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06년 12월 21일 18:43:5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612211843502&code=210100
[진보개혁의 위기] 최장집 교수의 ‘위기 진단’ 인터뷰 전문
남군의 질문은 간단한 것 같지만 많은 내용을 담고 있고, 그에 답하려면 현재 한국 민주주의 상황의 중요한 부분을 얘기해야 하고, 그 뿐 아니라 그에 대한 전망까지 묻는 것이어서 답하는 일이 간단치 않다고 느껴지네.
강의를 통해 민주주의, 특히 보통사람들의 참여와 요구가 정치체제에 많이 투입될 수 있는 민주주의는 정당이 중심적 역할을 하는 것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되풀이 강조해 왔지. 그러할 때 으레 제일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민주노동당의 역할과 위상이 어떠한가, 이 당에 기대를 걸 수 있는 것인가가 아닐 수 없겠지. 그런데 민노당을 생각하면, 어떤 딜레마 같은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네. 민노당이 한국정치와 사회의 민주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당 구조와 구성원들의 정향을 가지고는 어렵다고 생각하지. 당의 개혁을 위해 두 가지 생각이 가능할 것 같네. 하나는 지금 당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현재의 이념적 성격과 행동양식을 바꿔 제도적 실천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당을 힘 있는 정당 그러니까 실제로 사회의 소외계층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경제적, 사회적 삶에 심각하게 충격을 받은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정당으로 발전할 수 있어야 하겠지. 다른 하나는 이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민노당 밖에 어떤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것일 수 있겠지.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둘 다가 어렵다는 것이 민노당에 대한 기대를 어둡게 만드는군. 첫 번째 당을 이끄는 사람들이 변화하는 것은, 민주화운동 시기 가졌던 추상적 이념을 벗어던지고 정당으로서 투표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고, 선거경쟁에서 표를 많이 획득할 수 있는 당의 인물, 당의 이념과 강령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지. 그것은 당의 노선이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인 것을 가져야 하는데 그런 것을 현재의 조건에서 만들어내기란 지난할 것 같아 보이네. 현실로부터 이념이 괴리되는 것은 당의 성원들이 갖는 일종의 타성, 안일함, 나르시즘의 결과라고 보네. 스스로가 강한 정당이 될 수 없는 것에 대한 자기합리화의 심리적 기제가 작동한 결과라고 할 수 있고. 민노당의 지도부가 보통사람들의 삶과 직접 관련된 정치경제적 이슈는 뒤로 미뤄둔 채 북한을 방문해서 김일성묘소를 참배한다든가 통일문제에 사명을 갖고 무비판적으로 북한지도부와 회담하는 모습을 볼 때, 민노당은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동떨어져 스스로 자기정당화를 위한 행위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네. 민주주의의 제도적 실천이란 투표자들이 당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이고 따라서 어떻게 보통 당원과 일반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고 표를 동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있지, 당 지도부가 그들 이념에 부합하는 행위를 하면서 스스로를 자족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고 민노당이 아닌 다른 그룹/ 또는 그룹의 형성으로부터 새로운 당을 만든다는 것은 민노당이 변하는 경로보다 더 어려울지 모르지. 오늘날 진보, 개혁, 민중적인 것에 대한 환멸의 시대에 이들 이외에 누가 보통사람들을 대변할 정당을 만드는 일에 뛰어들려 할 것인가. 현실적으로 민노당이 발전하는 문제는, 곧 현재 당을 이끌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변하는 것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지않을까 싶네.
남군의 생각과는 달리 사회경제적 하부구조가 새로운 당의 출현을 불가능하게 하는 요인은 아니라고 보네. 정당의 출현은 사회경제적 구조의 반영이나 표출이 아니라 어느 구조에서든 민중적인 부문 내지 보통사람들 가운데서 각성된 일부 사람들의 헌신적 참여의 결과이지. 사회경제적 하부구조는 어느 사회든 항상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지. 그러니 하부구조가 정당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당이 하부구조를 표로 재조직할 수 있고 또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제도적 실천 즉 선거경쟁의 이치라 할 수 있지.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하부구조는 통계수치이거나 그렇다고 상정되는 것일 뿐, 그 자체가 정치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갖지는 못한다고 보네.
한미FTA를 반대하는 것, 그것이 노무현정부의 의도대로 관철되느냐 아니냐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이를 반대하는 힘이 정치세력화되고 대안을 조직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네. 한미 FTA는 단순히 협정을 하게 되느냐 마느냐의 문제라기보다 기존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연상선상에서 나타나는 정책적 표현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네. 이 거대한 힘을 운동만의 힘으로 막아낼 수 있을까? 또 막아낼 수 있다고 할 때 어떻게 막아낼수 있으며, 또 그 다음에 오는것은 무엇인가? 온 사회의 가치관, 비전이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어떻게? 지금은 운동이 문제를 제기하고 힘으로 맞서고 있지만, 정치적으로 조직된 다수를 갖지 않을 때 결국은 국가의 힘, 여론의 힘, 정책의 힘은 다른 형태로 관철될 것이기 때문이지.
북핵문제와 관련해서는, 한국의 진보파들이 대북문제에 대한 분명한 인식, 새로운 인식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네. 새로운 인식이란 민족주의의 시각, 가치관, 비전, 역사이해의 방법을 통해서 문제를 보는 것과는 다른 어떤 인식을 말하는 것일세. 내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일세.
무엇보다 먼저 민족주의와 남북한의 정당성 문제가 중요하지. 남북한 문제를 생각할 때면 늘 정당성 문제가 걸리게 되지. 진보파들에게나 보수파들에게 이 문제가 서로 극단적 관점으로 갈리지만 그것은 거울이미지일 뿐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지. 해방이후 남북한은 분단되면서 어느 한쪽이 정당성을 독점할 수 없는 상태, 즉 정당성을 분점하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분할된 민족정체성 의식을 갖고 있지. 그런데 이 정당성과 관련된 한에 있어서 북한은 남한보다 우위의 입장에 있는 것으로 보이네. 남한은 이 문제에 대해 열등감이 크고 말이지. 무엇이 그렇게 만드나?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민족주의의 이념이고 가치이지. 그것은 북한이 거의 경제적인 자립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정신적, 도덕적 우월의식을 가지고 큰 소리 치는 이유가 아닐까 하네. 그리고 남한의 진보파들은 북한이 자주적이고 진보적이고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고, 반대로 남한은 보수적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네. 이러한 내용이 이른바 NL이라고 부르는 한 진보파그룹의 이념과 가치, 논리구조가 아닐까 하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네. 일제하 민족독립운동과정에서 북한을 만든 그룹들이 여러 정파들 가운데서 가장 전투적으로 일제와 싸웠다는 점에서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면이 있을지 모르겠네. 그러나 해방이후 북한체제를 만든 사람들의 정책에 대해서는 전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네. 그리고 그 이후 현재에 이르는 북한체제의 내용과 성격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나는 오늘의 북한을 볼라치면 고대 스파르타가 떠오르고는 하네. 최고통치자로서 두 사람의 왕, 소수의 원로원, 5명의 선출된 감시관을 가졌다는 점에서 정부형태는 다소 다르지만, 통치자가 절대 권력을 가지고, 소수의 엘리트들과 더불어 통치하는 동안 모든 주민이 먹고살기 위해 최대한 노동하지만 평등하게 못사는 가부장적이고 전체주의적인, 고도로 규율된 통제된 사회라는 점에서 말이지. 이런 사회를 진보적이라거나 민중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만약 한국의 진보파의 일부가 이런 체제를 진보적, 민중적이라고 믿는 어떤 이념, 가치를 갖는다면, 그러한 진보파는 출발지점에서 파탄을 면치 못할 것일세.
그동안 한국현대사는 양분법적으로 이해돼왔네. 한편에서는 (가) 남한만이 정당성을 갖는다고 주장하면서 김일성 국제공산주의세력의 앞잡이라고 말했지. 그런가하면 다른 한편 (나) 북한과 급진 NL그룹 또는 진보적인 민족주의의 이념을 갖는 사람들은 남한은 친일 지주와 식민지부르조아의 보수적 민족주의를 실현하는 체제로 이해하고 있지. 따라서 북한은 민족정당성을 대표하고, 반제식민지투쟁의 기지이고, 반미민족자주의 구현이라고 이해하게 되지.
이는 극단적인 양자택일의 사관을 가능케 하는 논리라고 생각하네. 이것은 화해불가능의 현대사에 대한 인식이고, 어느 한 쪽이 폐기되지 않으면 안 되는 역사관이지. 이 문제를 화해불능으로 만드는 것은 이념으로서 민족주의라고 믿네. 그런데 한국사회의 많은 식자들은, (가)처럼 말할 때 무언가 떳떳치 못한 느낌 그리고 도덕성에 있어 열등감 비슷한 것을 갖는 경우가 많았지. 그러면서도 (나)처럼 북한에 대해 긍정적인 정조를 가지고 말할 때, 만약 그가 이성적이라면 현실과 동떨어진 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일세. 나는 하나의 좋은 체제 내지 인간사회란 반드시 도덕성의 발원을 그 출발점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네. 많은 한국 사람들 특히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 혹은 진보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모든 문제를 도덕성의 기준으로부터 바라보는 것을 극복, 지양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라고 보네.
보수파 인사들 사이에서 심리적인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아니면 보수적 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부정하고 이를 발전주의로 대체하는 역사재해석의 방법이 시도되고 있음을 최근 들어 자주 보게 되지. 이를 통해 그들은 일제식민통치 - 해방 후 반공주의체제 - 박정희 개발독재 등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한국사회 발전의 기원이라고 강조하곤 하지. 혹은 다른 측면에서 민족주의를 재강조하거나, 탈근대 이론을 들고 나오거나, 또는 동아시아 공동체 등을 들고 나와 이러한 분열의 역사를 봉합하고 무언가 그에 합리성을 부여하려고 시도하는 것 같네. 그런데 여기에서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무도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현대사를 분석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진보파, 또는 민주주의의 과거 지지 세력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민족주의는 민주주의를 포괄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일까?
나는 민족주의를 부정하지는 않네, 그러나 내가 이해하는 민족주의는 일정한 역사적 시기에 역할을 했던 중요한 이념이고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즉 역사적 현상으로서의 민족주의, 근대화의 초기, 제국주의 시기에 하나의 ‘시대정신’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현재의 시점에서 그것은 이념으로나 가치로나 유효하다고 보지는 않네. 더구나 민족주의는 민주주의의 실천과 향상을 위해, 또 한국사회의 민중들의 사회경제적 삶의 현실을 민주주의의 제도적 실천을 통해 해결하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되거나, 오히려 장애로 기능하고 있다고 믿네. 이 문제는 특히 남북한관계를 이해하고 풀어나가는데 있어서도 그러하다고 믿네.
무엇보다 민족주의가 진보적이고, 자주적이고, 민중지향적이고, 통일지향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성찰해야 될 것일세. 그리고 동시에 통일은 반드시 의문의 여지없이 한국민들이 추구해야할 최우선의 이상이요, 국가목표요, 과제로 여기는 것 역시 다시 생각해봐야 할 걸세. 민족주의와 통일을 거의 종교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해방 후 민족주의를 내세운 통일된 민족독립국가의 수립운동은, 밖으로부터 들어온 냉전반공주의의 힘을 이겨낼 만한 것은 아니었고, 결국 그것은 분단과 전쟁으로 귀결되었지. 일민족-일국가의 민족주의의 가치와 이념은 첫 번째 단계에서 분단을 막지 못했고, 두 번째 단계에서 분단된 상태에서 공존의 가치와 이념을 배울 수 없게 했지. 김일성정권에 의한 남침결정은 이러한 민족주의 이념의 가장 확실한 추구라 할 수 있겠지.
이 점에서 우리의 대안은 분명하다고 보네. 변화된 국제환경하에서 민족주의-통일을 다시 추구할 것이 아니라, 다른 노선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지. 그 대안은 민주주의-공존이라고 생각하네. 여기에서 강조해야 할 것은 평화공존이 통일에 이르는 수단이요, 과도기적 중간단계로 설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 평화공존은 평화공존 그 자체가 목표요 가치여야 한다는 것이지. 여기에서 평화공존의 내용은 무엇일까? 그것은 곧 남북한 각각이 독립된 주권국가로서 발전하는 것이고, 그렇게 될 때 남북한간 평화의 제도화, 안정적 유지가 가능하다고 믿네. 이러한 것들이 전제될 때, 그리고 평화공존의 이념적 기초위에서 우리는 북한 핵문제를 다룰 수 있을 것일세. 북한이 핵무장을 포기토록 하는 것이 대북정책과 대외정책의 최우선과제가 돼야 한다고 믿네. 북한의 인권문제 역시 외부로부터의 개입이 북한체제를 붕괴시키기 위한 어떤 틈새를 만들려 한다든가 하는 전술적 의도를 갖는 것이 아니라는 조건에서, 그리고 그것이 북한주민들의 인간의 기본권과 생존권을 지원하는데 효과가 있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경우 정당하다고 생각하네. 나는 이점에서 오늘날 보수적인 한나라당의 그동안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도 어떤 점들은 수용할만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나는 한국사회가 강자와 약자, 부자와 빈자로 양분되고 힘을 가진 집단들이 모두 제어할 수 없는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과거보다 더 많이 허용되는 이 불안정한 민주주의 사회, 극단적 갈등과 이익 충돌을 제어하고 이를 민주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체제가 어떻게 전혀 다른 사회를 민족의 이름으로 통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솔직히 이해할 수 없네. 민족주의를 정서적으로 수용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남북한 사이에 가로놓인 문제들, 그리고 나아가서는 통일이 이산가족 상봉 때 볼 수 있듯이 만나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면서 민족의 재결합을 다짐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닐세. 불행하게도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분단선은 남북한 간의 분단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수준에서 모두 국제적 힘의 관계가 만들어낸 균형점의 표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일세. 그럼으로 그 해결을 위해서는, 남북한 간의 협의와 합의는 물론, 한반도분단이 만들어내는 효과에 직접적으로 이해관계를 갖는 관련 당사국들 사이의 주도면밀한 협의와 이를 통한 합의를 끌어냄이 없이는 현재의 분단 상태를 변화시키기는 어려울 것일세. 그것은 냉철한 현실정치의 산물이고, 이를 풀기 위해서는 역시 냉철한 현실 정치적 접근이 절대로 필요한 것이지. 이 문제에 대한 정서적, 감상적 접근이나 포퓰리즘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지. 이러한 현실적인 조건들을 고려하지 않고, 남북한의 경계선이 허물어지는 어떤 돌발적인 변화가 생긴다면, 그것은 평화나 통일이 아닌, 6.25전쟁에 버금가는 재난이 아니겠나? 나는 동서독이 통일된 이후 독일을 보면서, 통일이라는 역사적 현상을 부러워하기보다 그 통일을 감당해낼 수 있었던 서독의 민주주의의 힘, 전전의 독일 민족주의의 헤게모니적 힘을 극복한 민주화된 서독사회의 힘을 보면서 무한한 부러움을 느꼈지.
남군, 자네가 생각하듯이 한미 FTA, 북한핵 문제 때문에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정당이 없는 , 즉 민주화세력이 정치적으로 조직되지 못한 것, 그럼으로 인해 민주화운동세력들의 무능력, 민주화세력임을 자임하는 정치인들의 무능력이 오늘날 한미FTA를 낳고, 북핵위기를 속수무책으로 맞고 있다고 보네. 내가 정당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많은 학생들이, 그리고 자네도 마찬가지로 내가 운동이 민주화를 가져왔다고 말하면서 왜 민주화의 동력으로서 운동이 아닌, 정당을 강조하느냐 하는 의문을 갖지. 그리고 자네가 묻듯이 운동은 민주화, 민중주의적 성격을 갖는데 어떤 방식으로 엘리트적인 내용으로 귀결된다 하는지 여러 사람들이 의문을 갖는 것 같네. 마땅히 가질 수 있는 질문인 것 같네.
나는 현재의 시점에서 한국 민주화의 궤적을 들여다보면서 민주화이후 오늘의 사회에서 왜 민중주의적 요소가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사라져버렸는가 하는 문제에 큰 관심을 갖네. 온 사회를 혁명에 가깝도록 뒤흔들어 놓은 민주화운동은 어디로 사라졌나, 그리고 그것은 무엇을 남겼나 하는 것이지. 그 요란함, 그 영웅주의, 그 많은 민중주의적 담론들, 그 많은 변혁을 향한 외침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오늘의 민주적이고 참여적이고 개혁적이고 민족 자주적이라며 큰 소리 치는 민주정부(오늘의 민주정부만은 아니지만)가 그 외침과는 동떨어지게, 아니 그와는 정반대로 왜 노동자와 농민과 같은 생산자집단을 소외시키고, 빈부격차와 사회양극화를 몰고 나가고, 확대되는 저소득층, 빈곤층을 방기하고, 그로 인해 삶의 희망을 상실한 사회 저변층이 살인, 자살, 가족과 함께 죽는 집단자살, 반인륜적 범죄, 가정해체와 같은 범죄 및 사회해체의 온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을 허용하고 있는 것인지, 지난날의 권위주의시절 보다 더 재벌중심-노동배제를 중심으로 하는 성장일변도 정책을 추구하는지, 설명돼야 할 것이라고 보네. 나는 오늘의 시점에서 운동이 만들어낸 민주주의의 결과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는 것일세. 운동의 효능이 갖는 문제를 회의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민주주의에서는 시민사회의 역할, 헤게모니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갖지. 그간의 현실은 운동이 어떤 비전이나 가치를 구체화해서 헤게모니에 대항하고 시민사회에서 상당히 큰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취약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지. 민주화이후 시민운동들은 지나놓고 보면 헤게모니의 한 주변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네. 정부에 참여한 그룹,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에서 새로운 엘리트로 등장한 민주화세대들의 역할은 때로는 헤게모니에 충실하고, 때로는 어설픈 전달자가 되고, 때로는 개혁의 이름으로 더 빨리 더 유능하게 헤게모니를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 이들이 그렇게 된 이후 민주화된 한국사회는 순식간에 ‘현상의 유지’ (status quo) 를 복원하게 된 것이지. 그 결과로서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 때보다 결코 적지 않은 소외세력들은 민주 체제 내에서 대표되거나 포섭되지 못하고 있고.
서구에서의 운동의 경험도 한국에서의 민주화운동 이후의 사례와 상당한 유사성을 갖는 것처럼 보이네. 60년대 신세대가 주도한 반체제운동이 ‘신좌파’라는 말을 탄생시키며 유럽과 미국을 휩쓴 바 있지. 최근 내가 읽은 한 책이 이런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자네의 질문 내용과 관련이 있어 소개해 보겠네. 60년대 서구의 운동에서 추구된 목표는 개인자유와 사회정의 두 가지였는데, 이 두 목표랄까 가치는 지양(止揚)되면서 하나로 통일되기보다 긴장과 함께 좌파운동으로 하여금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갖게 만들었다는 주장이지. 좌파운동은 이 두 개의 가치가 내장하는 긴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면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지. 파리, 버클리, 베를린 등지에서 학생들이 추구했던 운동의 가치는 더 많은 개인적 자유 즉, 가족, 교육, 기업, 관료체제, 국가의 권위주의적 제약 등으로부터 자유였다는 것일세. 그러면서 동시에 이들은 사회정의를 중요한 운동의 목표로 삼았다는 것이지. 그러나 개인자유와 사회정의는 반드시 언제나 공존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지. 사회정의의 추구는 개인적 욕구나 필요와 같은 개인적인 것을 사회적 평등이나 환경적 정의와 같은 일반적 투쟁의 대의에 종속시킬 수 있는 용의를 필요로 하는 것일세.
어쨌든 ‘68 혁명’은 불안정하게나마 이 두 가치를 결합했었는데, 결국은 이후 이두 가치는 분해되었고 그중 개인적 자유의 가치는 신자유주의적 가치와 교묘하게 결합하게 되었다는 것이지. 즉 신자유주의의 레토릭은 반권력적 자유, 정체성의 정치, 다문화주의, 나르시즘적 소비주의 등을 국가권력의 획득을 통해 사회정의를 추구하고자하는 사회세력으로부터 분리해내는 효과를 발휘하면서 말이지. 미국 진보파들은 개인자유의 추구, 소수아이덴티티의 인정과 같은 요구를 추구하는 것과 사회정의의 실현에 필요한 정치적 행동 그리고 이를 위한 집단적 규율을 강화하는 것을 현실에서 양립시키지 못했다는 것일세. 진보파 운동은 신자유주의가 이러한 균열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하고 말았다는 것이지. 지금 내가 소개하는 서구의 사례는 한국의 경험과는 다르지만,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이후 시민운동이 도시의 교육받은 중산층 중심 운동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 중산층적 비전과 가치가 그들의 경험세계와 동떨어진 노동문제, 사회저변층, 소외계층의 삶의 문제를 절박하게 인식하고 그에 정치적으로 대처하고자 하는 관심과 의지를 강하게 하는데 얼마나 작용했을까 하는 것을 자문하게 된다네.이런 문제를 생각해본다면, 오늘날 운동이 갖는 성격이나 문제점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으로 보네. 요컨대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회의 일반적 갈등, 그리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문제들은 어떻게 해서든 정당을 통해 대표되게 하고, 선거경쟁에서 사회이슈로 부각되게 하지 않고서는 개선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 강조하고 싶네..
'세상 이야기 >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근혜가 중도라굽쇼(한겨레21 070214) (0) | 2007.02.20 |
---|---|
‘2차 아미티지 보고서’ 나왔다(한겨레신문 070219) (0) | 2007.02.20 |
해방 60년에 대한 하나의 해석(최장집, 프레시안 051021) (0) | 2007.02.17 |
[인터뷰] 군사기밀유출 혐의 받고 있는 사진작가 이시우(민중의 소리 070217) (0) | 2007.02.17 |
내가 만나 본 부르스 커밍스 교수 (0) | 2007.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