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을 사람이 살만한 공간으로 발전시켜야 농업문제 해결 가능”
박진도 | 충남대 교수·지역재단 상임이사
쌀시장 개방에 반대하여 농민이 자살하고 시위 과정에서 죽는,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가슴아픈 일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이 1970년대 박정희식 개발독재시대도 아니고 1980년대 전두환식 군사독재시대도 아니지 않은가? 누가 농민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가? 정치권의 책임으로만 돌리기에는 상황이 너무 심각하고 복잡하다.
사람은 상황이 나쁘다고 죽지 않는다.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고, 고립되어 있다는 좌절감이 사람을 절망에 빠지게 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일련의 사태에 대해 정치권 뿐 아니라 농민의 절박한 사정을 외면한 채 엉터리 국익론을 앞세워 농민의 주장을 왜곡하고 농민집회의 폭력성만을 부각하는 언론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우리 자신도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정서적으로 혹은 심정적으로는 농민을 이해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농민의 주장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그 이유는 농업·농촌문제를 세계화 과정에서 뒤따르는 어쩔 수 없는 일로, 그리고 농업·농촌문제의 해결책이 없는 것으로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무지가 농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다.
우리의 ‘무지’가 그들을 죽인다
우리나라 농민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도시와 농촌간의 격차, 농가부채, 농산물 가격의 하락 등으로 농촌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매우 비관적이다. 우선 도시와 농촌간의 격차 구조를 보자. 우리나라의 농민은 농업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고 농업 이외의 취업 기회가 제한되어 있다. 아울러 농촌의 생활여건도 도시에 비해 현저히 낙후돼 있다.
따라서 농촌 주민은 가능하면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려고 하고, 급속한 이농은 농촌지역의 기본적 생활 서비스의 쇠퇴를 가져와 생활 여건을 더욱 악화시킨다. 즉, 인구감소는 사적 서비스산업(주거, 의료, 교육, 노인 복지 등)의 쇠퇴를 가져오지만, 그것을 공적 서비스가 대체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주거·의료·교육·노인복지 등에 대한 공적 서비스도 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이농이 이농을 부르는 악순환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 1970년대 이후 전국 대부분 시·군의 인구는 1/3로 줄어들었고, 급속한 노령화로 활력을 잃었다.
한편, 우리나라 농가의 대부분은 영세농이고, 규모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농업소득에만 의존하는 한, 경제 성장과 1인당 소득이 증대되면 도시와 농촌간의 소득격차는 확대될 수밖에 없다. 도시가구와 농가간의 상대소득은 1990년 96% 수준에서 최근 75% 수준으로 하락했고,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진행되면 격차는 더욱 늘 것이다. 이웃 나라 일본의 농가도 대부분 우리와 마찬가지로 영세농이지만, 영세농은 제2종 겸업농으로 농외취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소득 면에서는 오히려 도시가구 평균을 상회한다. 그리고 농촌의 생활여건이 도시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농촌에 거주하며 인근 도시에 출퇴근한다.한편, 우루과이라운드 농업협정이 체결된 1990년대 중반 이후 농가부채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 이는 정부의 농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융자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일부 농가의 경우 정부의 투·융자를 활용하여 규모를 늘리고 상업적 영농에 성공하였지만, 대부분의 농가는 부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농민은 농가부채의 청산 없이는 농업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농가부채의 탕감에 대한 사회의 여론은 차가운 편이다. 농촌에 대한 퍼주기식 지원 혹은 도덕적 해이라는 투의 비판 여론을 언론이 주도하고 있다. 생산적 투자로 인한 부채 외에도, 농가소득의 실질적 감소와 소비생활의 도시화로 인한 농가부채의 증가가 늘어나고 있다.
정부·농민 불신의 골
이처럼 어려운 농업과 농촌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농민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불행히도 정부와 농민은 서로 불신하면서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다. 정부 일각에서는 농민단체 특히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은 농업인의 이익을 위한 단체가 아니라 반정부 투쟁을 일삼는 이념조직, 개방정책에 무조건 반대하는 폭력조직으로 인식한다.
농민은 정부가 농업을 개방화 시대의 걸림돌로 인식하고 빨리 포기하려고 한다고 생각한다. 즉, 농민은 정부의 개방정책을 곧 농업포기정책으로 인식하고, 참여정부가 농업과 농민을 버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 정부의 119조원 농업·농촌종합대책은 농민의 불만을 달래기 위한 사탕발림에 불과하다고 본다. 농민은 그 동안의 막대한 정부 투·융자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생활이 나아진 것이 없고, 오히려 부채만 증가시켰다는 인식 때문에 119조원 투·융자 계획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불신한다.
더욱이 농민시위가 격렬하게 전개되던 상황에서도 통상 책임자는 도하개발어젠다(DDA)협상에서 ‘협상 타결을 위해 농업 분야를 양보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하였고, 경제정책 책임자는 ‘농업 구조조정만이 해결책’이라는, 비현실적이며 농민정서에도 맞지 않는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이러한 발언은 농민들로 하여금 참여정부가 개발독재 이래 경제 성장을 위해 농업·농촌을 희생한다는 경제정책 기조를 따르고 있다는 생각을 갖도록 한다.
정부와 농민단체가 심각하게 대립하는 이유는 농업·농촌문제의 원인에 대한 인식은 같은 반면, 처방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정부와 농민단체 모두 농업·농촌문제의 주된 원인을 국제무역기구(WTO),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따른 농산물 시장개방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처방은 서로 다르다.
정부는 개방에 대응한 농업경쟁력 강화를 농정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는 반면, 농민단체는 농산물 시장개방 반대를 농민운동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다. 서로 다른 처방이 격렬하게 부딪친다.
정부와 농민단체 모두 농업·농촌의 역할에 대해 식량공급을 중심으로 사고한다. 그 동안의 농정은 쌀 농정이라고 할 만큼 쌀 증산과 쌀값 인상 저지에 모든 노력을 경주해왔다. 그러나 쌀 소비 감소와 과잉생산, 그리고 WTO 재협상에 따른 쌀 시장의 추가 개방을 배경으로 삼아 쌀의 국제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수매제를 폐지하는 한편, 쌀값 하락과 쌀 생산 억제를 유도하고 있다.
반면에 농민단체들은 농산물 시장개방과 과잉생산으로 농가경제가 어려워지자 정부 보호로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안정된 쌀에 더욱 매달리고, 쌀 재협상에 따른 쌀 시장개방에 격렬하게 저항하면서 쌀값 안정과 소득보장을 요구한다.
그러나 정부가 말하는 대로 농업경쟁력이 강화되거나 농민단체가 원하는 대로 농산물 시장이 추가로 개방되지 않아, 농산물 수입이 더 이상 늘지 않으면 농업·농촌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농산물 시장개방 혹은 농산물 수입의 확대는 농업·농촌문제를 심화시키는 요인이기는 해도 본질적인 요인은 아니다. 예를 들어, WTO나 FTA 등 세계화에 따른 농산물 시장개방의 확대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고, 현재 대세를 이루고 있음에도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농민들이 격렬하게 저항하는 이유는 세계에 유례 없는 농업·농촌의 상대적 낙후(도시와 농촌간의 격차구조) 때문이다. 농촌을 사람이 살만한 공간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종합적 혹은 통합적 정책이 필요하다. 정부와 농민단체는 농업 경쟁력 강화 혹은 농산물 시장개방 저지는 농촌을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는 농민들에게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도 우리 농업을 대외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믿음을 심어주고, 동시에 농촌 발전을 위한 장기적 비전과 종합적 발전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농민단체는 농산물 시장의 추가 개방을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지만, 그것이 이념적 투쟁으로만 흐르는 것을 경계하고, 농업·농촌의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고 종합적 발전 전략의 수립에 책임 있는 자세로 적극 참여해 정부와 협력해야 한다.
과거 배고픈 시절에는 농업의 주된 역할(국민들의 농업에 대한 요구)이 값싼 식량의 안정적 공급이었지만, 오늘날 농업·농촌의 역할은 다면적 기능으로 전환되고 있다. 농업·농촌의 다면적 기능이란 식량의 안정적 공급을 통한 식량안보, 국토 및 환경의 보전, 지역사회의 유지, 전통 및 문화의 보존, 인간교육의 장 등을 제공함을 말한다.
국내 농업은 쌀에 지나치게 의존한 왜곡된 생산구조다. 소득탄력성이 낮아 소비가 감소할 수밖에 없는 쌀 농업에만 매달리는 것은 경제 성장과 1인당 소득이 느는 상황에서 농민의 상황을 악화시킬 따름이다. 따라서 국내 농업은 쌀 의존도를 낮추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농산물(소득탄력성과 부가가치가 높고 안전한 농산물)의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생산구조를 전환해야 한다. 농업·농촌의 역할을 단순한 식량 공급기지가 아니라 미래 지향적으로 재정립하고, 그런 인식을 우리 모두가 공유할 필요가 있다.
대중요법적 농촌 정책은 이제 그만
오늘날 우리의 농업·농촌문제는 환자에 비유하자면 만성적 고질병에 걸린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의 농업·농촌을 희생한 경제 정책의 결과이므로 하루아침에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그 동안의 대중요법적 농촌 정책이 오히려 병을 더욱 악화시킨 측면이 있다.
향후 10∼20년 후 우리 농업·농촌의 미래상을 전망하면서 농정을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여기에는 농민적 관점 뿐 아니라 국민이 농업과 농촌에 대해 앞으로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하는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즉, 농촌을 농업생산과 농민만을 위한 폐쇄적 공간이 아니라 전체 국민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발전시켜 나갈 비전과 전략이 있어야 한다. 농촌을 생활공간, 경제활동공간, 환경 및 경관공간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농업·농촌을 국가경제와 국토의 나머지 공간이 아니라, 국가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고유의 역할로 인정하고, 농정을 국가 경영전략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농정을 농업 정책 등 부문 정책에서 농촌지역에 기초한 종합적(통합적) 농촌 정책으로 전환해야 하고, 기존의 농정에 대한 근본적인 재평가와 그에 기초한 새로운 농정을 수립해야 한다. 이 과정에 비농업계의 광범한 참여를 유도해 농정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지지를 모아야 한다. 농업 기득권층만의 잔치는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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