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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작은 마을 안시(Annecy)
몇 년 전, 우연히 어느 사진 웹 싸이트에서 알게 된 안시(Annecy)라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
그림처럼 예쁜 마을의 풍경을 담은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사진이란 게 다 그런 거지 머. 실재로 가서 보면 다를 껄’ 하는 마음과 함께 신비로움마저 느껴지는 풍경에 끌려서 그 사진 속의 마을을 확인하러 가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안시라는 마을의 이름이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해질 무렵이었다. 내가 즐겨 읽던 모 영화잡지에서 그 마을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2004년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Annecy International Animated Film Festival)에서 한국특별전을 연다는 기사였었다. 게다가 그 해에 ‘오세암’이라는 한국 애니메이션이 그랑프리를 수상했다고 하니, 괜히 친밀감도 느껴졌다. 왠지 언젠가는 가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던 올해 초여름, 우연한 기회에 그 곳에 가게 되었다. 여행전문잡지인 트래비의 스위스 독자여행 이벤트에 당첨되는 행운을 쥐게 되어, 제네바에 가게 된 것이다. 제네바에서는 불과 45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터라, 이번에야 말로 꼭 가보리라 결심하게 된 것이다.
스위스의 제네바(Geneva)를 거쳐 그르노블(Grenoble)에서 안시로 가는 기차는 의외로 자주 있었다. 제네바에서 만난 친구의 설명에 의하면, 인구 5만명 남짓한 프랑스 론 알프스(Rhone-Alpes) 지방의 작은 마을이지만, 근교에서는 꽤나 유명한 관광지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아직 본격적인 관광시즌이 아닌데도, 기차 안에서 만난 사람들도 대부분이 관광객들로 보였다.
안시역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안시 국제애니매이션영화제 홍보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설마, 지금 영화제 중인가?' 궁금해하며 포스터를 자세히 들여다 보니, 진짜다! 그런데, 요란한 행사 안내도 없고, 특별히 부산히 오가는 사람들도 없어 보인다. 애니매이션 쪽에서는 꽤나 유명하다는 행사인데, 이곳까지 찾아 오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가 보다라고 혼자 생각해 버린다. 나중에 알고 보니, 행사가 열리는 극장은 도심에 있었고, 나는 호수가 있는 구시가만 보고 와버렸던 것이다.
아무튼, 무작정 오기는 했는데 어디서 뭘 봐야 하는 건지 아무런 정보도 없고 그 흔한 지도도 하나 없다. 그냥 사진 속의 그 풍경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 밖에는 아무런 계획도 정보도 없었다. 한국에서 출판되는 각종 여행정보 서적을 뒤져봐도 안시는 한 페이지 정도를 할애하면 많은 편이고, 대부분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영문 싸이트나 서적을 찾기 귀찮은 마음에 그냥 무작정 오게 된 것이었다. 역 밖으로 나와 역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나와 같은 처지의 관광객무리를 만나 반가운 마음에 일단 사진부터 한 장 찍는다. 내 모습이 딱 그랬다.
대부분의 유럽의 도시들의 경우, 철도가 잘 발달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역내 혹은 역주변에 관광안내소 소위 아이(I, Information Center)가 있기 마련이라 혹시 영화 포스트에 정신이 팔려 나오는 길에 놓쳤나 싶어 다시 역 안으로 들어가서 둘러보았으나 허탕이다
사실, 여행지에 가면 길을 헤매는 데에는 여유로워진다. 평소에는 지하철 한 구간이라도 적게 타기 위해 루트를 고심을 하게 마련인데, 낯선 곳에 가면 헤매는 게 오히려 즐겁게 느껴지곤 한다. 미리 계획하지 않은 낯선 곳에서 기대 밖의 풍경을 만나게 되면 그 기쁨은 배가 된다. 그래서인지 되도록 같던 길은 다시 가지 않는 습관이 생긴지 오래다.
고심 끝에, 근처의 호텔에 들어가서 투숙객인 양 당당하게 공짜 지도를 받아낸다. 사진 속의 풍경을 열심히 설명해 주니, 지도에 큼지막하게 동그라미를 쳐준다. 걸어서 30분이면 충분히 가는 가까운 거리이니, 걱정 말라는 당부와 함께. 불어 발음이 적당히 섞인 영어를 듣고 있노라면 무슨 말을 해도 귀엽다는 생각을 하며 길을 나선다.
구시가(Vieille Ville)를 지나 호수가 있는 사진 속의 풍경을 찾아 가는 길은 언뜻 지도만 보면 무지하게 복잡해 보인다. 하지만, 기원전 3100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마을의 역사를 생각하면 좁은 미로 같은 골목길도 무리는 아니다. 오뜨 사브와(Haute-Savoie)주의 주도답게 구시가의 중심에는 도청쯤으로 보이는 호텔 드 빌(Hotel de Ville)이 있고, 그 주변에는 오래된 성당과 고성들이 모여있는 전형적인 구시가의 모습이다.
일단, 역 앞을 가로질러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니, 지도를 펴서 확인하는 것도 귀찮아 진다. 마치 초등학교 때 처음 한글을 배울 때 아무 내용도 모르고 간판을 읽어댔던 것처럼 처음 듣는 거리의 이름들을 읽으며 무작정 호수 방향으로 걷는다.
30분쯤 걸었을까? 갑자기 좁다란 운하가 나타난다. 맑은 물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길 한 가운데를 유유히 흐른다. 알프스의 빙하가 녹아서 생긴 호수에서 흐르는 물이라고 해서 그런가? 유난히 맑고 투명하다. ‘서울의 청계천의 원래 모습이 이러했을까?’ 잠시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 점차 물길이 넓어지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걷기 시작하니, 본격적으로 관광객들의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한 할아버지께서 할머니 두 분의 사진 찍기에 열심이시다(사진4). 노후를 만끽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부러움 섞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과연 내가 저 나이가 되었을 때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일단, 같이 여행 다닐 친구들 확보가 급선무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니, 노후대책을 위한 자금확보가 더 급한 건가? 혼자 여행을 하면 이런 게 가장 큰 병패다. 여럿이 다니는 여행객들을 보면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노후대책도 잠깐, 흐르는 물소리에 홀려 물길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그제야 운하주변에 늘어선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기껏해야 4~5층 높이의 나지막한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고, 파스텔톤의 벽 색깔에 걸맞게 집집마다 창문밖에는 앉은뱅이 키 작은 화분들을 걸어 놓았다. 무슨 영화촬영지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예쁜 사람 사는 곳이 있나 싶다.
‘너무하지 않나?’라는 생각마저 든다. 빨간 제라늄 꽃을 노란 벽의 창가에 걸어 놓았는데, 마침 하얀 구름이 흘러가는 파란 하늘이 투명한 물에 반사가 된다. 말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엽서다.
멀리서 하얗게 움직이는 게 보여서 설마 하며 다가가 보니, 백조들이 떠다닌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다. 한 어린이가 백조에게 먹이를 주고 있고, 뒤에 있는 오리들은 부러운지 쳐다만 보고 있다. 미운오리새끼 동화를 상영 하나 싶을 정도로 현실에서는 낯선 풍경이다. 문제는 물이 너무 맑아서 백조의 물갈퀴 달린 넙적한 발도, 물에 3분의 1쯤 잠긴 깃털조차 들여다 보여서인지 너무나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백조는 고고하고 아름다운 새였는데, 갑자기 이만한 넓적한 물갈퀴를 가진 식탐 많은 크고 하얀 새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신기한 마음에 백조에게 가까이 다가가본다. 빈 내 양손이 원망스러워질 정도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백조가 당황스럽다. 국어 교과서의 단골 손님으로 등장하던 백조는 인간이 사는 곳에 살되 가까이서 삶을 공유하며 살진 않았다. 영물이라 그런지 우리가 환경에게 뭔가 잘못을 하면, 어김 없이 탈이 나서 아파하다가 미련 없이 횅하니 떠나버리던 존재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백조들이 인간과 어울려 살고 있다. 이제 현실과 비현실이 제대로 헷갈리기 시작한다. 아무렇지 않게 그 속에서 그들과 어울려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차없이 나를 이상한 나라 앨리스로 만들어 버린다. 칙칙한 회색의 도시의 색깔들에만 익숙한 나의 눈에는 그 순백색의 깃털도 비현실적이다. 골목 골목을 돌아들면, 아름다운 색들의 향연에 촌스러운 내 눈은 어쩔 줄을 몰라 쩔쩔맨다.
좁다란 골목길을 이리저리 거닐면서, 작은 선물가게에 유혹되어 이것 저것 사다 보니, 몇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린다. 이 동화 속의 세상에는 시간마저 이상하게 흐르나 보다.
정신을 차려 자세히 건물들을 들여다 보니, 양식도 제각각 이다. 중세의 로마네스크 양식을 떠올리게 하는 두껍고 어두운 고성이 한 쪽에 보이고, 그 맞은편에는 하얀벽이 인상적인 바로크양식의 성당이 떡하니 버티고 서있다.
마치 온갖 양식의 건물들이 공존하는 건축박물관에 온 느낌마저 든다. 파리의 바로크양식의 성당들이 무거운 회백색의 느낌이었다면, 안시에 있는 성피에르성당(La Cathedral Saint-Pierre)은 순백색의 전면 퍼사드(façade)는 바로크양식인데 반해, 옆으로 돌아가면 전형적인 고딕 양식의 플라잉 버트레스(flying buttress)의 변형을 보여준다. 게다가 지붕의 붉은 벽돌과 파스텔톤의 외벽은 마치 베니스에 와있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 일으킨다. 상상력의 완전한 자유가 아니라면, 이런 건물이 존재할 수 없을 것 같다.
운하를 따라 늘어선 카페들도 하나 같이 그림처럼 예쁘다. 그 속에 들어가서 식사라도 한 끼 할까 생각하다 그만둔다. 왠지 이방인으로서의 나의 모습이 더 자연스럽다. 그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가면 꿈에서 깨어나기라도 할까봐 연신 사진기만 꾹꾹 눌러댄다. 꿈속에서 본 모습을 증거라도 가져가지 않으면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일까?
미로 같은 골목길을 벋어나자 이제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제대로 헷갈리기 시작한다.
안시호수(Lac d’Annecy)라고 했는데, 병풍처럼 둘러선 알프스산을 배경으로 바다가 펼쳐진다. 마치 해변에 온 것처럼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호수 위에 떠있는 유람선과 보트들은 바다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만화영화 속의 세상이 이런 모습일까? 안시에서는 우리의 상상이 현실이 된다. 골목을 돌아 들면, 어떤 영화 속 장면이 펼쳐지고 있을지 모른다. 백조의 원망 어린 눈빛이 부담스럽다면 아침 식사 때 남은 크라상이라도 하나 챙겨서 나서야 할 것이다.
나에게 안시로 이끌었던 한 장의 사진. 그 사진 속 장면이 내 눈 앞에 펼쳐진 풍경과 겹쳐지기 시작한다.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그 곳은 사진으로는 느끼지 못하는 환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세상이었다. 만약, 내가 찍은 사진을 보고 누군가 나에게 정말 이렇게 아름답냐고 물어온다면, 나는 자신 있게 말할 것이다.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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