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2007-03-26/20:13:52
"금.청나라 한민족사에 포함시킬 수 있다"
[인터뷰] 고구려연구회 서길수 회장
고구려연구회 서길수 회장 |
고구려 연구회 서길수(서경대,교수) 회장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대응해 우리가 금나라와 청나라를 한민족사에 포함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는 이색 주장을 폈다.
중국의 역사왜곡에 맞대응해 우리도 한민족의 시조와 맞닿은 금나라와 청나라의 역사를 우리 역사로 편입시키는 역-동북공정을 진행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서길수 교수는 19일 <폴리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금나라의 시조 김함보가 여러 사서에 신라인으로 기록돼 있는 점에 착안해 한민족사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조가 신라인이라고 그 나라 역사를 자국사로 편입시키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그렇다고 절대 중국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서 교수는 "금나라와 송나라가 대치했을 때 금나라를 무찌르는데 큰 공을 세운 한족 출신의 '악비'장군을 중국이 한족의 최고영웅으로 받들 정도로 중국은 금나라를 적국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청나라를 멸망시킨 신해혁명 선도자 쑨원(孫文)이 멸만흥한(滅滿興漢, 만주족의 청나라를 멸망시키고 한족 정권을 세우자)을 주장한 것도 "청나라를 정복민족으로 봤기 때문이지 자기 역사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이 만주족 역사를 자기 역사로 편입한 것은 1980년대 이후다.
청나라는 금나라를 계승한 나라로 청(후금) 건륭제 때 집필된 '흠정만주원류고'에도 금(金)나라의 명칭이 신라의 김(金)씨에서 비롯됐다고 기록돼 있다. 청나라 황실의 성 애신각라(愛新覺羅)에는 '신라를 사랑하고 기억하자'는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서 교수는 오히려 청나라가 "우리보다 더 백두산적인 민족"으로 한민족과 가까웠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주장이 학계에서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옛 중국이 만들어놓은 역사에 중독돼 우리 학자들이 사대주의에서, 반도사관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새로운 사관의 틀을 가지고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북공정은 고구려.고조선.발해에 걸친 방대한 프로젝트, 간도문제 등 영유권 분쟁 막기위한 것
대부분 사람들은 동북공정을 '동북공정=고구려 역사왜곡'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중국의 동북공정은 고조선, 고구려, 발해에 걸친 방대한 프로젝트였다. 다만 고구려의 영토와 그 기세가 가장 컸기 때문에 이 부분이 부각된 것이다.
중국의 학자들은 이 세 나라가 고대 중국의 동북지방에 속한 지방정권인데 남한과 북한의 학자들이 이를 왜곡하고 자기 역사로 주장하고 있다며 2002년부터 이 연구 프로젝트를 출발시켰다.
때문에 동북공정 결과가 반영된 중국 교과서에는 고조선.고구려.부여사가 완전히 제외하거나 고구려는 중국 동북 소수민족 정권 정도로 표현되고 있다. 중국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 '세계문화사'는 고구려가 '반도 북부에 나라를 세웠다'고 기술, 방대한 영토를 가졌던 고구려를 한반도 내에 국한시키고 있다.
서길수 교수는 동북공정이 등장한 배경에 대해 "한족이 동북지방을 차지한 것은 2차 대전 이후로 그 전에는 명나라 일부만 차지했기 때문에 동북 지역에 대한 중국의 역사적 정체성이 없는 상황"이라며 "이 역사적 정체성을 찾기 위한 것이 1차 목표다"고 설명했다.
보다 실질적인 목표는 한반도 통일이후 생길 영토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동북지역에 대한 역사적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지금은 중국 영토가 되어버린 간도의 경우 남북통일이후 영유권 분쟁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
간도는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의 우리의 옛 영토로 조선말까지 우리가 실질적인 영유권을 행사해왔다. 간도에 대한 영유권이 청나라로 넘어간 것은 일제시대로, 당시 일제는 광산채굴권, 만주철도부설권 등 각종 잇권을 대가로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맺어 우리의 땅 간도를 청나라로 넘겼고 중국이 지금까지 이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행사하고 있다. 간도협약은 불법적으로 외교권을 침탈한 일제에 의해 맺어진 것이기 때문에 무효화 돼야 하는 협약이다.
1962년 북한이 중국과 맺은 '조-중 국경조약'도 문제다. 이 조약으로 북한과 중국간 국경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획정됐고 간도도 중국 관할로 넘어갔다. 백두산도 54.5%가 북한의 몫으로, 45.5%가 중국의 몫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이 조약은 남한의 동의 없이 이뤄진데다 유엔에 등록돼 있지도 않아 통일이후 논란이 될 여지가 많다. 중국이 최근 백두산을 '칭바이산'이라 홍보하고 있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간도영유권을 확정하기 위한 노림수다.
북한의 역사학자들도 동북공정의 문제성에 대해 남한학자들과 인식을 같이 하고 있지만 북한과 중국의 외교적 관계때문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길수 교수는 "일선이 전부 잠자고 있고 후방에서 포만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며 "북한과 공동보조를 맞춰 적어도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북한에 한계가 있더라도 공동노력을 하지 않으면 힘든 문제다"고 강조했다.
중국 역사공세 가속화, 그러나 우린 2년 앞 계획도 없어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 중국 국경안에서 일어난 한반도의 역사를 모두 중국 역사로 편입하기 위한 연구프로젝트 동북공정이 지난 2월말 일단락 됐지만 중국의 역사 공세가 끝난 것은 아니다.
동북공정의 연구 결과물들은 중국 역사교과서에 그대로 투영돼 학생들에게 왜곡된 역사인식을 심어주고 있고 동북3성(지린성, 랴오닝성, 헤이룽장성)의 3대 학술지인 '동북사지'를 중심으로 동북공정의 수십배에 달하는 연구가 현재 진행중에 있다.
'동북사지'의 사장인 장복유는 길림성(지린성) 선전부 부부장으로 동북공정을 이끄는 핵심인 동북공정 전문가위원회의 위원인 동시에 길림성사회과학원 부원장이다. 학자라기 보다는 중국 공산당에 가까운 인물이다.
중국이 이처럼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우리 역사에 대한 연구를 공세적으로 펼치고 있는 반면, 우리 정부의 대응은 미비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중국과의 외교 마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외교통상부가 나서 고구려사연구재단이 학술자료를 만들어 각급 학교에 배포하려는 계획을 무산시키기도 했다. 정부가 중국의 역사왜곡에 체계적으로 대처한다는 명목으로 발족시킨 고구려역사재단도 채 2년이 못돼 동북아역사재단에 흡수통합됐다.
고구려연구회 서길수 회장은 "동북공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이에 대비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우리는 2년 앞의 계획도 없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중국이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끝내는 대신 교묘하게 눈을 피해 동북사지로 한민족의 고대사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동안 한국정부가 미적지근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는 "중국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확실하게 얘기할 필요가 있다"며 "중국이 주변국가와 같이 상생하는 상생의 역사관을 정립해야 아시아의 평화, 세계평화가 있다는 점을 우리가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역사왜곡에 맞대응해 우리도 한민족의 시조와 맞닿은 금나라와 청나라의 역사를 우리 역사로 편입시키는 역-동북공정을 진행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서길수 교수는 19일 <폴리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금나라의 시조 김함보가 여러 사서에 신라인으로 기록돼 있는 점에 착안해 한민족사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조가 신라인이라고 그 나라 역사를 자국사로 편입시키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그렇다고 절대 중국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서 교수는 "금나라와 송나라가 대치했을 때 금나라를 무찌르는데 큰 공을 세운 한족 출신의 '악비'장군을 중국이 한족의 최고영웅으로 받들 정도로 중국은 금나라를 적국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청나라를 멸망시킨 신해혁명 선도자 쑨원(孫文)이 멸만흥한(滅滿興漢, 만주족의 청나라를 멸망시키고 한족 정권을 세우자)을 주장한 것도 "청나라를 정복민족으로 봤기 때문이지 자기 역사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이 만주족 역사를 자기 역사로 편입한 것은 1980년대 이후다.
청나라는 금나라를 계승한 나라로 청(후금) 건륭제 때 집필된 '흠정만주원류고'에도 금(金)나라의 명칭이 신라의 김(金)씨에서 비롯됐다고 기록돼 있다. 청나라 황실의 성 애신각라(愛新覺羅)에는 '신라를 사랑하고 기억하자'는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서 교수는 오히려 청나라가 "우리보다 더 백두산적인 민족"으로 한민족과 가까웠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주장이 학계에서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옛 중국이 만들어놓은 역사에 중독돼 우리 학자들이 사대주의에서, 반도사관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새로운 사관의 틀을 가지고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북공정은 고구려.고조선.발해에 걸친 방대한 프로젝트, 간도문제 등 영유권 분쟁 막기위한 것
대부분 사람들은 동북공정을 '동북공정=고구려 역사왜곡'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중국의 동북공정은 고조선, 고구려, 발해에 걸친 방대한 프로젝트였다. 다만 고구려의 영토와 그 기세가 가장 컸기 때문에 이 부분이 부각된 것이다.
중국의 학자들은 이 세 나라가 고대 중국의 동북지방에 속한 지방정권인데 남한과 북한의 학자들이 이를 왜곡하고 자기 역사로 주장하고 있다며 2002년부터 이 연구 프로젝트를 출발시켰다.
때문에 동북공정 결과가 반영된 중국 교과서에는 고조선.고구려.부여사가 완전히 제외하거나 고구려는 중국 동북 소수민족 정권 정도로 표현되고 있다. 중국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 '세계문화사'는 고구려가 '반도 북부에 나라를 세웠다'고 기술, 방대한 영토를 가졌던 고구려를 한반도 내에 국한시키고 있다.
서길수 교수는 동북공정이 등장한 배경에 대해 "한족이 동북지방을 차지한 것은 2차 대전 이후로 그 전에는 명나라 일부만 차지했기 때문에 동북 지역에 대한 중국의 역사적 정체성이 없는 상황"이라며 "이 역사적 정체성을 찾기 위한 것이 1차 목표다"고 설명했다.
보다 실질적인 목표는 한반도 통일이후 생길 영토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동북지역에 대한 역사적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지금은 중국 영토가 되어버린 간도의 경우 남북통일이후 영유권 분쟁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
간도는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의 우리의 옛 영토로 조선말까지 우리가 실질적인 영유권을 행사해왔다. 간도에 대한 영유권이 청나라로 넘어간 것은 일제시대로, 당시 일제는 광산채굴권, 만주철도부설권 등 각종 잇권을 대가로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맺어 우리의 땅 간도를 청나라로 넘겼고 중국이 지금까지 이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행사하고 있다. 간도협약은 불법적으로 외교권을 침탈한 일제에 의해 맺어진 것이기 때문에 무효화 돼야 하는 협약이다.
1962년 북한이 중국과 맺은 '조-중 국경조약'도 문제다. 이 조약으로 북한과 중국간 국경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획정됐고 간도도 중국 관할로 넘어갔다. 백두산도 54.5%가 북한의 몫으로, 45.5%가 중국의 몫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이 조약은 남한의 동의 없이 이뤄진데다 유엔에 등록돼 있지도 않아 통일이후 논란이 될 여지가 많다. 중국이 최근 백두산을 '칭바이산'이라 홍보하고 있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간도영유권을 확정하기 위한 노림수다.
북한의 역사학자들도 동북공정의 문제성에 대해 남한학자들과 인식을 같이 하고 있지만 북한과 중국의 외교적 관계때문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길수 교수는 "일선이 전부 잠자고 있고 후방에서 포만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며 "북한과 공동보조를 맞춰 적어도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북한에 한계가 있더라도 공동노력을 하지 않으면 힘든 문제다"고 강조했다.
중국 역사공세 가속화, 그러나 우린 2년 앞 계획도 없어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 중국 국경안에서 일어난 한반도의 역사를 모두 중국 역사로 편입하기 위한 연구프로젝트 동북공정이 지난 2월말 일단락 됐지만 중국의 역사 공세가 끝난 것은 아니다.
동북공정의 연구 결과물들은 중국 역사교과서에 그대로 투영돼 학생들에게 왜곡된 역사인식을 심어주고 있고 동북3성(지린성, 랴오닝성, 헤이룽장성)의 3대 학술지인 '동북사지'를 중심으로 동북공정의 수십배에 달하는 연구가 현재 진행중에 있다.
'동북사지'의 사장인 장복유는 길림성(지린성) 선전부 부부장으로 동북공정을 이끄는 핵심인 동북공정 전문가위원회의 위원인 동시에 길림성사회과학원 부원장이다. 학자라기 보다는 중국 공산당에 가까운 인물이다.
중국이 이처럼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우리 역사에 대한 연구를 공세적으로 펼치고 있는 반면, 우리 정부의 대응은 미비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중국과의 외교 마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외교통상부가 나서 고구려사연구재단이 학술자료를 만들어 각급 학교에 배포하려는 계획을 무산시키기도 했다. 정부가 중국의 역사왜곡에 체계적으로 대처한다는 명목으로 발족시킨 고구려역사재단도 채 2년이 못돼 동북아역사재단에 흡수통합됐다.
고구려연구회 서길수 회장은 "동북공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이에 대비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우리는 2년 앞의 계획도 없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중국이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끝내는 대신 교묘하게 눈을 피해 동북사지로 한민족의 고대사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동안 한국정부가 미적지근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는 "중국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확실하게 얘기할 필요가 있다"며 "중국이 주변국가와 같이 상생하는 상생의 역사관을 정립해야 아시아의 평화, 세계평화가 있다는 점을 우리가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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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문]
△ 동북공정이 2002년부터 2007년까지 5년간의 한시적인 프로젝트로 끝났는데, 동북공정의 실체는 무엇이었는가?
▲ 동북 지역에 대한 중국의 역사적 정체성은 없다. 2차 대전 이후에야 한족이 동북지방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명나라때 일부만 차지했었다. 바로 그 역사적 정체성을 찾기 위한 것이 1차 목표다. 그러다 보니 그 지역에 있던 한국, 러시아와 부딪히는 것이다.
동북공정에는 동북 3성이 참석했다. 정치적이며 아울러 고구려, 간도, 고조선까지 모든 것을 포함한 문제였다. 갑자기 생긴게 아니라 80년 이후 꾸준히 역사침탈을 위한 준비를 해왔고 그 중 동북공정은 작은 프로젝트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 '동북공정=고구려사 빼앗기' 정도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진짜 얻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다고 보는가?
▲ 동북공정=고구려사로 잘못알려져 있는데 동북공정이 다루는 전체 역사 속에서 705년 동안 유지된 나라는 고구려가 유일하다. 그 영토나 기세가 가장 컸다. 결국은 고구려 역사를 자기 역사로 만들기 위해선 고구려 이전역사를 자기걸로 해야 하고 그래서 고조선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한족은 방대한 영토를 차지한 적이 없다. 요나라, 원나라 등은 몽골 역사고 금나라, 청나라는 중국 역사가 아니다. 청나라가 중국을 먹었던 것이지. 우리와 가까우면 가까웠지 중국하고 가깝지는 않다.
△금.청나라가 중국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 절대로 중국사일 수 없다. 금나라는 송나라와 대치했을때 악비라는 장군이 있었다. 그는 한족 최고영웅이었다. 금나라를 이겼다고 해서. 그 정도로 금나라를 적국으로 생각했었다. 금나라를 중국 역사로 만든 것은 안 그러면 중국 영토의 절반이 세어나가기 때문이다. 금나라는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요나라는 발해를 멸망시킨 거니까 그 민중들은 하나도 변화가 없다.
금나라의 시조는 신라 출신이라는게 다 나와있다. 그러니까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다룰 수 있는 것이지만 중국에서 다룰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 다루는데 우리가 못 다루는 것은 우리 학자들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중국은 1980년까지만 청나라, 원나라를 정복민족이라고 했지 자기 역사라고 하지 않았다. 신해혁명때 손문이 혁명을 일으켰을 때도 '멸만흥한'이었지 청나라를 이어간다는 얘기가 없다. 자기 역사가 아니라고 봤으니까. 그리고 부이(청나라 마지막 황제)도 한족을 자기 민족이라고 얘기한 바 없다. 따라서 중국이 자기 역사로 다룬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청나라야말로 우리 보다도 백두산적이다. 우리는 역사에 대한 기본 상식이 잘못돼 있다.
△ 동북공정이 다뤘던 한국사의 범위가 고구려사, 고조선, 간도문제 등이었는데 이 중 어느 부분에 우리가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는가?
▲ 어느 하나에 주목할 것은 아니다. 고조선 문제가 해결안되면 고구려가 우리땅이라는데 논리적 하자 생기고 간도문제를 짚지 않으면 이 지역은 우리땅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고구려, 고조선, 간도, 금나라 청나라 문제를 모두 종합적으로 다뤄야 한다.
사실상 동북공정은 현실적인 문제다. 결국은 국경의 문제고 현재와 미래의 문제다. 그 문제에 중국의 학자뿐만 아니라 동북 3성이 직접 관여했다는 것이 그 부분을 더 확실하게 하고 있다.
△ 중국이 '동북사지'라는 학술지를 통해 동북공정보다 더 강도 높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현재 이 연구는 어떻게 정리되고 있는가?
▲ 동북공정은 실제로 2004년 한국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 주춤했다. 그렇다고 그 주춤한 정도를 가지고 분석하면 바보다. 연초에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이 동북공정의 결과가 나오면 그걸 갖고 대응하겠다고 말 한 것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것이다.
이제 실질적인 파워는 길림성사회과학원으로 넘어갔고 길림성 사회과학원 구성원을 보면, 원장은 동북공정의 구성원이다. 길림성의 선전부 부부장도 들어가 있다. 우리 중앙의 국장급 되는 인물이 당연직으로 동북공정에 들어왔다. 이런 것들이 당연 정치적인 것이다.
동북사지는 2004년에 탄생했다. 2004년, 동북공정이 연구 속도를 줄인데 비해 이 때 동북사지가 탄생하면서 여기서 동북공정의 수십배에 달하는 성과가 나왔다. 외교적으로는 동북공정 안한다고 하면서 중국이 이쪽으로 힘을 기울였던 것이다.
이 일을 주도한 사람이 동북사지 사장, 장복유라는 사람인데 장백산 문화연구원 원장으로 총 지휘를 했다. 그는 공산당에서 나온 것이지 학자들이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해야 하는데 이 프로젝트를 동북역사재단에서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동북 역사재단에 기대를 걸지 않는다. 이 것이 중요했다는 사실도 몰랐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중국의 역사왜곡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에 대응할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우리는 2년 앞의 계획도 없다.
△ 이른바 '백두산 공정'을 통해 중국이 얻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백두산과 간도문제는 어떻게 연결돼 있나?
▲ 백두산은 한민족의 정신적인 지주였다. 백두산=연변 조선족 자치주였다. 그런데 1차적으로 그러한 백두산을 없애고 장백산을 만들어냈다. 그럼으로써 자연스럽게 역사적인 정체성의 근간을 흔들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백두산을 연변에서 뺏어 길림성으로 옮기고 명목은 세계유산 등록이다 올림픽이다 하면서 연변죽이기를 하고 있다. 그 당시에 백두산에 들어갔던 경제적 효과가 연변에는 완전히 없어졌다. 백두산을 개발하니까 영변이 좋아야 하는데 그 효과를 서쪽인 백산시로 옮기고 있다. 완전히 그렇게 넘어가고 있다. 모든 백두산 문화를 청나라 발산지로 만들고 있다. 이런 문제는 두만강, 압록강 문제와도 연계돼 결국은 국경 문제가 되고 있다.
△ 동북공정에 대해 북한 학자들은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가? 남북이 함께 동북공정을 비롯한 일련의 역사왜곡 움직임에 대응할 방법은 없을까?
▲ 실질적 당사자는 북한이다. 1962년 조중 국경조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고구려 발해 유적지도 북한이고 고구려 수도도 북한이고. 당사자인 북한이 아무소리 안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너무나 힘든 일이다. 일선이 전부 잠자고 있고 후방에서 포만 쏘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에 굉장히 어렵다. 북한과 공동보조를 세워 적어도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그 쪽에 한계가 있더라도 서로 공동노력을 하지 않으면 힘든 문제다.
북한 학자들도 알고 있는 문제지만 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입장이 안된다. 체제의 한계성 때문에. 하지만 이제 남북한 함께 학술대회도 하고 공동발굴도 하고 토론도 하고 국제학술 대회에 북한도 참여해야 한다.
△ 동북공정 논란이 한창일때 중국이 북한 붕괴 이후 북한땅에 대한 역사적 연고권을 주장, 직접 북한을 통치하려할 수도 있다는 극단적인 시나리오도 나왔었는데, 중국의 대북한정책 어떻게 전개되리라고 보는가?
▲ 중국은 북한을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할 것이다. 북핵문제는 우리 카드가 아니다. 중국 카드다. 중국은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한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결국은 북한이 빨리 개방해 힘을 가지고 민족 공동체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점차 확장되고 있는 속에서 우리는 21세기에 맞는 동북아 질서를 새롭게 세워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앞으로 남북관계, 동북아질서를 고려해 대중국 정책을 어떻게 세워나가야 한다고 보는가?
▲ 중국에 우리의 입장을 확실하게 얘기할 필요가 있다. 외교다 경제다 해서 얘기를 안했을 경우 중국에도 좋지 않다. 중국은 300명 이상 간 나라가 북송 하나밖에 없다. 이민족의 지배를 많이 받았고 요, 금, 원, 청의 지배를 받아왔다. 그 때마다 그 나라들은 중화주의를 갖고 한족을 눌러왔다다.
이제 중국은 주변국가와 같이 상생할 수 있는 상생의 역사관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중국에게 그러한 얘기를 해줄 수 있는데가 우리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가 정확하게 그런 부분을 명확하게 해주고 역사왜곡이 중국의 장래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 이렇게 하는 한 아시아 평화는 없다. 세계 평화도 없다. 상생의 역사관, 상생의 외교, 상생의 국제정치를 해야한다는 것을 우리가 중국에 요구해야 한다.
우리 학자들은 옛 중국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에 중독돼 사대주의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사를 새롭게 보지 않으면 안된다. 학자들이 계속 논리를 개발해주어야 한다. 새로운 사관과 틀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를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이 우리 학자들의 몫이다.
(인터뷰어: 이현정기자)
▲ 동북 지역에 대한 중국의 역사적 정체성은 없다. 2차 대전 이후에야 한족이 동북지방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명나라때 일부만 차지했었다. 바로 그 역사적 정체성을 찾기 위한 것이 1차 목표다. 그러다 보니 그 지역에 있던 한국, 러시아와 부딪히는 것이다.
동북공정에는 동북 3성이 참석했다. 정치적이며 아울러 고구려, 간도, 고조선까지 모든 것을 포함한 문제였다. 갑자기 생긴게 아니라 80년 이후 꾸준히 역사침탈을 위한 준비를 해왔고 그 중 동북공정은 작은 프로젝트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 '동북공정=고구려사 빼앗기' 정도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진짜 얻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다고 보는가?
▲ 동북공정=고구려사로 잘못알려져 있는데 동북공정이 다루는 전체 역사 속에서 705년 동안 유지된 나라는 고구려가 유일하다. 그 영토나 기세가 가장 컸다. 결국은 고구려 역사를 자기 역사로 만들기 위해선 고구려 이전역사를 자기걸로 해야 하고 그래서 고조선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한족은 방대한 영토를 차지한 적이 없다. 요나라, 원나라 등은 몽골 역사고 금나라, 청나라는 중국 역사가 아니다. 청나라가 중국을 먹었던 것이지. 우리와 가까우면 가까웠지 중국하고 가깝지는 않다.
△금.청나라가 중국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 절대로 중국사일 수 없다. 금나라는 송나라와 대치했을때 악비라는 장군이 있었다. 그는 한족 최고영웅이었다. 금나라를 이겼다고 해서. 그 정도로 금나라를 적국으로 생각했었다. 금나라를 중국 역사로 만든 것은 안 그러면 중국 영토의 절반이 세어나가기 때문이다. 금나라는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요나라는 발해를 멸망시킨 거니까 그 민중들은 하나도 변화가 없다.
금나라의 시조는 신라 출신이라는게 다 나와있다. 그러니까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다룰 수 있는 것이지만 중국에서 다룰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 다루는데 우리가 못 다루는 것은 우리 학자들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중국은 1980년까지만 청나라, 원나라를 정복민족이라고 했지 자기 역사라고 하지 않았다. 신해혁명때 손문이 혁명을 일으켰을 때도 '멸만흥한'이었지 청나라를 이어간다는 얘기가 없다. 자기 역사가 아니라고 봤으니까. 그리고 부이(청나라 마지막 황제)도 한족을 자기 민족이라고 얘기한 바 없다. 따라서 중국이 자기 역사로 다룬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청나라야말로 우리 보다도 백두산적이다. 우리는 역사에 대한 기본 상식이 잘못돼 있다.
△ 동북공정이 다뤘던 한국사의 범위가 고구려사, 고조선, 간도문제 등이었는데 이 중 어느 부분에 우리가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는가?
▲ 어느 하나에 주목할 것은 아니다. 고조선 문제가 해결안되면 고구려가 우리땅이라는데 논리적 하자 생기고 간도문제를 짚지 않으면 이 지역은 우리땅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고구려, 고조선, 간도, 금나라 청나라 문제를 모두 종합적으로 다뤄야 한다.
사실상 동북공정은 현실적인 문제다. 결국은 국경의 문제고 현재와 미래의 문제다. 그 문제에 중국의 학자뿐만 아니라 동북 3성이 직접 관여했다는 것이 그 부분을 더 확실하게 하고 있다.
△ 중국이 '동북사지'라는 학술지를 통해 동북공정보다 더 강도 높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현재 이 연구는 어떻게 정리되고 있는가?
▲ 동북공정은 실제로 2004년 한국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 주춤했다. 그렇다고 그 주춤한 정도를 가지고 분석하면 바보다. 연초에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이 동북공정의 결과가 나오면 그걸 갖고 대응하겠다고 말 한 것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것이다.
이제 실질적인 파워는 길림성사회과학원으로 넘어갔고 길림성 사회과학원 구성원을 보면, 원장은 동북공정의 구성원이다. 길림성의 선전부 부부장도 들어가 있다. 우리 중앙의 국장급 되는 인물이 당연직으로 동북공정에 들어왔다. 이런 것들이 당연 정치적인 것이다.
동북사지는 2004년에 탄생했다. 2004년, 동북공정이 연구 속도를 줄인데 비해 이 때 동북사지가 탄생하면서 여기서 동북공정의 수십배에 달하는 성과가 나왔다. 외교적으로는 동북공정 안한다고 하면서 중국이 이쪽으로 힘을 기울였던 것이다.
이 일을 주도한 사람이 동북사지 사장, 장복유라는 사람인데 장백산 문화연구원 원장으로 총 지휘를 했다. 그는 공산당에서 나온 것이지 학자들이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해야 하는데 이 프로젝트를 동북역사재단에서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동북 역사재단에 기대를 걸지 않는다. 이 것이 중요했다는 사실도 몰랐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중국의 역사왜곡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에 대응할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우리는 2년 앞의 계획도 없다.
△ 이른바 '백두산 공정'을 통해 중국이 얻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백두산과 간도문제는 어떻게 연결돼 있나?
▲ 백두산은 한민족의 정신적인 지주였다. 백두산=연변 조선족 자치주였다. 그런데 1차적으로 그러한 백두산을 없애고 장백산을 만들어냈다. 그럼으로써 자연스럽게 역사적인 정체성의 근간을 흔들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백두산을 연변에서 뺏어 길림성으로 옮기고 명목은 세계유산 등록이다 올림픽이다 하면서 연변죽이기를 하고 있다. 그 당시에 백두산에 들어갔던 경제적 효과가 연변에는 완전히 없어졌다. 백두산을 개발하니까 영변이 좋아야 하는데 그 효과를 서쪽인 백산시로 옮기고 있다. 완전히 그렇게 넘어가고 있다. 모든 백두산 문화를 청나라 발산지로 만들고 있다. 이런 문제는 두만강, 압록강 문제와도 연계돼 결국은 국경 문제가 되고 있다.
△ 동북공정에 대해 북한 학자들은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가? 남북이 함께 동북공정을 비롯한 일련의 역사왜곡 움직임에 대응할 방법은 없을까?
▲ 실질적 당사자는 북한이다. 1962년 조중 국경조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고구려 발해 유적지도 북한이고 고구려 수도도 북한이고. 당사자인 북한이 아무소리 안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너무나 힘든 일이다. 일선이 전부 잠자고 있고 후방에서 포만 쏘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에 굉장히 어렵다. 북한과 공동보조를 세워 적어도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그 쪽에 한계가 있더라도 서로 공동노력을 하지 않으면 힘든 문제다.
북한 학자들도 알고 있는 문제지만 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입장이 안된다. 체제의 한계성 때문에. 하지만 이제 남북한 함께 학술대회도 하고 공동발굴도 하고 토론도 하고 국제학술 대회에 북한도 참여해야 한다.
△ 동북공정 논란이 한창일때 중국이 북한 붕괴 이후 북한땅에 대한 역사적 연고권을 주장, 직접 북한을 통치하려할 수도 있다는 극단적인 시나리오도 나왔었는데, 중국의 대북한정책 어떻게 전개되리라고 보는가?
▲ 중국은 북한을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할 것이다. 북핵문제는 우리 카드가 아니다. 중국 카드다. 중국은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한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결국은 북한이 빨리 개방해 힘을 가지고 민족 공동체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점차 확장되고 있는 속에서 우리는 21세기에 맞는 동북아 질서를 새롭게 세워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앞으로 남북관계, 동북아질서를 고려해 대중국 정책을 어떻게 세워나가야 한다고 보는가?
▲ 중국에 우리의 입장을 확실하게 얘기할 필요가 있다. 외교다 경제다 해서 얘기를 안했을 경우 중국에도 좋지 않다. 중국은 300명 이상 간 나라가 북송 하나밖에 없다. 이민족의 지배를 많이 받았고 요, 금, 원, 청의 지배를 받아왔다. 그 때마다 그 나라들은 중화주의를 갖고 한족을 눌러왔다다.
이제 중국은 주변국가와 같이 상생할 수 있는 상생의 역사관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중국에게 그러한 얘기를 해줄 수 있는데가 우리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가 정확하게 그런 부분을 명확하게 해주고 역사왜곡이 중국의 장래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 이렇게 하는 한 아시아 평화는 없다. 세계 평화도 없다. 상생의 역사관, 상생의 외교, 상생의 국제정치를 해야한다는 것을 우리가 중국에 요구해야 한다.
우리 학자들은 옛 중국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에 중독돼 사대주의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사를 새롭게 보지 않으면 안된다. 학자들이 계속 논리를 개발해주어야 한다. 새로운 사관과 틀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를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이 우리 학자들의 몫이다.
(인터뷰어: 이현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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