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2007년02월14일 제648호
http://h21.hani.co.kr/section-021005000/2007/02/021005000200702140648038.html
박근혜가 중도라굽쇼
▣ 홍성태 상지대 교수
한나라당의 박근혜 예비후보는 1952년 대구에서 출생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 나이로 56살이 되었다. 그리고 1970년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해서 1974년에 졸업했다. 지금이야 전자공학이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을 일군 학문이 되었지만 1970년 당시로서는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전자공학은 신생 학문이었다.
△ 박근혜 신드롬은 박정희 신드롬을 자양분으로 하고 있다. 1975년 가봉공화국의 봉고 대통령 부부의 내한 환영식에 영부인(퍼스트레이디) 자격으로 아버지와 함께 참석한 박근혜.(사진/보도사진연감76)
|
여당의 줄기찬 닭짓, 그의 줄기찬 행운
1975년에 개봉한 <바보들의 행진>에서는 남녀 대학생의 사랑 이야기를 마치 보편적인 것처럼 그렸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선 당시에는 여대생이 굉장히 희귀했다. 공대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전체에서 한두 명이면 많은 실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박근혜 예비후보가 전자공학을 전공했다는 것은 당시의 ‘공업입국’ 풍조를 열심히 따라가는 것이면서 상당히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기도 했다.
또한 듣자 하니 박근혜 예비후보는 평소 체력관리를 비롯한 자기연마에도 굉장히 열심이라고 한다. 오래전부터 요가로 몸을 단련해왔으며, 외국어도 4개국어 정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박정희의 딸로서 어려서부터 정치를 배워서 잘 알고 있으며, 어머니의 암살 이후에는 더욱더 그렇게 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요는 아주 어려서부터 깊이 훈련받은 훌륭한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보수 언론은 이런 이야기를 열심히 전파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이 과연 박근혜 예비후보에 대한 ‘진실’을 잘 전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래도 그렇게만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박근혜 예비후보의 정치 역정을 보면 오늘날 그의 위치는 엄청난 ‘행운’의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1998년 대구 달성구의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돼 본격적인 정치인 생활을 시작했다. 이것은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그를 선택한 결과라고 한다. 그러나 그 뒤에 이회창과 사이가 심각하게 틀어져서 다른 때도 아니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던 2002년 초에 박근혜 예비후보는 한나라당을 탈당해서 따로 한국미래연합이라는 정당을 만들었다가 그해 9월 다시 한나라당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당 대표를 맡았고 그 뒤로 어쩐 일인지 한나라당은 연승 가도를 신나게 달렸다. 박근혜 예비후보는 짧은 시간 동안에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다.
박근혜 예비후보의 본격적인 정치 경력은 올해로 비로소 10년째가 된다. 그리고 그가 대통령 예비후보로 떠오른 것은 사실 열린우리당이 계속해서 ‘닭짓’을 한 시기와 일치한다. 상당히 약화됐으나 결코 ‘심판’받지는 않은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의 줄기찬 ‘닭짓’을 계기로 다시금 최강자로 떠오르던 시기에 박근혜 예비후보는 한나라당의 대표직을 맡는 엄청난 ‘행운’을 누렸던 것이다.
물론 박근혜 예비후보의 행운은 단순히 행운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 바탕에는 ‘부모의 은덕’과 지역주의가 놓여 있었다. ‘박근혜 신드롬’이 ‘무조건 박근혜를 최고의 정치 지도자로 모시는 풍조’를 뜻한다면, 그 바탕에는 우선 ‘박정희 신드롬’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정희는 배신과 폭력으로 점철된 일생을 살았던 ‘폭군’이었다. 그러나 그는 개발정책과 선전기구를 잘 활용해서 국민들이 자신을 ‘국부’로 여기도록 하는 데 상당히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로부터 박정희 신드롬이 나타나게 되었다. 박근혜 예비후보는 그 정치적 혜택을 크게 누리고 있는 것이다.
△ 대구·경북 지역의 맹주는 박근혜다. 박 전 대표가 2005년 4월 재보선을 하루 앞두고 경북 영천시 금호읍에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당부하고 있다.(사진/연합)
|
인혁당 재건위가 ‘정치적 공세’라던 그가…
또한 지역주의의 문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박정희의 개발독재는 서울 등 수도권을 중심 지역으로 하고 부산·대구 등 영남권을 하위 지역으로 하는 국토개발의 양극 구조를 정립시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구조를 실행한 주체의 다수를 부산·대구, 영남권의 사람들이 차지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구조에서 이득을 취한 사람들은 박정희의 개발독재 시대를 찬양하면서 박정희 신드롬을 확산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렇듯 ‘영남 지역주의’의 연장으로서 박근혜 신드롬이 형성됐다.
물론 박근혜 신드롬을 박정희 신드롬이나 영남 지역주의하고만 연관짓는 것은 부당할지도 모른다. 특히 여성운동의 일부에서는 ‘정치적 능력’이 증명되기 전부터 박근혜 예비후보를 강력히 지지하지 않았던가? 박근혜 신드롬에는 ‘뛰어난 여성 정치인’이라는 ‘찬사’가 붙어 있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단지 여성이라는 사실을 넘어서 과연 박근혜 예비후보가 ‘여성 정치인’으로서 무엇을 했는지에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호주제 폐지조차 마지못해 찬성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무엇보다 적어도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잘못에 대한 반성을 회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예비후보는 회피를 넘어서 아예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1975년 4월9일 새벽, 박정희 정권은 무고한 사람들을 ‘인혁당 재건위’라는 누명을 씌워서 사형에 처했다. 이 끔찍한 사법살인은 박정희 유신독재의 실상을 고스란히 보여준 세계적 사건이었다. 그 실상은 최근에야 비로소 법원에 의해 확인되었다. 이에 대해 ‘뉴라이트전국연합’의 대변인을 맡고 있는 중앙대 법학과 제성호 교수라는 사람은 ‘실체가 있는 사건이었다’는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뉴라이트전국연합은 물론이고 자신이 끔찍한 유신독재를 되살리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밝혔다. 이런 사람이 법학 교수라니, 정말로 무서운 일이다. 이 정도로 천박하고 무서운 것은 아니었지만, 박근혜 예비후보도 ‘정치적 공세’라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이 역사를 올바로 인정하고 잘못을 바로잡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말았다. 그것은 결코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의 태도라고 할 수 없다.
최근에 박근혜 예비후보는 자신이 ‘중도’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서천의 소가 웃기 전에 그의 지지자들이 돌을 던질 일이 아닐까? ‘인혁당 재건위’ 판결에 대한 그의 대응은 말할 것도 없고 대북 문제나 심지어 황우석에 대한 태도에서도, 박근혜 예비후보는 언제나 ‘우파’를 대변했다. 그것도 ‘아주 우파’를. 이제 와서 무엇을 근거로 박근혜 예비후보는 자신이 ‘중도’라고 주장하는 것인가? 최근에 ‘우파’들과 사이가 틀어졌는가? 아니면 ‘우파’들만으로는 결코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는가?
이미 오래전에 퇴출됐어야 할 ‘수구’
사람들은 박근혜 예비후보를 박정희의 딸로서 반공 보수주의, 영남 지역주의, 극심한 성장주의, 강력한 자본중심주의를 강력히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증거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공 보수주의, 영남 지역주의, 극심한 성장주의, 강력한 자본중심주의 등의 문제를 바로잡는 것이 우리 사회의 핵심적 발전과제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진정한 선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심화와 지역주의의 타파와 생태적 복지사회를 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한국은 ‘후진화’하고 말 것이다.
개인적으로 박근혜 예비후보가 ‘나라의 발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신념’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그 신념의 내용이 대단히 큰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예비후보는 흔히 ‘구보수’를 대표한다고 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필자의 정치사회학적 구분으로는 ‘수구’에 해당하는 것이다. 수구는 한마디로 ‘반민주적 세력’이다. 박근혜 예비후보가 정말로 고민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문제이다. 수구는 이미 오래전에 한국 사회에서 퇴출됐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 이야기 >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회찬이 노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레디앙 070220) (0) | 2007.02.20 |
---|---|
이명박 신드롬은 아파트값이다(한겨레21 070214) (0) | 2007.02.20 |
‘2차 아미티지 보고서’ 나왔다(한겨레신문 070219) (0) | 2007.02.20 |
[진보개혁의 위기] 최장집 교수의 ‘위기 진단’ 인터뷰 전문(경향신문 061221) (0) | 2007.02.17 |
해방 60년에 대한 하나의 해석(최장집, 프레시안 051021) (0) | 2007.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