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06-12-14 오후 06:48:31 http://www.hani.co.kr/arti/society/life/178299.html 쉰살, 영혼의 메카가 나를 불렀다 현경 교수는 지난 9월부터 이슬람 16개 나라 순례길에 올라 지금 스페인에 머물고 있다. 미국의 반이슬람 정서를 극복하고 21세기 화해와 문명간 대화를 온몸으로 직접 체험하려고 떠난 길. 서로 소통하고 친구가 되는 길만이 위기를 극복하리라는 한가지 믿음 때문이었다. 내년 8월까지 거쳐갈 나라는 터키, 스페인, 모로코, 튀니지, 케냐,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무순). 이슬람의 다양한 여성운동가, 평화운동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참이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그는 “상황이 불안하거나 전쟁중인 나라도 있어 비자를 받을 수 있을지, 인터뷰가 순조롭게 이뤄질지 확실친 않지만 순례자답게 모든 일을 ‘하늘의 뜻’에 맡기겠다”고 〈한겨레〉에 전해왔다.
“신은 당신의 깊은 기쁨과 세계의 깊은 굶주림이 만나는 그곳으로 당신을 부른다.” - 프레드릭 부흐너
2006년 5월 나는 50살이 되었다. 생일날 거울 속의 나를 보며 웃었다. 나이를 헛먹었다. 달력의 나이도 분명히 50살인데 내 몸의 느낌과 마음의 떨림은 33살에 고정되어 있었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33살 때 나의 속을 들끓게 했던 성취욕, 소유욕, 남의 눈을 의식함이 거의 없어진 것 정도일까? 내 몸은 나의 삼십대보다 더 튼튼해진 것 같고 내 마음은 삼십대 때보다 더 큰 모험을 기다리고 있었다.
앗살람 알라이쿰 ① 먼 길을 나서며…
» 현경 교수
» 터키 이슬람 신비주의 종교의식인 ‘세마’ 장면. 영성을 높이려는 명상법의 일종이다. 이슬람 신비주의 한 갈래인 수피 영성가들은 죽음을 나타내는 흰 의상과 비석을 상징하는 긴 모자를 쓰고 머리를 비스듬히한 채 회전하면서 명상에 든다.
세계 종교에서는 50살을 삶의 이정표로 보는 것 같다. 유교 전통에서는 오십이면 ‘지천명’이라 하늘의 뜻을 알아듣는 나이라 한다. 나는 지난 30년 동안 밥 먹고 매일 한 일이 종교와 신학을 공부한 것인데, 말하자면 ‘하늘의 뜻’이 전공인데, 날이 갈수록 하늘의 뜻을 잘 모르겠다는 것을 알 뿐이다. 어릴 때 어머니가 매일 “네 밥값은 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는데 나는 50년 먹어온 밥값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는 밥값을 다 못해도 맛있게 밥을 먹는다. 내가 밥값을 못하고 빌빌거리고 있을 때도 햇빛과 비를 내려주시는 우주의 큰 사랑을 알기 때문이다. 이 삶의 어떤 고통과 어려움, 영광과 유혹도 그 큰 우주의 사랑에서 나를 끊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언제나 즐겁게 고맙게 밥을 먹는다.
50살은 삶의 이정표…참 자아를 찾아 나설 때다
다른 종교와 화해하는 ‘러브스토리’를 쓰고 싶다
난 무슬림이 아니지만 이슬람 죽이기를 그냥 지켜볼 순 없었다
문명간 친구되기는 가능할까, 이제 같이 길을 떠나자
‘신의 뜻대로’라는 “인샬라”를 외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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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의 전통에 비춰보면 나는 삶의 전공과목에서 다 낙제를 한 사람이다. 10대에 좋은 학교는 다녔지만 거의 꼴찌를 하며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매일 세계명작 소설을 읽었다. 20대에 혼인을 했지만 30대초에 끝을 냈고, 한 명의 자식도 가정도 키우지 않았다. 40대에 책 몇 권을 출판했지만 뭐 그렇게 세상을 바꿀 큰 공헌을 한 것도 아니다. 그러고는 어떻게 세월을 보냈는지 50대가 되어버렸다. 그런데도 뻔뻔하게 순례의 길을 떠나고 싶었다. 다른 모든 삶의 전공과목에 낙제를 했어도 마지막 과목만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삶의 실패를 합리화하며 숲으로, 아니 이번에는 사막으로 가고 싶었다. 이슬람의 성지, 메카에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슬람교도의 의무 가운데 하나가 죽기 전에 한번은 꼭 메카에 가서 알라(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믿음을 신고하는 일이다. 나는 아직은 이슬람교도가 아니기 때문에 지리적인 메카에 들어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슬람교도들의 마음의 메카, 영혼의 메카로 순례의 길을 떠나고 싶었다.
이 세상의 역사는 ‘누가 진리를 규정하느냐’에 따라 사건의 의미가 달라졌다. 또 진리를 자기 잣대로 규정하는 자가 이 세상의 권력도 함께 차지했다. 지금 그 진리의 규정권과 세상의 권력은 미국으로 넘어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회윤리학자 라인홀트 니부어의 말대로 “절대적인 권력은 절대적으로 망할 수밖에 없다”. 나는 미국에서 다음 세대에게 ‘진리’를 전수하는 학자, 교육자로서 삶을 살면서 사회 전반에 퍼져나가는 ‘이슬람 죽이기’를 그냥 앉아서 관망할 수만은 없었다. 이슬람이 어떤 종교인지, 무엇이 이슬람의 젊은이들을 자폭자가 될 정도로 화나게 하였는지, 왜 많은 이슬람 교도들이 서구식 삶의 방식을 거부하는지 있는 그대로 알고 싶었다.
베트남의 평화운동가 틱낫한 스님은 “이해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기독교 신학을 가르치는 학자로서, 기독교의 핵심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싶은 한 기독교인으로서 나는 이해라는 이름의 이웃 사랑을 ‘지금 여기’서 실천해보고 싶었다. 특히 지금 가장 억울하게 몰리고 있는 이슬람의 이웃들을 가슴으로부터 만나고 이해하고 싶었다.
여성운동을 하면서도 머리에 꼭 히잡(이슬람 여성들이 쓰는 스카프)을 쓰고 나오는 무슬림 여성들, 코란의 절대적인 권위를 옹호하며 이슬람의 근본주의를 긍정적으로 이해하려는 이슬람의 여성 운동가들을 만나고 싶었다. 막연하게나마 이슬람 사회에서 가장 억눌려 있는 여성 자신이 원하는 평화가 이뤄져야만 비로소 세계의 평화도 가능할 것 같았다.
이런저런 고민 중에 캐런 암스트롱이 쓴 〈모하메드〉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캐런 암스트롱은 그가 쓰는 책마다 거의 세계의 베스트셀러가 되는 영국의 작가다. 그의 책을 본 한 무슬림 저널리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러브스토리다!“(This is a Love story!) 그 문장을 보는 순간, 그 이야기가 마치 계시처럼 존재를 파고드는 걸 느꼈다. 결국 이것이 해답인 것 같다. 우리가 서로 가장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 문명에 대해, 종교에 대해 러브스토리를 쓰는 것, 그것이 우리 시대의 분열과 소외, 악마화와 테러리즘을 극복하는 화해의 문을 여는 비밀 번호, ‘러브스토리 코드’라고. 이 러브스토리 코드가 ‘문명의 충돌’을 ‘문명의 대화’와 협동으로 변화시키는 연금술의 코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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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례는 100여명의 여성들에게 크게 빚졌다. 그들은 기꺼이 ‘시스터펀드’(자매재단·cafe.daum.net/chunghyunkyung)를 만들어 평화의 순례길에 씨앗여비를 보태주었다.
이슬람의 친구들을 만나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100여명의 한국 여성들과 여러 한국 남성들이 당신들의 참 목소리를 듣고, 당신들로부터 배우고, 당신들과 친구가 되도록 저를 보냈습니다. 이 많은 한국인들의 사랑과 꿈을 믿고 저를 받아주십시오.”
이 순례의 여정에서 마주칠 만남과 배움이 ‘문명간의 대화’를 넘어 ‘문명간 친구 되기’를 가능케 해주시기를 기도한다. 마지막으로 나의 순례기를 마음으로 읽어주실 한국의 많은 독자 여러분들께도 ‘따뜻한 동행’에 큰절을 올린다. 인샬라!(신의 뜻대로)
미국 유니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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