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불교> 불기 2545년 6월 6일 3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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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환경교육원이 마련한 ‘에코 아나키즘’강좌. 40여명의 수강생들이 강좌에 참여하고 있다. 자연론적 세계관 자주적인 개인 공동체의 지향 권위에의 저항
학회 창립·잇단 강좌등 ‘열기’ NGO 운동 이념적 기반 제공
아직은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이름의 강좌, ‘에코 아나키즘’. 불교환경교육원이 운영하는 환경교육강좌(생명운동 아카데미)는 열다섯번째 주제로 ‘에코 아나키즘’을 잡았다. 이 강좌에는 대학·대학원생과 시민·환경단체 활동가 등 40여명이 동참했다. 4월 27일 ‘21세기, 왜 다시 아나키즘으로 오는가?’(구승회 동국대 윤리학과 교수)로 시작한 강좌는 매주 한 차례씩 열리며, 15일 막을 내린다. 13일에는 ‘에코 아나키즘과 21세기의 사회운동’을 주제로 심포지움을 연다.
최근 우리 사회에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에코 아나키즘 강좌도 그렇거니와 한국아나키즘학회의 창립(2월 17일), <아나키즘-국가권력을 넘어서> <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 등 관련 책자의 출판도 눈에 띈다. <불교평론>은 ‘아나키즘의 불교적 특성’을 주제로 논단을 마련하기도 했다.
왜 아나키즘인가. 테러리스트, 니힐리스트 또는 ‘천진난만한 꿈의 옹호자’ ‘뒤죽박죽의 혼란된 설교자’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역사 속에 묻혔던 아나키즘이 21세기의 벽두에 왜 주목받는 것일까.
한국아나키즘학회 김성국 회장(부산대 사회학과 교수)은 시민·사회운동의 이념적 기반이라는 점에서 아나키즘을 주목한다.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이념적 대안으로서 주목을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와 같은 기존의 지배이데올로기가 현존하는 사회적 모순들(예컨대,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억압을 비롯하여 환경 및 생태 파괴, 여성과 인종 문제, 평화와 폭력의 문제 등)을 이론적으로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실천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사회 체제의 위기, 성장과 발전에 사로잡힌 가치관의 붕괴, 인간중심의 패러다임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이제 아나키즘은 새로운 시민사회를 추구하는 신사회운동의 이념적 기반을 제공한다.”
최근 <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를 낸 조세현씨도 “아나키즘적 상상력은 21세기 우리의 문제들을 돌파하기 위한 값진 유산임에 틀림없을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임홍순 교수(서경대·철학, <아나키즘-국가권력을 넘어서>의 역자)는 정치·경제적 이유에서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의 출처를 찾는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상황이 민주화를 요구하던 시대에 겪었던 것과는 또 다른 민주주의 국가의 국가적 권위의 정당성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97년 말 국제통화기금의 지원과 통제를 받으면서 불어닥친 경제적 난관 가운데서도 국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어야 할 정치가 당파적 이익에 몰두하여 그 어느 때보다 소모적인 심각한 정치적 분쟁을 보이고 있는 상황을 바라보면서 국민들은 그들이 꿈꾸어왔던 민주적 국가라는 국가의 정당성에 심각한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나키즘에 대해서 불온시하는 시각이 있음도 사실이다. 테러 활동 참여, 국가를 비롯한 모든 권위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유토피아를 좇는 사상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이렇게 보는 원인을 아나키스트들이 제공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조세현은 “아나키스트의 도덕적인 충동이나 건설에 대한 열정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고, 여러 정치파벌들이 흔히 채용하는 테러의 방법을 그들만의 책임으로 뒤집어씌우려는 책략에서 기인한 측면이 있다”며 옹호하고 있다.
현대의 아나키즘은 테러와는 거리가 멀다. 또 신채호, 간디, 톨스토이, 쏘로우 같은 이들을 아나키스트로 분류하듯 그 색깔도 다양하다. 그럼에도 아나키즘이 지닌 특징을 자연론적 사회관, 자주적인 개인, 공동체의 지향, 권위에의 저항 등 네 가지로 분류한다.
이 네 가지 특징이 불교와 맞닿는 지점이다. 종교와 사상체계라는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불교와 아나키즘이 만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불교와 아나키즘은 모두 21세기의 사상적 대안으로서 주목받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방영준 교수(성신여대 윤리교육과)는 <불교평론> 봄호에서 아나키즘이 지니고 있는 ‘무집착의 논리’ ‘권위에의 저항’ ‘자연론적 세계관과 생태주의’를 불교를 불교이게끔 하는 공, 선, 연기론과 조응시켜 불교와 아나키즘이 만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논리에 집착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현상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아나키즘의 사상 속에서 반야의 절대공의 체취를 맡고 있다. 또한 아나키스트들이 논리보다는 실천을 통해 자기수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반야의 실천성과 유사하다.”
모든 강제적 규율과 권위 저항하는 것은 아나키즘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인간의 자율성과 자주성에 대한 절대적 신뢰에 바탕하고 있다. “불교가 지구상의 종교 중에서 제일 저항적인 종교이며, 제일 권위를 싫어하는 종교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방 교수는 “아나키즘의 사상 안에서 해탈의 맛을 느낀다”고 말했다.
아나키즘은 공간적으로 서양의 산물이지만, 자연론적인 세계관과 생태주의적 성격은 불교의 체취를 물씬 풍긴다. “인간과 자연의 친교와 합일은 인간과의 다른 어떤 관계보다도 더욱 근본적”이라고 말한 쏘로우가 대표적이다. 방 교수는 아나키즘의 자연론적 세계관을 화엄의 생명철학으로 보고 있다. “모든 생명이 서로 인연을 맺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우주의 대생명을 조직하고 있는 모습을 <화엄경>에선 제망무애(帝網無碍)라고 표현하고 있다.”
불교가 추구하는 대자유, 자연과의 조화로운 공생을 위해 아나키즘은 불교의 사유와 실천을 더욱 폭넓고 깊게 그리고 힘있게 밀어줄 수 있다. 여기에 불교에서 아나키즘에 관심을 두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불교와 아나키즘’을 신중하게 보는 시각도 많다. 동국대 정각원장 법산스님은 “불교와 아나키즘의 관계는 불교와 인접학문과의 연계의 하나이다. 따라서 어디까지나 아나키즘은 불교의 사유를 더욱 풍부하게 하고 실천을 보조하는 기제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보는 아나키즘이다”고 가닥을 쳤다.
정성운 기자 swjung@buddhapia.com
아나키즘이란
18세기 말 유럽서 이념화 탈 권위주의…자유 지향
아나키즘 하면 일제하 무장독립투쟁을 주창했던 단재 신채호 선생이 떠오른다. 아나키즘이라는 용어는 그리스말에서 반대를 뜻하는 안(an)과 권위적인 통치를 뜻하는 아르코스(archos)에서 유래했다. 모든 강제적 권위에 저항하며 자유를 지향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아나키즘이 하나의 이념으로서 자리잡은 것은 18세기 말 유럽. 정치적 격동기에 자유와 연대를 기치로 내세웠다. 1930년 이후 사라진 이념으로 간주되기도 했으나, 60년대 미국의 월남전 참전, 유럽의 학생운동 그리고 90년대 공산주의 붕괴 이후 미래사회에 대한 전망을 모색하는 가운데 다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환경운동이 세계적인 조류를 형성하면서 ‘에코 아나키즘’은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여성운동, 공동체운동, 시민운동에도 크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30년 이후 맥이 끊겼던 우리나라의 아나키즘은 최근 대구, 부산 아나키즘연구회에 이어 한국아나키즘학회의 창립으로 아나키즘에 대한 연구가 활기를 띠고 있다.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로 번역한 것은 일본 사람들에 의해서였으며, 이를 빌미로 일본제국주의의 탄압을 받았다. 아나키즘에 대한 책으로는 <아나키·환경·공동체>(구승회 외, 모색) <한국 아나키즘 시와 생태학적 유토피아>(김경복, 다운샘) <아나키즘>(우두코크, 형설사) <아나키즘-국가권력을 넘어서>(볼프, 책세상) <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조세현, 책세상)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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