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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사회

[책] 역사용어 바로 쓰기-한정숙(경향신문, 060825)

by 마리산인1324 2006. 12. 10.

 

 

 

[책과 삶] 용어의 정체성찾기

 

▲역사용어 바로쓰기/한정숙 외 |  역사비평사

공자의 정명(正名) 사상은 원래 군신과 부자에게는 각자 이름에 어울리는 윤리와 질서가 있다는 뜻이다. 역사용어에 있어서도 ‘올바른 이름(正名)’을 붙여주고 불러주는 것이 중요하다. 잘못된 이름은 한 집단이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을 왜곡할 뿐 아니라 때론 힘 없는 이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일반인들이 평소에도 무심결에 쓰고 있는 역사용어들이 과연 올바른 이름인지 35명의 학자들이 고민한 산물이다.

지정학적인 용어 중 특히 문제 있는 표현이 많다. 예를 들어 ‘한국전쟁’은 올바른 표현인가. 한정숙 서울대 교수는 “다분히 유럽 중심적인 시각을 담고 있는 표현이지만 현재 마땅한 대안을 찾기 힘들어 통용되는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3년 전쟁’을 더 가치중립적인 표현으로 제안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6·25’라는 기념 형식의 용어보다는 ‘한국전쟁’이 낫다”고 말했다.

‘극동(極東)’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극서라는 말이 국제관계에서 안 쓰이는 상황에서 극동이라는 말만 쓰는 것은 서쪽(구미)에서만 동쪽을 대상화하고 있음을 뜻한다.

분단 상황도 역사용어의 혼란에 일조했다. 흔히들 ‘독립운동’은 우익 민족주의 측에서, ‘민족해방운동’은 좌익 민족주의 측에서 쓰는 말로 생각한다. 북한이 ‘민족해방’을 강조해온 탓이다. 그러나 민족주의운동의 대표격인 임시정부에서도 두 용어를 같이 사용했다. 이기훈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은 “민족해방운동은 정치적 권리뿐 아니라 제국주의 하에서 빼앗긴 사회적 권리의 회복까지 목적으로 하므로 정부를 세우겠다는 독립운동보다 좀더 포괄적”이라고 설명했다.

‘광복’과 ‘해방’도 비슷한 맥락이다. ‘해방절’은 미군정을 거치며 ‘광복절’로 바뀌었고 전두환 시절에 이르면 교과서에서도 광복이 해방을 완전히 대신한다. 그러나 ‘해방둥이’ ‘해방공간’ 등에서 ‘광복’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본에서 번역돼 수입된 역사용어도 논란의 대상이다. ‘civilization’을 번역한 ‘개화’나 ‘anarchism’을 옮긴 ‘무정부주의’, ‘independence’를 옮긴 ‘독립’ 등이 그렇다. 특히 무정부주의는 아나키즘에 대한 많은 오해를 낳았다.

아울러 ‘삼국시대’는 한반도에 고구려, 백제, 신라만 함께 한 시기가 실제로 562~660년의 98년간에 불과해 제대로 부르려면 가야까지 포함시켜 ‘사국시대’로 불러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박명림 교수는 “1980년대 후반 제주 4·3을 연구하며 ‘폭동’ ‘반란’이라는 기존 용어에 압도돼 평생 겁에 질려 살아온 제주민들을 보고 이 용어 하나만은 바로 잡아야겠다고 결심했다”며 “역사용어와 기억의 문제는 역사 이해의 문제이자 미래 건설의 철학 및 방향과 연결된 것”이라고 말했다. 1만2천원.

〈손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