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세계화'의 열풍이 불면서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다니고 있다. 특히 젊은 대학생들은 방학중의 배낭여행을 마치 필수과목의 하나로 여기는 듯하다. 유럽 여행에는 네덜란드의 암스텔담도 반드시 포함된다. 대체로 영국에서 유럽 대륙으로 이동하면서, 아니면 독일에서 프랑스나 영국으로 가면서 잠깐 들르는 도시로 인식되어 있다.
곳곳에 마리화나, 섹스숍이 넘친다
네덜란드에는 풍차가 없다
안네의 집에는 볼거리가 없다
네덜란드는 당일관광으로 충분하다
화란은 작은 나라이다
화란은 '짠' 나라이다
화란은 먼 나라이다
히딩크 감독은 우리의 희망이다
화란은 먼 나라이다
지리적으로 네덜란드는 먼 곳에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눈이 파란 외국인으로서 친근하게 다가온 것은 화란의 뱃사람들이었다. 박연으로 이름을 바꾼 벨테브레, 동료들과 제주도에 표착하였다가 천신만고 끝에 탈출에 성공하여 표류기를 남긴 하멜 모두 화란사람들이었다. 그때 화란 선원 십여 명은 탈출에 가담하지 않고 이 땅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뼈를 묻었다. 구한말에 이준 열사가 평화회의에 참석했다가 분사한 곳도 네덜란드요, 6·25 동란 때 제일 먼저 군대를 보내온 나라도 네덜란드였다. 전쟁이 끝나고 버려진 고아들을 많이 입양시켜 데려간 나라도 네덜란드였다. 서울 거리 곳곳에 필립스, 하이네켄, KLM, ABN-AMRO, ING 등 네덜란드 기업의 간판과 상표가 눈에 많이 띈다. 월드컵 축구대표팀의 히딩크 감독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화란 사람이었다.
히딩크 감독은 우리의 희망이다
이것은 맞는 말이다. 히딩크는 우리 국민들에게 큰 교훈을 안겨줬다. 무슨 일이나 열정을 갖고 과학적인 훈련을 통하여 기초실력(fundamental)을 다지면서 연고(혈연, 지연, 학연)를 배제한 채 실력만으로 인재를 기용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사진 출처 및 더 찾아볼 곳: 암스테르담 여행안내 사이트
[하멜 표류기]를 장편소설로 만든 강준식, "내가 사랑한 됴션", 웅진출판, 1994 참조.
2002년 월드컵에 대비하여 한국 축구대표팀이 특별 초빙한 외국 전문가가 네덜란드 출신 거스 히딩크 감독이었다. 그의 작전이 성공을 거두어 한국 축구팀이 월드컵 4강에 진출하였다. 히딩크가 이끄는 한국팀은 폴란드, 포르투갈, 이태리 등 유럽의 강호를 차례로 물리치고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2002년 6월 한국은 물론 교민들이 많이 사는 세계 주요 도시에서는 온통 '붉은 악마'(Be the Reds!)의 붉은 유니폼으로 물결쳤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네덜란드는 보다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 필자는 1986-87년 1년간 암스텔담 대학교에서 유럽통합과정(ICEI)을 공부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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