대 민중운동의 한복판에서 활동했다. 지금도 어떤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가? 요즈음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무엇인가?

 

진= 과거와 같은 대규모 운동은 아니지만 다양한 운동에 관여하고 있다. 지난해 선거 때는 랠프 네이다의 대통령 선거전을 도왔고, 지금은 `감옥을 없애라'라는 재소자들을 위한 단체에 관여하고 있다.

 

지= 감옥을 아주 없애라는 말인가?

 

진=(웃음) 감옥을 없애라는 것은 현재 미국 재소자의 80-90%가 사실은 감옥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감옥살이가 아니라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물론 죄질이 나빠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할 죄수들도 있다. 그러나 절도라든지 마약을 소지했다든지 하는 대부분의 죄수들은 당장 내일이라도 석방되어야 할 사람들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감옥인구를 갖고 있는 나라다. 2백만이나 되는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 사람들이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도울 시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정부에 촉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지= 하지만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을 잃고 있다. 미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진= 사람들이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자신들에게 힘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관심한 것이 아니다. 무언가가 잘못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자신에게 그걸 바꿀 힘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뒤로 물러서서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개인생활에나 신경을 쓰는 것이다. 변화를 위해서는 개인들이 뭉쳐야 한다. 정부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조직되어야 한다. 공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개인이 뭉쳤을 때 힘을 갖게 되고 불가능할 것 같았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남부에서 흑인들이 이루어 낸 일이다.

 

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요즘 쓰고 있는 책이 있는가.

 

진= 희곡을 쓴다. 내가 희곡을 쓴다는 걸 알고 있었나? 첫 희곡은 77년에 쓴 엠마 골드만이라는 20세기초의 여성주의자이자 아나키스트의 이야기였다. 그는 경제공황 때 사람들에게 `직접 행동하라'고 가르쳤다. 먹을 것이 없으면 먹을 것을 훔침으로써 상황을 알리라는 것이다. 물론 수도 없이 감옥에 들어 갔다. 그녀는 낙태 등 여성의 권리에 대해서도 발언했다. 그 연극은 보스턴 뉴욕 런던 그리고 도쿄에서도 공연됐다.

 

지= 당신은 사람들을 교육하기 위해 희곡을 쓴 건가, 아니면 진짜 극작가가 되고 싶었나?

 

진= 두가지 다다.(웃음) 가장 최근 것은 <마르크스 소호에 오다>라는 모노드라마인데 꽤 재미있다. 뉴욕,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공연됐다. 소련이 해체된 후 사람들이 사회주의는 죽었다, 마르크시즘은 죽었다고 말했다. 그게 아니라고, 소련은 사회주의를 실현하지 않았으며, 근본적인 마르크시즘은 살아 있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마르크스가 소호에 나타나 엉뚱한 누명을 벗기 위해 진짜 마르크시즘이란 무엇인지, 자본주의란 어떤 것인지 설명한다.

 

지= 당신은 역사를 현재와 멀리 떨어진 과거로 한정하지 않는다. <미국 민중사>의 최신판에서는 클린턴 행정부의 대내외정책까지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매일 매일의 역사책이라고 할 수 있는 언론에 대해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미국의 언론이 미국 국민의 이해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진= 불행하게도 그렇지가 않다. 미국의 텔레비전을 한번 보라. 대통령과 장관들과 의회와 대법원의 움직임은 자세히 보도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반응이나 의견이나 항의는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도, 자신의 의견이 아니라, 텔레비전에서 들은 것을 그대로 얘기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각 지역에는 지역신문, 소규모 방송들이 있어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내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아직 너무 약하다.

 

지= 미국은 언론의 자유가 어느 다른 나라보다도 잘 보장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흑백분리가 법으로 금지된 직후, 딕 리거비라는 흑인 코미디언이 이런 코미디를 했다. “이 근사한 호텔, 멋진 음식점들이 다 우리에게 개방되다니,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그런데 돈이 있어야 들어가지..” 이론적으로 분명히 언론자유는 있다. 그런데 우리 얘기를 써줄 신문이 없다. 우리를 초대하는 텔레비전이 없다. 내 의견을 친구에게 이야기할 수는 있다. 백명에게, 또는 천명에게 이야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백만명에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 질적인 언론자유는 있으나 양적인 언론자유는 보장되어 있지 않다. 나는 1달러 어치의 언론자유를 갖고 있고, 제너럴 일렉트릭 회사는 수십억달러 어치의 언론자유를 갖고 있는 것이다.

 

지= <한겨레>는 6만 국민의 힘으로 세워진 신문이다. 그러나 극심한 자본주의 경쟁체제 안에서 국민의 의견을 충실하게 담아내며 사업적 성공을 병행하는 것이 지극히 어렵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있다. 과거의 역사 속에 좋은 교훈이 있는가?

 

진=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의 지지를 확보해 발행부수를 늘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자들이 <한겨레>의 존재를 알고, 그 신문의 발전이 자신들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보다 큰 지원을 보내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는 공영라디오(NPR)가 청취자들의 지원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한겨레>의 발행부수는 얼마나 되는가?

 

지= 50만부 정도이다.

 

진= 정말인가? 굉장한 일이다. 미국은 한국보다 훨씬 인구가 많지만, 부수 50만의 진보적 신문을 갖고 있지 못하다.

 

대담:지영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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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누구인가

 

<미국 민중사>(국내 번역본은 <미국민중저항사>)를 쓴 하워드 진(79)은 민중의 역사를 기록했을 뿐 아니라 그 스스로 민중운동의 한 부분이었던 인물이다.

 

1980년에 출간된 <미국 민중사>는 기존의 미국 역사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콜럼버스와 워싱턴, 링컨,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역사가 아니라, 아메리카 원주민, 노예의 삶을 산 흑인들, 이름 없는 베트남전 참전병사들이 주인인 역사다. 기존의 영웅과 악한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콜럼버스는 존경받는 영웅이 아니라 인디언들을 고문하고 학살하며 황금을 끌어 모은 탐욕스러운 인물이다. 워싱턴, 프랭클린, 매디슨 같은 건국의 영웅들도 알고보면, 노예주인이며, 상인이자 채권소유자로서, 자신들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나라를 세웠을 뿐이다. 앤드루 잭슨,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인종차별주의자에다 인디언 도살자, 전쟁광, 제국주의자였음이 드러난다.

 

역사는 미화된 소수 영웅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름없는 대다수 민중들에 의해 변화하고 발전한다는 확고한 믿음에서 서술된 이 책이 던진 파문은 엄청났다. 역사책으로 유례가 없는 폭발적 인기를 얻으며 지금까지 80만부 이상이 팔렸다. 물론 호응만 받은 것은 아니다. 초기에 이 책을 부교재로 썼던 교사가 학부형에 의해 고발되는가 하면, 진 자신은 비애국적 조국혐오주의자라는 비방에 아직도 시달리고 있다.

 

뉴욕의 빈민가정에서 태어나 부두노동자로 청소년기를 보내고 공군 폭격수로 2차대전에 참전했던 그는 군경력자에게 주어지는 장학금으로 뒤늦게 컬럼비아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한다. 56년 애틀랜타의 스펠먼이라는 흑인대학에 교직을 얻은 그는 백인교수로서 학생들과 함께 흑인민권운동에 뛰어든다. 63년 보스턴대학(BU)으로 옮긴 후엔 반전평화운동을 계속한다. 자신의 생각과 믿음대로 발언하고 가르치고 행동하는 그의 삶과 철학은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회고록에 잘 나타나 있다.

 

현재 보스턴대학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